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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제1장
1 [원문]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세간의 道라고 하는 것은, 恒常不變의 眞道는 아니다.
세간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불변의 이름은 아니다.”
[왕필주]
“가도지도 가명지명 지사조형 비기상야 고불가도 불가명야
可道之道 可名之名 指事造形 非其常也 故不可道 不可名也”
“道라고 표현할 수 있는 道와,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름은,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고, 형상을 짓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하는 것은 아니다.”
2 [원문]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이름없음이 만물의 시작이고,
이름있음이 만물의 어머니이다.”
[왕필주]
“범유개시어무 고미형무명지시 즉위만물지시 급기유형유명지시 즉장지육지정지독지
凡有皆始於無 故未形無名之時 則爲萬物之始 及其有形有名之時 則長之育之亭之毒之
위기모야 언도이무형무명시성 만물이시이성이불지기소이 현지우현야
爲其母也 言道以無形無名始成 萬物以始以成而不知其所以 玄之又玄也”
“모든 有는, 無에서 시작되었다. 고로 형상이 아니고 이름이 없을 때 만물의 시작이 된다. 형상이 있고 이름이 있을 때에 미치면, 長·育·亭·毒하면 그 어미가 된다.
言道는 無形·無名으로 始하고 成하며, 만물은 이로서 시작하고 이로서 완성하나, 그러나 그 所以를 알지 못한다. 玄하고 玄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3 [원문]
“고상무욕이관기묘
故常無欲以觀其妙”
“고로 항상 욕심없음으로 (사물이 시작되는)그 妙를 觀하고,”
[왕필주]
“묘자 미지극야 만물시어미이후성 시어무이후생 고상무욕공허 가이관기시물지묘
妙者 微之極也 萬物始於微而後成 始於無而後生 故常無欲空虛 可以觀其始物之妙”
“본문의 ‘妙’ 字는 ‘은미함의 궁극’을 뜻한다.
만물은 은미함에서 비롯한 이후에 이루어지고,
없음(無)에서 비롯한 이후에 나온다.
그러므로 항상 아무 것도 하고자 하는 것이 없음과
공허함에서 사물이 시자고디는 미묘함을 살펴서 헤아려야 한다.”
4 [원문]
“상유욕이관기요
常有欲以觀其徼”
“항상 욕심있음으로 사물이 되돌아가서 시작되는 미묘함을(요徼)를 관한다.”
[왕필주]
“요귀종야 범유지위리 필이무위용 욕지소본 적도이후제 고상유욕 가이관기종물지요야
徼歸終也 凡有之爲利 必以無爲用 欲之所本 適道而後濟 故常有欲 可以觀其終物之徼也”
“본문의 ‘요徼’字는 ‘되돌아가서 끝남(歸終)’이다,
모든 있음(有)이 이롭게 되는 것은, 반드시 없음(無)으로 효용을 삼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뿌리받고 있는 것은, 道를 만난 다음에 구제된다.
그러므로, 항상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음에서는 사물이 되돌아가서 끝나게 되는 종결점을 살펴서 헤아려야 한다.”
5 [원문]
“차양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위의 두 가지는 나온 곳은 같은데, (시작은 어미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이름을 다르게 붙였으니, (둘을) 하나로 합쳐서 그것을 ‘아득함’이라고 이른다. 그러니 아득하고 또 아득함은 온갖 미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이다.”
[왕필주]
“兩者始與母也 同出者同出於玄也 異名所施不可同也
在首則爲之始 在終則爲之母 玄者冥也 默然無有也 始母之所出也 不可得而名 故不可言同名曰玄 而言謂之玄者 取於不可得而謂之然也 謂之然則不可以定乎一玄而已 則是名則失之遠矣 故曰玄之又玄也 衆妙皆從同而出 故曰衆妙之門也”
“본문의 두 가지(兩者)는, 시작과 어미이다.
분문의 나온 것이 같다는 것(同出)은, 아득함에서 함께 나왔다는 것이고,
본문의 이름이 다르다(異名)는 것은, 펼쳐진 곳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있으면 그것을 시작이라 하고,
뒤에 있으면 그것을 어미라고 한다.
