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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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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부화된 병아리들을 많이 보는데, 보통 사람들은 병아리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감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보고 구별하는지는 몰라도 병아리 감별사는 3초 이내에 감별한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 감별사들은 이런 재주가 뛰어나 섞여 있는 바둑알을 흑백으로 나누듯이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데, 그 정확도가 90%를 넘는다고 한다.
프랑스는 포도주로 유명한 나라로 10년, 20년 묵은 포도주보다 100년, 200년 묵은 포도주가 더 많다고 한다. 포도주는 오래 된 것일수록 맛이 좋고 값이 비싸다. 그래서 옛날 프랑스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포도주를 담아서 땅에 묻은 후 그 위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대를 이어가던 후손이 망하게 되면 그 집터에서 포도주를 꺼내어 팔아 다시 일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는 몇백 년 된 포도주가 많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우리 민족은 한 해도 못 넘긴다. 늦여름에 포도주를 담아 놓고 눈에 보이면 마셔버리니까 처음부터 아예 묻어 둔다. 그러다가 한두 달 지나면 100년이나 200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지 얼어붙어 돌 같이 굳어진 땅을 파헤쳐 묻어둔 포도주를 끄집어 내서 끝내 마셔버린다. 그 급한 성격 때문에 우리 나라는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포도주를 맛보고 그 묵은 연도를 감별해 내는 포도주 감별사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10년 묵은 포도주를 300년 묵은 것이라고 속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감별사가 맛을 보면 그 포도주가 얼마나 오래 묵은 포도주인지를 안다고 하니 참 신기하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원은 하나님만 아시는 것인데, 어떻게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 안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물론, 병아리 감별사나 포도주 감별사처럼 사람의 얼굴만을 보고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만알고 계시는 그 구원의 여부를 성경 66권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으므로, 그 말씀을 근거로 해서 구원을 감별할 수는 있다. 그 사람의 신앙 고백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머리로만 알고 외우는 사도신경 등의 신앙 고백 말고, 말씀에 비추어 양심에서 흘러나오는 고백을 들어보면 그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부정한 짐승과 정한 짐승은 하나님만 아시지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정하게 여기는 짐승과 부정하게 여기는 짐승을 자세히 구분해서 잘 설명해 놓으셨다(레 11장).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우리는 어떤 짐승이 정한 짐승인지 부정한 짐승인지를 구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정하고 그 외에는 다 부정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다. 더럽고 추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부정한 것이 아니라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끼도 부정한 짐승이다. 작거나 못생겨서가 아니라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도 부정한 짐승이다. 아무리 애완용 동물로서 사람과 함께 잠을 잔다 하더라도 굽이 갈라지지 않았을 뿐더러 새김질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는 정한 짐승이다.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말씀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그 외의 것들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나비,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는 정한 곤충이라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오징어, 미꾸라지, 뱀장어는 먹을 수 없는 부정한 것이다. 또한 잉어나 금붕어는 먹을 수 있는 정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할 수 없지만, 이렇게 성경을 근거로 하면 확실히 구분할 수가 있다. '금붕어를 어떻게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있으므로 먹을 수 있는 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열납하는 제사와 열납하지 않는 제사를 보여 주셨다. 또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님의 재림시 들림을 받는 신자와 들림을 받지 못하는 신자를 우리가 구별하게 하셨다.
주님은 심판 날에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신다.(마 25:31∼46) 누구든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입으로만 '의인' 이라고 고백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 되는지를 마음으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의인과 함께 먹고 마시고 같이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병아리 감별사나 포도주 감별사는 각각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그 기술로 감별을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 구원 여부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정확히 아는 자는 하나님과 같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도 분별할 수가 있어야 한다. 당신의 귀에 들려오는 저 메시지가 진정 거듭난 자의 메시지인지, 아니면 거듭나지 못한 자의 메시지인지. 만약 당신이 거듭나지 못한 자의 설교를 듣는다면 당신의 신앙은 진보되기는커녕 오히려 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면 아무 소리나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린아이를 키울 때, 이유식 하나에도 얼마나 신경을 써서 좋은 것으로 골라 먹이는가? 하물며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나지 못한 자의 설교를 통해서 얻으려 한다면 차라리 집에서 혼자 성경을 읽는 편이 더욱 낫다.
