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갑을관계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일을 그만두면서, 제가 봉착하게 된 애로사항은 더 이상 애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전 육군 만기 병장제대로 병역을 마쳤고, 이후 정신 못차린 몇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스스로 독립해서 무일푼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부모 도움은 거의 받지 않았구요. 가끔씩은 삶이 힘들다 보니, 요즘 세대처럼 부모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의식에 일견 납득이 가곤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세대의 의식에 동의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 정도로 사회의 부조리가 만연하다는 걸 현상적으로나마 인정했을 뿐이죠.
쉬는 기간 내내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중앙아시아 역사나 중동역사 그리고, 경제와 관련된 문서들을 무작위로 쫓다보니, 다는 아니더라도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부조리에 대항해 혁명은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계급론에 대해 거부감이 있긴 했는데, 우리 사회를 보며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라는 말 자체를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평등한 사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절대 아니고, 자본주의가 그 본질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투표와 대의 정치에서 삼권분립의 상징인 탄핵과 사법권 독립이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일시적입니다. 국민의 투표로 뽑은 의원은 시의원, 도의원 할거 없이 투표의 의의와는 무관하게 흘러갑니다. 부정부패가 제일 많은 곳이 정치고, 정치는 재벌과 유착해서 사리사욕을 챙기고 있고 이 악순환은 뿌리를 뽑지 않으면 지금 10대 20대 청소년과 대학생, 청년들의 삶은 궁핍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될 듯 합니다. 게다가 출산율 자체도 확연히 떨어지고 있죠.
정치가 민감한 얘기긴 한데, 제가 말한 논점에서 댓글이 어떻게 달릴지 걱정이 됩니다. 분명한 건 제가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주제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말하면서 과거를 논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시절에 느낀 것들은 말해도 되겟죠?
사실 제 새대는 풍요로운 경제의 후광을 많이 누렸고, 거품이 극대화된 시기의 막차를 탄 세대입니다. 취업도 그렇고, 민주화이전의 독재를 어렴풋이 경험한 30대 중후반 세대입니다. 인근에 전문대학이 있었고, 당시 삼촌들이 데모를 하면 최루가스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모든 교시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이 마셨죠.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잘 모를 겁니다. 음..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들도 잘 모를 거구요. 문화가 자유롭게 개방되기 시작했던 건 정확히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난 이후의 일입니다. 불과 문민정부가 세워진 2,3년만에 아이돌 문화가 대세가 되었고, 2000년대에 아날로그 세대의 피크를 달렸던 시절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군대를 갔다 와서 전 학업과 취업에 바쁘게 몰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3년간은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인서울 국립대를 나온 상황에서 졸업후에는 본격적으로 취업난이 불거지기 시작했던 2000년대 후반에 서 있었고,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취업에 대한 노력에 비해 성과를 거두기 용이한 시점이었죠. 그럼에도 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에 대한 반성을 하기 위해서죠. 제 동기들처럼 여기저기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돌린 적은 없어서 당시의 풍속에서 저의 삶은 많이 빗겨간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그러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은 많이 낫습니다. 그래도 경제적인 어려움의 동질감은 동일하게 다가오긴 하더군요.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제 2의 IMF가 될 뻔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부업체들이 망하면서부터죠.
2000년대 후반,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고 우리나라에 까지 금융위기가 왔지만 비정규직의 대량 양산을 통해 이 나라는 서민의 희생을 기반으로 그럭저럭 넘어갔고, 이제 그 혜택은 기업의 부익부빈익빈의 심화와 더불어 AI 시대를 가속화시키며, 많은 부분에서 인간적인 삶의 보장은 후진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우리 세대는 뭘하고 있었을까요. 아니... 저는 뭘하고 있었을까요.
안타깝지만 외노자 지문날인 폐지로 인해 국민의 주권이 침해받는 사태에 이르렀음에도 뒤늦게 그 폐해를 막기 위해 8년이 지난 2012년도에 다시 지물날인이 부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독과점과 갑질의 행태에 대해서는 그 폐해를 근본적으로 막기위해 지금 이 나라에서 청년시절을 보낸 전 진짜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너무 후회됩니다.
비리와 부정이 너무 많아서 막상 개혁하려고 해도 정치인들부터 거기에 연루된 사람이 너무 많으니 사학법 개정과 같은 혁신은 되지도 않았고, 기업의 하청 구조를 역행해서 대기업 구조의 지배 행태는 전혀 바뀌어 지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는 기업주도형으로 발전해서 얻은 수혜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델은 이제 부의 세습을 위한 하청과 계열사들의 짬짬이로 일감을 몰아 증여와 상속이 아닌 편법으로 돈을 증여하고, 부의 세습을 이룬 누군가는 계열사간의 합병을 통해 자본준비금이라는 애매한 명목으로 부를 더욱 쌓고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살고 싶을까요.
저는 30대 중후반이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 세대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7,80년대에는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저의 까마득한 선배님인 대학생들이, 그리고 양심있는 기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고, 90년대의 IMF 시절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열정으로 극복한 2,30대가 있었습니다. 하다 못해 5,60년대는 대학생들이 4.19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풍요로움과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에 익숙해서 자기밖에 모르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자기로 삼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진 건 저희 세대의 특징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전 제가 속한 나의 세대가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젊은 시절 비정규직화라는 자본주의의 반 민주주의를 막을 생각은 안하고, 취업에만 열중했는데, 그 결과가 결국 사회의 부조리를 심화시켰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시절에 우리는 해야할 사명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하고 살아왔습니다.
촌지가 광범위하고 크게 일어난 80년대 후반은 우리 세대 모두 초등학교에 갓 입학햇던 시절의 일이었는데, 물론 그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 시절이 특이점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촌지를 아예 거절해서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그 피해를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버티고 나니, 별거 없더군요.
그렇게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살아왔던 청춘이란 세월에 이미 노랗게 변해서 알맹이 없이 쭉정이만 남기고 가고 있지 않나 너무 고민이 됩니다.
쭉정이는 외관상 익어간 벼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열매는 없습니다. 열매가 없다는 건 다음 해에 뿌릴 씨앗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해가 되면 뿌려야 할 씨앗이 존재해야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와 비와 또 다른 어둠과 쨍볕을 견디며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고로 쭉정이는 종의 기원에서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전 지금의 모습이 쭉정이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날들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청춘이란 말을 다시 생각하곤 합니다. 그 시절은 푸르르기에 가치관도 명확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날들에 기득권이 가지지 못한 열정과 사회부조리에 대한 용기를 크게 낼 수 있었던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부의 세습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세습을 하기 위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했어야 했던 시절이 그 청춘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쁘게 지나온 삶을 돌아보다 보니, 저의 과거가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었는지 이제는 잎새의 이는 바람에 괴로워했던 누군가 써내려간 시인의 고백이 맘에 처절히 와닿아 갑니다. 당시의 두려움과 고통과 부조리를 항거했던 세대들이 고맙고, 다행이고, 그래서 이 나라가 존재하고, 하지만 저의 모습은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그 세대는 나이들고, 노회해서 다 자란 기득권과 4,50대가 아니라 가장 시간에 대한 가치와 노력의 밀도가 제일 높았던 2,30대의 젊은 시절에 해왔던 세대들이 나이들기전에 항거하고, 항거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부끄러워집니다.
20대를 살고 계신 여러분...
저처럼 후회하기 전에 투표하시고, 사회의 부조리에 항거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처럼 후회할 날이 다가오기 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