본문의 아득함(玄)이라는 것은, 깜깜함이고, 아스라이 아무 것도 없음이고,
그리고 시작과 어미가 나온 바이다. 무엇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로 이름붙여 ‘아득함’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것을 아득함이라고 이른다(謂之玄)’라고 말한 것은,
그것을 그렇게 (이름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런 의미로 말했다면, 하나의 ‘아득함(玄)’에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이름을 본보기로 할 경우, 완전히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아득하고 또 아득함”이라고 말하였다.
온갖 미묘한 것들은 모두 (아득함이라는) 동일한 것에서 나왔으므로
‘온갖 미묘한 것들이 나온 문’이라고 말했다.”
“천지개벽이전에는, 이름은 없었다. 만물의 어머니인 천지가 창조되어 비로소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난 것이다. 때문에 천지개벽이전의 근원적인 無의 상태일 때는, 내가 말하는 道의 미묘한 작용이 관찰되고, 천지개벽이후의 분명한 형을 취한 유의 상태가 되자, 만물의 구별이 되게 되었다. 이 천지와 만물의 양자는 결국 같은 것이면서, 명칭이 다른 것이다. 이 근원적으로 같은 것을 발생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을 玄이라고 한다. 현의 또 심오한 玄이야말로 모든 것의 미묘한 현상을 낳는 문이다.”
노자 도덕경 제2장
1 [원문]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난이상성 장단상형 고하상경 음문상화 전후상수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聞相和 前後相隨”
“세상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된다고 알고 있는데,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됨은 추한 것 때문일 뿐이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선한 것이 선한 것이 된다고 알고 있는데,
선한 것이 선한 것이 됨은 선하지 않은 것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어주며,
길고 짧은 것은 서로가 비교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차이가 생기며,
가락과 음률은 서로 반응하고, 앞과 뒤는 서로가 따른다.”
[왕필주]
“美者人心之所進樂也 惡者人心之所惡疾也 美惡猶喜怒也 善不善猶是非也 喜怒同根 是非同門
故不可得而偏擧也 此六者皆陳自然不可偏擧之明數也”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의 마음이 따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추한 것이란 사람들의 마음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은 기뻐하는 것과 노하는 것과 같고,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은 옳은 것과 그른 것과 같다.
기뻐하는 것과 노하는 것은 근원이 같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문호(門)가 같다.
그러므로 한쪽만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본문의 여섯 가지(유무, 난이, 장단, 고하, 음성, 전후)는
모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들을 진술했으니,
한쪽만을 거론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치(明數)’이다.”
2 [원문]
“시이성인처무위지사
是以聖人處無爲之事”
“이 때문에 성인은 무위사에 처해있고”
[왕필주]
“自然已足 爲則敗也”
“저절로 그렇게 되어서 이미 충분하니,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면 실패한다.”
3 [원문]
“행불언지교 만물작언 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行不言之敎 萬物作焉 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말없는 교화를 행한다.
그러니 만물이 이로부터 일어날지라도
(성인은)사절하지 않고 (만물이 이로부터) 나올지라도
(성인은) 공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만물이 이로부터) 무엇인가 함이 있을지라도
(성인은) 내세우지 않고,”
[왕필주]
“智慧自備 爲則僞也”
“지혜가 저절로 갖추어졌는데 무엇인가를 아루려고 하면 작위이다.”
4 [원문]
“공성이불거
功成而弗居”
“(만물이 이로부터)공을 이루어 놓을지라도 자처하지 않는다.”
[왕필주]
“因物而用 功自彼成 故不居也”
“사물에 말미암아서 사용하니 공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자처하지 않는다.”
5 [원문]
“부유불거 시이불거
夫惟弗居 是以不居”
“단지 자처하지 않을 뿐이다. 이 때문에 공이 떠나가지 않는다.”
[왕필주]
“使功在己 則功不可久也”
“공을 자신에게 있게 하면 공이 오래갈 수 없다.”
해석]
세인들은 누구나 미가 美인 것은 알고 있지만,
동시에 美가 醜의 상대적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는 느끼지 못한다.
또, 세인들은 善이 선인 것은 알고 있지만,
동시에 선이 불선의 상대적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에 눈뜨고 있지 않다.
