|
사도행전 7장
제 7 장 스 데 반
(대 지)
一. 스데반의 강도(講道)(1-53)
1. 네 가지 증거(四證)(1-50)
① 아브라함(1-7)
② 요셉(8-17)
③ 모세(18-46)
④ 솔로몬(47-50)
2. 책망(責望)(51-53)
二. 스데반의 순교(54-60)
(본문 강해)
一. 스데반의 강도(講道) (1-53)
1. 네 가지 증거(四證) (1-50)
① 아브라함(1-7)
. 7:1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지금 스데반이 공회에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고 있다.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거짓 증인들이 증거한 내용(행6:13-14)이 사실이냐고 심문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면 스데반은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 모세의 율법을 훼방하고 성전을 모독한 죄는 마땅히 죽을죄이기 때문이다.
. 7:2-3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창세기11:18-12:4에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란에 가서 거하다가 아버지(데라)가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하란에 오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메소보다미아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오다가 하란에서 얼마 동안 머물러 살았다. 그 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하란에서 다시 아브라함을 부른 것 같다. 창세기12:1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 하신 것은 하란에서 부른 것이다. 그 증거는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후에 하란에서 떠났다고 하였다(창12:4-5 참조).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첫번 불러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다. 창세기12:1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두 번째 불러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부르시는 일이 많이 있다.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벧엘에서 나타나시고(창28:10-19), 하란에서 양을 칠 때에 재차 나타나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다(창31:3 참조). 그 다음에도 하나님이 또 야곱에게 나타나셨다(창 35:9-10 참조). 솔로몬에게도 여호와께서 두 번 나타나서 말씀하셨다(왕상3:5, 9:2-9 참조).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오다가 왜 하란에서 머물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하란이 제 2 고향과 같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 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두 번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주자주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권면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본토를 떠났다가도 또 다시 본토에 주저앉는 일이 많이 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은 한마디로 자기중심으로 사는 생활이다. 자기중심 생활을 떠나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욕, 정욕, 사욕이다. 본토는 자기 옛사람의 본바탕이며, 자기주관이다. 친척은 인정이고, 아비집은 의지하고 사는 것과 이 세상주의를 말한다. 이것들을 다 떠나야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갈 수 있다.
이것들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창성하여지고 인격이 커지고, 그 사람이 복 자체가 되어 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고 그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창12:3 참조). 배의 닻을 뽑지 않고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성도가 자기 위하는 정신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전부 자기의 것이 된다. 자기를 위하는 것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모든 복을 받을 터인데 사람들은 복 받을 길은 가지 않으면서 공연히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고 있다.
. 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다.
. 7:5 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아브라함 당시에는 가나안땅을 발붙일 만큼(아주 좁은 땅)도 유업으로 주시지 않았다. 다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이다. 이 약속은 창세기12:7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한 말씀과 창세기15:4에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한 말씀들을 말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한치의 땅도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아들도 없었지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확신하고 나아간 것이다.
. 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 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사 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연단 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사 백 년 동안 연단을 통과한 다음에야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성도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과하여야 될 것이다(행14:22 참조).
. 7: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에서 사 백 년간 종살이하며 많은 고난과 연단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구출하여 약속한 땅 가나안에 거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 그 말씀의 세계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세계가 이루어지려면 많은 연단을 받아야 한다. 연단을 다 통과하면 약속한 말씀의 세계가 온전히 이루어져 그 복을 받게 된다.
②요셉(8-17)
.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
할례의 언약 할례는 구약 시대에 행한 두 가지 성례중 하나이다. 구약 시대에는 할례와 유월절의 성례가 있었다. 할례의 뜻은 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이다. ② 정욕을 제거하는 표시이다(렘4:4). ③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증표이다.
스데반이 할례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할례를 받았으나 의식적인 할례만 받고 마음의 할례는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행7:51 참조). 마음의 할례란 하나님의 언약 성취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믿고 죄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열 두 조상을 낳았으니 이 열 두 조상은 다 할례의 언약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이니 그 언약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것이다.
