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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바울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보여 준 ‘신자들이 성전’이라는 개념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비일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교회 지도자를 농부로, 교회를 밭으로 묘사하는데 이어 교회를 건축가나 건설업자의 작품으로도 묘사함으로써 두 이미지를 결합하는 독특성을 보여준다. 비일은 이러한 농사 은유와 건축 은유의 평행구조가 쓰이게 된 배경에 대해 논한다. 일부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울이 구약성경과 초기 유대교 저술가들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동산-성전”의 주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두 이미지를 연결시키도록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발견되는 “동산”과 “성전”의 긴밀한 관계는 바울은 물론 베드로에게서도 나타난다. 아래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고린도전서 3장
제7장의 첫째 단락에서는 교회의 지도자가 그 구성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다룰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두 개의 그림을 사용한다. 첫 번째 그림(고전 3:5-9a)에서 바울은 교회 지도자를 밭에서 일하는 농부로, 교회를 밭으로 묘사한다. 지도자가 노력한 결과로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따라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이나 아볼로 같은 특정 지도자에게 극단적인 충성심을 바치는 분파를 교회 안에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충성심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두 번째 그림(9b-15절)에는 기초 공사 후 건물을 짓는 건축가와 건설업자가 일꾼으로 나온다. “건물”(building; 역자 주-개역개정은 “집”으로 번역함)은 건축가나 건설업자의 “작품”인 교회이고, 그들이 건물을 지어야 할 기초는 그리스도다.
이어서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분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 곳이라고 말한다(고전 3:16; 고전 3:17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신자들이 성전인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3:16) 및 그리스도 자신(3:23)과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고린도서에서는 그리스도 자신과의 동일시가 분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성전의 주제가 앞 문맥에서 예고되었음은 충분히 분별된다.
동산-성전으로서의 교회?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라고 말한다(고전 3:6; 3:7도 마찬가지).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교회를 세우는 자와 교회를 목양하는 자)는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3:8). 이들이 “상”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밭에서 그분을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신실한 일꾼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또는 포도원)이다”(3:9a).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이 일구신 밭/포도원”으로 칭한 후, 갑자기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건물”이라고 말한다(3:9b).
이것은 바울에게서 발견되는 낯설고 갑작스런 은유적 변화 중 하나일까? “일구어진 밭”은 “건물”과 어떻게 관련되는 것일까?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를 면밀히 분석해보면 바울은 포괄적인 “건물”이 아니라 “건물”로서의 성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성전을 “일구어진 밭”이나 “포도원”으로 칭하는 농업 은유로부터의 방향 전환은 구약성경과 복음서에 관한 앞의 연구에 비추어볼 때 자연스럽다고 간주된다. 앞의 연구에서 우리는 에덴동산, 이스라엘의 동산과도 같은 약속의 땅, 동산 같은 땅에서 장차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회복 등이 성전과 동일시되거나 연결된다는 점을 발견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일구어진 밭”을 성전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다음에 오는 묘사와 분명하게 동일시한다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발견되는 “동산”과 “성전”의 긴밀한 관계가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동일한 관련성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의미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관련어야말로 그것이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건 간에, 고린도전서 3장에 있는 동일 이미지들의 결합에 대해 지금까지 제시된 어떤 설명보다도 나은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3:10-15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백성을 성전에 비교한다는 사실은 그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살펴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울은 그곳의 “터를 닦아두었는데···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으며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기도” 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심판 날의 불이 각 건축자가 세운 작품의 품질을 드러낼 것이다. 값비싼 돌은 소멸되지 않고 남겠지만 “나무와 풀과 짚”은 “불에 탈” 것이다.
성경 안에서 건축물의 “기초”가 놓이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을 그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을 묘사하는 유일한 다른 텍스트는 솔로몬 성전에 관해서다. “이에 왕이 명령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성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왕상 5:17), “그 내소의 안은··· 정금으로 입혔고···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왕상 6:20-21). 또한 솔로몬은 제단(왕상 6:20)과 법궤 주변의 그룹들(왕상 6:28), 성전 마루(왕상 6:30)와 성전 문짝에 새겨진 것들(왕상 6:35; 대하 3-4장도 보라)을 금으로 입혔다. 성전 전체의 건축을 위해 자그마치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가 “준비되었다”(대상 22:14; 대상 22:16; 29:2-7도 마찬가지). 역대상 29:1-7은 “금···은···보석”(2-7절) 등이 성전의 모든 다양한 부분과 가구와 기구들에 사용되었음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바울은 역대상 29장의 두 절을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역대상 29:2(특히 70인경) | 고린도전서 3:12 |
|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보석과···.”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바울은 자신을 건물의 터를 닦는 “지혜로운 건축자”(sophos architektōn)로 칭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성막 건축을 돕던 자들에게 적용된 동일한 단어 용례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35:31-32은 숙련된 성막 건축자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sophias]의 영으로 충만하여···금과 은의 모양을 만들기 위한 건축사[architektonias]의 모든 일들과··· 돌로 하는 일들에 능한 건축자가 되도록[architektonein]···.”