유와 무, 난과 이, 장단, 고하, 악기 소리와 육성, 전후,
이것들은 다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런 고로 무위자연의 도를 체득한 성인은,
무위자연의 경지에 몸을 두고 말이라고 하는 허무한 것으로 가르침치지 않고,
불언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도는 만물을 생하게 해도 一言도 하지 않는다.
또 생한 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을 의지로 하지 않는다.
공적을 이루어도 그것에 수반하는 높은 지위에 居座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좌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공적이 들어지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제3장 1 [원문]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심불란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心不亂”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서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하고, 얻기 힘든 재화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서 백성들이 도둑이 되지 않도록 한다.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게 되지 않도록 한다.” [왕필주] “賢猶能也 尙者嘉之名也 貴者隆之稱也 唯能是任 尙也曷爲 唯用是施 貴之何爲 尙賢顯名 榮過其任 爲而常校能相射 貴貨過用 貪者競趣 穿窬探篋 沒命而盜 故可欲不見 則心無所亂也” “현명함은 능력있음과 같다. 숭상하는 것이란 기리는 것을 이름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높이는 것을 칭한다. 능력이 있기에 일을 맡겼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숭상하겠으며, 사용되기에 시행했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귀하게 여기겠는가. 현명함을 숭상하고 명예를 드러내면, 영화가 맡은 것보다 지나치게 되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항상 능력을 따지면서 서로 다툰다. 재화를 귀중하게 여기고 효용이상으로 취급하니, 탐욕스러운 자들이 다투어 모여들고, 남의 담을 넘나들며 금고속의 재화를 훔치려고 목숨바쳐 도둑질한다. 그러므로 (윗사람들이) 욕심낼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게 될 일이 없다.” 2 [원문]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들의 마음을 비우게 하지만, 배를 채워주고,” [왕필주] “心懷智而腹懷食 虛有智而實無知也” “마음에는 앎이 담겨있고 배에는 음식이 담겨있으니, 앎이 담겨 있는 것은 비우고 앎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채워준다.” 3 [원문] “약기지 강기골 弱其志 强其骨” “뜻을 약하게 하고 뼈대를 강하게 하여” [왕필주] “骨無知以幹 志生事以亂 心虛則志弱也” “뼈대는 앎이 없어서 근간이 되지만, 뜻은 일을 만들어서 어지럽힌다. 마음을 비우면 뜻이 약해진다.” 4 [원문] “상사민무지무욕 常使民無知無欲” “늘 백성들이 알고자 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없도록 하고”, [왕필주] “守其眞也” “그들의 참됨을 지키게 한다.” 5 [원문] “사부지자불감위야 使夫智者不敢爲也” “작위할 줄 아는 자들이 감히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도록 한다.” [왕필주] “智者謂知爲也” “본문의 智란, 작위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6 [원문] “위무위 칙무불치 爲無爲 則無不治” “할 일이 없도록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직역]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해석] 현자를 중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투지 않게 된다. 진품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훔치지 않게 된다. 욕망을 보이지 않게 하면, 마음으로 하여금 산란하게 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이 정치를 행할 때는, 사람들을 허심의 상태로 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게 하고, 위를 향하는 뜻을 약하게 하고, 그 신체를 완강하게 해주고, 언제나 사람들을 지식도 구하지 않고 욕망도 구하지 않게 하고, 저 모든 지자라고 하는 자에게 아무 것도 하게 하지 않게 한다. 무위의 정치를 행해가면, 천하는 다스려지지 않는 일은 없는 것이다. |
노자 도덕경 제4장
1 [원문]
“도충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粉 和其光 同其塵
담혜 사약존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湛兮 似若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는 비어있지만 작용하니, 차지 않은 듯하다.
깊으면서 고요하니 만물의 근본인 듯하다.
날카로움을 꺾고 분란을 풀어주며,
빛나는 것을 부드럽게 하고 더러움과 함께 한다.
깊으면서 맑으니 존재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니,
조물주(帝)보다 앞서 있는 듯하다.”
[해석]
도라고 하는 것은 空의 그릇과 같은 것인데,
그것에 아무리 물건을 넣어도 가득 차는 일은 없다.
상당히 심원하고, 만물의 宗家와 같다.
만물 중의 예리한 것을 挫하고,
만물 중의 얽힘을 풀어주고,
만물 중의 빛남을 부드럽게 하고,
만물 중의 塵과 동화하고 있다.
