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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흥망 - '도시'에서 '제국'으로
로마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갓난아기 때 버려져서 늑대의 젖을 먹고 성장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가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가 형성된 과정은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날 학자들은 기원전 800년경 부터 테베레 강 유역의 언덕에서 농부와 양치기, 어부들이 모여 살았던 작은 촌락들을 '로마'의 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 로마는 수백 년 동안 확장을 거듭하며 왕정에서 과두 공화정으로, 또 점차 제정으로 변모했다. 기원전 7세기경 로마는 지역 중심지로 번영하던 도시 국가로 왕정 체제였다. 기원전 500년경에는 왕정이 무너지고 귀족과 평민 계급이 공화정을 세웠다. 로마인들은 평민과 귀족 간에 200여 년 이상 투쟁과 타협을 반복하며 로마 특유의 과두정 체제를 점진적으로 이루었다. 내부의 신분 투쟁 가운데도 로마는 외적들을 복속시키며 마침내 기원전 272년 경 게누아(제노바)에서 이탈리아 최남단까지 거대한 동맹 체제를 수립했다. 로마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150여 년 간 여러 정복 전쟁을 통해 갈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고 지중해 전역을 제패했다.
기원전 1세기 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씨를 뿌리고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시작된 제정 초기의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라틴어 문학 등 그레코-로만 문화의 전성기를 이뤘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년~117년)에 로마 제국은 북으로는 스코틀랜드에서 남으로는 아프리카 수단까지, 서로는 포르투갈의 대서양 연안에서 동으로는 카프카스 지방까지 최대 판도를 이룩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 공인 후 교황 선출 문제를 기화로 서로마, 동로마로 분할됐으며 이민족의 침략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서기 5세기 경 서로마 제국은 멸망 후 게르만족의 여러 독립 국가로 갈라져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등 로마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여타 서유럽의 정치 세력들이 나타난다. 한편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한다.
<로마 역사 요약>
시대 구분 (연대) | 주요 사건 | |
로마 왕국 (기원전 753년 ~ 509년) |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의 로마 건국. 715년∼673년 제2대 왕 '누마' 673년∼641년 제3대 왕 '툴루스' 641년∼616년 제4대 왕 '마르티우스' 615년∼579년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579년∼534년 제6대 왕 '세르비우스' 534년∼509년 제7대 왕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509년 로마 왕정의 전복. | |
로마 공화국 (기원전 509년 ~ 27년) | 기원전 509년 로마 공화정 수립. 494년 귀족과 평민의 투쟁 시작, 호민관 설치. 449년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 채택. 396년 독재관 카밀루스, 에트루리아의 도시 베이 공략. 390년 켈트족 침입, 로마 점령. 367년 리키니우스 법 성립 -로마의 과두정치를 결정, 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에게 개방. 358년 라틴 동맹 경신. 338년 이탈리아 중남부로 진출 개시. 라틴 동맹 해체. 로마 연합 성립. 312년 아피아 가도 건설.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 성립. 타렌툼 전쟁. 270년 로마의 이탈리아반도 통일 - 삼니움과의 3차례의 전쟁에서 승리. 264년~241년 제 1차 포에니 전쟁 - 로마의 시칠리아 패권 확보. 218년~202년 제 2차 포에니 전쟁 - 카르타고 '한니발'의 등장. 218년 한니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침공. 205년 스키피오, 집정관으로 선출됨. 202년 자마 회전. 스키피오, 한니발 격파. 183년 한니발 자살. 171년∼168년 마케도니아 전쟁, 마케도니아 왕조 멸망. 149년~146년 제 3차 포에니 전쟁 - 카르타고의 멸망. 133년~121년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 농지개혁의 실폐. 107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집정관 취임 - 군제개혁 착수. 91년 호민관 '드루수스',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 제출, 반대파에 암살당함. 동맹시 전쟁 발발. 89년 동맹시 전쟁 종결.