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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원바안
제10회 74.서독월드컵축구대회 -본선- (6. 13 ~ 7. 7)
전 대회 브라질이 우승하며 줄리메컵을 영구 보존하게 되면서 새로운 월드컵이 전 세계 선을 보였다. 높이 36Cm, 무게 5Kg의 순금으로 지구를 본 뜬 새로운 FIFA컵이 탄생했다. 이번 대회는 이 새로운 FIFA컵을 놓고 타투는 최초의 대회였다. 제10회 대회는 과거 히틀러가 개최를 열망했지만 이루지 못한 독일에서 그것도 동 서로 분단된 서독에서만 대회가 열렸다. 1967년부터 대회를 준비했던 서독은 38년전 민족의 제전의 무대였던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을 비롯해 낡은 시설들을 고쳤고 프랑크푸르트와 뒤셀도르프에 경기장을 새로 만들며 철저히 대회를 준비했다.
66개국에서 3,300명의 보도기자가 몰려들었고, 경기를 중계한 텔레비전 방송은 80개, 라디오 방송은 110개에 달했다. 결승전은 90개국에 생중계 되어 8억명 이상이 관전했다. 동경 12채널은 결승전을 생중계하고 1년 반의 걸쳐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녹화 방영 했을 정도로 월드컵의 인기는 전세계를 달구고 있었다
이번대회에서는 4개팀씩 4개조로 나뉘어 조1,2위가 다시 4개팀씩 2개조로 나뉘어 2차리그를 치룬뒤 조1위 2팀이 결승전을 갖고 조2위 2팀이 3.4위전을 가리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이는 경기 수를 38개로 늘린 거와 함께 관중수입을 노린 FIFA의 아이디어였다. 관중동원 수는 177만4,000명으로 역대최고를 기록. 총 수입은 1억 마르크에 달했다.
1년반간의 치열한 지역예선끝에 14개국의 본선진출국이 최종확정됐다. 유럽은 서독을 포함해 총 9개국이 본선에 올랐고 남미가 브라질을 포함해 4개국, 그리고 북중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에서 각각 1개국이 본선에 올랐다.
1974년 1월 5일 41개국 8억인구가 주시하며 프랑크푸르트에 열린 조편성에서는 같은 민족이면서 반 세기간 대립해온 동,서독이 같은 1조에 편성되자 경기장은 술렁였고 동독 아나운서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서독과 동독간의 예선 경기는 이틀만에 매진됐다.
제10회 74.서독월드컵 예선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1조 : 서독, 칠레, 호주, 동독
2조 : 브라질, 유고슬라비아, 스코틀랜드, 자이르
3조 : 우루과이, 네덜란드, 불가리아, 스웨덴
4조 : 이탈리아, 아이티, 아르헨티나, 폴란드
☆ 1조 예선(서독, 칠레, 호주, 동독)
1974년 6월 14일 베를린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83168
서독[1승] 1 (1-0) 0 칠레[1패]
3. 파울 브라이트너(서독) 전반 18분
개최국 서독의 대진표는 매우 만족할 수준이였다. 동독이 껄끄럽긴 했지만 처녀 출전국 호주, 남미의 칠레 등과 1조에 편성됐기 때문이다. 첫 상대국가는 칠레였다. 칠레는 12년전 월드컵 3위에 오르긴 했지만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역예선에서는 강적 소련과의 원정 경기에서 비기는 등 선전을 펼치며 8년만에 본선에 올랐다.
전반 18분 브라이트너가 선취골을 터트리면서 기선을 제압한 서독은 이후 칠레에게 간간히 역습을 허용하는 등 불안했지만 결국 1골을 잘 지키며 1:0으로 승리했다. 서독은 승리하긴 했지만 남미의 복병 칠레를 맞아 고전한 경기였다.
1974년 6월 14일 함부르그 볼크스파크 스타디움 관중:10000
동독[1승] 2 (0-0) 0 호주[1패]
5. 콜린 큐란(호주) 자책골 후반 13분
11. 야침 스트레이히(동독) 후반 27분
첫 출전국끼리의 맞대결. 동독과 호주 간의 1조 예선 1차전이였다. 동독은 본선에 처녀출전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첫 대회가 반쪽나라 서독에서 열린 대회였다. 호주는 플레이오프 끝에 아시아의 강호 한국을 힘겹게 물리치며 천신만고 끝에 첫 본선행에 오른 오세아니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국가였다.
동독이 앞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호주는 예상밖의 탄탄한 조직력을 보이며 동독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나갔다. 전반을 득점없이 마친 양팀.
하지만 후반 13분 호주의 큐란의 자책골로 승부는 동독 쪽으로 기울었고 호주는 결국 고비를 넘지 못하고 후반 27분 스트레이히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2:0으로 무너졌다. 큰경기 경험이 없던 호주선수들로써는 매우 아쉬운 경기였다.
1974년 6월 18일 베를린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20000
동독[1승1무] 1 (0-0) 1 칠레[1무1패]
20. 마르틴 호프만(동독) 후반 10분
9. 세르지오 아후마다(칠레) 후반 24분
첫 경기에서 개최국 서독과 선전을 펼친 칠레가 2차전에서 또다른 독일. 동독을 만났다. 여기서 이기는 팀은 조2위 사수가 유력했기에 놓칠 수없는 경기였다. 경기의 중요성답게 팽팽한 접전이였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동독은 후반 10분 마침내 호프만의 선취골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반격에 나선 칠레는 후반 24분 아후마다의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패하면 탈락이였기에 칠레선수들도 사력을 다했다. 결국 1:1 무승부로 양팀은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1974년 6월 18일 함부르크 볼크스파크 스타디움 관중:35000
서독[2승] 3 (2-0) 0 호주[2패]
12. 울프강 오베라트(서독) 전반 12분
8. 베르나트 쿨만(서독) 전반 34분
13. 게르트 뮐러(서독) 후반 8분
1차전 칠레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서독은 2차전에서 호주를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3:0으로 승리했다. 호주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은 유럽 선수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은 체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술이나 조직력면에서는 유럽강호 서독을 따라잡지 못했다.
