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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제가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ECT(전기충격치료) 장면만 따로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1막 14~18장, 2막 1~2장이 담겨있습니다. 24분 분량입니다.
주소는 https://www.youtube.com/watch?v=UO-TsAQKZwA
1. 촛불의 스토리 설명
이 뮤지컬의 스토리 설명을 잠깐 드리겠습니다. 주인공 다이애나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가정주부입니다. 그녀는 17년 전, 생후 8개월 때 "의사의 과실"로 아들을 잃는 상실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다이애나는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고 수시로 아들의 환시와 환청을 경험합니다. 다이애나는 조울증(조현병에 가까운 조울증) 진단을 받고 16년간 약물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환시와 환청을 봅니다. 다이애나는 죽은 아들의 환시와 환청이 권하는 말을 듣고 약물복용을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약물을 다 내다버립니다. 아내가 약물복용을 거부하자 남편은 아내를 설득하여 심리치료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최면치료도 받게 됩니다. 치료자와 남편은 "죽은 아들을 잊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마침내 다이애나도 죽은 아들을 잊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올린 동영상이 시작됩니다. 다이애나는 죽은 아들을 잊기 위해 그때까지 버리지 않고 있던 아들의 유품을 버리려 합니다. 그러다가 아들과 함께 즐겨듣던 뮤직박스를 발견하고,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아들의 환시와 환청이 나타나고, 다이애나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자살을 권합니다. 다이애나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OST #14 "I dreamed a dance (춤을 췄어 우린)"와 There's a world (그 곳)" 입니다.
다이애나는 응급실로 실려갑니다. 축 늘어져서 침대에 묶여 있는 다이애나를 진료한 정신과의사는 남편에게 ECT(전기충격치료)를 권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다이애나의 자살시도로 엉망인 집안을 청소하며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합니다. 남편은 고민 끝에 ECT를 받게 하는게 좋겠다고 마음먹고 다이애나를 설득합니다. 다이애나는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의사에게 자신을 미친 년 취급한다고 화를 내며 항의합니다. 절대로 ECT를 받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라는 남편의 설득에 결국 ECT를 받기로 합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OST #16 "I've been (니 곁을 지켰어)", #17 "Didn't see this movie? (전에 본 영화 같아)", 그리고 #18 "A light in the dark (어둠 속의 빛)" 입니다.
1막은 이렇게 끝나고 2막이 시작됩니다.
2막의 첫 장면은 전기충격을 받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과 딸이 마약복용을 하는 장면이 나란히 대비됩니다. 딸이 복용하는 마약은 엄마가 복용하던 정신과 약들입니다. 딸은 그 약들을 한꺼번에 이것저것 섞어서 복용하고 환각상태에서 헤롱댑니다. 이 장면과 함께 ECT 치료로 기분이 붕떠서 헤롱대는 엄마의 내면세계가 대비됩니다. 마약복용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엄마에게 딸은 "엄마야 말로 약쟁이잖아?"라고 비꼬면서, 엄마가 ECT로 환각상태에 빠져 있는 것과 자신이 마약복용으로 환각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항변합니다. 엄마와 딸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에서의 딸의 마약복용은 딸의 탈선을 그린게 아닙니다. 약물치료/ECT 등이 마약복용과 다를게 뭐가 있느냐고 비꼬는 겁니다. 즉 둘 다 환각상태/정신마비상태/기억상실상태/자아상실상태를 가져오지 않느냐? 그렇게 망각하게 하는 것이 치료냐? 라고 비꼬는 장면입니다.
이 뮤지컬에서의 ECT는 당사자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무조건 증상을 없애려고만 하는 치료방식, 무조건 잊으라고만 하는 치료자의 요구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러한 치료자의 요구에 순응하여 당사자의 내면심리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려는 노력없이 무조건 잊으라고 설득하고, 증상만 없애려 하는 남편의 태도를 부각시켜주는 수단입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OST 2막 #1 "I wish I were here (난 어딨나?)" 입니다.
2막의 두 번째 장면은 몇 주간에 걸친 ECT 치료를 모두 마치고 퇴원하여 다이애나가 집으로 돌아온 장면입니다. 다이애나는 많은 기억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집도 낯설어 하고, 자신의 딸도 못알아 봅니다. 남편과 딸은 당황합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OST 2막 #2 "Song of forgetting (망각의 노래)" 입니다.
