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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소설> (2012. 제7호)에 발표한 본회 회원 김동민 소설가의
단편소설 " 은빛 목걸이"를 올립니다.
단편소설
은빛 목걸이
김동민
그는 산으로 간다고 했다. 어떤 산인지는 말하지 않고 무작정 산이라고만 했다. 그는 바다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녀는 그를 찾으러 바다로 왔다. 뭍보다도 바다가 차지하는 공간이 넓은 곳이 지구였다. 그녀는 산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
그 디스크 환자의 아내는 방파제로 와서 낚싯대를 던져 놓고 물고기가 입질하기를 기다리는 낙으로 산다고 했다. 그래야만 한이 풀리고 다시 일할 의욕을 찾게 된다고 하는 그 갯마을 아낙은 그러나 어떤 기대를 담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방파제 위에 파여 있는 손바닥만 한 웅덩이 속에는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의 복어와 넙치, 장어 새끼들이 5월의 햇살에 금세 숨이 넘어가는 시늉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 새끼 물고기들을 대신하여 여인에게 물어본다.
"이런 것들도 먹을 수 있어요? 먹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러자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의 여인은 핏기 없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성의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냥 재미로 잡아서 모아 두었다가 떠날 때는 다시 바다로 보내주지요."
"재미라고요? 재미……."
그녀가 난파선을 타고 있는 사람처럼 황당해 하자 여인이 멀뚱한 낯빛을 했다.
"왜요? 내 말이 뭐 잘못된 게 있어요?"
"예? 저, 저, 그게……."
그녀 눈에 여인이 거대한 푸른 산맥같이 비쳤다. 여인 몸 뒤로 가없이 펼쳐진 바다가 일으킨 일시적인 환시 현상인 줄 알면서도 그녀는 갑자기 여인이 무서워졌다. 여인의 보랏빛 치마폭이 노한 파도더미처럼 출렁이면서 웃음소리를 자아낼 것만 같았다. 산으로 떠난다던 말끝에 그가 흘리던, 스타카토처럼 마디마디 끊어지던 웃음소리같이.
"요리조리 파닥거리며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떠날 때까지 함께 있다가 바다로 돌아가는 게 우습잖아요."
"우습다고요? 우습……."
그녀는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오며 내뿜는 숨비소리 같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다가 성질이 급해서 죽으면 불쌍하지 않아요?"
"……."
그러나 여인은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그 말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듯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낚싯대 찌만 응시할 뿐이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있었던 탓에 약간 저리는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장딴지를 몇 번 톡톡 두드렸다. 그런 후에 초승달 모양의 방파제를 따라 저쪽 벤치가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 뒤로 아까 여인이 했던 소리들이 짭짜름한 갯내에 묻어 달라붙었다.
우리 남편이 배 타고 고기 많이 잡아 잘살다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배를 팔고 S중공업에 들어가 몸을 다친 후부터 늘 이렇게 나오게 됐다우.
그녀는 벤치에 가서 천근만근 같은 몸을 힘겹게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벤치 밑에 퍼지르고 앉아 종이도마 위에 물고기를 올려놓고 회를 썰고 있다. 그 모습이 자못 신기하다.
마흔 중턱을 넘긴 듯한 사내가 이제 막 사용을 다 끝낸 칼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듯 하면서 입을 열었다.
"쐬주 한 잔하고 회 한 쌈 입에 넣고 가슈."
그러고는 그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나도 한땐 떵떵거리고 살았다는 말을 불쑥 내뱉었다.
그러자 비슷한 연배의 다른 사내도 뚱딴지같은 소릴 해댔다. 일본 무전기는 성능이 어찌나 좋은지 바다 위에서 뿌려주는 위성을 우리나라에서는 십분의 일도 따라잡지 못한다느니 문화민족이 멀다느니 어쩌니 하며 얼굴뿐만 아니라 눈알까지 벌게졌다.
그녀는 일제日製에 대한 칭찬이 자못 귀에 거슬려 한국 이동전화도 잘 터지고 있다고 항변처럼 말했다. 하지만 사내는 콧방귀를 뀌고 눈까지 흘기며 대뜸 쏘아붙였다.
