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본관이 전주이다. 고려 충숙왕 4년(1325년) 10월 11일 함경도 영흥 흑석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태어나면서 골격이 비범하였고 인물도 남달랐다.
이성계는 무인으로서 그 용력과 기개가 남보다 뛰어났고, 소싯적부터 특히 활을 잘 쏘았고 말을 잘 탔다. 명나라에서 온 사신 왕태(王泰)가 이성계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명한 상명사(相命師)였던 혜등(惠登)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숱한 사람의 관상을 보았지만 이성계처럼 장래가 유망한 사람은 처음 본다. 반드시 세상이 놀랄 정도로 큰 인물이 되리라!”
젊은 시절에 이성계는 홍원군(洪原郡) 소포산(昭浦山)으로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노루 세 마리가 나란히 달아나자 화살 하나로 세 마리를 모조리 꿰뚫었고, 화살은 여력이 남아서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함께 따라갔던 종자(從者) 이원경(李原景)은 이런 현장을 목격하고 너무나 놀랐다. 화살을 빼느라고 끙끙대다가 늦게서야 돌아오자 이성계가 물었다.
“왜 그리 늦었나?” 이원경: “살촉이 너무 깊이 박혀서 빼느라고 애를 먹었습니다.” 이성계: “그럴 테지, 내 화살은 누구보다도 강궁이니까......”
그후 임강현 화장산에서 사슴을 사냥할 때이다. 사슴이 쫓기다 벼랑을 뛰어
내리자 그대로 말을 타고 뛰어내려 사슴을 잡았고, 평지처럼 사뿐히 내려 앉았다. 또한 그의 뛰어난 활솜씨는 날아가는 여러 마리의 기러기를 화살 한 대로 쏘아 떨어뜨리기도 했다.
원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황상(裳)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또한 명궁으로 원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그가 고려로 돌아와서 공민왕 때 정이품에 해당하는 찬성사가 되었다. 어느날 이성계와 황상은 서로 활쏘기 시합을 하였다. 그 결과 이성계는 백 발을 쏘아 다 맞았고, 황상은 50여 발만 맞추었기에 이성계가 이겼다. 황상도 패배를 인정했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성계는 천하의 명궁이다, 정말 무서운 장수구나.”
공민왕 10년 북원 일대에서 홍건적이 발호하여 송도까지 쳐들어왔다. 임금이 피난을 나서야 할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성계가 앞장서 훌륭하게 물리쳤고, 공민왕 11년에는 원나라의 나하추가 침범했을 당시에 고려 군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이성계는 부하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전에는 그토록 용맹하던 장졸들이 거듭 패한 이유를 알아낸 결과, 적장이 용맹하여 그 자가 나타나면 사기가 떨어져 도망가게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성계는 적장을 단독으로 상대하여 작전상 달아나던 이성계가 몸을 낮추어 번개처럼 강궁을 쏘아 적장의 목을 꿰뚫었다. 고려 병사들은 일시에 공격하여 수많은 적군이 죽거나 달아났다, 그때 도원수이던 나하추도 북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이성계는 달아나는 나하추의 말을 쏘아서 쓰러뜨렸다. 다시 나하추에게 활을 쏘려던 이성계는 무엇 때문인지 잠시 멈칫거렸다. 그때 나하추의 아장이 달려나와 급히 나하추를 말에 태우고 달아났다. 그런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이성계는 나하추의 여동생 금란화를 애첩으로 삼는다. 그때의 일로 이성계는 모함을 받았을 때 최영 장군이 나서서 변론하여 구해 주었다.
우왕 3년(1377년) 왜구가 쳐들어와 경상도 지방을 함락하자 출전하여 그들을 격퇴하고 승리하였으며, 우왕 말기에는 왜구들이 지리산까지 침범하여 지리산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을 이용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산중으로 숨어들기를 반복함으로서 토벌하기가 어려웠다. 이성계가 강궁으로 저항하는 적들을 여러 명 쓰러뜨리자 마침내 패색이 짙어진 적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적들은 퉁두란 장군이 이끄는 매복군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갔다. 적들은 거의 전멸하였고 대승을 거두었다. 왜구들은 당시만 해도 거친 땅에서 생산되는 물량만으로는 부족함이 많았기에 해적질을 하거나 떼를 지어 가까운 나라를 자주 침범하였다.
왜구들은 다음해에도 경상도 함양을 침범하여 왜구들을 막게 하였으나 군사 5백여 명이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왜구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양곡이나 가축을 약탈했다. 이번에는 이성계를 보내 강성한 왜구들을 패퇴시겼다. 국난을 당하였을 때 이성계의 활약으로 어려움에서 여러 차례 벗어날 수 있었다. 이성계의 활약은 대단하였다.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이성계는 2천 명의 친병을 거느리고 선봉장으로서 용맹을 떨치고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성계가 적장을 베어 죽이기 직전이었다. 적의 포위에 겹겹이 둘러싸여 고전하는 상태에서 적의 아장 하나가 이성계의 목을 향해 창을 찔렀다. 이성계는 떼지어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하느라 미처 피할 겨들이 없었다. 이때 “아앗! 상장군 피하라!”이성계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적의 아장이 찌른 창날이 아슬아슬하게 비껴나 이성계의 오른쪽 귀를 찔렀다. 앞에서는 적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터라 사세가 매우 위급하였다. 이성계의 귀를 찔렀던 자가 다시 창을 겨누어 찌르는 순간이었다. 적의 아장은 어디선가 날아온 창에 등이 찍힌 채 비명을 지르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백전 노장 최영이 이성계를 구하려고 급히 달려와 창을 던진 것이다. 용기를 얻은 이성계는 앞에서 달려드는 적을 수 명을 베어 죽이고 적장까지 베어 죽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적은 모두 달아났다. 적이 물러간 후 이성계는 최영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였다.
“대감께서 연로하신데도 불구하고 소장을 도와주시니 참으로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최영: 장군은 이 나라의 기둥이오. 장군이 아니면 어떻게 강성한 적을 물리칠 수 있었겠소.
두 사람의 신뢰는 이렇게 각별했다. 최영은 누구보다도 이성계를 신임했고 이성계는 최영을 부모처럼 공경하고 따랐다. 이성계에 관한 무용담은 수없이 많았다.
이성계는 무인으로서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능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계는 웅장한 포부와 호협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음이 그의 행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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