여기까지가 이 동영상에 수록된 장면입니다.
이후의 스토리를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과 딸은 앨범과 기념물을 활용하여 다이애나의 기억을 되찾아 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좋은 기억만을 되찾아 주려 합니다.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여 허구적인 기억을 심어주려 합니다. 이에 비해 딸은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있었던 사실 그대로의 기억을 되찾아 주려 합니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접근방식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수단이 뮤직박스입니다. 딸이 우연히 뮤직박스를 찾아냈을 때, 남편은 그 뮤직박스를 낚아채서 숨겨버립니다. 다이애나에게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려 하자, 남편은 그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이애나가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이 되찾고 이름이 뭐였는지 물어도 남편은 이름을 알려주기를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결국 다이애나는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의 환시와 환영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망가진 건 자신의 뇌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이애나가 다시 환시와 환청을 보게 되자, 남편은 또 다시 ECT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거절합니다. 다이애나는 이전에 자신이 받았던 치료들, 그러니까 약물치료/심리치료/최면치료/ECT를 모두 그만두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대안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찾아보겠다고 선언합니다. 다이애나는 당황해하는 딸에게 자신의 심정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오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말해주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때까지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다이애나는 자신이 결코 정상(Normal)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딸이 화답합니다. "정상(Normal)이 아니라도 좋아. 정상의 언저리(Next to Normal)에만 있어도 만족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뮤지컬의 제목이 "정상의 언저리(Next to Normal)" 입니다. 정상은 아닌 것이지요. 하지만 정상이 아니라도 좋다는 거지요. 정상이 되려고 "영혼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라는 거지요. "내면의 광기"를 외면하지 말라는 거지요. 억지로 잊어버리는 것, 망각하는 것은 진정한 치료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내면의 상처, 영혼의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것, 자신의 광기까지도 끌어안고 사는 것, 자아상실을 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으로 사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다이애나는 남편 곁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결국 남편을 떠납니다.
버려진 남편은 충격을 받습니다.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때 죽은 아들의 환시와 환영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편은 거부합니다. 그러나 결국 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브리엘!" 이 뮤지컬의 마지막쯤 되는 이 장면에 와서야 비로소 아들의 이름이 처음 등장합니다. 아들은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지요. 즉 마음 속에는 살아 있는 것이지요. 언제까지나.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아들을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지요. 즉 자신의 마음의 상처, 영혼의 상처를 외면해 왔던 것이지요. 즉 망각상태로 지냈던 것이지요. 그리고 아내에게도 "치료"라는 미명하에 그렇게 하기를 강요해 왔던 거지요. 하지만 아내로부터 버림받고 극심한 마음의 고통, 영혼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묻어뒀던, 애써 외면했던, 망각하고 있었던, 내면 깊숙한 곳의 상처에 직면하게 된 것이고, 결국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 영혼의 상처가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거죠. 그게 "가브리엘!" 이라는 한 마디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아버지를 딸이 위로해줍니다. 그리고 둘이서 잘 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이렇게 이 뮤지컬은 끝이 납니다.
2. 촛불이 유튜브에 올린 작품소개
이 뮤지컬은 1998년에 "전기충격의 느낌(Feeling Electric)"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숍 공연을 시작했는데, "전기충격치료를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후 점차 내용이 확장되었고, Next to Normal로 제목을 바꾸었다.
이 동영상은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ECT(전기충격치료)의 이전과 이후 장면만 편집한 것이다. 24분 분량이다. 1막 14~18장, 2막 1~2장이 수록되어 있다. 전기충격치료를 받게 하기까지의 가족의 고민, 가족의 설득, 환자의 저항, 굴복, 그리고 전기충격 치료 이후의 기억상실, 기억을 되찾아 주려는 가족들의 노력, 정신과 의사들의 상투적인 설명 등이 중심테마를 이룬다.