조용히 채운 물 같이 조용히 만물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는 모른다.
그것은 하늘이 생기기 이전의, 하늘의 선조의 모습 같은 것이다.
[왕필주]
“夫執一家之量者 不能全家 執一國之量者 不能成國 窮力擧重 不能爲用 故人雖知萬物治也 治而不以二儀之道 則不能贍也 地雖形魄 不法於天則不能全其寧 天雖精象 不法於道 則不能保其精 沖而用之 用乃不能窮 滿以造實 實來則溢 故沖而用之又復不盈 其爲無窮亦已極矣 形雖大 不能累其體 事雖殷 不能充其量 萬物舍此而求主 主其安在乎 不亦淵兮似萬物之宗乎 銳挫而無損 紛解而不勞 和光而不汚其體 同塵而不 其眞 不亦湛兮 似或存乎 地守其形 德不能過其載 天慊其象 德不能過其覆 天地莫能及之 不亦似帝之先乎 帝天帝也.”
“한 집안만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는 집안을 완전하게 이끌어 갈 수 없고,
한 나라만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온 힘을 다해 무거운 것을 들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비록 지혜로워서 만물이 다스려질지라도
다스림에 有無의 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여유가 있을 수 없다.
땅이 비록 큰덩어리로 뭉쳐있지만, 하늘을 본받지 않는다면 땅의 안락함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하늘이 비록 정미한 象이지만 도를 본받지 않는다면, 그 精미함을 보전할 수 없다.
비어 있으면서 작용하니 작용이 이에 무궁하고,
가득차 있으면서 내용물을 채우려하니 내용물이 오면 넘친다.
그러므로,
비어 있으면서 작용하고 또다시 채우지 않으니 그 무궁함이 이미 지극하다.
형체가 아무리 크더라도 자신의 몸을 얽어맬 수 없고,
일이 아무리 많더라도 자신의 용량을 채울 수 없다.
만물이 이것을 버리고 근본을 찾는다면 근본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깊으면서 고요하니 또한 만물의 근본인 듯하지 아니한가?
예리함을 꺾어도 상처를 입지 않고 분란을 풀어 주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으며,
빛나는 것을 부드럽게 하여도 오명을 쓰지 않고,
더러움과 함께 하면서도 참됨을 지키니,
또한 깊으면서 맑게 존재하는 듯하지 아니한가!
땅이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기능은 떠받치는 역할을 초과할 수 없고,
하늘이 그 象에 흡족해 하지만, 그 기능은 덮어주는 역할을 초과할 수 없다.
하늘과 땅 가운데 어느 것도 도체 미칠 수 없으니
또한 조물주보다 앞서 있는 듯하지 아니한가?
본문의 帝 字는 조물주(天帝)이다.”
노자 『도덕경』제5장 [원문]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하찮은 꼴이나 개처럼 여긴다.” [왕필주] “天地任自然 無爲無造 萬物自相治 故不仁也 仁者必造立施化 有恩有爲 造立施化 則物失其眞 有恩有爲 則物不具存 物不具存則不足以備載矣” “하늘과 땅은 저절로 그렇게 됨(自然)에 맡겨두어서 작위함도 없고 조작함도 없으니 만물끼리 스스로 서로 다스린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 어진 자는 반드시 무엇인가 작위하여 세우고 시행해서 교화시키니 은혜를 베품이 있고 무엇인가 이름이 있다. 무엇인가 작위하여 세우고 시행해서 교화시킬 경우 사물은 그 참됨을 잃고, 은혜를 베품이 있고 무엇인가 이룸이 있을 경우 사물들은 다 함께 존재하지 못한다. 사물들이 다 함께 존재하지 못할 경우 (어진 자가) 모든 것을 다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天)地不爲獸生芻 而獸食芻 不爲人生狗 而人食狗 無爲於萬物而萬物各適其所用 則莫不贍矣 若慧由己樹 未足任也” “(하늘과) 땅이 짐승들을 위하여 꼴을 기르지 않지만, 짐승들은 꼴을 먹고, 사람들을 위하여 개를 만들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개를 잡아먹는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함은 없지만, 만물은 제각기 소용되는 곳에 나아가 어느 것 하나 넉넉하지 않음이 없다. 만약 지혜가 자신에게 말미암아 내세워지는 경우라면 (만물을) 맡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원문]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은 어질지 않아서 백성을 하찮은 꼴이나 개처럼 여긴다.” [왕필주] “聖人與天地合其德 以百姓比芻狗也”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을 같이하기 때문에 백성을 하찮은 꼴이나 개에 견주었다.” [원문]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하늘과 땅 사이는 아마 풀무나 피리와 같겠지! 