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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은 저격수의 전과기록만 올려줄 뿐이었다. 4명의 영국군 저격수들은 즉시 독일군 표적의 사거리에 대해 짧은 토의를 벌였다. 하지만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자 표적이 쉽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명은 사거리를 250~300m 사이라고 계산했고, 다른 두 명은 350m에 더 가깝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견 충돌은 기발하게도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됐다. 즉, 각자가 원하는 거리를 쏘는 것. 3명의 저격수가 각각 조준경을 250·300·350으로 맞췄고, 나머지 저격수는 예상 목표물을 향해 쌍안경을 고정시켰다. “탕!” 세 명의 스나이퍼가 동시에 사격을 가하자, 그중 어느 한 발에 명중된 독일 병사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것은 그야말로 실수가 없는 “막고 푼다”는 식의 완벽한 장거리 저격술이었다.
연합군 진지에서 가장 좌측에 배치된 영국특공대 부사관인 스피어먼 (Spearman)은 동료 특공대원들과 함께 작전개시로부터 무려 83일 동안 적의 활동을 탐지했다. 저격뿐만 아니라 적 진지 정찰임무를 띤 그는 단독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의지력과 독립심을 가졌고,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사나이였다.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는 먼 거리에서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고 독일군의 사격을 유도함으로써, 위치를 찾아내는 다소 위험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노련한 행동파 스피어먼은 보다 근거리에서 적을 쏘기 위해 관목지대를 침투해 살금살금 기어 다니며 독일군을 관찰했다. 이 무렵 미국군은 동맹국인 영국군보다 저격술에 대한 준비가 다소 미흡했다.
과거 유럽전선에서 적의 저격술 때문에 고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고위 사령부는 체계적인 저격술을 강조하지 않았다.미국의 민간에서 널리 알려진 수준 높은 사격술이 그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지만 군대에서는 체계적인 훈련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미 육군은 여전히 신뢰성 있는 0.30인치 스프링필드 소총을 대량으로 사용했고, 일부 저격수들은 품질이 개량된 스프링필드 M1903A4 베리안트 (Variant) 소총을 갖추고 있었다.
3배율 미만의 레드필드(Redfield)와 위버(Weaver) 조준경을 장착한 스프링필드는 비록 전장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강도가 부족했지만 대체로 저격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당시 미 육군의 대부분은 반자동식 0.30인치 개런드(Garand) M1 소총으로 무장했다. 그중에는 저격수용으로 M1C와 M1D 두 가지 소총이 제작됐는데, 이 총들의 주요 차이는 조준경 부착방식이었다.
개런드 소총은 후일 미군의 지원으로 한국군의 기본화기로 편제됐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초기에 사용했다. 유명한 개런드 M1 소총은 망원 조준경이 장착되기 때문에 가죽 받침대가 개머리판에 고정됐고 이것은 저격수의 조준을 편하게 해 주면서 긴장 완화와 개머리판 접촉을 도와줬다.
그리고 탄약 크립을 총 몸통 속에 삽입해 반자동 사격을 할 수 있고, 깔때기 모양의 차광 장치도 총구에 부착됐다.이러한 신형무기를 갖고 미 제41기갑보병 연대 하인즈(S. Hinds) 대령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성공적으로 저격수를 양성했다. 미군들은 아프리카 튀니지에 도착한 후 5주간의 저격수 과정을 통해 수 개의 저격팀을 육성했고, 이들은 독일군과 효과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연합군은 독일군 저격수의 위협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했다. 동부전선의 드넓은 평야, 이탈리아의 산악지대, 또 노르망디의 관목지대나 아프리카의 사막 등 세계대전의 전장에서는 어디서든지 저격수들의 숨막히는 대결이 벌어졌다. 때때로 연합군 병사들은 독일군 스나이퍼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리며 공포심과 존경심을 갖기도 했다.
출처 ; 양대규 전사연구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