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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사 정기법회
(2006.07.08.토(음06.13))
오늘 음력6월13일,
부산법회에도 이렇게 많이 나와 주셔서 여기 올라와서 법문하는 이 스님에게 하나의 격려가 되고, 용기를 주고, 대단히 고맙습니다. 오늘은 전번 법회에 이어서 삼법인설의 마지막으로 ‘열반적정’을 강의 법문함으로써 매듭짓겠습니다.
삼법인설三法印說,
여러분! 지난 시간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제행무상인, 제법무아인, 일체개고인 이 세 가지는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열반적정인에 대해서 이 네 가지를 사법인이라고 합니다. 삼법인 그러면 거기다가 ‘일체개고’를 뺍니다. 대부분 우리 보살님들이 팀장이시기 때문에 팀장들을 소집해서 한 일주일정도 불교 기본교리를 강의해야 되는데 아직 여건이 마련이 안 되어서 기본 교리를 가지고 법문을 해 드립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사상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수행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오늘은 열반적정涅槃寂靜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교리입니다.
열반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죽음을 생각할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죠. 그런데 본래 뜻은 죽음이 아니고 탐․진․치 삼독,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져버린 상태를 열반이라 합니다. 범어로는 니르바나. 아셨죠? 탐․진, 모든 번뇌의 불꽃이 수행에 의해서 꺼져버린 상태, 이걸 열반이라 합니다. 그런데 열반적정 그러면 이 적정은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열반의 경지를 말하는 겁니다. 열반은 적정이다. 그 말이다. 적정, 고요하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지금 바깥세상의 소음이 가셔져 버린, 그래서 한밤중 그 상태는 적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의 모든 번뇌 생각이 일어났다 또 없어졌다, 일어났다 또 없어졌다 생멸을 반복하잖아요. 번뇌가 수행을 많이 해서 공空의 경지로 들어가서 적멸의 경지로 들어가 버리면 고요해져 버립니다. 생명마저 쉬어버립니다. 그때의 고요함을 적정이라 합니다. 아셨죠?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답니다. 여러분 지금 여자의 몸을 받아서 금생을 살고 있고, 이러저런 남편을 만나서 살고 있고, 내 몸의 건강상태는 이러저러하고, 아들, 딸은 몇이고, 또 그 아들, 딸은 지금 성장해서 어떻게 어떻게 지금 살고 있고, 내 주변 환경은 어떻고, 이런 결과 현재 살고 있는 내 주변 상태는 전부 원인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럽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인과 ․ 인과법 그럽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있어서 여러분을 만들어 가지고 이런 운명을 지어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공을 체험하고 적멸을 체험한 사람은 확실히 압니다. 내 책에 그런 말이 있을 것입니다. 견성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창조주란 없다 하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럽니다. 여러분은 물론 행복하게 사는 분도 있지만 , 만 가지가 다 만족스럽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만족스럽지 못한 삶, 바꾸어 말하면 고통스러운 삶, 이것은 어디서 오느냐? 원인이 없는 결과 없다고 하는 것을 진리라고하면 고통스러운 그 삶은 어디서 오느냐? 내가 언젠가 이렇게 고통 받고 살 수 밖에 없는 업을 지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고통을 받는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반드시 금생에 와서 지은 업(죄업)을 참회하고, 미루어서 그 전생 삶을 참회하고, 그리고 희유하고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께 귀의․ 귀명하는 것이 가장 바른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 스님은 그것을 역설합니다. 스님이 이 세상에 나와서 책을 통해서, 법문을 통해서 역설하는 것은 칭명염불 수행법입니다. 왜 칭명염불을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앞으로도 할 겁니다. 정말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 줄 아시고 스님의 가르침에 꼭 이렇게 많이 나오셔서 들어주시고, 마음속에 새겨주시고 하면 좋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유경을 통해서 짧은 이야기로 인생을 잘 그려놓은 비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을 흑백이서화黑白二鼠話, 안수정등화 그럽니다. 검정 쥐, 백(흰)쥐 두 마리의 쥐 비유이야기, 여러분한테 들려드리고자 하는 비유 이야기 부처님께서 비유이야기를 그렇게도 잘도 그려났습니다.