비어 있으면서도 다하지 않고 움직일수록 나오는구나” [왕필주] “槖排槖也 蘥樂蘥也 槖蘥之中空洞 無情無爲 故虛而不得窮屈 動而不可竭盡也 天地之中蕩然 任自然, 故不可得而窮 猶若槖蘥也” “본문의 탁橐은 풀무이고, 약籥은 피리이다. 풀무와 피리는 속이 비어있어서, 밖으로 반응하지도 않고 작위함도 없다. 그러므로, 비었지만 끊임없이 나오고 아무리 움직여도 고갈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이는 (자신을) 비워서 저절로 그렇게 됨에 맡겨둔다. 그러므로 다함이 없으니 마치 풀무나 피리와 같다.” [원문] “다언삭궁 불여수중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궁하게 되는 수이니, (풀무나 피리처럼) 빈 속을 지키고 있는 것만 못하다.” [왕필주] “愈爲之 則愈失之矣 物樹其惡 事錯其言 不濟不言不理 必窮之數也 槖蘥而守數中 則無窮盡 棄己任物 則莫不理 若槖蘥有意於爲聲也 則不足以共吹者之求也” “무엇인가 이루면 이룰수록 더욱 잘못되어서, 사물에 악을 심고, 일에 자신의 말을 덧붙이기를 멈추지 않으니, (무엇인가 이루는 방식으로 다스리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지 않고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반드시 궁하게 될 수이다. 풀무나 피리도 빈 속을 유지하고 있으면 무궁무진하게 되니, 자신을 버리고 사물에 맡겨두면 어느 것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풀무나 피리가 의도적으로 소리를 내려고 한다면 풀무질하는 자나 연주자의 요구대로 될 수가 없다.” |
노자『도덕경』제6장
원문]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골짜기의 신묘함은 사라지는 것이 없으니
이것을 아득한 암컷이라고 한다.
아득한 암컷의 문을 바로 천지의 근본이라고 하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면서도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왕필주]
“谷神谷中央無谷也 無形無影 無逆無違 處卑不動 守靜不衰 谷以之成 而不見其形
此至物也 處卑而不可得名 故謂天地之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門玄牝之所由也
本其所由與極同體 故謂之天地之根也 欲言存邪 則不見其形 欲言亡邪 萬物以之生 故綿綿若存也
無物不成 用而不勞也 故曰用而不勤也”
“골짜기의 신묘함은 골짜기 중앙에 골짜기 흔적이 없는 곳이니,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며 맞이함도 없고 보냄도 없으며,
아래에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하면서도 쇠퇴하지 않는다.
골짜기가 이것으로 이루어져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이는 지극한 존재이다.
아래에 자리잡고 있지만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지의 근본이라고 하니 끊임없이 이어져 존재하는 듯 하면서도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문은 아득한 암컷이 말미암는 바이다.
그런데 본시 그것이 말미암는 바는 궁극과 몸뚱이를 함께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천지의 근본이라고 이른다. (천지의 근본이)
존재한다고 말하려고 하면 그 모습을 알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하면 만물이 그것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므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무엇이든지 완성하지 않음이 없이 작용하면서도
힘겨워하지 않으므로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라고 했다.”
[해석]
만물을 낳는 谷神은 죽는 일이 없다.
이것을 深遠한 모성이라고 한다.
심원한 모성의 門, 이것을 천지의 根源이라고 한다.
이 곡신은 영원히 계속 존재하고, 만물을 계속 낳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노자『도덕경』제6장
원문]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골짜기의 신묘함은 사라지는 것이 없으니
이것을 아득한 암컷이라고 한다.