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 부여. 88년 '술라' 집정관 취임 - '마리우스'와의 대립, 로마는 내란에 빠짐. 87년 '킨나'와 '마리우스', 로마 장악. '술라'와의 투쟁 격화. 86년 '마리우스' 사망. '킨나' 독재 시작. 81년 '술라',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하여 국정개혁 착수. 78년 '술라'가 죽고 '폼페이우스' 대두. 73년~71년 '스파르타쿠스' 반란 - '크라수스'에 의해 진압 70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집정관에 취임. '카이사르', 회계감사관에 취임. 69년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딸로 태어남. 67년 '폼페이우스', 지중해 해적을 소탕하여 지중해 전역에 팍스 로마나 확립. 63년 '폼페이우스', 오리엔트 평정.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패권하에 들어옴. '카이사르', 호민관 '라비에누스'의 협력으로 최고제사장에 취임. '키케로', 집정관에 취임. '옥타비아누스'가 태어남. 61년 '카이사르', 에스파냐 총독으로 부임. 59년 '카이사르', 집정관에 취임. 율리우스 농지법을 민회에서 가결하여 원로원파에 타격을 가함. 제1차 삼두정치 성립 -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58년~51년 갈리아 전쟁 - '카이사르' 갈리아 정복. 51년 '클레오파트라',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됨. 49년 로마 원로원, '카이사르'에게 '원로원 최종 권고' 결의. '카이사르'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 입성("주사위는 던져졌다!") 48년 파르살로스 회전. 폼페이우스군 완패, 이집트로 건너감.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를 추격, 알렉산드리아로 진출. 47년 '카이사르', 『내전기』 전3권 완성. '카이사르', 소아시아에 상륙, 카파도키아 지방의 젤라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로마에 개선하여 5년 임기의 독재관에 임명됨. 46년 '카이사르', 탑수스 회전에서 스키피오군을 대파. 율리우스력(태양력) 채택. 국립 조폐소 창설. 44년 '안토니우스' 집정관에 취임. '카이사르' 종신독재관 임명 직후 '브루투스' 일당에게 암살 당함. 43년 '옥타비아누스' 집정관에 선출, '카이사르'의 양자 입적을 공인 받음. 제2차 삼두정치 성립 -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 42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 그리스로 출동,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연합군을 격파. 필리피 회전 후, 옥타비아누스는 서부, 안토니우스는 동부를 분담하기로 합의. 41년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초대를 받고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클레오파트라'와 애인관계가 되다. 34년 제2차 삼두정치의 종결. '안토니우스',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선식 거행. 33년 '옥타비아누스', 일리리아 전쟁 개선 기념으로 율리아 수도와 옥타비아 회랑을 건설하고, 공공 건축물을 보수하다. 31년 악티움 해전 발발 - '옥타비아누스'의 승리 30년 '옥타비아누스'의 알렉산드리아 입성 -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자살.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멸망. 29년 '옥타비아누스', 신격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신전을 포로 로마노에 짓겠다고 공표. 28년 '옥타비아누스', '황제묘' 건설에 착수. 원로원을 재편성하여 1천 명이 넘었던 의원수를 다시 600명으로 줄이다. 27년 로마 원로원,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부여하기로 결의. - 원수정(元首政 : 사실상의 제정 체제) 수립 | |
로마제국 (기원전 27년 ~ 서기 395년) | 기원전 26년 '아우구스투스', 이베리아 반도의 완전 제패에 착수. 24년 '아우구스투스', 로마 세계의 서부 재편성을 끝내고 3년 반 만에 로마로 귀환. 23년 '아우구스투스', '호민관 특권'을 요구하여 원로원의 승인을 받다. 화폐제도 개혁에 착수. 22년 '아우구스투스', 밀 확보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빠진 로마에 사재를 털어 밀을 공급. 19년 로마의 국민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사망하다. 18년 '아우구스투스', '간통 및 혼외정사에 관한 율리우스 법' 및 '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 법'을 제정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레피두스'의 후임으로 최고제사장에 선출되다. 12년 '아그리파', 사망하다. 9년 '평화의 제단' 완공되다. 엘베 강과 도나우 강을 잇는 방어선이 성립되다. 8년 '마이케나스', 사망하다. 4년 친로마파인 유대 왕 '헤롯'이 사망하다. 2년 '아우구스투스', 딸 '율리아'를 '간통죄'로 종신 유배형에 처하다. 