전반 12분 오베라트의 선제골과 34분 쿨만의 골로 전반 2:0으로 앞선 서독은 후반 8분 전대회 득점왕 뮐러가 쐐기골을 성공시키면서 3:0으로 낙승했다. 서독은 이경기 승리로 2차리그 진출이 확정됐다.
1974년 6월 22일 베를린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14681
칠레[2무1패] 0 - 0 호주[1무2패]
칠레는 서독이 동독을 2골차 이상으로 이기고 호주를 2골차 이상으로 이길경우 2차리그진출의 희망을 걸어볼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된 호주 선수들은 전패로 돌아갈수 없다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칠레는 서독, 동독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지만 호주를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무승부를 기록한 칠레는 서독과 동독간의 경기와 상관없이 탈락하고 말았다. 호주는 비록 탈락했지만 조직력과 선수들의 국제대회 경험만 쌓는다면 신체적조건과 힘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1974년6월22일 함부르크 볼크스파크 스타디움 관중:60350
동독[2승1무] 1 (0-0) 0 서독[2승1패]
14. 위르겐 슈파르파셔(동독) 후반 32분
대회 최대의 관심사인 서독과 동독간의 대결. 양 팀간엔 미묘한 자존심 대결도 있었지만 서독의 센 감독은 국가의 위신을 다투는 시합이 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동,서독이 2차리그 진출이 확정된 상태라 무승부를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합은 친선분위기로 시작됐지만 경기가 고조되면서 관중들은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2년전 유럽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서독이 월드컵 처녀출전국 동독을 맞아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독은 후반 도중 미드필더 겐터 네처를 투입해 반전을 노렸지만 센 감독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고 결국 후반 32분 동독의 슈파르파셔의 결승골이 터져나왔다. 1:0 동독의 승리.
서독 국민들은 패배에 크게 낙담했지만 결과적으로 2차리그에는 강적 네덜란드와 다른조에 들어갈 수 있었다.
1조 최종순위
1. 동독 2승1무0패 4득점 1실점 +3 승점 5
2. 서독 2승0무1패 4득점 1실점 +3 승점 4
3. 칠레 0승2무1패 1득점 2실점 -1 승점 2
4. 호주 0승1무2패 0득점 5실점 -5 승점 1
동독, 서독 2차리그진출!
☆ 2조 예선(브라질, 유고슬라비아, 스코틀랜드, 자이르)
1974년 6월 13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스타디움 (개막전) 관중:62000
브라질[1무] 0 - 0 유고슬라비아[1무]
브라질은 4년전 우승의 주역이였던 펠레가 빠져있었다. 아벨란제 FIFA회장과 자갈로 감독,그리고 대중과 정부가 모두 펠레의 복귀를 갈망했지만 그는 결국 본선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펠레의 공백으로 브라질은 4년 전 우승 이후에 수비 중심의 축구로 챔피언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대회직전까지 득점력 빈곤에 허덕였고 관리 체제가 오히려 투쟁심과 사기를 저하시켰다. 1년전 유럽원정에서도 이탈리아, 스웨덴에게 연패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본선 첫 경기는 유럽의 강적 유고였다. 가랑비가 내린 가운데 열린 개막전이였다. 원래 개막전은 개최국이 경기를 가졌지만 서독이 우승국 브라질에게 양보했는데 이는 월드컵의 새로운 관례가 됐다.
역시 브라질은 그 동안 문제로 들어났던 것을 그대로 노출하며 득점없이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나마 탄탄한 수비력으로 오히려 승점 1점 얻은 것이 다행이라는 이도 있었다. 4년전 브라질의 황금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경기이기도 했다.
1974년 6월 14일 도르트문트 웨스트팔렌 스타디움 관중:25000
스코틀랜드[1승] 2 (2-0) 0 자이르[1패]
11. 페터 로리머(스코틀랜드) 전반 26분
9. 조 조르단(스코틀랜드) 전반 34분
영국 4개협회 중 유일하게 본선에 오른 스코틀랜드의 첫 상대는 아프리카의 처녀 출전국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였다. 자이르는 2차대전 이후 많은 선수를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 수출했고 대통령까지 특별 훈련을 명하는 등 축구에 대한 믿음이 큰 나라였다. 아마추어인 선수들을 실직하지 않게 배려하여 급여도 정부가 지급했고 이러한 강화책은 결실을 맺어 모로코를 꺽고 월드컵 본선에 처녀 출전했다.
스코틀랜드는 이번이 3번째 출전이였지만 58년 대회이후 16년만의 본선무대였다. 아직 본선에서도 1무4패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선 첫 승의 절호의 기회였다.
전반 26분 로리머의 선제골에 이어 전반 34분 다시 조르단의 추가골로 스코틀랜드는 전반에만 2:0으로 앞섰다. 자이르는 후반들어 추격골을 터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시 본선 무대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인 월드컵 본선 첫승을 달성하며 2조 선두에 올랐다.
1974년 6월 18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스타디움 관중:50000
스코틀랜드[1승1무] 0 - 0 브라질[2무]
유고슬라비아와의 무승부 이후에서 브라질 축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골 결정력 부족은 여전했고 펠레가 빠진 이후 극심한 침체기를 격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스코틀랜드와의 2차전에서 득점 없이 무승부를 기록한 브라질은 탈락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1974년 6월 18일 겔센키르첸 파크 스타디움 관중:20000
유고슬라비아[1승1무] 9 (6-0) 0 자이르[2패]
19. 두산 바제비치(유고슬라비아) 전반 8분, 전반 30분, 후반 36분
11. 드라간 드자지치(유고슬라비아) 전반 14분
9. 이비카 수르야크(유고슬라비아) 전반 18분
5. 요시프 카탈린스키(유고슬라비아) 전반 22분
6. 블라디슬라프 보기세비치(유고슬라비아) 전반 35분
8. 브란코 오블라크(유고슬라비아) 후반 16분
7. 일리야 페트코비치(유고슬라비아) 후반 20분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스코어차이가 난 경기였다. 54년 헝가리가 한국에 9:0 승리한 이후 20년만에 그 타이 스코어차가 나왔다. 유고슬라비아가 자이르를 맞아 9:0으로 승리한 것이다. 바제비치의 헤트트릭을 비롯해 주전멤버 11명중 7명이 득점을 기록했다. 전반 소나기골로 6:0으로 앞선 유고는 후반에는 3골을 더 추가해 대승을 만들어냈다.