. 7:9-10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여러 조상들(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에 팔아먹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요셉과 함께 계셔서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 주셨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바로왕 앞에 서게 하시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삼아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다. 조상들이 시기하여 애굽에 판 요셉을 하나님은 애굽의 치리자로 높여 놓으신 것처럼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잡아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높여서 영화롭게 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 7:11-13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들어 큰 환난이 있을때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가나안에 7년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을 당하고 죽게 되었을 때에 야곱이 애굽에 그의 아들들을 보내어 양식을 구해오게 하였다. 야곱이 재차 아들들을 보냈을 때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났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도 예수를 시기하여 팔았으나 앞으로 온 세상이 환난으로 죽게 될 때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그를 의존하여야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 7: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7년 흉년으로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요셉이 그의 부친 야곱과 친족 75인을 애굽으로 데려다가 봉양하였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다. 이와 같이 죽음에서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일흔 다섯 사람 창세기46:27, 출애굽기1:5에는 70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의 75인은 상술(詳述)이고 창세기나 출애굽기에 기재된 70인은 약술(略述)이다. 실제로는 75인인데 대략적으로 말할 때는 70인이라고 한 것이다. 성경에는 약술(略述)로 기록된 곳이 많이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라고 한 것도 60만 명에서 한 명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대략 60만 명이라는 뜻이다. 니느웨성의 유아가 12만 명이라고 한 것도 대략적인 숫자로 12만 명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은 사람이 오 천 명이라는 것과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인 것도 대략적인 숫자를 기록한 것 같다.
. 7:15-16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으나 애굽 땅에 장사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하였다. 창세기50:13에는 야곱을 장사한 곳이 세겜이 아니고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창49:29 참조). 또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 일 백 개로 밭을 산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고 야곱이었다(창33:19 참조). 그런데 본문에는 왜 아브라함이 샀다고 하였으며 야곱을 왜 세겜에 장사했다고 하였을까?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은 사 백으로 산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굴과 야곱이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 백으로 산 세겜의 무덤을 합해서 하나로 보고 스데반이 본문과 같이 말한 것이다. 이 두 무덤이 어느 지방이든지 다 가나안 땅에 있고 누가 샀든 그의 조상들이 산 것이기 때문에 조상의 대표자인 아브라함이 샀다고 한 것이다.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야곱이 죽어 세겜으로 옮긴 것을 중점을 두어 말한 것이고 다른 조상들이 옮기웠다는 것은 아니다.
. 7: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 하나님이 창세기15:13-16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을 번성케 하셨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③ 모세(18-46)
. 7:18-19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쌔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가까우면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더욱더 핍박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많은 곳에는 마귀도 더욱더 대적하게 된다. 애굽왕이 마귀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 사람 중에 남자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핍박은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키려는 궤계이었다.
. 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달을 길리우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멸절될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났다. 즉 하나님이 모세를 낳게 한 것이다. 이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성취를 위한 중요한 인물이었다. 모세의 부모는 바로의 명을 어기고 모세를 석 달 동안 집에서 길렀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모세는 모태에서부터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있고 성령의 은혜가 있는 아이는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아름다워 보인다. 하나님이 모세를 기뻐하시는 줄 알고 모세의 부모가 바로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을 숨겨 길렀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를 숨겨 주는 자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수2:1-14 참조).
. 7: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히브리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는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건져 애굽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기르게 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당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사자굴에서 모세를 기른 것과 같다.
.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모세는 40세가 되도록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다. 애굽의 학술은 천문학, 수학, 지리학, 의학이라고 한다.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출애굽기4:10에서는 모세가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에 있어서 일은 크고 대적은 강하므로 자기의 부족과 미약함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말할 줄 모른다고 한 것이다. 또 자기 형 아론과 같이 변사가 아니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모세는 진리와 성령으로 하는 말에는 능하였다.
. 7: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가 애굽의 학술을 다 배운 때는 나이가 40세 된 때이었다. 그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감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일하려고 나선 것이다. 히브리11:24-25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하였다.