자, 한 남자가 미친 코끼리(살인 코끼리)를 피해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그 장소는 허허벌판 무변 황량한 광야 입니다.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 나그네 뒤를 살인코끼리가 쫓아갑니다. 덮치면 죽습니다. 그걸 알고 그 나그네는 있는 힘을 다해서 뜁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을 치는데 정말로 하늘이 도왔던지 낡은 우물을 발견합니다. 푹 패인 우물을 발견합니다. 그런데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우물 속으로 한 가닥 등나무 줄기가 뻗어있어 그것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등나무를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니까 코끼리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죠. 그래서 이제 살았다 생각을 하고 밑을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독룡(큰 코브라 독사)이 입을 벌리고 혀를 널름널름하면서 자기를 쳐다봅니다. 조금만 더 내려오라 물어 버릴 테니까. 그런데 어디선가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위를 쳐다보니까 등나무 줄기를 두 마리 쥐가(검고 하얀 두 마리 쥐가) 등나무 줄기를 갉아 먹고 있어. 자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고 체념을 하고 있는데, 그 얼굴에 무언가 뚝뚝 떨어져. 진한 액이. 그런데 자연스럽게 그 액체가 입으로 들어와. 맛을 보니까 기가 막히게 단 꿀이야. 꿀물이 뚝뚝 떨어진단 말이야. 등나무 줄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등나무가 흔들리잖아요. 그 등나무는 향일성이 있어서 밑으로 내려가지만, 또 해를 따라서 위로 올라간다고요. 일정하게 내려가다 유턴하죠. 그런데 가지에서 꿀벌이 집을 쳤어. 벌이 집을 쳐. 집을 쳐서 흔들리는 바람에 꿀이 뚝뚝 떨어져 입으로 들어온다고요. 맛을 보니까 이거 기가 막히게 달아. 그 달다는, 그 기가 막힌 꿀맛에 여러분! 요즘 하도 잘 사니까 ‘꿀’ 그거 별것 아니지만 옛날은 안 그랬습니다. 그 달콤한 맛에 취해가지고 그 사내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줄 모르고 ‘야! 달다달다’ 떨어지는 꿀맛을 계속 맛을 보고 있었다.
이것을 흑백이서화라고 합니다. 흰 쥐, 검은 쥐 두 쥐 이야기입니다. 안수정등이라고해요. 안수정등. 안수정등이라는 것은 우물벽으로 등나무줄기가 뻗어나가서 안수정등 이야기입니다. 우물 벽에서 자란 등나무가지. 안수정등이라고 합니다. 꼭 잊어버리지 마세요. 인생을 잘 비유했습니다. 인생이 이렇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여기 꿀은 오욕락이에요. 욕심, 오욕락 아시죠? 오욕락. 사람은 본능적으로 잠재되어있는 욕심이 다섯 가지가 있다고 그래요. 다 아시니까 설명을 안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욕심은 남녀의 정이라고 합니다. 남녀의 정. 그것보다도 더 근원적인 욕심은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입니다.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입니다.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 이런 오욕락으로 여러분들이(중생들이) 살아요. 오욕락으로 죽는다는 생각을 않습니다. 저 시내에 돌아다니는 사람은요 내가 언제 죽는데 어떻게 살까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 없어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 없어요. 다 그저 오욕락에 취해서 살죠. 그런데 어쩝니까? 이제 결국 흰 쥐, 검은 쥐는 등나무줄기를 다 갉아 먹을 것이고 먹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물 안으로 뚝 떨어지게 되겠죠? 그럼 독사에게 물려 죽을 것이고 아니면 지금 빠져나간다고 해도 살인코끼리가 자기를 덮칠 것이고 이러나 저러나 죽는 거죠. 죽는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고요.
