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덧없이 흘러간다
전기기능사 시험준비를 시작한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그간 기능장 필기시험을 건지긴 했지만 원래 목적인 전기기능사 자격취득은 여전히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학원에가야 시험준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난민인 내가 또 다시 학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학원에서 하는 꼬라지를 보면 그냥 오라고 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실습을 집에서 할 수도 없다
또 다시 10여일이 흘렀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 되었다
결국 고독한 결단을 내렸다
"아파트에서 장소물색을 해서 혼자서 연습을 하자"
부녀회장을 찾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큰 감투라고 바쁘다는 핑게로 사무국장을 대신 만나라고 한다
사무국장은 아파트내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억지로 밥 한그릇을 팔아주며 컴퓨터교육을 무료로 시켜줄테니 별도의 교육공간은 부녀회에서 준비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부녀회에다 그런 제안을 한건 사실 교육을 해주면서 별도공간에서 전기실습을 하기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이 시점까지 이렇다할 반응이 없다
관리사무소장을 찾아갔다
다시 컴퓨터교육 제안을 했다
관리소장은 전직이 공무원인지 몰라도 상당히 친절했다
그러나 요식행위는 상당히 챙기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관리사무소에 교육 요청 공문을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결국 교육지원자는 몇명 생겼지만 내가 원하는 교육장소는 찾을수가 없었다
지하공간이라도 괜찮다는 나의 요청에도 굳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우리 아파트에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게 관리소장의 설명이었다
"내참 아무공간이라도 괜찮다니까"
"내가 원하는건 교육이 아니라 전기실습할 장소라니까"
장소물색에 실패한 나는 비상조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험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마누라에게 카드를 내놓으라고 했다
안된다는 마누라를 반강제적으로 꼬득여 카드를 손에 넣었다
사실 마누라는 내가 직장생활 할때 벌린 사업때문에 늘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기능사고 뭐고 그냥 건강하게만 살아 계시라고 핀잔아닌 핀잔을 준다
뺏은 카드로 한걸음에 달려가 컨테이너를 할부로 구입했다
무슨 컨테이너가 200만원이 넘는 고가상품인지 나는 처음 알았다
논밭에 휑하니 던져져 있는 컨테이너가 그렇게 값지게 보이긴 처음이다
밭으로 진입하는 도로의 땅이 질퍽거린다고 입구에 팽개쳐놓고 가버린 컨테이너업자때문에 몇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따로 돈을 주고서야 다른 업자를 불러 비로소 컨테이너를 제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전기 실습실로 쓰는 컨테이너>
세상에 안되는 일은 없다
다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뿐이다
컨테이너 안에다 전기실습을 할 수 있는 합판 설치작업을 시작했다
목공을 해본 일도 공구도 없는 내가 겁없이 시작한 일이다
아니 달리 대안이 없이 벼랑끝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추진한 결과물이다
학원보다 훨씬 좋은 환경의 실습장이 마련되었다
내가 장소를 찾느라 개고생한 생각이 들어 아예 다른 사람도 와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추가로 확보해두었다
물론 쓸데없이 작업비가 많이 증가했지만 말이다
<일반 컨테이너를 전기작업실로 개조>
문제가 또 발생했다
연습장은 마련했지만 막상작업을 했어도 시험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학원에 다들 가는 이유도 그런것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실습에 필요한 소켓이며 배관을 파는 곳이 없다
고작 전선이나 파는데 그것도 값이 아주 비싸다
서암선생은 언젠가 심장마비증세로 천당과 지옥을 왕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마음을 비우고 사는듯하고 때로는 불심이 가득한 스님처럼 때로는 신앙심이 충만한 목사님처럼 마음씀씀이가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런 서암선생의 묻지마 지원으로 본격적인 실기연습이 시작되었다
한번은 실험에 쓰이는 각종 계전기들을 ,한번은 여기에서 구하지 못하는 배관을 ,또 한번은 소켓과 콘트롤박스들을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서암선생이 보내준 각종 부품>
또한 집까지 찾아간 나에게 실습하라고 본인 연습실을 내주고 고래심줄같은 전선도 마음껏 쓰라고 내주는등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마음씨를 베풀었다