. 7: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일하려고 나갔는데 한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며 압제하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그 때에 의분과 혈기와 완력으로 그 애굽 사람을 죽여 모래땅에 묻었다. 이것은 분명히 모세의 실수였다. 하나님의 일은 분과 혈기와 완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권위로 가르쳐서 순종하여 따라가게 하는 것이다. 모세가 실패한 원인은
① 제가하려고 했다.
② 혈기와 완력으로 하려고 했다.
③ 외부적 육적 구원에 치우치고 영적 면을 무시했다.
④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한 것이 아니었다.
. 7: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서 애굽사람을 죽인 것을 보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깨달을 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깨닫도록 증거를 주셨으나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7:26-28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이튿날 모세가 나가 보니 이스라엘 사람끼리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것을 본 모세는 마음이 아파서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화목 하라고 권유하였다. 그 때에 그 중 한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관원과 재판장으로 삼았느냐"하며 배척을 하였다. 그뿐 아니라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나를 죽이려느냐"하고 모세의 잘못을 폭로하였다. 그 사람은 어제 애굽 사람과 싸우며 학대를 받던 사람인데 모세가 도와서 건져 준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모세가 자기를 도와 구출해 준데 대하여 배은망덕하고 모세를 해하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가해(加害)하여 십자가에 죽인 것을 스데반이 책망하고 있다.
. 7: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모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모세가 애굽 사람 죽인 것을 폭로했다. 모세는 그 일 때문에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으로 가서 40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미디안으로 보내는 섭리였다. 모세를 미디안에서 수양을 시켜 장차 하나님이 쓰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모세가 40년간 미디안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모세는 40년간 깊은 기도를 하며 은밀한 세계에 깊이 들어가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을 것이다.
미디안 40년 생활에서 모세는 자기 자신을 벗어버리고 깊은 영적 세계를 발견하였으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하게 되었다. 히브리11:26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세가 미디안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하고 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낙으로 삼고 큰복으로 여겼다. 또 그 결과가 하늘나라에서 큰상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 능욕 받고, 고난받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희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 됨과 애굽의 모든 재산과 자기 육신의 평안함을 다 내어놓고 희생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한 인간의 협력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모세가 하나님을 위하여 결심한 것처럼 결심하고 나서야 한다.
아들 둘을 낳으니라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낳은 두 아들인데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다(출18:2-4 참조).
. 7:30-32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미디안 40년 후에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났다. 이 때는 모세가 80세 된 해이다. 출애굽기3:1-2에는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시내산은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산을 가리키며 호렙산은 그 중의 한 봉우리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사자는 비의적 현상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천사인데 하나님을 가리킨다(창22:11, 48:15-16).
가시나무떨기 나무 중에서도 좋지 않은 나무인데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백성에 비하면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불꽃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가리킨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 했을 때에도 불로 나타났다(출 19:18 참조). 하나님은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가시나무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는 않았다. 이것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어서 광채가 나고 붉고 찬란하여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 보잘것없는 인간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렇게 아름답고 광채가 나고 고귀해 보인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름답고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고 존경하게 된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계약의 하나님인 동시에 선택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 7: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신을 벗어야 종이 된다. 당시 종들은 신을 벗었다고 한다. 모세가 전에는 자기라는 신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하였다. 신을 벗어야만 하나님의 종노릇을 할 수 있다. 모세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완력과 수단으로 하려다가 사람을 죽였으나 이제는 그것을 다 벗어 버려야 한다. 모세가 애굽에서 40년간 학문을 배웠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다가 실패하였다. 오늘날 교역자들이 신학교에서 조금 배웠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제 힘으로 하려다가 양떼를 많이 때려잡는다. 자기의 수단, 자기의 지혜, 자기의 지식, 자기의 계획을 다 버려야 하나님의 참 종이 될 수 있다. 교역자가 자기 수단과 인본주의로 교회를 해 나가면 사람은 좀 모을 수 있지만 영적 구원운동은 되지 않는다. "신을 벗으라"는 말에는 죄를 벗어버리라는 뜻도 있다. 자기 자신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전히 피동되고 이용당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인간의 협력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을 벗은 종을 전적으로 사용하신다.
