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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전라북도
-고전독서회 49주년 창립기념행사 특강-
1. 인사말
① 49주년 기념행사에 참여를 하니 감회가 새롭다. 감사합니다.
② 현재 고1학년이 51대, 6대인 나는 대선배이나 20년 정도를 외국에서 살아서 20대 이후 회원들을 거의 몰라서 송구하다.
③학부모, 선배, 동기, 후배들 모든 분들 만난 인연 감사.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 특강 주제와 제목 선정이 어려웠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연령대의 사람들의 관심사와 당면한 과제들 이 다르기 때문에 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쉽지가 않다. 각 연령대 마다 살아온 시 대와 환경이 다르다. 인문적 환경, 정치 경제적 화경, 사회, 가정적 환경 등등이 40년 동안 급 변화해 왔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지천으로 열려져 있는 시대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다양한 배움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사회적 환경 속에 서 사람들은 취미와 과심대로 여가선용과 자원봉사와 직업훈련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 게 되었다. 복잡하고 분주한 삶을 사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쉽고 재미있는 것을 선호한 다. 스스로 독서하고 고민하며 토론을 하는 것보다 인스턴트식품처럼 잘 정리된 글들을 읽 거나 유명 강사의 강의를 선호하는 것이다. 쉽게 산뜻하게 고민 없이 지식과 지혜를 맛보 길 좋아하는 현대인들은 복잡한 책을 기피하며 독서모임도 선뜻 참여하지 않는다.
나는 유명 강사도 아니고 쉽고 재미있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렵고 힘든 역사적 문 제와 오늘 우리의 문제를 주제를 던지는 사람으로서 고전독서회 창립 49주년 모임에 참석 하여 특강을 하는 것이 기쁘다. 시간을 주신 회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늘 모인 10대에서 60대까지의 각자 당면의 과제는 너무 다르다. 은퇴를 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선배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정의와 평등 세상을 지향하는 청운의 꿈을 꾸어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10대 : 대학 진학
20대 : 취업과 연애, 결혼
30대 : 결혼, 육아, 승진, 직업전환의 문제, 주택문제,
40대 : 청소년 자녀 교육문제, 승진, 명예퇴직, 재취업, 질병
50대 : 자녀 진학. 취업 및 결혼, 은퇴, 재취업, 질병, 부모님 병환 및 사망
60대 : 자녀 결혼 및 육아 문제, 은퇴 후 생활 및 여가 선용, 재취업, 질병,
부모님 질병이나 소천. 본인의 죽음을 준비
각 대마다 해야 하는 일과 의무와 책임, 관심사가 달라서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주제가 쉽지 않다. 많은 생각 끝에 우리 모두의 공통점, 공약수를 찾았다. 나이를 떠나서 우리 모두에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개의 공약수, 공통점이 있다.
1)우리들은 독서회에서 책을 읽었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독서회에 가입해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모두 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책이라는 공약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라는 공약수
2)우리들 모두는 과거에 전라북도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거나 아니면 현재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므로 전라북도라는 공약수에 들어 있으므로 전라북도라는공약수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라북도" 라는 공약수
3. 책 선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우리네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산다. 우리는 무한한 시간을 독서에 할애할 수 없다. 그러나 1권의 책에는 그 저자의 인생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통해서 수많은 간접 경험을 하면서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삶의 꿈과 비전을 받을 수 있고, 삶에의 용기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책이나 함부로 읽어서는 안 된다. 나쁜 책은 피하고 좋은 책을 골라서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을 찾아서 우리의 품성을 함양하고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 좋은 책 속에서 진리를 만나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깨달으며 한 인간으로서 구도적인 순례적인 삶을 사는 길을 안내받을 수 있다.
나쁜 책은 우리의 시간과 인생을 훔친다. 저 자신의 책 선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1)독서 계획표를 작성한다.
개인적으로든 독서회적으로든 목적과 방향성이 있는 독서를 기획해야 한다.
모임의 시간, 상황, 수준에 따라서 결정한다. 개인의 시간, 수준, 상황을 참고한다.