여러분! 그래요. 여러분! 언제가 죽어요. 내일 죽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십년 후에 죽을 사람도 있을 거고 아마도 팔십․백년은 대부분 못 채울 거에요. 예외는 있겠죠. 다 죽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불자들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인생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점에서 여러분 깊이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지혜로운 삶이 될까?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지혜롭게 사시기 위해서, 큰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오늘도 현지사를 찾으신 거죠.
내가 여기서 확실히 말씀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만족, 행복, 진정한 평화, 혹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다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마음속으로 여러분이 쭉 공부해 들어가야 됩니다.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만족을 얻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깊이 들어가게 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그것을 아라한이라 했고, 보살이 되고, 붓다라 했어요. 물질 돈은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와 권력이 아무리 좋고, 그래서 고관대작 장관, 대통령이 된다하더라도 한계가 있어. 한계가 있는데, 무한한 행복은․ 무한한 만족은 마음속에 있어요.
그래서 열반적정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 적정경지에 들어갈려면 반드시 자기가 지은 업을 닦아야 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업을 닦아야 합니다. 금생에 와서 지은 죄업(죄), 또 전생 또 그 전생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죄, 이걸 닦아야 합니다. 이걸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 마찬가지로 금생에 와서 갚지 못한 빚과 은혜, 전생에 와서 갚지 못한 은혜와 빚, 다겁생을 데려오면서 내가 갚지 못한 은혜와 빚을 갚아야 됩니다. 이렇게 지은 죄업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갚지 못한 빚을 갚아야 하고, 앞으로는 죄업을 짓지 말아야 되고, 빚지는 생활을 살면 안 되고, 영원히 잘 살 수 있는 길로 가야 됩니다. 자 그렇게 됩니다. 그럴려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탐진치 번뇌를 전부 소멸해야 된답니다. 탐진치 번뇌를 다 뿌리치고 녹여버려야 합니다. 요것이 충분조건입니다. 탐진을 다 녹여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탐진을 소멸하는 데에서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옵니다. 그렇습니다. 탐진을 다 소멸하는 데에서, 그 적정경지에 들어가면 영원한 마음의 평화가 온다고요. 그래서 아라한이 되어서, 더욱 깊은 적멸의 세계로 들어가 보살과를 증하고, 다시 보살은 육도만행을 통해서 불과를 증하는 거예요. 그러면 실로 영겁을 미래제가 다하도록 영원히 잘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최고의 평화와 극락, 진락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죽지 않고 빛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대적광삼매를 지니고 있기에 붓다는 영원히 그 이상 환희로운 최고의 경지, 최고의 즐거운 상태에서 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여러분이 그런 지혜로운 삶의 길로 들어와야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그 길을 제시 하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적정상태로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가지 있지만 최고로 잘 살 수 있는 길은 칭명염불 최고로 잘 살 수 있는 첩경임을 알았고, 지금까지의 한국불교는 깨달음 다시 말하면 공을 체험 해 거기서 막행막식 하지 말고 두타행을 하면서 부처님께 나아가게 되면 정말로 잘 살 수 있는데 그 길로 안가서 스님이 자꾸 자꾸 그 분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고 진정한 삶의 길로 들어왔으면 하고 지난 3,4개월 동안 여러분이 인터넷에 들어가면 알다시피 공방을 계속 했습니다.
