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제물론: 만물은 동등하다
11-13 “예컨대 내가 자네와 논쟁하는데,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한다면, 과연 자네가 옳고 내가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옳고 자네는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중 어느 한 편이 옳으면 그 중 다른 한 편은 옳지 않은가? 아니면 둘 다 옳거나 둘 다 옳지 않은가?
14 나와 자네 모두 서로를 알 수 없다면, 남들은 더욱 알 수 없으니 나는 누구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만약 자네와 의견이 같은 사람을 데려와 바로잡는다면, 이미 자네와 의견이 같으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15 만약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을 데려와 바로잡는다면, 이미 내 의견과 같으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만약 나와 자네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데려와 바로잡는다면, 이미 나와 자네 모두와 의견이 다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와 자네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 모두 서로를 알 수 없으니, 또 누구를 기다리겠는가?1)
16 시비를 따지며 다른 사람을 서로 기다리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을 서로 기다리지 않는 것과 같으니, 각자 자연의 몫으로 스스로를 조화(평화)롭게 하고 끝없는 변화에 맡겨야 한다. 그러면 각자 타고난 본성을 다하여 생사를 잊을 수 있다.2)
17 그렇다면 자연의 몫으로 스스로를 조화(평화)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옳다고 하기도 하고 옳지 않다고 하기도 하며,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도 한다. 옳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은 이미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니 또한 따져서 밝힐 수 없다. 그렇다고 하는 것이 과연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은 이미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르니 또한 따져서 밝힐 수 없다.
18 생사를 잊고 시비의 생각을 잊으면, 마음이 경계가 없음에서 한껏 떨치게 된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마음의 경계가 없음에 머물게 해야 한다.’3)”
주1) 장오자의 말이 계속된다. 이 단락은 시비 논쟁은 시비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논증하는 내용이다. 논증하기 전에 왜 하필 시비 논쟁이 논증의 대상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를 향해 나아가면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은 생사의 문제를 끌어안으려 한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이해관계가 행동을 지배하는 원리가 된다. 따라서 마음의 안쪽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은 마음을 하나로 하려는 큰 지혜를 추구하지만,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마음을 나누고 대립시키는 작은 지식에 매달린다.
전자는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지만, 후자는 세상을 너와 나로 나누어 타자를 배제시키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므로 외부에 의존하여 자기의 분열된 마음을 보증받으려는 사람은 시비 논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부에 의존하여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사람은 온통 시비 논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요컨대 이 단락이 시비 논쟁을 주제로 한 까닭은 보통사람의 마음을 진단하기 위해서다.
주2)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이러저러한 관계로 각자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안달하지만, 어느 누구도 설득되지 않는다. 그와 같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나의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을 타인의 생각으로 채우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수많은 색깔의 감정을 공유하며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결국 우리 각자는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세상을 향해 독백하며 자신의 길을 혼자 갈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판단을 그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과 동일시하려는 우리들의 무의식적 관행 때문일 것이다.(17a)
따라서 우리들이 시비 논쟁을 일으킬 때 “자기와 타자라는 주체를 설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본래 이런 주체의 성립은 존재하지 않는다[夫彼我妄執, 是非無主].”는 곽상의 설명처럼 주체 없는 시비 논쟁이 된다면, 각자가 자신의 몫으로 자신의 판단을 하면 싸울 일이 없게 된다.
그러나 장자의 궁극적 목표는 시비 논쟁을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작은 지식에 얽매어 있는 시비 논쟁을 종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지식을 되돌려 큰 지식인 ‘깨달음’을 얻고 대자유인이 되는 데 있다. 자연처럼 나와 너를 의식의 주체로서 구분하지 않고 사물의 차이(자연의 몫)로 여겨 바라보면, 자연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듯 내 마음이 평화롭게 된다는 말이다.
외부를 향한 시비의 종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로움이 중요하다. 또 이런 시비 판단의 마음을 갖지 않은 채 외부 상황의 변화에 마음을 맡기면, 마침내 타고난 본성을 다하여 생사를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생사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삶은 결코 정신적 자유를 맛볼 수 없다.(17b)
주3) 장오자가 긴 설명 끝에 내린 최종 결론은 18절로 요약된다.