로마 원로원, '아우구스투스'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수여 서기 4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결정. '티베리우스'의 후계자로 '게르마니쿠스'를 지명. 13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에게 '최고사령권'을 수여하다. 14년 '아우구스투스'와 공동 통치자 '티베리우스'의 이름으로 국세조사를 실시.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을 마무리하다. '아우구스투스' 나폴리에서 사망하다. '티베리우스' 제2대 황제 즉위(재위기간 : 14년~37년) 19년 '게르마니쿠스', 사망하다. 22년 '티베리우스', 아들 '드루수스'의 '호민관 특권' 부여를 원로원에 요청, 동의를 얻다. 23년 '드루수스' 급사하다. 27년 '티베리우스', 카프리 섬에 은둔하다. 37년 '티베리우스', 나폴리 별장에서 사망하다. 향년 77세. '게르마니쿠스'의 셋째아들 '칼리굴라' 제3대 황제 즉위(재위기간 : 37년~41년) 39년 국가 재정 파탄이 명백해지다. 40년 '칼리굴라', 자신에 대한 암살음모 혐의로 누이동생 '아그리피나'와 '율리아 리비아'를 유배하다. 이 무렵부터 원로원 계급과도 대결 상태에 들어가다. 41년 '칼리굴라',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에게 살해되다. 향년 28세. 아내 '카이소니아'와 딸도 동시에 살해되다. 원로원은 '클라우디우스'에게 '칼리굴라'가 갖고 있던 전권을 부여키로 결의하다. '클라우디우스' 제4대 황제 즉위(재위기간 : 41년~54년) 43년 '클라우디우스',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로마군과 합류하여 콜체스터에 입성하다. 브리타니아 속주화에 대한 기본정책을 결정하다. 48년 '클라우디우스'의 처 '메살리나', 중혼죄를 짓고 살해되다. 49년 '클라우디우스', 질녀인 '아그리피나'('칼리굴라'의 누이동생)와 네번째로 결혼하다. '아그리피나', 간통죄로 코르시카 섬에 유배되어 있던 철학자 '세네카'를 아들인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나중의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로 삼기 위해 로마로 부르다. 또한 아들의 무술교사로는 나중에 근위대장이 되는 '부루스'를 임명하다. 50년 '아그리피나', 아들 '도미티우스'를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삼다. 그 후 '도미티우스'의 이름은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되다. 54년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하다. 향년 63세. 같은 날, '네로'가 근위병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받다. '네로' 16세의 나이로 제5대 황제 즉위(재위기간 : 54년~68년) 55년 '네로', 어머니 '아그리피나'에게 반항하기 시작하다. 59년 '네로'가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살해하다. 60년 5년마다 열리는 '네로 제전'이 처음으로 거행되어 성황리에 끝나다. 62년 근위대장 '부루스'가 사망하다. '세네카'가 은퇴하다. '네로', 아내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포파이아 사비나'와 결혼하다. 또한 '옥타비아'를 유배형에 처한 뒤 살해하다. 64년 '네로', 나폴리의 야외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하다. 9일간의 로마 대화재 발생 - 방화 혐의로 기독교도 박해 '네로', '도무스 아우레아' 건설로 시민들의 반감을 사다. 65년 연말에 20∼30명이 가담하여 네로 암살을 획책한 '피소 음모'가 발각되다. 가담자로 의심받은 '세네카'도 자살하다. 66년 청년 장교들이 '네로'를 죽이고 '코르불로'를 제위에 앉히려 한 '베네벤토의 음모'가 발각되다. 68년 원로원, 에스파냐에서 궐기한 '갈바'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다. 로마 시민들이 '식량'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을 계기로 궐기하다. 원로원,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다. '네로' 로마 교외의 은신처에서 자살하다. 69년 '네로' 황제 사망 후 혼란기(네 명의 황제의 해)를 평정하고 '베스파시아누스'가 9번째 황제로 즉위(재위기간 : 69년~79년) 98년 '트라야누스', 제13대 황제에 즉위(재위기간 : 98년~117년) 101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1차 다키아(오늘날의 루마니아) 원정 (101년~102년) 105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2차 다키아 원정 (105년~106년) 117년 '하드리아누스', 제14대 황제에 즉위(재위기간 : 117년~138년) 122년 '하드리아누스 방벽' 건설 - 로마의 속주 브리타니아 방어 목적.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 공동 통치 시작. 169년 '루키우스 베루스' 뇌졸증으로 급사.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전염병으로 사망.