스님 말씀은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승복을 안했습니다. 이 공을 체험하는 것은 상당한 수행의 경지죠. 공을 체험한다면. 우리 신도분 중에서 어떤 분이 공을 체험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더 공부를 했더라면... 여기 와 계시지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양해를 드리면서
사랑하던, 그렇게도 따르고 사랑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한 줌의 재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너무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특별히 사랑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한 줌의 재로 돌아온 그 죽음을 보고 말합니다. 이런 속죄의 계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공을 채험하는거에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거에요. 지금까지는 거짓 아버지의 모습만을 보고 살았습니다. 속임을 당하면서. 아버지의 진면목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이제 그 분이 거기서 선지식을 만났더라면 올바르게 수행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쯤은 아라한 경계를 넘어서 보살의 경계로 가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그 분은 안 그랬어. 어디서 알았느냐? 여기 현지사의 대작불사에 그 분이 거금을 시주했습니다. 그런데 그 거금을 내놓을 때 팔 다리가 잘려가는 그 아픔을 경험 했답니다. 그 아픔이 없었어야지. 안 그럽니까? 왜 아픈 줄 압니까? 탐진 탐이라는 것은 욕심, 진이라는 것은 그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질이 나는 것, 탐진이 나와 더불어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아직 탐진을 털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자, 내 팔다리를 자르면 어떠지요. 아파서 못 자르는 것은 그 탐과 진이 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어요. 내 살이되고 뼈가되고 피가 되어 버렸어요. 그러니 탐진을 잘라 낼 수 있습니까? 안되죠. 자, 거금을 내놓을 수 없지. 그래서 공을 체험하면 반드시 두타행으로 나가야 됩니다. 이게 수행의 순서입니다. 부처님 말씀입니다.
두타행이라는 것은 저기 미얀마나 태국 같은 나라에서 그 기후 환경 조건이 참 두타행하기 좋습니다. 자 어떠한 삶을 두타행이라고 하느냐? 수행을 여러분은 모르실거예요. 내 책에도 두타행이라고 써놨는데 저 정글, 숲속․ 공동묘지 근처, 그 다음 독사 ․ 구렁이가 드글거리는 그런 곳, 전갈이 드글거리는 수풀지대, 호랑이 사자가 출몰하는 그런 위험한 지역에 토굴을 지어야 됩니다. 움막 하나만 딱 지어놓고 탁발행을 해야 합니다. 걸식 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수행하는 것을 두타행 수행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몸에 대한 착을 끊을 수 있습니다. 두타행은 탐․진을 털어 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법입니다. 그러니까 화두 타파가 됐단 말이에요. 공을 체험 했단 말이에요. 당연히 같은 표현입니다. 견성을 했단 말이에요. 이제는 반드시 두타행에 의해서 착을 떼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착이 안 떨어집니다. 그래서 떨어진 자리가 아라한 됩니다. 아라한이 되면 이제 이 몸에 대한 애착이 없어요. 이 몸에 대한 애착이 없으니 성욕이 있을 수 없고, 기타 모든 욕심, 명예․ 권력 따위 없습니다.
자, 그렇게 해야 되고. 그런데 여러분은 우선 공 체험도 못했는데 스님이 이런 얘기하는 것은 좀 맞지 않아. 이제 여러분 근기에 맞춥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귀의해야 돼요.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으면 불자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스님은 그걸 역설하죠.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없으면 불교가 아니라고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자가 아니고 불교도 아니라고요. 마음, 이것이 붓다라고 보는 주장은 심교이지 불교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붓다가 아니고 깨달음은 시작이죠. 붓다에 이르는 시작이죠. 그래서 스님이 지난 시간에 잠깐 말씀 했듯이 사과 씨는 사과하고 엄연히 다릅니다. 그렇죠? 사과 씨는 사과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적당한 토양에다 심고 적당하게 물을 주고 햇빛을 받고 또 그 주인이 잘 관리해주고 비료도 주고 잘 가꾸면 사과나무가 자라서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을 수 있는 거예요. 씨는 사과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과가 될 가능성(본성)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 마음을 깨달았다, 거기가 붓다다, 그게 아니고 시작입니다. 시작이니까 그때부터 정말 스님이 말한 그대로 이 종자가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비료도 주고, 적당한 바람과 햇볕도 쏘여주고, 가꾸어 가야합니다. 그래야 곧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참회해야 됩니다. 참회, 아까도 말씀했는데 잘못을 참회해야 돼. 참회도 진심으로 해야 돼. 진심으로 참회해야 돼. 진심으로 참회하면 다시는 안해야 되요. 그런데 ‘정말 참회합니다’ 해놓고, 한 닷새 또는 한 달 후에 저지른다면 그건 진정한 참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진정한 참회를 하시길 바래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 죄라는 것을 생각 안했기 때문에 '도대체 뭘 죄라고 하나'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정도 수준이면 참 곤란 합니다. 알겠죠? 뭐가 죄인지 알겠지요? 그러니까 죄 될 일은 안 해야 돼. 그래서 이런 말 합니다. 하루 죽 한 끼를 먹고 산다고 해도 절대로 남이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않는 것이에요. 이런 사람이 돼야 해요. 이거 어려워요. 속담에 ‘3일 굶으면 울(담장) 안 넘어가는 사람 없다’ 하지. 그런 사람이어도 안 되지. 죽어버려도 죄를 안 짓는 다는 것. 왜 그러냐? 죄를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와요. 과보가 1개로 오면 좋은데 5개로 와요.