동서고금의 책은 물론이고 한국 고전, 역사 서적, 현재 작가들의 서적도 섭렵한다.
청소년 및 청년 시대의 책읽기는 편식보다 계획표를 세우고 골고루 취한다.
2) 반드시 저자의 사상 이력, 경향을 참고하며 책을 선정한다.
이광수, 이인직, 이병도, 이기백, 송호정, 신석호 등- 친일 학자나 작가들의 책은 기피한다.
조선에 대한 폄하, 한국 역사를 황국신민사관으로 오도하는 저자와 글들을 피한다.
적극적 친일, 부일자들의 글을 기피한다. 이광수, 모윤숙, 김활란 등등
인종적 편견과 독선, 우월감이 강한 자들의 글을 피 한다.
서양 역사서들, 철학이나, 헤리티지 재단이 지원해서 나오는 책들도 검증이 필요하다.
잘못된 거짓 책들이 만다. 특히 역사서. 독립운동사, 심리학, 고고학, 건강에 대한 서적 등
3)저자와 책이 쓰여진 시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인형의 집, 적과 흑, 각종 철학서들,
카프카, 까뮈, 사르트르, 솔제니친, 정약용, 박은식, 신채호, 이육사 등등
4)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에 관심을 가져라.
심리적인 위안, 폭로성, 선정적인 내용, 재미있는 말장난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과 정신의 양식이 되는 책을 우선적으로 읽는다. 그런 면에서 스테디 셀러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책들이다.
연애소설, 탐정소설, 무협지 등등 오락성이 강하고 선정적인 책들은 기피하는 것이 좋다.
5)한국인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독서 계획표를 짜도록 한다.
한국인 저서를 무시하고 외국서적, 서구 서적만 선호하는 것은 우리를 문화사대주의자로 만든다.
특졀히 역사서와 정치, 경제서 선택시 유의해햐 한다.
서구 문명에 대한 찬양과 변명으로 일관된 책들에 대하여 조심해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저자의 책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자.
6) 내용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며 이의를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일반독자들이 하바드대, 예일대, 옥스포드대, 케임브리지대 교수들의 글에 무조건적인 찬양과 지지를 발하기 쉽낟.
그들의 생각은 바르고 옳으며 뛰어나고 우수하다는 선입관과 편견으로 책을 읽게되므로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그들이
지식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지식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거나 바르거나 공평하거나 선하지 않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미국 지식인의 시각이지 세계인의 시각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시각도 결코 아니다. 물론 공약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학자가 썼다고 해서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그들의 견해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학력이라는 것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고 도전적으로 책을 읽어라. 그래야 발전과 성장, 변화가 가능하다.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등
다윈의 진화론, 사마천의 사기, 환단고기류의 서적들 등등
적자생존, 양육강식, 자유시장경제 주장하는 책들에게 의문을 가져야 한다.
서구 중심의 역사서, 인문서, 심리학 서적들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야 한다.
중국 중심의 역사서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4. 갑오농민전쟁의 땅! 전라북도의 아픈 역사
전라북도는 민이 나라의 근본임을 깨달은 선각자의 땅이며
백성과 지도자가 하나되어 갑오 동학농민혁명을 시작한 아름다운 땅이다!
1) 개땅쇠의 땅, 전라북도 개요
①위치 및 개요:
전라북도는 호남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남도와 인접하고 있다. 2015년의 인구는 약 187만. 지역의 크기는 7번째 순위고 (땅만 8067KM²)도청 소재지는 전주시이며 서부 신시가지(완산구 효자로)에 도청이 위치해 있다.
전라북도의 현재 슬로건은 '한국 속의 한국, 생동하는 전라북도'다. 도 단위의 행정구역으로는 최초로 연구개발특구를 조성하게 되었으며 새만금개발사업의 중심 지역이다. 또한 탄소산업과 농업 기술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는 곳이다. 관광업 역시 성행하고 있는 중. 강원도, 충청북도,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광역시를 배출하지 못한 도(道) 중 한 곳이며 ‘개땅쇠’라는 말을 듣는 곳으로 한국 역사 속에서 통일 신라 이후로 계속 천대와 소외를 당한 지역이다.