1974년 6월 22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스타디움 관중:60000
유고슬라비아[1승2무] 1 (0-0) 1 스코틀랜드[1승2무]
18. 스타니슬라프 카라시(유고슬라비아) 후반 36분
9. 조 조르단(스코틀랜드) 후반 43분
자이르전 9:0 승리로 유고는 비기기만 해도 올라갈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 됐다. 스코틀랜드는 만약 비기거나 패한다면 브라질이 자이를 이길 것이 유력했기 때문에 비겨도 불안 입장이였다.
팽팽한 접전이였다. 유고도 지면 탈락하는 상황이였기에 최선을 다했다. 유고는 후반 36분 교체해 들어간 카라시가 천금같은 선제골을 터트리면서 앞서나갔지만 스코틀랜드는 종료 2분전 조르단의 동점골로 반격했다. 결국 1:1 무승부.
스코틀랜드는 1승2무를 기록했지만 이어열린 브라질과 자이르의 경기에서 브라질이 3골차로 승리하면서 무패를 기록하고 억울하게 예선 탈락하는 비운을 맛봤다.
1974년 6월 22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스타디움 관중:35000
브라질[1승2무] 3 (1-0) 0 자이르[3패]
7. 자이르징유(브라질) 전반 12분
10. 리벨리노(브라질) 후반 21분
13. 발도미로(브라질) 후반 34분
브라질에게 살 방법은 자이르를 3골차 이상으로 이기는 일 뿐이였다. 유고, 스코틀랜드전에서 잇따라 득점없이 무승부를 기록한 브라질로써는 약체 자이르를 마지막에 만난 것이 행운이였다.
전반 12분 자이르징유의 선제골과 후반 21분 리벨리노의 연속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2차리그진출을 위해선 후반 34분 교체투입 된 발도미로의 한 골이 더 필요했다. 결국 3:0으로 승리한 브라질은 천신만고 끝에 스코틀랜드를 골득실차로 제치고 조2위로 2차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2조 최종순위
1. 유고슬라비아 1승2무0패 10득점 1실점 +9 승점 4
2. 브라질 1승2무0패 3득점 0실점 +3 승점 4
3. 스코틀랜드 1승2무0패 3득점 1실점 +2 승점 4
4. 자이르 0승0무3패 0득점 14실점 -14 승점 0
유고슬라비아, 브라질 2차리그진출!
☆ 3조 예선(우루과이, 네덜란드, 불가리아, 스웨덴)
1974년 6월 15일 하노버 나이더사히첸 스타디움 관중:53700
네덜란드[1승] 2 (1-0) 0 우루과이[1패]
16. 조니 레프(네덜란드) 전반 16분, 후반 41분
네덜란드는 하늘을 나는 네덜란드인 요한 크루이프라는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지난 38년대회 이후 36년만에 본선무대에 진출했지만 클럽 축구에서는 항상 좋은 성적을 내왔다. 오히려 네덜란드내의 축구 팬들은 국가대표 경기보다 클럽 축구에 더 열광했고 선수들도 국가 대표를 거부한 선수가 많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네덜란드 대표팀 전력약화로 이어졌고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74년대회에서는 정부까지 나서 1970년부터 73년까지 유럽 클럽 챔피언을 독점하고 있던 아약스와 페예노르트 선수들을 중심으로 최고의 대표팀을 만들어냈다.
네덜란드는 리누스 미셀스 감독의 축으로 세계 축구의 일대변영을 일으키는 전원공격과 전원수비의 토털사커를 월드컵 무대에 등장시켰다. 축구천재 크루이프를 축으로 집중적인 수비와 기동력이 풍부한 공격, 변화 무쌍한 플레이는 21세기축구, 미래지향적인축구로 세계각국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포메이션이였다.
토털사커는 과거의 왕좌 우루과이를 농락시킬 정도로 그 파괴력은 대단했다. 그 전까지 2번본선에 올라 2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던 네덜란드는 월드컵 2회 우승국 우루과이를 상대로 전후반 각각 레프가 2골을 보태며 2:0의 완승. 월드컵 본선 첫승을 일궈냈다. 이제 네덜란드 축구가 세계 최강이라는 것을 세계 축구팬들에게 알리는 첫번째 경기였다.
1974년 6월 15일 뒤셀도르프 레인 스타디움 관중:22500
스웨덴[1무] 0 - 0 불가리아[1무]
불가리아는 4회연속 본선무대에 진출했지만 1승은 커녕 2무7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스웨덴은 2차례 4강진출과 자국에서 열린 58년 대회 때는 준우승의 기록도 갖고 있었지만 최근 월드컵 본선 횟 수는 불가리아가 경험이 좀 더 많았다.
두팀은 접전을 펼쳤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강호로 떠오른 네덜란드와 남미의 전통강호 우루과이가 같은조에 편성되 있었기에 반드시 서로를 잡았어야했다. 두팀은 부담을 갖고 예선을 임할 수 밖에 없게됐다.
1974년 6월 19일 하노버 나이더사이첸 스타디움 관중:12000
불가리아[2무] 1 (0-0) 1 우루과이[1무1패]
8. 흐리스토 보네프(불가리아) 후반 30분
6. 리카르도 파보니(우루과이) 후반 42분
네덜란드의 토털사커에 완패하면서 자존심을 구긴 우루과이는 불가리아를 맞아 명예회복을 노렸다. 하지만 전대회 4위를 기록했던 당시에 비해 전력은 너무나 처져 있었다.