자, 훔쳤다! 훔친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사기․ 횡령․ 절도․ 강도 많아요. 따라서 과보도 다 달라요. 아무리 저 사람이 밉고 미워도 저 사람 안 죽여야 되요. 절대로 저 사람(상대방) 생명 끊으면 안 돼요. 그런데 내가 많은 세월을 천도대재를 집전하면서 큰 부인이 작은 부인을, 작은 부인이 큰 부인을 질투 때문에 죽이는 수가 가끔 있더라고. 그렇게 되면 과보가 오더라고. 과보가 와. 다섯 가지로 옵니다. 여러분 사중죄를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다섯 가지가 와요. 탐진, 절도(투도), 강도, 도둑, 사음, 사중죄라고 합니다. 이 사중죄를 범하면 각기 사중죄를 범하면 꼭 과보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 기다리고 있고 짐승세계에 가서 태어날 원인이 되고요. 또 사람으로 오더라도 명이 짧거나 자식이 없거나 하체를 쓰지 못하거나 또 살아생전에도 징역을 가야 되고요. 자, 징역가야 되고, 지옥가야 되고, 짐승되야 되고 사람으로 오더라도 그에 맞는 상응한 과보를 받아야 되고 그래요. 또 그 다음 다섯 번째는 명예가 실추되고.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이 네 가지 죄는 우리가 지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지어서는 안 돼.
그래서 참회를 할려면 진심으로 해야 한다 말이에요. 삼천배가 능사가 아니에요. 절대 부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108참회를 하더라도, 108참회도 여러분은 이미 몸이 늙으셨으니까 좀 무리여도 여러분 나이만큼 60을 먹었으면 60번, 좀 그렇게 어려우면 단 10번이라도 부처님 앞에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지난날을 참회하면서 단 10번을 하더라도 진짜로 하라고요. 진짜로. 삼천배 하면은요 그게 참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보세요. 뒤에서 한번 봐. 저게 참회의 절인가? 이건 운동이지. 이건 참회가 아닙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108참회를 할려면 20분정도로 잡지 말고 1시간 정도 잡어. 그래 가지고 한번 씩 할 때 다른 사람이 볼 때 ‘참 저 사람 진짜 참회를 하는구나’기가 나오니까 알아. 그렇게 해야 돼. 그렇게 해서 재범하지 않도록,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고 새기고 새겨야 진짜 참회요.