아마도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 지원이 없었으면 경제적 난민인 나는 지레 시험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아무도 부럽지 않은 실습장도 생겼고 실험도구도 생겼고 실기자재들도 충분히 쌓였으니 오로지 연습만 하면 된다
그러나 혼자만 이런 호사를 누리는게 아까워 지난번에 같이 응시했다가 떨어진 전직 비행기정비사에게 같이 연습하자는 제안을 해두었다
농사를 짓다말고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전동드릴로 드럭드럭 나사를 박아대는 소리의 경쾌함과 무언가 형언못할 쾌감은 아무도 누려보지 못했을게다
섭씨 30도 넘게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를 참아가며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연습에 몰입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참으로 진지한 도자기작가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웃통을 홀딱벗고 팬티만 걸친채 때로는 완전나체로 산중 밭 한가운데서 드릴로 마구 송판을 쪼아대는 모습을 누군가 봤더라면 필시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했거나 변태라고 경찰서에 신고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만큼 최악의 기상조건과 외로움과 절박함에 몸부림치는 시간이었다
괴로움과 고통은 멀리가면 아름다운 추억과 회한의 한가닥 편린처럼 가벼운 상상의 나래로 사라진다
나의 인체가 언제그랬느냐는듯 환경에 적응하고 기분도 상쾌하고 아무도 부럽지 않은 환상의 작업장에서 나는 모처럼 진한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게다가 점심때 밭에서 뜯어온 상추며 오이로 비빔밥을 해먹거나 라면 한개 끓여 고추를 송송썰어 넣고 즉석 요리를 만들어 먹는 만족감과 해방감은 실로 조선민족이 해방되는 그런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실력도 일취월장 늘었다
시험계전기가 있기 때문에 내가 만든 제어판을 즉시 동작테스트를 해보거나 릴레이를 하나하나 빼보면서 시퀀스의 동작원리를 분석해보는 등 나름대로의 연구결과가 저절로 실력이 늘게 만들었다
시험이 3일 남았다
혼자서 이 좋은 실습장을 이용하기엔 아까워 인터넷에 홍보를 했다
누구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방문해서 마음껏 연습을 하라고 말이다
인천에 산다는 한 직장인이 연락을 해왔다
단 한번도 배관작업을 해보지 못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120킬로를 달려온 그와 함께 본격적인 모의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시험 하루전 한 노인네와 40중반의 중년이 컨테이너안에서 땀을 비오듯 쏟으며 미친듯이 드릴질을 해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는가
퍽이나 재미있을것 같은 이런 장면은 전기기능사 시험지원자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 (?)이기도 하다
4시간만에 전 작업을 완료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 무렵 옆에서 작업하는 그 친구의 작업판을 보고 기절을 할뻔했다
아무리 연습을 못해보았다고 하지만 저런 기술로 시험을 보러가겠다는 베짱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구나 내일이 시험인데......
<필자가 작업한 배관>
<옆 친구가 작업한 배관>
아침7시 시험장으로 내달렸다
집에서 불과30분 거리에 있는 시험장에 도착하니 1시간 이상 시간이 남았다
운동장 트랙을 한바퀴 돌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그리고 경직되어있는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었다
이번에 탈락하면 정말 기회가 없다
농사도 지어야 하고 다른 시험도 봐야하고 학원갈 수 있는 형편도 안되고...
만감이 교차한다
꾸역꾸역 다른 수험생들이 몰려든다
모두들 긴장해있고 초조하다
나는 이미 한번 실패를 해보았고 지난번 시험때 와본 수험장이라 상대적으로 느긋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정말 열심히 해서 자신감이 붙었다는 거다
그런데 시험보러온 놈치고 열심히 공부 안한 사람이 있든가
더구나 시험이 반드시 예비성적이 좋은 놈을 뽑는건가
"시험보러 오신 분들 들어 오세요"
지옥에서 저승사자가 부르는 느낌이다
To be continued
첫댓글 부인의 생활비 카드를 빼앗아 컨테이너를 사서 겨우 10일 연습했군요.
사나이 가슴에 눈물 납니다. 전기기능장 우습게 보면 평생 안됩니다.
저렇게 죽기살기로 해서 얻어진 값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 "필사즉생" 이 가슴에 와 닫는 군요
위 두사진을 보십시요. 아래 것은 연습부족 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네요.
실습장 차려놓고 장소제공까지한 선한 마음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인천의 직장인도 결과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