아득한 암컷의 문을 바로 천지의 근본이라고 하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면서도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왕필주]
“谷神谷中央無谷也 無形無影 無逆無違 處卑不動 守靜不衰 谷以之成 而不見其形
此至物也 處卑而不可得名 故謂天地之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門玄牝之所由也
本其所由與極同體 故謂之天地之根也 欲言存邪 則不見其形 欲言亡邪 萬物以之生 故綿綿若存也
無物不成 用而不勞也 故曰用而不勤也”
“골짜기의 신묘함은 골짜기 중앙에 골짜기 흔적이 없는 곳이니,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며 맞이함도 없고 보냄도 없으며,
아래에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하면서도 쇠퇴하지 않는다.
골짜기가 이것으로 이루어져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이는 지극한 존재이다.
아래에 자리잡고 있지만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지의 근본이라고 하니 끊임없이 이어져 존재하는 듯 하면서도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문은 아득한 암컷이 말미암는 바이다.
그런데 본시 그것이 말미암는 바는 궁극과 몸뚱이를 함께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천지의 근본이라고 이른다. (천지의 근본이)
존재한다고 말하려고 하면 그 모습을 알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하면 만물이 그것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므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무엇이든지 완성하지 않음이 없이 작용하면서도
힘겨워하지 않으므로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라고 했다.”
[해석]
만물을 낳는 谷神은 죽는 일이 없다.
이것을 深遠한 모성이라고 한다.
심원한 모성의 門, 이것을 천지의 根源이라고 한다.
이 곡신은 영원히 계속 존재하고, 만물을 계속 낳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노자『도덕경』제8장
[원문]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악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최상의 善은 물의 작용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다.”
[왕필주]
“人惡卑也”
“사람은 비루한 것을 싫어한다”
[원문]
“故幾於道”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왕필주]
“道無水有 故曰幾也”
“도는 ‘없는 것(無)’이고, 물은 ‘있는 것(有)’이므로,
본문에서 ‘가깝다(幾)’ 라고 했다.”
[원문]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사람은) 머무는 곳으로는 땅을 최상으로 여기고
마음가짐으로는 연못처럼 깊고 잔잔함을 최상으로 여기며,
함께 하는 것으로는 어짊을 최상으로 여기고
말에서는 신용을 최상으로 여기며,
바르게 함에서는 다스려짐을 최상으로 여기고,
일에서는 능수능란한 것을 최상으로 여기며,
그리고 움직임에서는 시기적절한 것을 최상으로 여기지만,
두투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왕필주]
“言人皆應於此道也”
“사람은 모두 이런 道에 순응한다는 말이다”
[해설]
사람들은 귀한 것을 따름에 비해 물은 사람들과 달리 낮은 것으로 흘러가니
비어 있는 도에 가깝다. 사람들이 도에 가까운 물을 본받기 위해서는
위의 본문처럼 행동해야 하지만, 모든 비결은 단지 다투지 않는데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할 때, 모든 허물이 사라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을 빙지 못함으로 허물이 있게 되니,
다음 9장은 이것에 대한 설명이다.
[해석]
최상의 선이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 이익을 주면서 타자와 다투는 일은 없다.
그리고 다들 싫어하는 낮은 장소에 있다.
때문에 도에 가까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居所는 大地가 좋고, 마음은 深遠한 것이 좋고,
주는 것에는 仁愛를 가지고 하는 것이 좋고,
말은 거짓이 없는 것이 좋고,
정치는 평화롭게 되는 것이 좋고,
사물을 행하기에는 능력이 있는 것이 좋고,
움직이기에는 時機를 적당히 고르는 것이 좋다.
물은 오직 다투지 않는다.
때문에 타자에게 책망받지 않는 것이다.
노자『도덕경』제9장
[원문]
“지이영지 불여기이
持而盈之 不如其已”
“움켜잡고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왕필주]
“持謂不失德也 旣不失其德 又盈之 勢必傾危 故不知其已者 謂乃更不如無德無功者也”
“본문의 ‘움켜잡는다(持)’는 글자는 (38장의)‘덕을 잃지 않는다’라늠 말이다.
자신의 덕을 잃지 않았는데, 또 채우려 한다면, 형세상 반드시 기울어져서 위태롭다.