현지사는 정말 특별합니다. 이 현지사는 효도를 주장합니다. 효도, 현지사는 효도를 주장합니다. 부모가 살아계시면 무조건 부모님의 뜻을 따라줘야 되요. 정말로 부모님 위안도 되고. 우리 부모님께서 나를 낳아 길러주셨어. 그 은혜는 막중해. 부모은중경도 가끔 봐. 불설부모은중경이 있어. 중국에서 창출 했다지만 부처님 사상에 딱 맞아. 은중경을 가끔 보면서 부모님한테 정말 잘해드리라고. 돌아가셨으면 더 잘해드리라고. 돌아가신 부모님께 어떻게 잘 해주느냐? 천도 밖에 없어. 영혼을 구제해주는 거예요. 진짜 생명체를 좋은 세상에 나도록 해주는 거죠. 영혼을 구제해줘야 돼. 그런데 그 영혼 구제라는 것이 어려워. 천도재도 어려운 것이요. 다 절마다 한다지만 안돼. 내가 확실히 경험해 보니까 안돼. 그것은 큰 법력이 있어야 돼. 더 큰 법력이 작용이 되는 천도재가 진짜 천도재야. 그것은 항상 스님이 말씀하지만 지금 그 말을 이해 못하겠지만, 부처님이 주관한다는 그런 천도재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 부처님이 주관하시느냐? 그 제자가 불과를 증할 때, 그 당대에 그 불과를 증할 제자가 사람 몸을 받아오게 되면 우리 부처님은 그 제자한테 오십니다. 이건 스님이 가끔 말씀드리는 거예요.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제자가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과 그리고 끌어주는 힘 마장을 막아주고, 그 어려운 관문을 다 통과해서 완벽히 붓다가 될 때까지 그 부처님은 그 제자를 떠나지 않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분명한 사실이고, 이것은 진실입니다. 그 제자가, 그 제자가 집전하는 천도재는 부처님이 웬만하면 4번만으로, 지옥․ 명부에 들어가지 못한 무주고혼이 하늘, 아래 하늘은 가느니라. 전부 그렇게 해주고 있습니다.
4번, 목련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지요. 그 목련의 어머니를 4번 천도해드려서 도리천이라는 하늘에 나게 해줬단 말이오. 4번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망자 돌아가신 그 망자 영가에게 복이 없어서 그렇게 죄 업을 짓고 복이 없어서 나쁜 갈래로 떨어지잖아요. 복을 지어 줘야 되요. 그래서 여기서는 꼭 부처님에 대한 공양을 올리잖아요. 공양을 올려줍니다. 이 복을 가지고 큰스님이 발원해서 올려줍니다. 요러한 천도재가 아니면 천도가 안 됩니다. 사기詐欺죠. 법력이 없으면 안해야죠. 진짜 천도재를 해서 효를 다 하세요.
그 다음 꼭 지킬 수 있는 계율은 지켜야 됩니다. 여러 신도 분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 있지요. 5계 지켜야 됩니다. 5계를 지켜야 되요.
그리고 스님들은 또 10계, 그리고 비구계를 지켜야 되고, 그러면서 보살도를 해야 되는 것이고, 보살도 이타행,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중생을 정법으로 끄는, 결국에는 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보살도인데 그러한 보살도, 팀장 활동을 정말 잘 해주라고.
그 다음 시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진정한 부처님 회상에 시주하면 다음 생에 정법을 만나고 큰 스님을 만납니다. 천도재는 잘 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잘 살아. 여생이 잘 살고(운명이 바뀌어 지니까), 다음생에 잘 살고, 그 다음생에 잘 살아집니다. 천도재는요. 그런데 시주는 부처님 회상을 위해서 아낌없이 시주하시는 분은 반드시 다음생에 정법을 만나고 큰스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선근공덕이 된다고 합니다. 선근공덕.