. 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 택한 백성이 괴로움 받는 것을 정녕히 보고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형편을 다 아시고 친히 건져 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이다.
. 7: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하고 배척하던 모세를 하나님이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의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다. 사람들은 배척하였으나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변치 않고 이루어 나가신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 되는 것과 애굽의 많은 재물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고난받는 것을 즐거워하며 미디안에서 신을 벗는 생활을 바로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모세를 불러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사람들이 배척한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반드시 성공되어 나간다. 스데반이 증거한 이 말씀 중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배척하였으나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삼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 7: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40년간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이스라엘의 인도자(구출자)로 삼으신 것을 증거하였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증거로 그리스도가 된 것이 확증되고 있다는 뜻으로 스데반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 7:37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신명기18:15을 인용한 말씀인데 모세가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다.
나와 같은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모세를 믿는 너희는 모세가 예언한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는 뜻이다. 참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예언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는 모세도 배척하는 결과가 된다.
.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는 하나님과 동사(同事)하는 자로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생명의 도를 받아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준 것이다.
광야 교회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금일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한 것은 교회운동이다. 오늘날 민족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자는 교회운동이고 후자는 세상 운동이다.
생명의 도 십계명과 모든 율법과 그 중에 내포한 메시야에 대한 진리가 생명의 도이다. 모세가 이러한 귀한 도를 받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 주었다.
. 7: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모세가 생명의 도를 받아 이스라엘에 전해 주고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를 보여 인도하였는데 그 모세를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거역하고 마음이 애굽으로 향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완악하게 하나님을 거역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자손된 유대인들이 모세가 예언하여 준 그리스도를 완악하게 거절하고 있다고 스데반이 지적한 것이다.
. 7:40-41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들 것을 기뻐하더니
모세가 40일간 기도하기 위해 산에 올라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라고 하였다. 그러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겼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에 우상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든다고 한 것이다.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든다는 것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다. 생명의 도를 받아서 전해 준 진리는 복종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손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섬겼다.
오늘날도 교회가 세상으로 향하고 하나님을 금송아지 섬기는 식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섬긴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겨 주는 것이다. 또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뜻대로 하나님이 따라와 달라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대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주권대로 살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관(神觀)대로 하나님을 만든 것이 금송아지였다. 금이 외부적으로는 존귀한 보배이며 광채가 나고 아름답다. 그러나 금송아지 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다리가 있어도 활동하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그 때까지 섬겨 오던 하나님이 곧 이러한 하나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과 시험이 들어올 때에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애굽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인들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다(엡5:14 참조).
. 7:42-43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늘의 군대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천체(天體)를 섬기는 죄를 범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린 큰 벌이었다 (롬1:28 참조).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간섭하고 징계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신다(히 12:6 참조).
선지자의 책 선지자 아모스가 기록한 구약성경 "아모스"를 말한다. 본문은 아모스5:25-27을 인용하였으나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것은 성경을 변경한 것이 아니고, 그 내용을 알기 쉽게 해석하여 다른 표현과 어구로 인용한 것이다.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희생과 제물을 드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며 하나님도 그러한 제사는 받지 않는다.
몰록은 너희 왕이라는 뜻이다. 아모스5:26에 "너희 왕 식굿"이라고 하였는데 이 식굿은 장막이라는 뜻으로 바벨론 사람이 섬기는 우상이다.
레판의 별은 앗수르인이 숭배하는 토성(土星)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서 멀리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갈 것을 아모스가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되었다.
스데반 당시 유대인들이 생명의 도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과 성전을 우상화하면서, 고집의 우상을 버리지 않고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 7:44-45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거짓 증인들이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겠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에 스데반이 성전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출애굽기25:8-40에 성막 짓는 식양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 주었고, 그 식대로 만들게 한 것이다. 증거의 장막은 성막을 가리킨다.
모세가 지은 성막은 광야생활을 할 때에 가지고 다녔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른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니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데반이 증거하고 있다.