그러므로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란 이에 다시 덕도 없고 공도 없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원문]
“이예지 불가상보
而銳之 不可常保”
“단련해서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왕필주]
“旣揣末令尖 又銳之令利 勢必摧衄 故不可長保也”
“날을 단련해서 뾰족하게 하고서도 또 날을 세워 날카롭게 한다면,
형세상 반드시 꺾일 것이므로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원문]
“금옥만당 막지능수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다.”
[왕필주]
“不若其已”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원문]
“부귀이교 자유기구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한 데다 교만하기까지 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 것이다.”
[왕필주]
“不可長保也”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원문]
“공수신퇴 천지도
功遂身退 天之道”
“일이 완수되었으면 당사자(身)는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왕필주]
“四時更運 功成則移”
“사계가 바뀌면서 운행되니, 일이 이루어지면 떠난다”
[해설]
有가 항상 無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 사물의 필연적인 존재방식인데,
이는 인간의 행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곧 부귀나 재화를 차지한 사람들이 이것을 유지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대적으로 이거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더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험에 처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잃게 된다.
위험에 처하거나 목숨을 잃을바엔 차라리 부귀나 재화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
부귀한 지위에 잇으면서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부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귀하게 되면,
겸손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만하게 되니, 허물을 남기게 된다.
사시의 운행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의 도는 자신의 일을 마치면 물러간다.
그러니, 사람도 모든 일에서 할 일을 마쳤으면
일을 이룬 것으로 만족하고 물러나야 한다.
[해석]
그릇에 액체를 가득 채워 가지고, 흘릴 정도라면, 가득 채우지 않는 편이 좋다.
칼을 갈아 예리하게 하면, 꺾이기 쉬워 오래 지니지 못한다.
황금이나 보옥이 집에 가득 있는 부자가 되면,
도적에게 엿보이고, 그 재산을 지킬 수가 없다.
재산과 지위를 손에 넣어 교만한 태도를 취하면,
자연히 재액을 초래하는 결과가 된다.
공이 이루어지고, 명예를 이룬 뒤에,
그 입장에서 몸을 몰리는 것이야말로, 천도에 맞는 행위다.
노자『도덕경』제10장
[원문]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의식활동을 하면서 본래의 소박함을 껴안아 분리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왕필주]
“載猶處也 營魄人之常居處也 一人之眞也
言人能處常居之宅 抱一淸神 能常無離乎 則萬物自賓也”
“본문의 ‘재載’란 글자는 머물러 있다(處)는 말과 같다. 의식의 활동(營魄;정신)은 사람이 늘 거처하는 것이다. 하나는(一) 사람들이 가진 참됨이다. 사람이 늘상 머무는 집에 거처하면서도 본래의 소박함을 껴안아 맑고 신령스럽게 되어서 항상 분리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손님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원문]
“전기치유 능상아호
專其致柔 能孀兒乎”
“그러한 氣에 맡겨두고 지극히 부드러운 조화를 극진하게 해서, 마치 아기처럼 할 수 있는가?”
[왕필주]
“專任也 致極也 言任自然之氣 致至柔之和 能若嬰兒之無所欲乎 則物全而性得矣”
“본문의 ‘專’이란 글자는 맡겨두다(任)는 의미이고, ‘致’란 글자는 극진하게 하다는 의미이다. 저절로 그러한 氣에 맡겨 두고 지극히 부드러운 조화를 극진하게 해서, 마치 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 아기처럼 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사물이 온전해지고 본성이 제대로 된다는 말이다.”
[원문]
“척제현람 능무자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잘못된 것을 씻어버리고, 아득히 구분없는 상태에서 살펴,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왕필주]
“玄物之極也 言能滌除邪飾, 至於極覽, 能不以物介其明, 疵(之)其神乎 則終與玄同也.”
“아득히 구분없는 상태(玄)는 사물의 지극한 상태이다. 잘못 꾸며진 것을 씻어버리고 지극한 통찰의 경지에 이르러서 사물 때문에 자신의 밝은 지혜(明)를 가리거나 자신의 신령한 성품(神)에 흠을 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마침내 아득함(玄)과 같게 된다는 말이다.”
[원문]
“애민치국 능무위호
愛民治國 能無爲乎”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면서 지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가?”