또한 솔로몬 성전이 고린도 성도들의 새 성전과 마찬가지로 귀금속뿐만 아니라 동산 형상의 물품, 즉 나무에 새긴 “박과 핀 꽃”(왕상 6:18), “종려와 핀 꽃 형상”(왕상 6:29, 32[두 번 언급됨]), 출입구 두 기둥의 “머리 주변에 줄을 지어 만들어진 석류 이백 개”(왕상 7:18-20[“석류”가 두 번 언급됨])로 가득 찬 곳이었음을 기억하라.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다(왕상 7:22). 또한 안뜰의 청동 바다에는 “가장자리 아래로 돌아가며” “백합화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두 줄의 “박”이 있었으며(왕상 7:24-26), 두 기둥머리 주변에는 “사백 개의 석류”가 새겨져 있었다(왕상 7:42). 꽃이 핀 나무 형상으로 만들어진 열 개의 등잔대(왕상 7:49-50)는 작은 숲과 비슷하게 생겼다. 앞서 우리는 동산 형상에 대한 설명의 목적이, 에덴동산의 태곳적 성소를 반영하는 것이었음을 살핀 바 있다. 이스라엘의 성전 안에 있는 귀금속과 식물학적 묘사들의 결합은 바울로 하여금 “일구어진 밭/포도원” 이미지로부터 성전 이미지로 빠르게 이동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바울은 새 성전의 ‘터’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처음 믿었을 때 그들 중에 이 터를 “닦았으며”, 아볼로와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회중을 가르치고 목양함으로써 ‘그 위에 세우는’ 일을 했다. 예수의 구속 사역을 통해 이해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귀금속을 가지고서 “그 터 위에 세우는” 일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믿음 안에서 “세상의 지혜”로 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전 1:18-21; 2:1, 4-5; 3:18-23). 도리어 그것은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로 그들을 가르치고, 이런 성경 텍스트들이 어떻게 새로운 신앙 공동체와 관련되는지를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고전 10:11; 롬 15:4-13). 이런 가르침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구약성경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비추어보면서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서는 안 되었다”(고전 4:6).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금과 은”에 비교한다. 지상의 일용품 중에서 가장 귀한 것들이 하나님의 지혜가 가지는 가치보다 못하다는 것이다(시 119:72; 잠 3:14; 8:10; 16:16). 온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항구적으로 참되며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사 40:6-8). 믿음으로 확실하게 구원을 얻고 그 믿음 안에서 세움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며, 그분의 성전에 항구적으로 속하게 된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1:23-2:7은 이렇게 말한다.
²³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²⁴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²⁵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²:¹그러므로···
²···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⁴···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⁵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⁷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이런 이유로 바울은 베드로처럼 자신의 양 무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로 세우는 신실한 목회자가 신도들을 하나님의 성전—그리스도의 터에 확고하게 세워진—에 속하게 만들리라고 말한다. 베드로와 바울의 텍스트는 시편 92:12-15과 놀랍게 유사하다. 시편의 이 텍스트는 성전을 동산과 동일시하며, 신자들을 바위처럼 견고한 터 위에 “심겨” 자라는 나무로 이해한다.
¹²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리로다
¹³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¹⁴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¹⁵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이 노래는 성도들이 동산과도 같은 성전으로서 바위 위에 머물러 있다는 개념이 구약성경으로부터 비롯되며, 따라서 고린도전서 3장의 유사한 그림이 돌출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농사 은유와 건축 은유 사이의 이런 대략적인 평행 관계가 에덴과 동산에 관한 이 책의 대주제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이 평행 관계는 왜 “성전” 묘사가 고린도전서 3:9b-17의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의 마음속에 떠올랐는지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바울은 아마도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초기 유대교 저술가들에 의해서도 발전된 이 주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이런 이유로 사도는 서로 분명히 별개인 두 이미지를 연결시키도록 자극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갑작스런 장면 전환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역,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29-336.