②근현대 역사:
1896년 13도제 시행으로 전라도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할된다. 전라북도는 전라도 53개 군 가운데 전주를 포함한 북부 26개 군[3]을 관할하다가, 1907년 구례군이 전라남도로 편입되고 전라남도에서 고창, 무장, 흥덕 3개 군을 편입하여 28개 군을 관할하게 된다. 1914년 일제가 전국의 군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면서 전라북도의 군은 28개에서 14개로 개편되었고, 군산부(구 옥구부)에서 옥구군이 분리되었다(1부 14군). 이후 해방 이전인 1935년에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해방 직후인 1947년에 익산군 이리읍이 이리부로 승격되었다(3부 14군).[4] 그리고 1963년 박정희 정권 초창기에 금산군이 충청남도로 편입되었고, 익산군 황화면이 논산군에 편입되면서 연무읍으로 바뀌었다(3시 13군).
1980년에 정읍군 정주읍과 남원군 남원읍이, 1989년에 김제군 김제읍이 각각 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도농통합)에 따라 1월에 군산시+옥구군=군산시, 정주시+정읍군=정읍시, 남원시+남원군=남원시, 김제시+김제군=김제시로 통합되었고, 수개월 후 이리시+익산군=익산시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6시 8군).
③경제 :
호남 평야로 유명하다.
옥야천리 들마다 풍년의 노래가 가득한 만큼 탐관오리들의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역시 억압과 수탈을 많이 당하였다. 전군가도는 호남의 쌀을 일본으로수출하기 위한 도로로 건설되었고 군산항은 미곡을 산적하는 항구로서 깃발을 날렸다.
전라북도는 안보산업이요, 생명산업이요, 친자연산업인 농업 외에 내세울만한 유명한 중공업 기업이 거의 없다. 1970년대까지 전라남도도 여수를 빼면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군사독재 정권이 동부 해안도시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산업기반시설을 밀어주었고, 전라북도는 동부산업도시에 노동자를 공급하는 도로서 100여만 명의 인구 감소를 겪어야 했다.
현재 군산에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나 GM 공장, 익산의 OCI와 광전자 공장, 전주-완주의 현대차 버스공장이나 휴비스, 전주페이퍼 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큰 공장이 꽤 있으나 존재감이 거의 없다. 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전라북도는 강원도 충청북도와 함께 GRDP 하위에 있으며 또한 1인당 GRDP는 중하위권 정도다.
재정자립도가 22.1%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하위에 속하고 그래서 도전체 경제력이 수도권의 특정시 하나만도 못하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실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송하진 지사를 비롯한 전북 지역의 자치단체장들은 전북의 주력산업으로 농생명클러스터 산업과 탄소산업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산업화는 충청도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되면서 호남은 철저히 소외되어 버렸기 때문에 호남지역은 평범한 산업화가 아닌 '신소재 산업'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탄소소 산업에 주력하여 지역의 신산업을 개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또한 관광산업을 위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전라북도의 탄소 소재 산업이 정부로부터 적극적인 투자를 받았다. 효성그룹을 주축으로 몇몇 탄소기업이 입주를 신청한 상태이다. 그리고 국가연구소나 공장도 설립되어 한국의 탄소 소재 산업을 이끌만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5번째로 연구특구가 조성되어 탄소 소재 산업과 농생명산업과 미래 먹거리 산업의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앞으로의 전북 향방은 이들의 성공여부에 달린 상태다 그러나 정치경제적으로, 인적자원이 기반이 취약하고 신사업 진행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전라북도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현재 새만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세계적인 투자와 거대행사와 컨퍼런스 유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촛불 시위는 갑오년 동학농민들의 일어섬을 계대하고 있다. 동학농민전쟁을 주도한 역사적인 저력이 있는 민중이 살아있는
"한국 속의 한국, 생동하는 전라북도"를 바라보며 전라북도 역사에 깊이 자리잡힌 동학농민전쟁을 살펴 보고자 한다.