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제20대 황제에 즉위(재위기간 : 193년~211년) 194년 '세베루스' 황제의 제1차 페르시아 원정. 197년 '세베루스' 황제의 제2차 페르시아 원정. 211년 '카라칼라', 제21대 황제 즉위(재위기간 : 211년~217년) 212년 '카라칼라' 황제의 '안토니누스 칙령' - 로마 제국 영토 안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칙령. 216년 '카라칼라' 황제, 카라칼라 욕장 건설. 235년~284년 군인 황제 시대의 혼란 - '3세기의 위기' : 49년간 25명의 황제가 즉위.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즉위(재위기간 : 284년~305년)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사두정치 체제 시작. - 제국을 넷으로 분할하여 두 정제(正帝)와 두 부제(副帝)가 각각 분할 통치 함.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기독교도 대박해(~304년) 312년 '콘스탄티누스', 서방 황제에 즉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하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제국을 재통일하고 단독 황제가 되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니케아 공의회를 주재 - 교회 내 분쟁을 조정. 330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이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됨.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망. 379년 '테오도시우스', 동방 황제에 즉위. 394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단독 황제가 되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망. 그의 사망 후 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나뉨. | |
서로마 제국 (395년 ~ 476년) | 서기 395년 '호노리우스('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둘째아들)', 서로마 제국 황제 즉위. (재위기간 : 395년~423년) 401년 북이탈리아에 침입한 서고트족을 격파, 궁정을 로마에서 라벤나로 옮김. 410년 서고트족, 로마 약탈. 418년 서고트족, 이베리아 반도에 왕국 건설. 429년 반달족, 북아프리카를 정복하여 왕국 건설. 455년 반달족, 로마 약탈. 475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서로마 황제 즉위(재위기간 : 475년~476년)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를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폐위시킴. - 서로마 제국 멸망. | |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 (395년 ~ 1453년) | 서기 395년 '아르카디우스('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첫째아들)', 동로마 제국 황제 즉위. (재위기간 : 395년~408년) 408년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 즉위(재위기간 : 408년~450년) 412년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 테오도시우스 성벽 건설(412년~422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즉위(재위기간 : 527년~565년) - 로마 영토 회복에 힘씀. 제국의 전성기를 누림.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성소피아 대성당 재건축 시작(537년 완공) 726년 '레온 3세', 성상 숭배 금지령 발포 1453년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으로 함락. -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멸망. |
로마 건축의 특징
로마 건축은 의장방면에서 그리스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구조방면에서는 에트루리아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리스 건축의 영향은 오더의 사용과 화려한 세부장식을 많이 쓴 점을 통해, 에트루리아의 영향은 아치·볼트 구조 등 그리스에 없었던 건축 요소들이 주로 사용된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로마 건축의 주재료는 돌이었다. 또한 일종의 콘크리트를 발명하여 건축에 많이 사용했으며, 부분적으로는 벽화도 사용했다. 초기의 석조는 사각형의 응회석(凝灰石)을 사용하여 몰타르없이 거석적인 느낌을 주었으나 점차 견석(堅石)을 사용하게 되었다. 기원전 2세기에 화산재인 포졸라나(Pozzolana)와 골재(Aggregate)를 섞어서 강도가 증가한 콘크리트를 발명함에 따라 로마의 건축기술도 더불어 완성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석회, 모래, 물을 혼합한 시멘트가 로마에서 처음 발명되었는데 콘크리트에 사용 된 포졸라나는 방수성의 효과가 있어서 항만이나 다리의 축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더불어 몰타르의 강도가 증가하여 조적조의 구조도 발전하였다.