이렇게 하면서 경전을 읽고 다라니를 하고 염불을 해야 합니다. 이걸 칭명염불이라고 합니다. 칭명염불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서는 석가모니불을 권합니다. 석가모니불을 권하는 것은 부처님 중에서 가장 먼저 불과를 증했고, 그래서 삼계의 법왕이고,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하기 때문에 우리 석가모니불을 염하도록 한 거예요. 이것은 경전적으로도《법화경》에 확실히 근거하고, <법화팔품>에도 주장하고, 그래서 현지사의 칭명염불법은 현지사의 종지는 저 염불종(정토종)이라고도 하죠. 연종이라고도 하죠. 연종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이렇게 살으십시요 하는 대로 여러분이 살면 여러분은 이제 속가생활을 하면서도 충분히 윤회를 벗어날 수 있어요. 이대로만 살면 윤회를 전부 벗어날 수 있어요. 죽을 때 똥․오줌 안 누고 편히 잠자듯 갑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금강경》읽고 칭명염불하면 그렇게 된다고. 《금강경》에다가 부처님 다라니를 또 하지, 그렇게 석가모니불을 염하지, 하루에 30분 정도씩을 최소한 한 시간 정도만 할애 해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만. 그러면 왜 석가모니불을 칭명을 하라는 말이냐? 업장을, 지은 업을, 또 탐진의 뿌리를, 요것을 묶어서 업장이라고 합니다. 업장을 소멸해주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현지사에 와서, 또 집에서 정말 공부답게 한 시간 정도씩 하고, 발원하고, 죽을 때까지 그러면 여러분은요 상당한 업장이 소멸될 것입니다. 그래서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공부가 많이 되면요 끄달림, 집착, 머뭄이 없어집니다. 요것은 증거입니다. 탐욕심이 적어지고요, 욕심 때문에 끄달리고 집착하고 머무르는데 욕심이 적어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화신 부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의 업장을 자꾸 씻어주신단 말이에요. 업장이 씻어지게 되면 아까 업장은 지은 죄 그리고 탐진, 그리고 빚 전생에 지은 빚이 업장을 씻어주시기 때문에 공부를 잘한 사람은 끄달림․ 집착․ 머뭄이 점점 없어진단 말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죽으면 거의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집니다. 무주고혼 되고요. 그런데 이렇게만 살면 여러분은 절대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그리고 높은 하늘에 나고, 아니면 윤회를 절대 벗어납니다. 그래서 스님이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자, 칭명염불을 할 때 마실가는 놈이 ‘금강반야바라밀 금강반야바라밀’ 이렇게 외우도록, 마실 못가도록 하라고 했죠? 그것이 다 되면 석굴암 불상 여기 미간에서 빛이 나가는걸 보십시요. 이걸 미간백호상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빛이 나갑니다. 부처님은요. 여러 군데에서 빛이 나가는데 여기서 나가는 이 빛은 지혜의 빛입니다. 이래서 여기서 빛이 나가는 것을 관해라. ‘금강반야바라밀’을 잘하는 수준이면 입으로는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고 ‘금강반야바라밀 금강반야바라밀’ 잘되는 사람이라면 이제 여기 석굴암 부처님상 미간에서 빛이 나가는 것을 관하는데, 그 공부가 되는 사람은 여러분 앞에 부처님이 현신 할 수 있습니다. 삼매에 들어갑니다. 이제 부처님을 볼 수 있는데, 그 부처님은 화신이지만은 32상 80종호를 갖춘 부처님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정도 가면 아라한을 넘어가는 수준이기 때문에 아주 좋습니다. 이 공부가요. 자기 업장을 씻어서 좋고, 우리 집에 나쁜 기도 다 뽑아가셔서 좋고, 죽을 때 편히 죽으니 좋고,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아서 좋고, 전쟁이나 질병이 이 세상을 다 뒤덮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삽니다. 반드시 삽니다. 살게끔 해줍니다. 계시가 오거든요. 그래서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언젠가 내가 라디오, 그 라디오를 들어보니 어떤 불쌍한 아낙네가 자기의 지나온 길을 쭉 이야기 하는데 들어보니까 참 불쌍하고 대견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15만원인가를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돈을 받고 살아요. 그 여자를 왜 국가에서 보조해 주느냐? 20대 후반에 철로 사고를 당해서 두 다리가 절단 나 버렸어요. 그래서 두 다리를 잃고 사는 여자, 내가 들을 때는 그 사람이 40~50대가 됐나봐요. 두 다리를 잃고 사는데 나라에서 15만원씩, 처음에는 5만원씩 주었다고 그래요. 15만원씩 준 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자기는 행복하다. 왜 행복하냐? 내가 두 다리가 안 잘렸으면 난 그 동안 20년 동안 이러저러한 많은 죄를 지었을 것이다. 나는 두 다리가 없기 때문에 죄를 그렇게 지은 게 없어서 그렇게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고요.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 좋은 이야기구나!