2) 갑오동학농민 전쟁
갑오농민전쟁은 탐관오리 징계, 제폭구민, 보국안민을 목적하였다. 1894년 1월 10일에 시작하여 12월 2일 전봉준장군이 순창 피노리에서 붙잡힘으로서 혁명이 막을 내렸지만 장군은 5번 걸쳐 진행된 법무아문의 공초에서 자기의 혁명에의 소신을 밝혔다.
나는 감히 묻는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한 지도자의 부름에 최소한 1만명의 사람이 군인으로 자원한 시대가 있었는가를! 그리고 그 1만명을 위하여 기꺼이 군량미와 무기를 조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는가를! 원평전투에 모인 3,000명의 농민군들은 이미 일본 무기의 화력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0여명이 농민군을 자원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집에 불을 지르고 온가족과 함께 참여한 농민들도 있었다. 집에 불을 지르는 그들의 비장함을 통해서 조선의 불의하고 비참한 사회상과 농민들의 고통과 고난을 엿볼 수 있다. 근대사의 이정표가 된 농민군과 지도자가 다 전라북도 출신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며 역사의 어둠을 밝히다가 쓰러진 농민군의 후예라는 사실에 긍지를 가진다. 조선을 경천동지하게 만들었던 동학농민군! 집강소를 통해서 정치의 갈 방향을 제시했던 지도자들의 얼이 우리 속에 살아있다.
* 1894년 1월 10일 : 고부 봉기. 이평면 소재지, 말목장터, 사발통문,1000여명 농민군이 집결하였다.
조병갑의 수탈에 저항 공초에서 전봉준이 밝힌 조병갑의 불법과 행약은
만석보 아래 보 조성, 강제노역, 과도한 수세, 홍수로 농사 흉년, 대동미를 추미로 바꿈,
일반 백성들에게 세목에 없는 명목으로 엽전 2만냥 죄값으로 갈취/부친공덕비 갈취했다고 나온다.
* 3월 1일 : 농민군 해산 / 안핵사 이용태 과도 진압, 학살로 소용돌이 치기 시작하였다.
* 3월 20일 1차 무장에서 동학농민전쟁(혁명/ 운동) 시작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창의문 선포
* 4월 2일 조선정부 홍계훈 장군 파병
* 4월 20일 : 고부, 황토현 전투 승리 / 경군 700명 농민군 4000명
* 4월 23일 “ 장성 황룡강전투 승리
* 4월 27일 ; 전주성 입성
* 4월 30일 : 민영준, 청에 군대 파견 요청
* 5월 2일 : 청군, 인천 상륙/ 2800명 정도
* 5월 6일 : 일군 인천 상륙/ 8000명 정도
* 5월 7일 : 전주 화약/ 홍계훈에게 폐정개혁안제출
* 5월 8일 : 전봉준 집강소 설치
* 6월 21일 : 일본군 경복궁 침입
* 7월 1일 : 청일전쟁 발발
* 7월 6일 : 전봉준, 김학진감사 집강소 운영에 서로 협조
김개남 반대, 남원으로 떠남
* 7월 26일 : 조선정부의 갑오개혁
* 8월 17일 : 평양전투에서 일본군 승
*9월 10일 : 농민군 2차 전쟁 선포(운동/ 혁명) 삼례집결 4000명
보국안민 선언
*9월 18일 : 최시형 무력봉기 선언
*10월 13일 : 일본군 농민군 진압시작 (무라타총, 스나이더총)
*11월 8일 : 공주 우금치 전투 패배 / 농민군 1만명 / 3000명/ 500명
*11월 25~27일 : 패주한 500명에 지원병 3000명이 가서 품자형 진으로 전투 시작.