"아가씨가 바다에서 살아 봤수? 직접 바다에서 생활해 보지 않으면 그 성능을 말할 수 없지. 왜놈들이 그런 것은 기똥차게 잘 만든다니까?"
이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항해 시절을 회상하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구든 말로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회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소주잔을 입술에 대고 마시는 시늉만 하고 소주는 벤치 뒤쪽 잔디에게 주고는 돌아섰다. 어쩌면 잔디도 취하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파제로 되돌아오면서 보니 낚시꾼들은 물고기가 물어주지 않는다고 연방 구시렁구시렁하고 있다. 그녀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아니다. 아까 본 그 생선 회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낯가죽도 두껍지. 남자 한 사람도 직장에 붙어 있기 힘든 요새 세상에, 부부가 같은 회사에 함께 다니겠다고? 우리 회사가 저희 족벌 회산가?"
"그래도 백 부장은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빛이라도 보이는데, 신 과장은 오히려 위풍당당한 모습이잖아?"
"여자 낯바대기가 남자보다 훨씬 두껍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고."
"세상에, 남편 보고 하는 말이, 나가려면 니가 나가라! 나는 절대 못 나간다! 그렇게 버틴다면서?"
"설마? 여자가 남자한테 그러까?"
"평소 사무실에서 악착같이 일하는 모습 보면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아."
그녀 등 뒤에 대고 사무실 직원들은 쑥덕거리곤 했다. 마치 벌레 씹은 상판으로, 아니 그녀를 벌레 보듯 하며. 처음에는 안됐다는 빛을 보여주던 부하 직원들도 어느새 상사들에게서 전염당했는지, 아니면 네가 안 나가면 내가 나가야 한다는 위기의식 탓인지, 출근 때나 퇴근 시간에 인사는커녕 눈도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주위에 눈을 돌린다. 배 위에 앉아 있는 노파는 바람이 일렁이면서 물고기들이 입질을 하지 않는 사실이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내 황금어장의 고기들이 잘도 피해 다니고 있어 내가 챙길 몫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에 휘파람이라도 불어댈 것 같다.
마침내 휴일을 맞아 낚시를 하러 온 직장인들이 하나 둘씩 포기하기 시작한다. 노파는 배에 있어도 물속에 있으니 위협도 느끼지 않고 잘도 돌아다니는 가자미, 도다리, 새우 따위 숫자를 미리 세어 둔다. 낚시꾼들이 허탕을 치면 으레 흥정을 해올 것이고 그때 이 녀석들을 팔아넘겨야 한다. 그리하여 얼마까지 받으면 바가지 씌워 판 것이고, 조금 이익만 볼라치면 얼마이고, 재수가 없어 본전 받고 팔면 얼마까지라는 속셈 계산법에 익숙해진 지도 오래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다.
"할매!"
드디어 낚시꾼들이 말을 걸어온다.
"고기 있소?"
노파는 일부러 심드렁하고 귀찮다는 기색을 내보이며 짧게 대답한다.
"있수."
다음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쩐지 찢긴 기폭을 흔드는 바람소리 같은 느낌을 준다.
"얼마나 있소?"
노파는 주름진 목을 돌려가며 좁은 배 안을 휘 둘러보고 나서 말한다.
"우리 배는 황금어장이라 댁들이 달라는 대로 무진장 있수."
낚시꾼들이 와그르르 웃는다.
"그 배가 황금어장이라고요? 할매가 텔레비전에 나가도 되겠구먼."
"맞아. 한국 코미디 역사를 새로 써야 될 판인 걸."
그러나 물고기 값을 묻는 낚시꾼들에게 돌아오는 노파 대답은 코미디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가자미 열 마리에 10만 원!"
누군가가 손사래를 친다.
"아유, 너무 비싸요, 비싸. 손바닥보다 작은 것들을……."
이번에는 단호한 음성이다.
"그럼 관 두슈."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노파가 먼저 입을 연다.
"오도리 열여덟 마리가 있는데, 열다섯 마리에 15만 원만 내슈!"
그러자 누군가 낮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린다.
"오도리? 그 일본말 좀 안 쓰면 어디 덧나나? 싱싱한 새우라고 하면, 새우가 금방 물이 가기라도 하는감?"