내가 아는 어느 간병인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간병해서 받는 수입가지고 사는 간병인, 그 간병인이 너무 너무 착해요. 내가 그런 착한 여자를 봤어요. 내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 주위에 어떤 분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가지고 그 여인의 도움으로 상당히 쾌유가 됐습니다. 그 간병인의 생을 간단히 말해드리겠습니다. 그 간병인은요. 그렇게 착하게 환자에 뜻에 맞게 잘 간병 해줘요. 그러니까 한번 정해진 환자가 놓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병이 나았지만 하도 잘해주니까 그저 퇴원할 때까지 자기를 간병해주길 원해요. 그리고 그 후 몇 년을 못 만났는데 들리는 소문에 자기 남편이 퇴직하면서 퇴직금을 많이 받아 증권인가 하다가 다 날렸어요. 남편이 거기서 끝냈으면 좋은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거의 병원에 와서 생활하니까 몰랐는데 하나밖에 없는 집을 증권에 쏟았어요. 그것도 망했어요. 이제 집도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깨끗이 출가할까를 생각했어요. 나도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한테는 아들 하나 딸 두 명이 있었어요. 그 분들이 30대인데 모두 결혼을 안했어요. 그러니까 차마 출가를 못해. 그런데 만시지탄 늦게나마 남편이 정신을 차렸어요. 취직을 했어요. 아파트 수위로 들어갔는데 수입이 너무 적어가지고 남편이 다 쓰나 봐요. 별로 도움이 안 돼. 다만 이 여자가 식물인간이 된 50대 여인을 간병하고 있었는데 그 아드님 따님한테 양해를 구했어 차라리 우리 집에 모셔서 간병해도 좋겠습니까? 아! 그러라고. 그 환자가 식물인간인데 가끔 눈을 뜬대. 자기를 보는 그 눈빛이 너무 고맙다고 하는 것 같대요. 그래서 지금 3년째 한 달에 200만원씩 받아 100만원인가를 저금을, 그것을 3년인가를 해서 이제는 전세 3000만원에 20만원 주는 집으로 가서 간병 일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거는요. 여러분, 이렇게 말했어요. 보살님! 환자를 이제 바꾸시오. 환자를 딴 환자로 바꾸시오. 왜 스님이 이 말을 했겠습니까? 여러분이 내면세계의 이치를 상당히 안다면 스님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을 거예요. 왜 스님이 그런 말을 했겠소? 그 사람은요 얼마 안 있으면 죽거든요. 그 식물인간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기관사 입니다. 그래서 기관사 월급을 400만원인가 받는데 200만원은 어머니 간병비로 내놔. 효자죠? 근데 한 아들은 도망가 버렸어. 어머니 간병 비용 대다가 별 수 없어서 도망 가버렸어. 둘째아들인가. 그건 그렇고, 그 어머니는 죽을 것 아닙니까?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명부에 못 들어가면 어쩌죠? 이 분한테 옵니다. 여러분이 무지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했죠? 무지하기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이 여인은 순박하고 참 좋습니다. 너무 착해. 생김새부터 참 인자한 여자야. 그래서 스님이 가끔 전화한다고. ‘바꾸시오 바꾸시오’ 이런 말을 했어요. 그 착한 여자가 환자를 바꿔야 되는데 200만원씩 들어오니까. 그 환자는 자기만을 요구해. 지금 그래서 내가 말 한대로 바꾸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 환자는 죽으면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그렇게 똥오줌 싸고 죽으면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자기 자식들은 나몰라라하고 도망가 버리니, 자기 자식한테 안갑니다. 깨끗하게 씻겨주고 닦아주고 먹여주고 하는 이 간병인한테 오지요. 그러면 이 간병인은 중풍 아니면 식물이간이 되는데, 여러분!
인과因果는 이렇습니다.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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