.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 했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④ 솔로몬(47-50)
. 7:47-50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다윗 때까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솔로몬 때에 성전을 지었다. 스데반이 이사야66:1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하나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것이라고 증거하셨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줄로 아는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윗이 증거한 바요(대상29:10-19 참조). 성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유대인들)가 성전을 우상화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바로 섬겨야 할 것을 스데반이 가르쳐 준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외부적인 의식과 제도만을 중히 여기고 보이는 성전만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근본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다. 율법을 참으로 지키면 그 율법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요, 또 영적 생명이 살 것이다.
2. 책망(51-53)
.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목이 곧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기 고집대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끝까지 나간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중심이요 욕심이 가득하여 성령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데반이 유대인의 역사를 들어 그들을 책망하고, 회개해야 될 것을 권면했으나 그들은 깨닫는 마음과 듣는 귀를 갖지 못하고, 목이 곧아 돌이키지 못했다. 이것은 성령을 거스리는 죄요 또 조상들이 지은 죄의 길을 그들도 걷고 있는 것이다.
할례 정욕을 제거하는 것과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렘4:4 참조).
.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노골적으로 책망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도 선지자들을 핍박했고, 특히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언한 선지자들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잡아 임으로서 조상들의 죄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과 흡사한 책망이다(마23:29-36 참조).
.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율법은 천사를 통하여 주신 것이다(히브리2:2, 갈3:19 참조). 스데반에게 율법을 무시하고 거스렸다고 비방하는 그들 자신(유대인들)이 사실은 율법을 배척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율법이 예언한 그리스도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율법을 지키면 그 율법이 예언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었을 것이다.
二. 스데반의 순교(54-60)
.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말하매 저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 베드로의 강도를 들은 사람들도 마음에 찔렸었다(행2:37-42 참조).
그리하여 그들은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를 하였다. 그러나 스데반의 강도(講道)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리면서도 도리어 더 강퍅하여져서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고 분하게 여겼다. 마음이 찔리울 때에 회개하지 않으면 칠 배나 더 강퍅해지고 성령을 거스리는 죄가 된다. 마음에 찔렸을 때에 회개하였으면 그들에게 살 길이 열렸을 것인데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갈았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대단히 완악하고 하나님의 도에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7:55-5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둘러선 무리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살기가 등등하여 이를 갈며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들만 보았다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스데반은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볼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마가16:19에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하였는데 본문에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하였다. 이것은 스데반이 환난 당하는 것을 예수께서 도와주려고 일어서신 것이다. 성도가 핍박당할 때에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시는 것으로 여기시고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고 일어서서 도와주시는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에 ① 하늘을 우러러보았고(사40:3l, 45:22 참조), ②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③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 중에서 즐거움으로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스데반은 자신이 보고 있는 신령한 사실을 그들에게 증거하였다.
. 7:57-58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이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할 때에 듣는 무리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터인데 도리어 하나님의 신령한 소식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어 스데반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다. 성령께서 큰 역사로 그들에게 살길을 보여 주었으나 거역하고 도리어 악한 일을 행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악하며 불쌍한 자들인가! 하나님의 증거를 듣고 성령이 크게 역사하는데 더욱더 강퍅하여 돌로 쳤으니 그들의 상태가 비참하고, 그 죄가 더욱 크고, 그 벌이 더욱 큰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한 것만큼 자신들이 악화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벌이 크다.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 바울이 회개하기 전에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편투표를 하였고 옷을 지켜 주는 증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이것은 스데반의 소망 충만이다. 스데반은 견고한 소망을 가지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스데반은 자기가 죽어도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서 사는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소망의 사람이다.
우리도 소망이 충만하여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찾는 생활을 하여야겠다.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사울이 많은 감동을 받아 후일 개종하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 때에 어느 정도 감화를 받았으나 돌이키지 못하였고, 나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질 때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기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죽이는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스데반의 사랑 충만이었다. 원수를 향하여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을 때는 영에 서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이 되지 않고 심령에 기쁨이 없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 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는 모든 사람, 특히 원수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스데반의 순교에 5대 충만이 나타났는데 ① 성령 충만(55절) ② 신앙 충만 (55-56절) ③ 예수 충만(55-56절) ④ 소망 충만(59절) ⑤ 사랑 충만(60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