새 사람
사람들은 대부분 새 것을 좋아한다. 특히 새해가 되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본다. 새 달력, 새 수첩 이런 것들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덩달아 새로워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옷, 신발, 수첩, 달력, 집, 차 등을 아무리 새 것으로 바꾸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해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해 다시 옛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새해가 되어도 새 사람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 자체는 새 사람이 되지 못했는데, 새 옷을 입고 새 수첩을 소지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새 사람은 해묵은 달력을 걸고, 다 헤어진 수첩을 들고 다녀도 새 사람이지만, 옛 사람은 아무리 단장을 해도 옛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진정 누가 새 사람인가? 새롭게 단장을 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 사람이 새 사람인가? 성경이 무엇을 가르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전 1:10) 라고 말하고 있듯이,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 갓 결혼한 신랑이나 신부도, 막 공장에서 나온 새 차나 새 옷도 진정 새 것은 아닌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각에 비춰진 모든 것은 다 묵은 것, 낡은 것, 헌 것뿐이다.
그 동안 많이 마시고 피우던 술과 담배를 끊고, 친구들과 어울려 치던 화투도 던져 버리고,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여도 진정 새 사람은 아닌 것이다. 혹, 그가 술이나 담배를 영원히 끊었을지라도 역시 새 사람은 아닌 것이다. 새 사람은 오직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뿐이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술과 담배를 마시고 피울지라도 진정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새 사람인 것이다. 새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사람 됨됨이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오직 성경으로 평가해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위의 말씀처럼 누구든지-담배를 피우거나 피우지 않든, 술을 마시거나 마시지 않든-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술이나 담배를 끊고 난잡한 삶을 다 정리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그는 결코 새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새 사람은 삶을 깨끗이 정리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약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한다면, 당신은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죄인임을 고백하고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그 모든 죄를 사함받은 사람은 자신을 정죄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모든 죄를 사함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새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새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새' 자는 모두 당신과 연관이 있다. 새 하늘은 진정 당신의 하늘이며, 새 땅 역시 그렇다. 이 하늘과 이 땅은 당신이 영원히 살 하늘과 땅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이다. '새 예루살렘' 역시-비록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지만-새 사람 된 자가 살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새 하늘이나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는 것이 술이나 담배를 끊어서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난잡한 삶을 정리하여 대통령 표창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새 하늘 아래, 새 땅 위의 새 예루살렘에서 살 수는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결코 정죄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새 사람이다. 물론 어떻게 살든지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새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새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당신이 살아야 할 영원한 하늘이 아니다. 땅을 내려다 보라. 당신이 살아야 할 영원한 땅도 아니다. 새 사람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새 길' 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새롭고 산 길'로 앞서 가셨다. 우리 역시 그 발자취를 좇아 '새롭고 산 길'로 가야 한다. 그 길은 비난, 핍박, 조롱 심지어 죽음이 놓여져 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영광과 큰 상급과 면류관이 기다리는 길이다. 이름도 없는 들풀과 같은 초라한 인생이 영광의 주님이 가신 새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족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해서 많은 위로와 상급을 준비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품꾼들을 엄하게 부리지 말라고 명하셨다. 왜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품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면, 그 땅을 영원히 팔지 말라고 하셨다. 그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한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가나안이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 땅이 그들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영원한 가나안, 영원한 안식처가 예비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어도 잠시 세상에 머무는 나그네 인생이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야 이 세상이 영원한 처소처럼 보여서 되겠는가? 주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은 이 세상에 뿌리를 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뿌리를 둔 길이었다. 천하 만국과 영광을 안중에도 두지 않으시고 갈보리 산을 향해 걸으셨던 그 길이 곧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새 길인 것이다.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담듯이, 새 사람은 새 하늘 아래에서 새 예루살렘에 기대를 두고 새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묵은 것을 버리고
우리의 인생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의 옛 인생과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의 새 인생으로 나눌 수 있다. 묵은 해와 새 해의 기점에서 묵은 해를 잊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듯이, 새 사람과 옛 사람의 기점에서 옛 사람을 잊어버리고 새 사람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즉, 새 사람이 되었다면 이제는 옛 사람의 모든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다 십자가 아래 묻어버리고 갓난아이처럼 새 사람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물동이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처럼, 새 사람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새삼'이라는 기생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의 씨앗은 땅에 떨어져 싹을 내면 곧 넝쿨을 뻗어서 주위에 있는 나무를 감는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나무를 감고 자라던 새삼은 곧 스스로 뿌리와 접한 줄기를 잘라 버린다. 그 후부터는 감고 있는 나무에 붙어 나무의 진액을 빨아 먹고 사는 기생 식물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뿌리와 줄기를 잘라버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대목인가?
새 사람인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대어 그분이 주시는 진액으로 살아가는 '기생인(寄生人)'인 것이다. 전에는 세상을 통해 자신을 지탱하고 살아왔지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다면 이제 세상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그리스도의 진액만 공급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에 붙어 있는 육신의 뿌리를 과감히 잘라버리는 것이다.
새해가 오면 묵은 달력이 아무리 깨끗하고 멋있어도 버리고 새 달력을 거는 것처럼, 새 사람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