[왕필주]
“任術以求成 運數以求匿者 智也 玄覽無疵 猶絶聖也 治國無以智 猶棄智也 能無以智乎 則民不而國治之也”
“술책에 맡겨서 성공을 구하고 술수를 사용하여서 숨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이다. 아득히 구분없는 상태에서 살펴서 흠이 없는 것은 성스러움을 끊어버리는것(絶聖)과 같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지혜를 버리는 것(棄智)과 같다. 지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백성들은 회피하지 않고 나라는 다스려질 것이다.”
[원문]
“천문개합 능위자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하늘의 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마치 암컷처럼 할 수 있는가?”
[왕필주]
“天門謂天下之所從出也 開闔治亂之際也 或開或闔 經通於天下 故曰天門開闔也 雌應而不倡 因而不爲 言天門開闔 能爲雌乎 則物自賓 而處自安矣”
“본문에서 ‘天門’은 천하가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열리거나 닫힌다는 것은, 다스려지거나 혼란한 즈음이니,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면서 천하에 두루 통하므로 ‘하늘의 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라고 한 것이다.
암컷은 응하기는 하지만 주도하지 않으며, 따라가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하늘의 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암컷처럼 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사물들은 스스로 손님이 되고, 처신하기가 저절로 편안해진다는 말이다.”
[원문]
“명백사달 능무지호
明白四達 能無知乎”
“명백하게 사방에 통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왕필주]
“言至明四達 無迷無惑 能無以爲乎
則物化矣 所謂道常無爲 侯王若能守 則萬物自化”
“지극히 밝게 사방에 통하여 미혹되는 일이 없어서 아무 것도 염두에 두지 않고 행위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만물이 감화되니, 이른바(37장에서) ‘도는 항상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지만.. 후왕이 만약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라고 한 말이다.”
[원문]
“생지生之”
“(위와 같이 해서) 낳아주고”
왕필[주]
“不塞其原也”
“만물의 근원을 막지 않는다”
“만물의 근원을 막지 않는다.”
[원문]
“축지畜之”
“길러 준다.”
[왕필주]
“不禁其性也”
“만물의 본성을 막지 않는다”
[원문]
“생이불유 위이부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낳아주지만 공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무엇ㅎ인가 해주지만 내세우지 않고, 장성하게 하지만 주고나한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아득한 덕(玄德)’이다.”
[왕필주]
“不塞其原 則物自生 何功之有 不禁其性 則物自濟 何爲之恃 物自長足 不吾宰成 有德無主 非玄而何 凡言玄德 皆有德而不知其主 出乎幽冥”
“근원을 막지 않으면 사물이 저절로 나오니, 무슨 功이 있겠는가?
본성을 막지 않으면 사물이 저절로 구제되니, 무엇을 했다고 내세우겠는가?
사물이 저절로 장성하고 만족하니, 내가 주관해서 이룬 것이 아니고,
德은 있으나 주고나하는 이(主)가 없으니, 아듯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반적으로 ‘아득한 덕’은 모두 덕은 있지만, 그 주관하는 이를 알 수 없음이니, ‘아무 것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함(幽冥)’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해설]
10장의 첫구절 곧 “의식활동(營魄)을 하면서 하나(一)를 껴안아 분리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에서 하나는 42장 왕필주의 하나(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왕필이 여기서 하나를 ‘사람의 참됨(人之眞)’으로 주하고, 28장에서 樸을 眞으로 주한 것을 볼 때, 여기서 하나는 인간의 의식활동에 의해 주객이 분리되지 않은 소박하고 참된 본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물아일체의 상태를 말한다.
의식의 활동은 물아일체의 상태를 벗어나서 사물을 분별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참된 모습(眞)’은 소박한 것으로서 사물과 분별되지 않는 ‘물아일체의 상태(一)’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본성 곧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자연스러운 기에 모든 것을 맡기고 부드러움을 지극하게 해서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고,
또 분별에 의해 어지럽게 된 것을 제거하고, 아득한 경지에서 살펴서 흠이 없게 할 수 있으며, 또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분별지를 없앨 수 있고, 또 천하가 어떻게 되든지 간여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모든 것에 통달해서 무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무 것도 분별하지 않은 것으로서의 아득한 덕이다.
해석- 상원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