본선무대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불가리아는 후반 30분 보네프가 천금같은 선취골을 뽑아내면서 첫 승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패를 당할 수 없다는 우루과이 선수들의 집중력은 후반 42분 파보니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불가리아는 다잡은 1승을 다시 놓치지고 말았다.
불가리아 강적 네덜란드를 반드시 이겨야하는 부담을 안게됐고 우루과이는 스웨덴전에서 승리할 경우 2차리그 진출도 노려볼 수 있게됐다.
1974년 6월 19일 도르트문트 웨스트팔렌 스타디움 관중:53700
네덜란드[1승1무] 0 - 0 스웨덴[2무]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네덜란드는 2차전에 복병 스웨덴을 맞아 고전했다.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스웨덴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스웨덴은 2무를 기록했지만 남은 우루과이전을 비기더라도 네덜란드가 불가리아를 잡아준다면 조2위로 2차리그진출이 가능했다.
1974년 6월 23일 뒤셀도로프 레인 스타디움 관중:27000
스웨덴[1승2무] 3 (0-0) 0 우루과이[1무2패]
10. 랄프 에드스트롬(스웨덴) 후반 1분, 후반 32분
11. 로란드 산베리(스웨덴) 후반 29분
지난대회 총성적 9위로 아쉽게 탈락해야했던 스웨덴은 이번대회 4년전 악몽을 재현하지 않기 위해 우루과이와 예선마지막경기에 나섰다. 우루과이는 과거의 영광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기였다.
전반은 양팀이 공방전 끝에 0:0 무승부. 그러나 후반 들면서 승부는 스웨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후반 1분만에 터진 에드스트롬의 선제골에 이어 후반 29분 산베리가 추가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비겨도 유리했던 스웨덴은 후반 32분 에드스트롬이 또한골을 추가하며 남미강호 우루과이를 무너뜨렸다. 스웨덴은 1승2무로 남은 경기에서 불가리아가 네덜란드를 3골차 이상으로만 이기지 않으면 2차리그 진출이 확정적이였다.
우루과이는 62년 칠레대회 이후 12년만에 월드컵에서 예선탈락의 쓴잔을 들어야했고 이후 침체기에 빠져 다시 본선에 오르기까지 12년이 걸렸다.
1974년 6월 23일 도르트문트 웨스트팔렌 스타디움 관중:52100
네덜란드[2승1무] 4 (2-0) 1 불가리아[2무1패]
13. 요한 니스켄스(네덜란드) PK 전반 5분, PK 전반 45분
16. 조니 레프(네덜란드) 후반 26분
12. 루드 크롤(네덜란드) 자책골 후반 33분
7. 테오 데 종(네덜란드) 후반 43분
불가리아는 스웨덴,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좋은 내용을 보였지만 강적 네덜란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였다. 전반 니스켄스에게만 페널트킥 2개를 허용했고 후반 26분 레프, 후반 43분에는 데 종에게 잇따라 골을 허용하며 4:1로 무너졌다. 3골차로 이겨야했던 불가리아는 선수들에게 오히려 부담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패하고 만 것이다.
네덜란드는 전원공격, 전원수비를 중심으로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과시하며 월드컵 본선 3번째 참가만에 2회전 진출에 성공했다.
3조 최종순위
1. 네덜란드 2승1무0패 6득점 1실점 +5 승점 5
2. 스웨덴 1승2무0패 3득점 0실점 +3 승점 4
3. 불가리아 0승2무1패 2득점 5실점 -3 승점 2
4. 우루과이 0승1무2패 1득점 6실점 -5 승점 1
네덜란드, 스웨덴 2차리그진출!
☆ 4조 예선(이탈리아, 아이티, 아르헨티나, 폴란드)
1974년 6월 15일 슈트트가르트 넥커 스타디움 관중:31500
폴란드(1승) 3(2-0)2 아르헨티나(1패)
16.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전반 7분, 후반 17분
17. 안드레야 스자르마치(폴란드) 전반 8분
10. 라몬 에레디아(아르헨티나) 후반 15분
3. 카를로스 바빙톤(아르헨티나) 후반 21분
36년만에 본선 나들이에 나선 폴란드와 지난대회 지역예선 탈락으로 망신을 당했던 아르헨티나가 8년만에 본선무대에 오르면서 첫 맞대결을 가졌다. 폴란드는 38년 대회 유일하게 참가해 예선에서 브라질에 연장 접전 끝에 5:6으로 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번 지역예선 탈락을 보약삼아 이번대회 각오를 다지며 임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마저 지역예선에서 탈락시킨 폴란드의 저력은 대단했다. 전반 7분과 8분 라토와 스자르마치의 골로 초반 2:0으로 앞서나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당황했고 후반 들어 15분 에레디아가 한골을 만회했지만 곧바로 2분뒤 다시 라토에게 추가골을 허용했다.
후반 21분 바빙톤이 다시 추격골을 성공시키면서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결국 폴란드의 3:2 승리로 돌아갔다. 폴란드는 본선에서 첫 승을 올렸다.
1974년 6월 15일 뮌헨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51100
이탈리아[1승] 3 (0-0) 1 아이티[1패]
20. 엠마누엘 사논(아이티) 후반 1분
10. 지안니 리베라(이탈리아) 후반 7분
4. 로메오 베네티(이탈리아) 후반 21분
19. 피에트로 아나스타시(이탈리아) 후반 34분
전 대회 준우승국 이탈리아는 이번대회 만큼은 월드컵 우승을 자신하고 있었다. 발카레기 감독도 이번은 4년 전보다 훨씬 강한 팀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때까지 12번의 A매치에서 단 1점도 허용하지 않은 카타네치오(빗장수비)가 철벽을 자랑하고 있었고 재빠른 역공이 빛을 보면서 1973년 최우수 유럽국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노동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서독에 와 있었는데, 그들은 자국 응원단과 스탠드를 가득 매우며 이탈리아를 응원했다.