원평전투는 3일 계속 전투 / 구미란마을 42호 중 42호가 페허가 됨
*11월 27일 : 태인전투 후 농민군 해체
*12월 1일 : 최경선 김개남, 체포
*12월 2일 : 전봉준 순창피노리에서 체포
*12월 27일 ; 관군, 일본군 서울 귀환
189년 2월 9일 : 농민군 지도자 3월 10일까지 공초. 법무아문에서 공초
대전회통 형전에 근거 사형 선고/ 일본영사 우치다 사다즈치
서광범, 법무아문대신, 협판 이재정, 참의 장박, 주사 김기조, 오용묵
*3월 29일 : 교수형 /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등 / 갑오개혁에 근거한 재판 참수 마지막 날
에 사형에 처함, 그들은 조선의 법으로 교수형을 받은 최후의 사람들이 되었다. 사형 당시 전봉준 41세, 손화중 35세, 최경선37세의 나이였으며 그들의 죽음으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는 민의 자각을 막을 수 없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게도 전봉준은 갑신졍병을 일으킨 사람 중의 1명인 서광범이 1894년 7월에
대사면을 받고 미국에서 돌아와 법무아문의 대신이 되었을 때 전봉준장군과 최경선장군, 손화중장군이 그와 그 아래 법무아문 관료들에게 재판을 받았다.(공초), 조선을 살리기 위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한 사람은 정변을 일으키는데 가담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십여년의 긴 준비 끝에 혁명을 시작하였지만 그 사람들의 말로는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은 양반 사대부 관료 가문의 사람이었고고 다른 사람들은 향촌 농민 계급 출신이었다.
동학전쟁의 피해자에 대한 통계가 많이 다르다.
**피해자에 대한 기록 :
오지영 동학사 - 40만명
천도교창건사 - 20만명
박은식의 한국통사 - 30만명
당시 조선 인구 - 천만 명 미만
세 기록자의 기록을 참고해서 전라북도의 희생을 추정해 본다. 당시 전라북도는 운봉을 제하고 모든 지역이 농민전쟁을 지지하였으며 지원하였고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전쟁에 직접 침여한 숫자는 공주 전투시 농민군이 1만 명에 이른 것과 최후 전투나 다름이 없는 원평전투시 3000여명이 모인 것으로 볼 때 13,000여 명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많은 희생자는 전쟁이 끝난 후에 양반 사대부들이 민보군을 만들어서 혁명에 가담한 농민들과 가족의 사람들, 마을 사람들, 노비들을 대량학살하였기 때문이며 일본군과 관군의 무자비한 진압과 민간인에 대한 학살에 기인된다.
**박은식의 한국통사에 이하면 전라북도 희생자는 최대치 20만명, 최소치 10만명으로 추정된다. 전라북도는 동학농민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으나 다시 의병 운동에 뛰어든다.
3) 의병 전쟁
* 1기 의병 - 1894년 일본의 경복궁 침입과 일본군의 주둔에 대한 항의, 민비 시해
/ 강원도 , 경북 유림 중심
* 2기 의병 - 1905년 을사조약, 전국 유림
* 3기 의병 - 1907년 고종 퇴위, 헤이그밀사사건 전후 / 전국유림/ 특히 호남유림
1909년 호남유림 1000명이 죽임당하였다.
* 3기 의병은 1910년 기점으로 해서 만주로 집단 이주- 독립운동 전개
**1907년 8월 - 1911년 6월 / 2,852회, 전쟁/ 의병전투병력 14만 1815명/
**총 의병 희생자는 18000여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토오 히로부미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고종에게 전쟁을 선포하라고 윽박질렀으나
고종은 전쟁 선포를 끝까지 거부하였다.
일본은 세계를 향해서 조선의 간청에 의한 평화로운 조약으로 식민지 통치한다고 세계에 알 림, 테어도오 루즈벨트도 전쟁도 없이 망한 나라는 도울 가치가 없다고 망언을 하였으며, 당시 카쓰라 태프트 조약을 맺어 일본의 한국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였다.
**전라북도희생자는 최대치 6000명에서 3000명로 추정이 가능하다.
전라북도의 인구는 급감하였다. 3.1운동이나 독립투쟁에 참여가 미약한 이유는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요인이 크다.