이 뮤지컬은 정신질환을 다룬 뮤지컬이다. 흥행이 불가능할 것 같은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고, 2009년도 토니상 3개부문을 석권했다. 또한 정신질환을 이슈로 제기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도에는 드라마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정신질환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당사자의 내면의 고통과 가족들의 고충, 그들의 엇갈림, 내면의 고통에는 무관심하고 증상제거에만 관심을 갖는 정신과 의사들의 상투적인 태도와 치료방식을 다루고 있다. 약물치료/심리치료/최면요법/ECT를 마약복용과 대비시키며 환각상태/정신마비/기억상실/자아상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그 둘이 비슷하지 않나? 라고 비꼬고 있다.
이렇듯 명백히 정신질환에 초점을 둔 작품이 2011년도와 2013년도에 국내에서 공연될 때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다룬 작품으로 둔갑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정신질환을 겪는 당사자와 가족의 내면심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작품해석에 오류를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흥행을 염려해서 작품해석을 왜곡한 것인가? 이러한 오류 또는 왜곡은 원작의 메시지와 전혀 다른 것이기에, 작품에 대한 재창작 행위로 볼 수없으며, 명백한 훼손으로 보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영화 뷰티풀마인드를 국내에 도입하면서 재편집하여 첩보영화로 둔갑시킨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들로서는 개탄할 일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훌륭한 작품을 눈뜨고 도둑맞은 꼴이다. 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심정, "빼앗긴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심정으로 국내 공연에서의 작품해석 왜곡을 성토한다.
올해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이 작품이 재공연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이번에는 작품해석의 오류 또는 왜곡이 시정되어서, 정신질환, 당사자의 내면심리, 가족의 고충, 그들의 엇갈림, 정신과의사들에 대한 비판이라는 원작의 메시지가 제대로 홍보되고 강조되는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
구체적으로 주장하자면, 제목인 Next to Normal을 "평범함 그 주변 어디"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정상의 언저리"라고 해석해야 한다. 정신질환이 초점이기에 이 작품에서의 Normal은 평범함이 아니라 "정상"이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당사자의 내면심리와 가족의 고통을 깊이 있게 다룬 뮤지컬"이라고 홍보하고 강조해야 한다. 연출자가 이전 공연에서 작품해석의 오류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번에는 그 오류를 시정했다고 홍보해야 한다. 연출자의 검토와 용기를 기대해 본다.
3. 이 작품의 공연 역사
이 작품의 공연역사를 소개합니다. 아래는 미국 고등학생들이 만든 이 뮤지컬 학습안내서 PDF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은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가 대본과 가사를 쓰고, 톰 키드(Tom Kitt)가 작곡한 뮤지컬이다. 그 시작은 전기충격치료를 받는 여성에 대한 짧은 대본이며, 1998년에 “전기충격의 느낌(Feeling Electric)"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이 대본과 음악은 일련의 워크숍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로 제목을 바꿨다. 이 작품은 2008년에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으며, 재야비평가모임의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다.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이후에, 이 작품은 수정되었고, 워싱턴 DC의 아레나극장(Arena Stage)에서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2009년 4월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2009년도 토니상 후보에 11개 부문이 올라서 3개 부문을 석권했다.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앨리스 리플레이(Alice Ripley)에게 주어진 최우수 여우주연상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2010년도에 드라마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역사상 퓰리처상을 받은 단지 8번째 뮤지컬이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에 상을 주면서, 퓰리처상위원회는 이 작품을 ”교외에 거주하는 가족의 정신질환(mental illness)을 붙들고 씨름하고, 주관적인 것들의 영역을 뮤지컬로 확장한 파워풀한 록뮤지컬“이라고 평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2011년도 1월에, 21번의 프리뷰와 733번의 정기공연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이후, 이 작품은 미국전국 투어를 했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한국, 이스라엘,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에 있는 몇몇 국가에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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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방금 이 게시글을 4군데 인접카페에 스크랩해서 올렸습니다. 서울심지회,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 우기모임,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저는 지난 1주일 사이에 이 뮤지컬에 대한 게시글을 총 15편 올렸는데, 그 중에서 인접카페에 스크랩해서 올린 글은 총 4편입니다. / 회원분들 중에는 이렇듯 계속해서 이 뮤지컬에 대한 글을 올리는 제 심정과 의도를 이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고, "자꾸 왜 저러나?" 하고 의아해 하거나, 때로는 짜증스러워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 내용이 긴 글들입니다. 지금까지 올린 제 글들을 꼼꼼하게 읽어보신 분들은 제 뜻을 알아차리셨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선 채로 나는 미래를 생각해. 널 도울 방법을 몰라 난 미칠 것 같아. 그 병에 대해 수없이 또 들어 왔지만,앞 일은 그 누구도 모르지. 하루가 달리 우리 꼴은 엉망이 되고,내 안에 있는 두려움은 비명을 질러! 난 절대 내색 할 일 없지만 니 곁을 지켰어, 아플때, 울 때도... .... 실은 너무 지쳤어,네가 하늘을 날 때도 난 늘 땅을 딛고 있어. 오! 난 쉬고 싶은데 기댈 곳이 없어, 너와 둘이서 걷는 이 길 암흑 뿐이지만, 난 자릴 지키며 아픔 다 삼켰어.... 다이애나의 자살 소동 후 엉망이된 집을 치우며 고통스러워 하는 남편의 대사입니다. 지금의 저의 심정 같아 가슴이..........