그러나 발카레기 감독의 장담과는 달리 이탈리아는 처녀출전국 아이티와의 본선 첫 경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반을 0:0으로 마쳐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후반 1분만에 아이티 사논에게 선취골을 허용했다.
이 실점은 이탈리아가 국제경기 1143분만의 실점이였다. 이탈리아는 간신히 후반 7분 리베라의 동점골과 후반 21분 베네티의 역전골, 34분 아나스타시의 쐐기골로 3:1로 역전승하긴했지만 경기내용면에서는 형편없었다.
아이티는 비록 역전패했지만 대통령이 매일 숙소로 격려 전화를 할 정도로 대표팀 사기를 높혔다.
1974년 6월 19일 뮌헨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23400
폴란드[2승] 7 (5-0) 0 아이티[2패]
16.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전반 17분, 후반 42분
12. 카지미에즈 데이나(폴란드) 전반 18분
17. 안드레야 스자르마치(폴란드) 전반 30분, 전반 34분, 후반 5분
6. 예르지 고르곤(폴란드) 전반 31분
이탈리아전 선전을 펼쳤음에도 아쉽게 역전패 당한 아이티는 동구의 강호 폴란드와 2차전에서 만났다. 1차전 좋은 경기를 펼친 아이티는 역전패의 휴우증 탓인지 폴란드에서 무려 전반에만 5골을 내줬다. 후반에서도 스자르마치와 라토에게 골을 내준 아이티는 7:0으로 대패했다.
폴란드는 스자르마치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2연승을 기록. 2차리그 진출이 유력해졌다.
1974년 6월 19일 슈트트가르트 넥커 스타디움 관중:68900
아르헨티나[1무1패] 1 (1-1) 1 이탈리아[1승1무]
11. 레네 호우세만(아르헨티나) 전반 19분
14. 로베르토 페르푸모(아르헨티나) 자책골 전반 35분
폴란드와 접전끝에 아쉽게 패한 아르헨티나의 다음상대는 이탈리아였다.
1패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2차리그 진출이 수월했다. 전반 19분 아르헨티나는 호우세만의 선취골로 먼저 기세를 올렸지만 35분 어이없는 자책골로 동점을 허용했다.
후반 들어서도 아르헨티나는 총 공세로 밀어붙었지만 빗장수비를 뚫지 못하고 결국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탈리아는 남은 폴란드전을 비기기만해도 2차리그에 오를수 있게 됐다.
1974년 6월 23일 뮌헨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24000
아르헨티나[1승1무1패] 4 (2-0) 1 아이티[3패]
22. 헥토르 야잘데(아르헨티나) 전반 15분, 후반 23분
11. 레네 호우세만(아르헨티나) 전반 18분
2. 후고 아얄라(아르헨티나) 후반 10분
20. 엠마누엘 사논(아이티) 후반 18분
아르헨티나에게 선택은 없었다. 아이티를 반드시 3골 차 이상으로 이기고 이탈리아가 폴란드에게 패배 해 주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아르헨티나는 아이티를 대파했다. 전반 15분 야잘데의 선취골을 시작으로 3분뒤 호우세만의 추가골 후반 아얄라와 야잘데의 추가골이 잇따라 터지면서 사논이 한골을 만회한 아이티를 3전전패로 밀어넣었다. 아이티는 비록 탈락했지만 이탈리아전에서 선취골을 터트린 사논과 묘기를 선보인 골기퍼 프란실론은 이 월드컵 무대로 인해 유럽으로 스카우트됐다.
1974년 6월 23일 슈트트가르트 넥커 스타디움 관중:68900
폴란드[3승] 2 (2-0) 1 이탈리아[1승1무1패]
17. 안드레야 스자르마치(폴란드) 전반 38분
12. 카지미에즈 데이나(폴란드) 전반 45분
8. 파비오 카펠로(이탈리아) 후반 41분
이탈리아는 비기기만 해도 조2위로 오를수 있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아이티전에서도 선취골을 내주며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고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상대 자책골로 무승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 1경기당 1골씩 허용하며 빗장수비도 무력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맞아떨어졌다. 폴란드 스자르마치가 전반 38분 선취골을 따낸데 이어 전반 45분 데이나의 추가골이 터진 것이다.
이탈리아는 경기전 선수가 아니라 단지 여행자라고 맹비난을 받은 리베라와 리바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마졸라를 집어넣으며 폴란드전의 강한 집념을 내비췄지만 후반 41분 카펠로가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쳤다.
결국 2:1로 패배한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에게 조 2위를 내주며 예선탈락하고 말았다.이 패배후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폴란드 대사관에 토마토가 날라들었고 발카레기 감독은 귀국 후 바로 해임됐다. 카타네치오가 이 월드컵 한 대회로 무너지는 순간이였다.
4조 최종순위
1. 폴란드 3승0무0패 12득점 3실점 +9 승점 6
2. 아르헨티나 1승1무1패 7득점 5실점 +2 승점 3
3. 이탈리아 1승1무1패 5득점 4실점 +1 승점 3
4. 아이티 0승0무3패 2득점 14실점 -12 승점 0
폴란드, 아르헨티나 2차리그진출!
☆ 2차리그
제 10회대회는 토너먼트 방식제도를 폐지하고 2차리그제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예선 4개조 각조 1, 2위 8개팀이 다시 2개조 4개팀으로 나뉘어 조1위가 바로 결승전을 갖게되는 방식이였다.
이러한 방식도입은 경기수를 늘려 관중동원과 흥행의 묘를 살리고 각 팀들간의 실력차를 가늠 해 볼 수 있는 좋은 게기가 됐다.
