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중치못한행위로 제정보증,돈거래래로인해,가정이 위기,파탄될 상태가 되었다. 제증보증,돈거래잘못히면 돈 잃고 잃는다는말은 너무나 일반 상식적인말이다.그르나 이런일은 형제 자매나 친인척,거절할수없는 관계에서 이루어진다.처음 박봉에 어렵게 새 집을마련했을때,얼마나 기쁘했던가,그것도잠깐,집이 가 압류되고,6~7년동안받는 봉급에해당되는 돈을 사기당했으니,한동안 밤 잠을 자지못하고 정신나간사람 되었으며 저의 처는이루 말 할수 없는고통을받았다.그러나 살아야했기에 아내와함께 합심하여 다시 시작했다.삼 남매 아이들은 ,부 모의 고통을잘아는듯,잘 따라줬으며 ,학원 과외를 못해도,불평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줬다.가끔 농번기에는,아이들괴함께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의 일손을 도왔으며 손자들이가면,그맇게 좋아하셨다.아이들이 시골에가면 할아버지와 깉이 가까운 대둔사에가서 부처님에게 공부잘하라고 절도하고,낙동강에가서 낙시도했는데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고기를 잘 잡는다고 자랑하면서,시골에가면 할아버지께 고기잡으로 가자고했다.큰 딸은 여상고를졸업 ,회사경리로 취업하여 늘 검소한생활로 저축 결혼자금을 마련, 결혼 했으며,외 손자는 계명대학,외 손녀는 카도릭대학에서,공부를잘하여,둘 모두 장학금을 받는다. 그르나,큰 딸을 대학교에 보내지못한것이 지금까지도 아버지로서 죄서럽고 한 이된다,모든것이나의 무능한 때문이라 자책하며 생애 가장아쉬움으로 남는다
큰 아들은 대학졸업,국가 공기업에취업하여 중견간부로서 미국 모 주립대학교에서 1년간 연수를받있으며,손자는 대학2학년재학중,공군에입대 복무중이며,손녀는 중2 학년이며,초등학교때 대구 할머니집에오면 거실에서 춤을잘추고,노래도 잘부러는등 너무귀여워 때때로보고싶을때가있지다.
둘째아들은 대학졸업후 회사에 잘 근무하고있다.
큰아들은 6살때 단층 지붕에서 마당에뜰어져,뇌를다쳐서 병원에서는 24시간지나봐야한다고할때,또 둘째아들은 교통사고로 의식을잃고병원에입원했을때,이를때,나는 밤을 꼬박세우면서,전생에 무슨 업 으로이렇게 큰 시련이 닥치는지 하면서 기도할때는,인생의 허무함을 깊이느겼다.
모든것은.오직 내마음먹기에.달라진다는것.살아온 세월,뒤돌아보면,원래 좋고 나쁜것은없고,모든것을 내가 만들어낸것이라는,불교에서하는말 새삼서럽게느껴진다.
지금 살고있는집,3층 건펑약80평,삶이힘들때 자녀들이 결혼하기전,경제적으로 새집을지울수 없는 가정형편이었는데 ,한번해보자고 아내가 적극적으로니서서 시작,헌집을헐고 ,집을짓고 준공검사후,전세돈을받아서.건축비를 지불하였다.그때로봐서 간크게 모험적이었다,지금생각해도 그 당시에는 학교다니는아이 등록금도힘들었는데,약 10년에걸쳐서 전세금돌려주고,세를받고있으니 현제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된다,이 새집을 건축한것은 오직 아내에게 공을돌리고,보람되고,자랑스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