먼저 ‘망년망의(忘年忘義)’를 살펴보자. ‘망년’은 이미 밝혔듯이 생사의식을 버리는 것(窮年)을 말한다. ‘망의’는 말 그대로 ‘뜻(생각)을 잊는 것’이지만, 곽상의 해석처럼 ‘시비를 잊는 것’이고 나아가 대상적 앎으로 이루어진 ‘작은 지식[小知]에 대한 추구’를 마음의 내부로 향하도록 하는 ‘전환’을 뜻한다.
따라서 ‘망년망의’는 마음을 쪼개어 대상적 지식을 좇는 앎의 방향을 마음 내부로 돌리고, 마침내 마음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생사의식을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마음 안의 경계 허물기)과 생사의식의 변증적 상호작용이 깊이를 더해 가면, 마침내 분리된 마음이 마음의 허상임을 아는 동시에 마음의 무한성과 본래적 완전성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 정신의 상태를 장자는 ‘경계가 없음[無竟]’이라 이름했다.
자신의 마음이 끝이 없고 갈래가 없는 무제약적 공간임을 절절하게 체험하면, 마음은 이 무한한 공간으로 뛰쳐나갈 비축된 에너지를 개방하게 된다. 그것이 ‘(마음이) 경계가 없는 무한한 정신적 공간에서 한껏 떨치는 것[振於無竟]’이다.
그러나 자연에 있는 온갖 존재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결이 있고, 자기답게 만드는 여러 가지 꼴이 있으며, 서로 어울리는 리듬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내재적 에너지가 왕성하고 아우리 움직임이 무제약적이라 하더라도, 외부와 상호작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고유한 결[理]과 꼴[形], 그리고 움직임의 리듬[律]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경계선을 허물고 외부를 향해 자신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그것은 자유로운 정신 에너지의 무제약적 활동을 위한 선행작업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완전한 개방을 장자는 사물의 변화에 ‘맡기는 마음’이라고 한다. 사물에 자신의 뜻을 투영하는 일 자체가 자신의 마음을 가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구속하는 의식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스스로를 마음의 경계가 없음에 머물게 함[寓諸無竟]’이다. 순간순간 솟아나는 한 톨의 의식이라도 그 의식 자체에 매몰될 가능성이 있으면, 스스로를 경계가 없는 마음에 ‘머물게 하는[寓]’ 것이야말로 정신적 자유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장자강의> 254~267쪽, 이효걸 지음, 홍익출판사, 2013)
<莊子> <內篇>
齊物論
11-13 “既使我與若辯矣, 若勝我, 我不若勝, 若果是也? 我果非也邪? 我勝若, 若不吾勝, 我果是也? 而果非也邪? 其或是也, 其或非也邪? 其俱是也, 其俱非也邪?
14 我與若不能相知也, 則人固受其黮闇。 吾誰使正之? 使同乎若者正之, 既與若同矣, 惡能正之!
15 使同乎我者正之, 既同乎我矣, 惡能正之! 使異乎我與若者正之, 既異乎我與若矣, 惡能正之! 使同乎我與若者正之, 既同乎我與若矣, 惡能正之! 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 而待彼也邪?
16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17 謂和之以天倪? 曰: ‘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
18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
** 黮(탐): 어둡다; (사리에) 어둡다; 검다(담)
** 闇(암): 어둡다, 희미하다; 어둡게 하다
** 化聲(화성): (상대를) 설득시키고자 하는 목소리, 시비를 따지는 논쟁[是非之辯]<곽상>
** 倪(예): 어린이; 끝; 흘겨보다; <여기서는 ‘몫[分]’의 뜻임<곽상>>
** 因(인): 맡기다(任)
** 曼(만): 끌다; 길다; 아름답다
** 衍(연): 넘치다; 흐르다; 순행하다
** 曼衍(만연): 변화
** 窮年(궁년): 타고난 수명을 마치다<여기선 ‘생사의식을 떨쳐 버리다’ 즉 ‘(타고난 본성을 다하여) 생사를 잊다[忘年]’의 뜻임<곽상>>
** 忘年(망년): 나이(의 차이)를 잊다<여기선 ‘생사를 하나로 여긴다’는 뜻임>
** 忘義(망의): 뜻(생각)을 잊다<여기선 ‘시비를 하나로 거둔다’는 뜻임>
** 無竟(무경): 경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