이번대회 특징은 동유럽 국가들의 강세였다. 브라질을 제치고 2조1위를 자치한 유고슬라비아와 이탈리아를 탈락시킨 4조1위 폴란드가 동유럽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폴란드는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를 탈락시킨데 이어 예선에서 이탈리아마저 탈락시켜 강팀킬러로 떠올랐다.유고슬라비아도 전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압도하는 등 대통령이 축전을 보낼 정도로 좋은 경기내용을 보여줬다.
이밖에도 36년만에 본선에 오른 네덜란드는 토털 사커라는 새로운 포메이션을 선보이며 당당히 조1위로 2차리그에 합류했고 개최국 서독과 반쪽 동독도 나란히 2차리그에 진출했다. 2차리그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A조 : 동독, 브라질,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B조 : 서독, 유고슬라비아, 스웨덴, 폴란드
☆ A조 예선(동독, 브라질,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1974년 6월 26일 겔센키르첸 파크 스타디움 관중:55348
네덜란드[1승] 4 (2-0) 0 아르헨티나[1패]
14.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전반 10분, 후반 45분
12. 루드 크롤(네덜란드) 전반 25분
16. 조니 레프(네덜란드) 후반 28분
2차리그 들면서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지휘자 요한 크루이프가 서서히 제 기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와 만난 2차리그 첫 경기에서 요한 크루이프는 전반 10분 선취골을 뽑아냈다. 25분에는 크롤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후반 28분 레프의 골과 종료직전 크루이프는 또 한골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네덜란드의 화려한 축구 앞에 아르헨티나는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아르헨티나는 2차리그 진출만으로도 1인당 3,000달러의 보너스를 받았지만 네덜란드전 4골차 패배는 충격이였다.
1974년 6월 26일 하노버 나이더사이첸 스타디움 관중:58463
브라질[1승] 1 (0-0) 0 동독[1패]
10. 리벨리노(브라질) 후반 15분
아무리 예선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더라도 중요한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팀이 진정한 강팀이다. 브라질은 그 본보기였다. 2차리그에 임하는 브라질 선수들은 예선과는 사뭇 달랐다. 1조에서 서독을 꺽고 1위로 올라온 동독을 맞은 브라질은 후반 15분 리벨리노의 단 한방으로 동독을 1:0으로 물리쳤다. 펠레가 없었지만 역시 브라질은 3회 우승팀답게 서서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1974년 6월 30일 겔센키르첸 파크 스타디움 관중:67148
네덜란드[2승] 2 (1-0) 0 동독[2패]
13. 요한 니스켄스(네덜란드) 전반 13분
15. 롭 렌센브링크(네덜란드) 후반 14분
네덜란드와 동독의 2차 리그 2차전은 격전이였다. 네덜란드가 역시 경기를 리드해갔지만 동독은 악착같은 수비로 임했다. 특히 네덜란드의 핵인 크루이프에겐 전담 수비수가 붙었다.동독의 수비는 크루이프가 축구화의 끈을 묶는 동안에도 그의 마크담당 선수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밀착 방어했다.
이러한 동독의 수비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크루이프 혼자하는 것이 아니였다. 전원공격과 전원수비로 맹공격을 퍼부은 네덜란드는 전반 13분 니스켄스와 후반 14분 렌센브링크의 추가골을 묶어 2:0으로 완승을 거두며 결승진출을 눈앞에 뒀다. 동독은 처녀출전해 선전했지만 2패로 탈락이 확정됐다.
1974년 6월 30일 하노버 나이더사이첸 스타디움 관중:38000
브라질[2승] 2 (1-1) 1 아르헨티나[2패]
10. 리벨리노(브라질) 전반 32분
6. 미구엘 브린디시(아르헨티나) 전반 35분
7. 자이르징유(브라질) 후반 4분
조 1위에게만 주어지는 결승진출을 위해 브라질은 남미의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반드시 이겨야 했다. 전대회 우승국 브라질은 2차리그 들면서 전력이 차츰 나아져갔다. 아르헨티나를 맞아 전반 32분 리벨리노가 먼저 선취골을 따냈지만 브린디시에게 3분뒤 동점골을 내주며 전반을 1:1 동점으로 마쳤다.
브라질은 후반 4분만에 자이르징유가 결승골을 뽑아내며 결국 2:1로 승리하며 2승을 기록.같은 2승의 네덜란드와 물러설수 없는 결승티켓을 놓고 다투게 됐다.
1974년 7월 3일 도르트문트 웨스트팔렌 스타디움 관중:52500
네덜란드[3승] 2 (0-0) 0 브라질[2승1패]
13. 요한 니스켄스(네덜란드) 후반 5분
14.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후반 20분
네덜란드와 브라질의 2차리그 마지막경기는 사실상의 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브라질이 네덜란드의 토털사커를 맞아 어떤 경기를 펼칠 지도 관심사였다. 브라질의 개인기과 네덜란드의 조직력 싸움이기도 했기에 이 경기는 치열한 혈전이였다.
브라질은 챔피언의 긍지를 벗어 던지고 네덜란드에게 도전적인 시합을 벌여 대기실은 야전 병원 꼴이 되었다. 그러나 조화에서도 창조력에서도 네덜란드에 비해 떨어진 브라질은 후반 5분 니스켄스와 후반 20분 크루이프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결국 2:0으로 무너졌다. 이 경기는 너무도 거친 플레이로 퇴장 선수까지 발생했다.
네덜란드는 36년만에 오른 본선에서 요한 크루이프라는 축구천재를 앞세운 토털사커로 완벽한 경기운영능력을 과시하며 사상 첫 월드컵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1974년 7월 3일 겔센키르첸 파크 스타디움 관중:53054
동독[1무2패] 1 (1-1) 1 아르헨티나[1무2패]
11. 야침 스트레이히(동독) 전반 14분
11. 레네 호우세만(아르헨티나) 전반 20분
동독과 아르헨티나간의 경기는 별 의미는 없었지만 양 팀 모두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전반 14분 동독이 먼저 스트레이히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6분뒤 아르헨티나도 호우세만의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두팀은 결국 1:1 무승부로 2차리그 1무2패로 탈락했다.