그러고 나서 그는 대뜸 내뱉는다.
"할매, 오늘 바가지 씌울 작정하고 오신 거욧!"
일행들도 한통속으로 거든다.
"바가지도 쇠바가지군 그래."
"저 바닷물을 몽땅 퍼 담아도 다 못 채울 바가지야."
낚시꾼들은 일단 배에서 철수한다. 그러고는 노파 귀에 자기들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와서 작전을 짠다. 팀장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 직원에게 지시한다.
"어이, 우선효 씨. 가서 흥정 한번 해 보라고. 바다곰이니 실수는 없겠지?"
우선효라는 사람은 곰같이 큰 덩치를 흔들며 말한다.
"염려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이 바다곰이 누굽니까? 흥정 하나 빼면 그냥……."
그녀는 더한층 귀를 틀어막고 싶다. 흥정. 글쎄, 그런 것도 흥정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다. 회사가 빼든 칼……. 이쪽은 종이방패조차도 없다.
우선효라는 남자는 다시 갑판 위로 올라가서 거기 물에서 요동치고 있는 싱싱한 새우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노파는 이미 셈을 다 해놓은 상태인지라 딴전만 피고 있다. 무식하게 말할수록 가격 폭은 커지게 돼 있다. 또한 한 번쯤은 그 값으로 안 판다고 튕겨야 돈도 튄다는 것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그녀는 비록 그 노파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그것을 안다.
어쨌거나 옥포해전 방파제에서 바가지전쟁이 붙은 것이다. 바다곰이 싸게 사올 것인지 노파 속셈이 맞아떨어져 바가지를 씌울 것인지에 모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방파제에 남아 있던 낚시꾼들도 훈수를 둔다.
"할매요! 그냥 떠리미(떨이)해서 파이소. 해도 지는데……."
그러나 노파는 더 큰소리로 안 된다며 수세미 같은 목을 흔들어댄다. 그런 노파에게선 고래 심줄 같은 힘이 느껴진다.
"이거 잡으러 바다에 가면 팍팍 낚이는 게 아니여. 당신들이 몇 마리나 끌어올렸는지 확인도 해 봤잖수? 그래 놓고도……."
"허어, 참."
"난 오늘 못 팔면 내일 팔아도 끄떡 없수. 이렇게 팔팔 뛰는 놈들을 보라구."
"팔팔? 팔팔올림픽 지난 지가 얼만데……."
급기야 방파제에서 훈수를 두던 팀장이 결전決戰을 전한다. 바다곰 우선효에게 적당히 해서 몇 마리 건져 오라고 재촉을 한다. 우선효에게 바다곰이란 별명이 붙여진 것은, 잠수하면 바다 속 물고기와 해삼, 멍게, 성게 등을 한 자루씩 끌고 나온다고 해서이다. 그녀는 나중에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바다곰도 할 수 없이 노파 계산대로 오도리 열다섯 마리에 15만 원을 줄 테니 나머지 세 마리도 덤으로 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한 번 씨익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하라고 못 이기는 척 따라주는 노파다.
"그러면 이것은 됐고……."
바다곰이 또 제안한다. 저기 세 마리밖에 없는 도다리는 그냥 3만원에 하자고. 그것도 바다곰 생각대로 3만 원에 낙찰된다.
그녀는 노파 얼굴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음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소리 없이 웃는다. 그러나 바다곰은 의기양양하다. 제 뜻대로 싱싱한 새우 세 마리 더 얻고 도다리는 떠리미로 3만 원에 하여 18만 원으로 마무리했으니, 바다낚시는 허탕을 쳤지만 입맛은 다시고 떠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눈을 찡긋하기까지 한다.
사실 바다낚시 오기 전에 그는 이 바다곰만 있으면 옥포해전 앞의 방파제 황금어장은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허풍을 떨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까딱했으면 직장으로 돌아가서 당할 수모도 면했으니 말이다. 그녀 생각이 그렇다.
"여보, 이번에는 정말 안 되겠어. 피해갈 길이 없다고."
그는 패장敗將처럼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왜 피할 길이 없어요? 서로 얼굴만 안 보면 되잖아요."
"그게, 그게 말이나 돼?"
