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가 만난 문인들 22
안장환 소설가
김 송 배
1980년대 초반, 어느 가을에 문협 세미나가 열려서 버스로 이동하면서 안장환 소설가를 처음 만났다. 그는 얼마전에 작고한 유재용 소설가를 비롯해서 김병총, 오영석(작고) 소설가와 동승하여 재미나(이들은 세미나를 이렇게 불렀다.)에 대한 담론 발표가 이루어졌다. 그 강한 입담으로 다루어지는 주제는 대체로 음담패설인데 소설가들의 무궁무진한 스토리로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안장환(安章煥) 소설가는 그후에 문협 소설분과회장과 소설가협회 부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이러한 그를 『한국문예사전』(어문각 발행)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안장환 1934~ 소설가. 충북 충주 출생.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1958). 196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늪가의 이야기>가 입선. 1966년 <평행선>이 <문학춘추>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작품은 6. 25와 월남전 파병과 관련된 직접. 간접의 심리적 후유증을 많이 다루고 있으며....
그는 예총 『예술세계』를 재창간할 때 백파 홍성유 선생이 주간을 맡고 내가 편집부장으로 있을 때부터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홍성유 선생과도 각별(그는 홍성유 선생을 대부로 모시고 카돌릭에 인도됨)한 사이여서 사무실을 방문해서 환담하고 식사를 함께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는 문협 세미나와 홍성유 선생의 맛자랑 취재시에는 한상 홍성유 선생을 그림자처럼 동행하고 나도 함께 부르는 일이 많아서 그와는 자연스럽게 친근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예술세계』에 응모하는 신인상 소설부문에는 심사위원으로 정중히 초빙해서 작품의 수준과 당선여부를 위촉했다. 그도 다른 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꼼꼼하게 체크하고 수준미달 작품에 대해서는 작품의 구도나 화자등의 언술까지 상세하게 언급해서 당락을 결정지어 주었기에 심사를 받아 등단하는 소설가는 그 기량과 지향점을 충분하게 발휘하는 작가로 대성할 수 있는 역량을 측정하고 있었다.
그는 충주시 용탄동(지금 충주댐 바로 밑동네)에서 조상대대로 농사짓는 집에서 출생하여 아버지를 따라 영월로 이주하여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는 제천에서 졸업했다. 그는 미술을 좋아해서 그림을 아주 잘 그렸는데 환쟁이가 될 것이냐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작품에 열중하게 되었고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서 장래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동대에 비해서 등단이 비교적 늦었는데 이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타계하는 바람에 뒷받침을 받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서라벌예술학교에 응모하여 입학이 되었으나 학비가 문제였다. 간신히 둘째 형님이 학비를 마련해 주었으나 서울의 하숙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숙집 아들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조달하는 고학생이 되었다.
그는 어떤 문학잡지의 인터뷰에서 등단 초기의 상황과 작품활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담담한 심경을 피력하고 있다.
1963년 경향신문에 소설「늪가 이야기」가 입선되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문단평가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 최초의 탄광이야기인「삭도주변」을『현대문학』에 보냈으나 발표가 1년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1966년도『문학춘추』에 발표한 「평행선」이 신인 예술상을 받고 1969년「삭도주변」이 실리면서 차츰 문단에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작품을 유심히 살펴본 분들은 쉽게 느끼겠습니다만 늘 삶이 편치 낳은 사람들의 힘겨운 부대낌과 함께 극복해가려는 인내심과 발버둥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삭도주변」에서는 탄광촌 광부의 가족들에게 안겨진 내일 없는 그늘진 나날들을 그려보였습니다.
어느날 김양수 평론가(예총 사무총장 역임)는 그의 작품「평행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평행선」은 지극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소설로서 청순한 서정성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라 보았습니다. 이 작품이 있었기에 안 형의 그 많은 힘겨운 이야기가 끈질기게 여유를 보이며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0대 초반 방황하는 젊은 주인공의 고뇌어린 순정의 축도를 펼쳐보인 것인데 언제나 힘겹고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어 가는 안 형에게 이런 감수성 짙은 서정적 작품으로 많은 장편 연재들이 부드러운 인기속에서 공감하고 있다고 판단 됩니다.
그는그후 70년대 들어서 주간한국에 옴니버스 연재소설이 실리고 이 소설이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되기까지 하면서 이에 가속도가 붙어 인천의 경기일보에장편「인형의 도시」를 연재하게 되는데 그곳 시립병원 간호학교 학생들이 아침마다 신문을 기다렸다는 일화로 보아서 인기가 폭발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는 호구지책을 위해서 『주부생활』과『여원』, 『여고시절』 등 잡지에서 편집장으로 직장을 가지고 작품 집필에 골몰하였으나 연재소설 청탁이 계속해서 연결되고 또 그 작품이 인기소설로 잘 팔리면서 직장을 접고 85년부터 전업적가로 변신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항상 현대시회를 살아가면서 자신부터 당면한 생활문제 가운데 궁금한 것들과 해답을 필요로 하는 것들, 속 시원하게 풀어져야 하는 것들을 많이 다루면서 이런 문제들을 노인의 위치에서, 주부의 자리에서, 가장의 시선으로, 젊은이의 수준에서 이를 풀어가야 할 것을 추구하고 그 것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라면 어째서 힘겨운 것인가 하는 문제점을 구상하면서 돌출구를 모색한다는 몸짓으로 작품을 창조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정이 결실로 이어져서 창작집『일렁이는 강물』『서울타령』『안개 강』『목마와 달빛』장편소설『사계의 안개』『열두명의 하숙생』『인현의 도시』『날마다 축요일』『겨울새』『바람의 여인』『악의 꽃』『바람의 도시』『배반의 그늘』『정선 아라리요』『사라의 향기』등을 발간하여 소설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리고 그가 영월에서 중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김삿갓을 다룬 소설을 한번 쓰고 싶어 했는데 마침 난고 김병연 탄생 2백주년에 대한민국 시인대회‘가 개최되고 학술심포지엄 등 다양한 행사 중에서 영월문화원의 위촉으로 2008년에 소설 김삿갓 『방랑』을 발행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이와 같은 노력이 인정되어 한국소설문학상과 문학평론가협회상, 만우 박영준문학상, 한국문학상 그리고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뒤따랐다.
안 선생님, 요즘 뵌지가 오래입니다. 그래요, 오늘 신촌에서 만나 점심이나 합시다. 아직도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었으나 가장 친하게 지냈던 유재용 소설가를 먼저 떠나보낸 일이나 김병총 형이 몇 차례의 수술로 그 좋아하던 담배와 술을 절연하고 집에 칩거하년서 요즘 잘 볼 수 없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인생무상을 느끼는 눈빛이 역력하다. 건강하십시오
*[문학공간] 2010.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