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 1-32.答五陵太守(답오릉태수)/答武陵田太守(답무릉전태수) - 王昌齡(왕창령)
<무릉태수에게 답하다>
答五陵太守(답오릉태수)
/答武陵田太守(답무릉전태수)
王昌齡(왕창령)
仗劒行千里(발검행천리),
微軀敢一言(미구감일언)。
曾爲大梁客(증위대량객),
不負信陵恩(불부신릉은)。
보검 하나를 차고서 천리를 내달리는
미천한 몸이 감히 한 마디 하겠소이다.
일찍이 대량(大梁)의 후영(侯赢)같은 사람 되고자 하였으니
신릉군 같은 그대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소이다.
<원문출처> 答武陵田太守/作者:王昌齡 唐/全唐詩·卷143
答五陵太守/千家詩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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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武陵田太守(무릉전태수) : 무릉(武陵)은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상덕현(常德縣) 안에 있는 지역으며 성이 전(田)인 무릉태수를 말한다.
○ 仗劒(발검) : 검을 차다.
○ 微軀(미구) :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당시 왕창령이 폄적을 당한 몸이라 이렇게 말한 것이다.
○ 大梁客(대량객) :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후영(侯赢). 侯嬴(후영)은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은사(隱士)로 집안이 가난해 나이 일흔에 대량(大梁)의 이문(夷門)의 문지기가 되었는데,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이 그의 훌륭함을 듣고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신릉군에게 계책을 올려 조나라를 구하였다.
○ 不負(불부) : 저버리지 않다.
○ 信陵(신릉) : 信陵君(신릉군). 위나라 공자 위무기(魏無忌).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저명한 군사가로 기원전 276년 신릉(信陵)에 봉해지면서 신릉군(信陵君)으로 불리었다.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과 함께 전국시대의 4공자로 불린다. 4공자 중 가장 어질고 능력 있는 인물로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조나라 평원군이 매형이었으며 조나라를 도와 초(楚), 조(趙), 한(韓)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크게 격퇴했다. 위공자병법이 전해지고 있으며 진나라의 이간으로 위나라 왕의 미움을 사 술로 지내다 술독으로 죽었다.
<史記列傳(사기열전) 권77 魏公子列傳(위공자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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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천가시> 및 <전당시>에 실려 있으며, 당나라의 시인 왕창령이 지은 오언절구로 <천가시에는 ‘답오릉태수(答五陵太守)’로 <전당시>에는 ‘답무릉전태수(答武陵田太守)’로 기록하고 있다. 왕창령이 호남(湖南)으로 좌천되어갈 때 무릉태수를 만나 환대를 받고 떠나면서 무릉태수에게 전해준 시로 자신을 위나라의 후영(侯赢)으로 전태수를 신릉군(信陵君)으로 비유하여 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다며 자신의 호탕함을 표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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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창령(王昌齡) : 字 소백(少伯). 강령(江寧:江蘇省 南京) 출신. 727년 진사에 급제하여 비서성 교서랑(秘書省校書郞)이 되었고, 734년 박학굉사(博學宏詞)의 시험에 합격하여 범수(氾水:河南省 成皐縣)의 위(尉)가 되었다. 그러나 소행이 좋지 못하다 하여 강령의 승(丞), 다시 용표(龍標:湖南省 黔陽)의 위(尉)로 좌천되었다. 왕강령 ·왕용표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그 임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자사(刺史)인 여구효(閭丘曉)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시는 구성이 긴밀하고 착상이 청신하며, 특히 칠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다.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장신추시(長信秋詩)》 《규원(閨怨)》, 변경의 풍물과 군인의 향수를 노래한 《출새(出塞)》 《종군기(從軍記)》가 유명하다. 시집 《왕창령 전집》(5권)과 그의 저술로 전하여지는 시론서 《시격(詩格)》 《시중밀지(詩中密旨)》 각 1권이 남아 있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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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 1-32.答五陵太守(답오릉태수)/答武陵田太守(답무릉전태수) - 王昌齡(왕창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