그녀는 붉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안 돼요, 말이?"
회사에서 내린 처분은 실로 가증스럽고도 주도면밀하였다. 같은 사무실 안, 그것도 부부가 서로 마주 보게 자리를 배치한 것이다. 그녀 귀에 지사장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 놓으면 더는 못 버틸 테니 두고 봐. 둘 중 하나는 떨어져 나가겠지.
그녀는 자신의 몸이 가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느낌에 손을 내밀어 움켜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끝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뿐이었다.
"당당하게 행동해요. 우리가 죄 지은 건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무언 속에 감춰져 있는 말을 들었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텐데…….
그녀는 소리쳤다, 속으로.
당신이나 나나 너무 빨리 승진한 게 죄라면 죄예요.
그러나 이런 소리는 속으로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나 나나 직장을 가정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온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 아이를 낳아 기를 시간도 아까워할 정도로 직장에 충성을 다한 벌…….
그녀는 벤치 쪽으로 가서 그 회칼을 집어들고 싶은 충동에 치를 떤다. 그 칼로 산을 가르고 바다를 가르고……. 그리고 또 무엇을 가를까.
눈알이 빠지는 듯 아파온다. 억지로 눈을 치뜨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윽고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의기양양하게 방파제로 돌아오는 바다곰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가 들고 있는 투망 소쿠리에 꽂힌다. 노파 얼굴에선 밝은 햇살과 그보다 더 밝은 미소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바다곰은 종이를 펴고 그새 어디서 구해왔는지 생선 회칼로 멋스럽게 생선 껍질을 벗겨내고 회를 썰기 시작한다. 여남은이나 되는 사람들이 종이회판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싱싱한 새우 한 마리씩을 들고 초장에 묻혀 강하게 저항하는 그놈을 놓치지 않고 입으로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 하면, 바라만 보고 있는 그녀에게도 건네주면서 초집에 묻혀 먹어보면 기찬 맛이라고 권한다. 엉겁결에 입속으로 넣고 오물거려 보니 오동통한 살이 입속에서도 살아움직이는 것 같더니 목구멍을 통과할 땐 예사 맛이 아니다.
"이런 거 처음 먹어보지요?"
바다곰이 회를 썰다가 그녀를 힐끗 보며 말을 건넨다. 오동통한 맛과 바다 내음이 함께 어울려 환상적인 맛이라며 그는 엄지를 자기 얼굴 앞에 들이댄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팀장이 또 한 마리를 초장에 푹 찍어 그녀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먹지 못하고 있다고 그녀가 사양하자,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도다리가 또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한다. 바다곰은 그 말이 떨어져 흙 묻을까 겁나서 얼른 받아 걸친다.
"그 할매가 얼마나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지. 내가 갔으니까 오도리 세 마리 덤으로 가져왔지, 도다리 떠리미로 3만 원에 가져올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이 갔으면 어림도 없소."
"그러게 바다곰이지."
옆에서 누군가 맞장구친다. 몇 날 며칠 기다려 바다낚시 선수들 따라가서 팔짝팔짝 뛰는 회를 먹어볼 거라고 귓밥 만지고 기다렸는데, 어찌 그렇게 한 마리도 못 낚았느냐고 핀잔을 주니까, 한 직원이 까만 비닐 봉투에 숨겨둔 주먹만 한 복어 한 마리와 노래미 한 마리를 끄집어낸다.
그러고는 오늘 대어는 이것이구나! 하면서, 복어는 예뻐서 살려 보내주고 노래미는 썰어서 먹자고 바다곰에게 건네준다. 바다곰이 껍질을 벗기고 맛있게 담아온 생선회를 들고 와서 앉으면서, 그래도 한 쟁반은 되니까 10만 원은 된다고 자랑하는 등 오늘의 바다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녀는 혼란스럽다. 바다곰이란 남자 몸 위에 지사장 몸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그의 몸이 덧씌워지기도 하고, 그녀 몸이 엎어지기도 한다.
모두 입맛을 다시면서 안주 삼아 한 마디씩 한다. 한 젓갈씩 해 봅시다, 우리. 커어! 술맛이 꿀맛이구먼. 햇살 아래에서 방파제에 앉아서 먹는 생선회 맛을 어디에 비길 것인고? 천당이 따로 없다니까. 그럼 지옥은 따로 있나?