에트루스칸의 건축에서 유래한 조적식 아치(Arch)와 볼트(Vault) 기법은 돔(Dome)구조로 발전하였다. 아치를 길이 방향으로 확장하면 볼트가 된다. 로마의 볼트는 반원통형 볼트(Barrel vault)와 교차 볼트(Cross vault)로 발전하였는데 구조적으로 우수하여 매우 튼튼한 실용적인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로마 건축기술에서 볼트는 대규모의 건축을 발전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아치는 쐐기 모양의 돌(홍예석)을 곡선형으로 쌓아 올린 형태의 구조로 홍예석의 상호압력으로 상부의 하중을 지탱하거나 중력에 저항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비어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형태가 유지된다.
배럴 볼트는 반원형 아치의 덮개구조로서 아치를 한 방향으로 늘여 만들어지는 가장 단순한 형태이며 한 방향에서는 평면에 대한 적응력이 높다. 반원통형의 양측 벽이 힘을 받으며 위쪽의 하중을 옆으로 흘려보내어 압축력과 인장력을 최소화한다.
교차 볼트는 두 개의 원통볼트를 직각으로 교차시킨 것으로서 아치가 직교하는 두 방향으로 늘여진 모양이다. 교차 볼트를 사용한 실내 천장에는 대각선 방향으로 두 개의 교차선이 만들어져서 배럴볼트의 단점이 보완된다. 그리고 하중이 네 방향으로 분산되어 볼트의 천장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고 나아가 하중은 모서리의 기둥에 집중된다. 교차볼트의 평면은 정사각형 평면이므로 두 개의 축이 생긴다. 따라서 내부 공간의 네 면에는 모두 개구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출입, 채광, 환기에 유리하다.
로마건축에 사용한 표준형 돔은 원형평면위에 얹어서 덮개로 축조하였다. 로마는 원형신전이나 원형무덤의 천장을 돔으로 처리했고 나중에 돔 아래의 원통부인 드럼(Durm)에는 창문을 만들어서 채광용으로 사용하였다. 돔의 꼭대기와 곡면부에서는 아래로 내려앉으려는 힘이 작용한다. 특히 반구형 돔에서 퍼짐응력과 자오선으로 압축력이 작용하여 돔을 지지하는 부분은 바깥쪽으로 흐트러지려고 하는 퍼짐 응력(Hoop tension)이 작용한다.
로마는 초기에 그리스의 주범양식(Order style)인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의 세 가지 오더를 인용하고 투스칸(Tuscan) 오더, 컴포지트(Composite) 오더의 두 가지 오더를 추가한 다섯 가지의 로만 오더(Roman order)를 만들었다.
로마 시대에는 도릭 기둥에도 주초를 사용하고, 주두에는 그리스 양식에 없던 쇠시리(Astragal)를 두르게 되었다. 도릭 기둥에서 세부장식을 모두 제거하면 투스칸 기둥이 된다. 이오닉 기둥은 그리스 시대보다 탄력성이 없어지고 그 소용돌이 모양의 아름다움도 줄어들었다. 화려함을 즐겼던 로마인은 코린티안식 기둥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로마의 코린티안 오더는 그리스의 코린티안 오더에서 주두의 아칸투스(Acanthus) 문양이 점차로 둥글게 변했다. 후에는 독창적으로 조합식 주두의 컴포지트 기둥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상반부에는 이오닉 주두를, 하반부에는 코린티안 주두의 밑부분을 조합한 것으로 티투스(Titus)의 개선문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기둥의 길이는 그리스 시대에 비하여 대체적으로 세장(細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