예 힘든 시기를 견뎌내시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힘드실거라 짐작합니다 위 대사가 정말 마음에 와닿으셨을 거 같아요 잘 견뎌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제 머리속에서만 떠돌던 생각들이 촛불님의 말로 명쾌학 정리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사실 ECT가 여러 대중매체에서 과장되게 묘사한 면은 없잖아 있다고 합니다. 중증의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네요. 우리나라도 하루에 40명씩 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도 있구요.
ECT는 마치 컴퓨터 포맷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더라구요. 컴퓨터가 조각난 파일과 뒤엉킨 순서들을 포맷해서 정상상태로 돌아오듯이, 크게 충격을 쾅!하고 줘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하네요.
맞습니다. ECT 자체는 효과가 검증된 좋은 치료법입니다. 이 뮤지컬에서도 기억상실이라는 부작용이 과장되어 있지요. 약간의 기억상실이 있지만 이 뮤지컬에서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치료-저항성(약물치료를 해도 약효가 나지 않는) 환자들의 경우 클로자핀 조차 듣지 않을 때, ECT를 권하는게 표준지침입니다. 어떤 원리로 ECT가 효과가 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ECT는 다만 뇌를 흔들어 놓은 것이지요. 멍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때린 것과 비슷한 것? 그런 거라고 봐야겠지요. 그렇게 멍해진 상태가 되면 [인체의 자연복구력]이 작용해서 회복시켜 놓은 것 아닐까? 학계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 뮤지컬에서 ECT는 꼭 ECT 자체를 묘사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사실적 묘사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상징이지요. 이 뮤지컬에는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 철학이 깔려있습니다. 즉 기존의 정신과적 치료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를 갖는 관점이지요. 그래서 이 뮤지컬은 약물치료/심리치료/최면요법/ECT를 모두 다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약물치료/심리치료/최면요법에 대한 조롱은 도입에 해당하고, ECT에 대한 조롱이 본론에 해당하지요. 이러한 치료법들이 "내면의 상처, 영혼의 상처"를 보려 하지 않고, 부작용이나 당사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효과만 보면 된다는 식이라고 비판합니다.
(계속)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환자"를 보지 않고, 그에게는 소중한 사적 측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정상(Normal)으로 돌려놓으려 하는 태도를 꼬집는 것이지요. 사적 측면은 마음의 상처, 소망, 열정, 때로는 광기를 포함합니다. 즉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그 개인에게는 소중한 것들이지요. 남들과는 다른 자기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들이지요. 이 뮤지컬은 기존의 치료법들이 그것을 너무나 쉽게 무시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이 뮤지컬에서는 남편이, 의사들의 말만 믿고, 당사자의 사적측면을 무시하고 무조건 정상(Normal)으로 돌려놓으려는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떠나는 것이지요.
촛불님의 해석 감사합니다. 해석을 보기 전에도 정말 완벽한 뮤지컬이다. 음악, 무대장치, 서사, 상징 그 무엇하나 빠짐없는 뮤지컬이라 생각했는데 해석을 읽고 나니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집니다. 정말 잘 짜여진 뮤지컬이란 생각이 듭니다.
@촛불 노말로 가지 못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