A조 최종순위
1. 네덜란드 3승0무0패 8득점 0실점 +6 승점 6
2. 브라질 2승0무1패 3득점 3실점 0 승점 4
3. 동독 0승1무2패 1득점 4실점 -3 승점 1
4. 아르헨티나 0승1무2패 2득점 7실점 -5 승점 1
네덜란드 결승진출!
☆ B조 예선(서독, 유고슬라비아, 스웨덴, 폴란드)
1974년 6월 26일 뒤셀도르프 레인 스타디움 관중:66085
서독[1승] 2 (1-0) 0 유고슬라비아[1패]
3. 파울 브라이트너(서독) 전반 39분
13. 게르트 뮐러(서독) 후반 37분
보너스를 둘러싼 내분과 주력 선수의 출전거부 소동이 발생해 득점력 부족에 시달리던 서독은 2차 리그에서 드디어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했다. 유고 역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예선에서 브라질을 제치고 조 1위로 올라오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개최국 서독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전반 39분 브라이트너의 선제골에 이어 후반 37분에는 뮐러의 쐐기골이 터져나왔다. 서독은 2차리그 첫승으로 결승진출에 한발 다가섰다.
1974년 6월 26일 슈트트가르트 넥커 스타디움 관중:43755
폴란드[1승] 1 (1-0) 0 스웨덴[1패]
16.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전반 43분
폴란드는 예선에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를 차례로 격침시키면서 3전전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스웨덴 역시 강력한 우승후보 네덜란드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만만치 않는 실력으로 2차리그에 올랐다.
전반 43분 폴란드의 새 축구영웅으로 떠오른 라토가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폴란드는 개최국 서독의 결승진출을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특히 예선에서 4골을 기록했던 라토는 오늘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겨 5호골로 득점 선두에 나섰다.
1974년 6월 30일 뒤셀도르프 레인 스타디움 관중:66500
서독[2승] 4 (0-1) 2 스웨덴[2패]
10. 랄프 에드스트롬(스웨덴) 전반 24분
12. 울프강 오베라트(서독) 후반 6분
16. 레이너 본호프(서독) 후반 7분
11. 로란드 산드베리(스웨덴) 후반 8분
9. 위르겐 그라보우스키(서독) 후반 31분
14. 율리 호에네스(서독) PK 후반 44분
서독과 스웨덴의 2차 리그 2번째 경기는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소방차가 물을 빼기 위해 출동할 정도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서독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많은 비로 스웨덴이 전반 24분 에드스트롬에 선취골로 먼저 앞서나갔다. 서독은 초조한 맘에 공격을 퍼부었지만 전반을 0:1로 뒤졌다.
하지만 서독의 저력은 후반에 발휘됐다. 오베라트가 후반 6분 동점골을 만들어낸데 이어 1분후 본호프가 또 한 골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스웨덴은 다시 1분후 산드베리의 골로 재동점을 만들었다.
역전에 동점 등 치열한 접전을 비가 오는 데도 계속됐고 후반 31분 마침내 교체선수인 그라보우스키가 결승골을 터트렸다. 종료 직전 호에네스의 페널트킥까지 더한 서독은 4:2로 스웨덴을 힘겹게 물리치며 2승째를 기록하며 결승진출이 더욱 더 가까워졌다. 서독의 센 감독은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 덕분이라며 당시 승리를 회상했다.
1974년 6월 30일 프랑크푸르트 발드 스타디움 관중:55000
폴란드[2승] 2 (1-1) 1 유고슬라비아[2패]
12. 카지미에즈 데이나(폴란드) PK 전반 24분
18. 스타니슬라프 카라시(유고슬라비아) 전반 43분
16.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후반 17분
폴란드도 동구의 라이벌 유고슬라비아를 꺽고 2연승을 기록하며 결승진출에 대한 마지막 한 고비만을 남겼다. 폴란드는 전반 24분 데이나의 페널트킥으로 선제골을 올렸고 전반 43분 유고에 카라시에게 동점골을 내줬지만 후반 17분 해결사 라토가 결승골을 성공시켜 2:1 이겼다. 폴란드는 2승으로 남은 서독전에서 이길 경우 월드컵 사상 최초로 결승진출도 노려볼수 있게 됐다.
1974년 7월 3일 뒤셀도르프 레인 스타디움 관중:40000
스웨덴[1승2패] 2 (1-1) 1 유고슬라비아[3패]
9. 이비카 수르야크(유고슬라비아) 전반 27분
10. 랄프 에드스트롬(스웨덴) 전반 29분
8. 코니 토르스텐손(스웨덴) 후반 40분
이미 탈락한 스웨덴과 유고슬라비아는 조3위를 놓고 마지막 경기를 펼쳤다. 전반 27분 유고가 먼저 수르야크의 선취골로 기선을 제압했지만 곧바로 2분뒤 스웨덴 에드스트롬의 동점골이 터졌고 종료 5분전 스웨덴은 토르스텐손의 결승골로 2:1로 승리를 거뒀다.
1974년 7월 3일 프랑스푸르트 발드 스타디움 관중:59000
서독[3승] 1 (0-0) 0 폴란드[2승1패]
13. 게르트 뮐러(서독) 후반 31분
침수된 경기장에서 결승진출을 놓고 서독과 폴란드가 격돌했다. 나란히 2승씩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골득실차에는 서독이 앞서있었기 때문에 서독은 최소 무승부를 기록하더라도 결승진출이 가능했다. 폴란드는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전반은 폴란드가 다소 우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 결정적인 슛이 서독 마이어 골기퍼의 신들린 듯한 선방에 막혀 무산됐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초조해지는 건 폴란드였고 서독은 후반 31분. 이를 역으로 이용해 뮐러가 결승골을 뽑아냈다. 서독은 지난 1966년이후 8년만에 다시 월드컵 결승에 올라 이번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네덜란드와 마지막 한판승부를 펼치게 됐다.