다음은 녹두장군 전봉준, 송화중, 김개남이 발의한 창의문의 끝 부분이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라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가 망하는도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생각지 아니하고 밖으로 향제(鄕第)를 설치하여 오로지 제 몸만을 위하고 부질없이 국록만을 도적질하는 것이 그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일지라도 나라에 몸 붙여 사는 자라 국가의 위망을 좌시할 수가 없다. 팔로(八路)가 동심하고 수많은 인민이 뜻을 모아 이제 여기에 의기(義旗)를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사생의 맹세를 하노라.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 만한 일이기는 하나 경동하지 말고 각자 그 업에 안착하여 다 같이 태평세월을 빌고 함께 임금의 덕화를 입게 된다면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노라.”
다음은 농민군과 전봉준이 이원회에게 제출한 페정개혁안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오지영의 <<동학사>>에 나오는 폐정개혁안 12개조로 이 폐정개혁안은 집강소의 강령에 해당하는 것이며 국사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폐정개혁안 14개조로는 농민군이 1894년 5월 7일 정부군과 전주화약을 체결한 후, 5월 11일경 순변사 이원회에게 제출한 것이다. 전라도 유행등 원정우순변사 이원회(全羅道儒生等原情于巡邊使李元會)
1. 군정(軍政). 환정(環政). 세정(稅政) 삼정을 『대동통편』법례에 의하여 준 행할 것.
2. 진고(賑庫)는 한 도 내 인민의 고혈을 짜낸 것이지 곧 혁파할 것.
3. 전보(電報)는 민간에 폐가 많으니 철파할 것.
4. 연해와 내륙지방에 신설한 각종 세전(稅錢)은 모두 혁파할 것.
5. 환곡미 중 전임 관찰사가 거두어들인 것은 다시 징수하지 말 것.
6. 각 읍의 탐관오리는 모두 쫓아낼 것.
7. 각 읍 재정 중 원래 예산 외에 별도로 설정한 것은 모두 혁파할 것.
8. 각 읍의 각 창고물종은 시가에 따라 사들일 것.
9. 각 읍 아전을 임명할 때 금전 받는 관례는 시행하지 말 것.
10. 각 포구에서 미곡무역하는 상인을 일체 금단할 것.
11. 윤선(輪船)으로 조세를 상납한 이후 매 결(結)당 추가 부담한 미(米)가 3, 4말에 이르니 즉시 혁파할 것.
12. 각 읍의 진부결(陳浮結)은 영원히 장부에서 삭제할 것
13. 각 처의 임방(任房) 명색은 모두 혁파할 것.
14. 각 궁방의 윤회결(輪回結)은 모두 혁파할 것
나는 갑오농민혁명의 땅인 전라북도를 사랑하며 백성이 스스로 눈을 뜨고 행동한 땅인 전라북도 도민으로서 긍지를 가지며 갑오농민의 정신과 의병정신이 한국 역사를 면면히 새롭게 하리라 믿는다.
전라북도가 한국은 물론이고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 "정의와 평등 세상을 부르짖었던 농민군들"의 신념에 근거한 도정을 운영하며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에 "함께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수출하는 아름다운 땅이 돠길 기원한다. 전봉준 장군이 있어서 부패와 매국으로 치욕스러운 우리 근대사는 빛이 나며 전라북도는 소리없이 생동하며 지상하며 꿈틀거린다.
4. 강의를 마치며
책과 전라북도 라는 두 개의 공약수로 모인 우리 회원님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느낀다. 49년이라는 역사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회가 지역사회에서 크나 큰 변화와 발전의 역사에 주도적인 기여를 못하였지만 앞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기여를 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바르게 일하며 섬기고 있는 선배님들, 동기들, 후배님들을 바라볼 때 감동스럽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회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동반 성장을 하며 하나의 단체로서 변화를 도모코자하는 마음들이 있어왔고 그 생각들이 집결되어 열매를 맺기를 오늘날까지 기다려 왔다.
신임 임원님들이 적극적인 자세, 목적이 있는 열정과 의지적인 노력에 투구하고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회가 개인의 발전과 친목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모임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게 되길 바라며 회원의 한 명으로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한다.
강의를 들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