첫댓글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를 농사와 건축이라는 서로 다른 은유로 묘사한 것은 구약성경과 유대교 전통에 흐르는 동산과 성전의 긴밀한 연관성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전개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귀금속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 형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처럼 성경에서 동산과 성전은 늘 함께 연결되어 나타나며 이는 바울이 두 이미지를 결합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을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터 위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세우는 신실한 목회 사역은 결국 그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에 확고히 속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과 견고한 성전을 짓는 건축자의 마음이 결국 영혼을 돌보는 하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구약의 에덴동산과 솔로몬 성전의 이미지를 통해 교회의 참된 가치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참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운 동역자로서 복음의 터 위에 동산과 같은 거룩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게 하소서. 아멘!
아멘!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를 밭과 건물로 교차하여 묘사한 것은 돌출적인 변화가 아니라 구약 전반에 흐르는 동산과 성전의 긴밀한 맥락을 반영한 것입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기둥과 기구들이 수많은 꽃과 나무 형상으로 가득했던 전통은 바울이 농사 은유에서 성전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됩니다.
출애굽기 성막 건축가들의 지혜를 이어받은 바울은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가 곧 거룩한 성전임을 논증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참된 역할은 인간의 지혜를 배제하고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입니다.
바위 같은 터 위에 심겨 성전 뜰 안에서 번성하는 나무를 노래한 시편과 베드로의 고백처럼 신자들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신령한 집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교회를 밭과 성전으로 바라보며 영혼을 심고 세워가는 목양의 신비가 참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구약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 그리고 신약의 교회가 하나의 거룩한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귀한 통찰입니다.
세상의 헛된 지혜를 좇지 않고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권면이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터 위에서 말씀으로 함께 자라나 영원한 성전으로 완성되어 갈 우리 교회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은혜로운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이 글은 고린도전서 3장의 농사 은유와 건축 은유가 구약의 '동산-성전' 맥락에서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는지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솔로몬 성전의 식물 형상과 시편의 배경을 통해 바울의 독특한 서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오직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세우고 싶은 모든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오직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뿌리를 내려 주님의 거룩한 동산이자 성전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소서.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동역자로서 복음의 터 위에 신령한 집을 아름답게 세워가도록 늘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잠언( 잠 ) 3장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4. 참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황금을 얻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
14. For the merchandise of it is better than the merchandise of silver, and the gain thereof than fine gold.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18. 지혜는,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나무이니, 그것을 붙드는 사람은 복이 있다.
18. She is a tree of life to them that lay hold upon her: and happy is every one that retaineth her.
동산-성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교회를 밭-건축가의 작품인 집, 건물로 묘사한 바울의 탁월한 해석, 그리고 비일의 뛰어난 통찰력과 학문성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것이 생명나무라고 잠언이 일깨워 주는군요.
네, 매우 공감합니다.
교회를 밭과 성전으로 교차해 바라보며 영혼을 심고 견고하게 세워가는 목양의 신비와 헌신이 참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한 식물 형상과 신약의 신령한 교회가 구약의 '동산-성전' 맥락으로 관통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놀라운 통찰입니다.
세상의 헛된 지혜에 흔들리지 않고 가장 보배롭고 영원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든든히 양육해야 한다는 권면이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일구신 밭이자 거룩한 성전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묵묵히 눈물로 씨를 뿌리고 터를 닦는 지도자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스도라는 유일하고 견고한 기초석 위에 보석 같은 성도들이 말씀으로 연결되어 영원한 성전으로 빚어져 가는 과정이 참 신비롭고 은혜롭습니다.
동산의 생명력과 성전의 거룩함이 우리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신앙의 뿌리를 세상 지혜가 아닌 오직 진리의 말씀에 내리도록 마음을 다잡게 합니다.
공감합니다!
바위 같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심겨 성전 안에서 푸르게 번성하는 나무처럼, 우리 신앙이 말씀 안에서 늘 청청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농사의 생명력과 성전의 거룩함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큰 위로를 주며, 공동체를 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아멘 🙏
안녕하세요 여러분 😊
저는 새로 가입한 회원이며, 이렇게 멋진 커뮤니티에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모두와 좋은 우정을 만들어 가길 기대합니다. 따뜻하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