B조 최종순위
1. 서독 3승0무0패 7득점 2실점 +5 승점 6
2. 폴란드 2승0무1패 3득점 2실점 +1 승점 4
3. 스웨덴 1승0무2패 4득점 6실점 -2 승점 2
4. 유고슬라비아 0승0무3패 2득점 6실점 -4 승점 0
서독 결승진출!
☆ 3.4위전
1974년 7월 6일 뮌헨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74100
폴란드[3위] 1 (0-0) 0 브라질[4위]
16.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후반 31분
네덜란드에게 완패당하고 3.4위전으로 밀린 브라질 선수들의 사기는 한풀 꺽여있었다. 반면 폴란드는 38년 대회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당시 연장접전끝에 6:5로 패했던 폴란드는 3.4위전에서 전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1:0으로 꺽었다.
후반 31분 라토가 결승골을 터트린 것이다. 폴란드는 이 승리로 36년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패배를 설욕했고 라토는 이 결승골로 7골을 기록.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브라질은 네덜란드와 폴란드의 잇딴 패배로 4위에 머물자 축구협회 지도부를 교체했고 자갈로 감독의 자택이 습격 받았다. 자갈로는 "왜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가"라고 비통해 했지만 브라질의 황금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것은 국민들에게 있어서 범죄 이상이였던 것이다.
☆ 결승전
1974년 6월 7일 뮌헨 올림피아 스타디움 관중:75200
서독[우승] 2 (2-1) 1 네덜란드[준우승]
13. 요한 니스켄스(네덜란드) PK 전반 2분
3. 파울 브라이트너(서독) PK 전반 25분
13. 게르트 뮐러(서독) 전반 43분
1974년6월7일 서독 뮌헨 올림피아 스타디움의 하늘에는 구름이 잔득 끼어있었다. 귀빈석에는 서독의 대통령과 네덜란드의 국왕 등 양국의 고위관계자들이 모두 모습을 보였다. 이번대회 결승전은 펠레 이후 과연 누가 새로운 축구 영웅으로 떠오를지를 가늠할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한 점에서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간의 맞대결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당시 베켄바워는 1972년 올해의 유럽선수상을 크루이프도 1971년과 1973년 올해의 유럽선수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두선수의 존재는 양 팀에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또 베켄바워의 바이에른 뮌헨과 크루이프의 아약스간의 클럽 축구간의 대결에도 미묘한 자존심구도가 형성하고 있었는데 양 팀 모두 이 클럽에 각각 6명의 선수가 대표팀에 포함되 있었기 때문에 바이에른뮌헨과 아약스의 대결이라는 말도 나왔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의 우세를 점쳤지만 서독 역시 개최국의 자존심이 걸고 양보할 수 없는 경기였다. 당일 뮌헨 중앙 역전에는 도이칠란트를 외치는 합창이 울려퍼졌고 스탠드는 적흑황색의 국가로 메워져 네덜란드를 압박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사실상 처음으로 적지에서 시합에 임하지 않으면 안됐고 지금까지 2차리그에서 브라질과의 격전으로 인해 선수들의 피로가 누적되 있었기 때문에 높은 기술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시합 시작후 1분만에 네덜란드는 페널트킥을 얻어냈다. 니스켄스의 침착한 슛으로 선취골을 뽑아냈다. 그러나 우승을 의식한 네덜란드 선수들의 움직임은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했고 서독은 총력을 다해 반격에 나섰다. 26분 드디어 서독도 페널트킥을 얻어냈다. 브라이트너의 성공으로 승부는 다시 원점. 서독은 물러서지 않고 전반 종료직전 뮐러가 상대수비수 3명을 제치고 넘어지면서 멋지게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네덜란드가 예선을 포함해 리드당한 적은 서독과의 결승전 단 1경기 뿐이였다. 후반 들어 맹반격에 나섰지만 서독은 결국 2:1 스코어를 지켜내며 지난 54년 스위스대회에서 헝가리를 꺽고 우승한 이 후 정확히 20년만에 통산 2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새로운 FIFA컵의 첫 주인공은 개최국 서독이였다. 관중석에서는 도이칠란트를 외치는 서독팬들의 함성으로 메아리쳤고 서독은 20년만에 승리의 축배에 취해있었다. 네덜란드는 토털사커라는 이름아래 세계축구의 일대변화를 일으키며 우승을 노렸지만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득점왕 :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8골
2위 : 요한 니스켄스(네덜란드),안드레야 스자르마치(폴란드) 5골
3위 : 게르트 뮐러(서독),조니 레프(네덜란드),랄프 에드스트롬(스웨덴)4골
MVP : 프란츠 베켄바워(서독)
참가관중 1,809,953/38경기(경기당 평균 47,630명)
총 97골 한경기당 평균 2.55골
제10회대회 최종순위
1. 서독 6승0무1패 13득점 4실점 +12 승점 12
2. 네덜란드 5승1무1패 15득점 3실점 +12 승점 11
3. 폴란드 6승0무1패 16득점 5실점 +11 승점 12
4. 브라질 3승2무2패 6득점 4실점 +2 승점 8
5. 스웨덴 2승2무2패 7득점 6실점 +1 승점 6
6. 동독 2승2무2패 5득점 5실점 0 승점 6
7. 유고슬라비아 1승2무3패 12득점 7실점 +5 승점 4
8. 아르헨티나 1승2무3패 9득점 12실점 -3 승점 4
9. 스코틀랜드 1승2무0패 3득점 1실점 +2 승점 4
10. 이탈리아 1승1무1패 5득점 4실점 +1 승점 3
11. 칠레 0승2무1패 1득점 2실점 -1 승점 2
12. 불가리아 0승2무1패 2득점 5실점 -3 승점 2
13. 우루과이 0승1무2패 1득점 6실점 -5 승점 1
14. 호주 0승1무2패 0득점 5실점 -5 승점 1
15. 아이티 0승0무3패 2득점 14실점 -12 승점 0
16. 자이르 0승0무3패 0득점 14실점 -14 승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