생선회 한 점을 먹고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그 맛에 모두 빠져 있다. 회사도 저렇게 쌈에 싸서 소주 한 잔으로 싹 목구멍으로 넘겨버릴 수 있다면. 혀끝이 얼얼할, 아니 입 안이 온통 타버릴 정도로 매운 고추장이면 더 좋겠지.
자아, 또 자금을 마련해야 노래방도 가고 2차, 3차도 하지. 판 벌려라, 판 벌려.
누가 준비해 왔는지 화투판이 벌어진다. 러닝만 입고 앉은 사람, 옆에서 개평 뜯는 사람, 훈수 두는 사람, 완전 세상 축소판이다.
화투판에서 화내기는 있어도 썽내기는 없기다? 그냥 조용히 치자. 아따! 이런 바다소리 바람소리 쐬면서 화투짝을 놓을 때는 아무 소리 없이 치면 도둑놈 심보들로 화투치는 거라고. 소리치면서 화투를 쳐야 친선 화투 놀음이 되는 것이제. 남의 돈 따먹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계산해서 치면 스트레스 풀러 온 것이 아니고 스트레스 쌓여 한 방에 가는 것이여. 오늘만은 옥포해전에서 스트레스 확 날려 삐리자꼬.
그녀는 달아나고 싶어진다. 수천수만의 자화상들이다. 그의 모습들이다. 그는 산으로 간다고 했는데 왜 바다에 와 있지? 그녀는 바다를 노려보며 마음의 입으로 고함친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는 산으로 가버릴 거야.
그의 음성이 예리한 날이 되어 그녀 가슴을 찔러온다.
"그래, 좋아. 좋다구. 명퇴는 자살행위라 그 말이지? 하긴 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네? 우리가 어디 한두 번 들어본 소리였어야지."
"……."
"그러면 내가 죽지 뭐. 여자한테 밀려 직장을 그만둔 사내라는 소리는 죽기보다 더 싫으니까."
"……."
"도대체 직장이란 게 뭐지? 먹고살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그 직장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기 위해 엄마 품 같은 바다로 뛰어든다? 하하하."
"세상은 바다밖에 없어요? 산도 있잖아요."
그러나 지금 그녀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바다 풍경 일색이다. 배 위에 앉아서 낚시꾼들의 허탕질에 기대어 바다의 은빛 햇살을 즐기던 노파는 떠나고 배만 남아 출렁이고 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배. 그 배를 바라보다가 친할머니를 만난다.
친할머니는 남해섬 출신이다. 늘 일하는 손을 꿈꾸며 살았다. 숟가락 몽둥이 하나라도 장만해 오지 않으면 남해 금산이 운다는 속설을 들려주던 할머니는, 아까 그 노파처럼 바가지를 씌워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결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속설을 되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노파의 계산속을 훤히 꿰뚫어본 것도 친할머니의 장삿속을 늘 보아온 때문이다. 목숨 걸고 건져온 생선들을 비싼 값으로 파는 것이 장땡이라는 것이다. 작은 키에 주먹보다 약간 큰 갸름한 얼굴의 할머니. 남해 여자들이 시집가서 야물게 잘사는 이유는 생활력이 강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을 그녀는 어른이 되고 난 후에 깨달았다.
남해섬에서 온 할머니는 하동 뭍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해섬 사람들은 장날이면 생선이나 여러 가지 해산물을 팔러 하동으로 왔다. 그러고는 떠날 때는 정거장처럼 들렀다 가는 곳이 친할머니 집이다. 막걸리도 한잔하고 섬소식도 전해주고 떠나는 남해 사람들의 향우애. 속곳에 커다란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손을 푹 집어넣어 돈을 꺼내서는 치마를 덮은 후에 돈 한 닢을 그집 손녀에게 주면서 늘 이러곤 했다.
"공부 잘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니네 할머니가 심성도 좋고 저렇게 열심히 사시니, 그 손주들도 어련히 착하게 잘 살까?"
"그래도 더 착하고 열심히 공부하거래이."
그렇게 남해섬 사람들의 덕담과 애정 묻은 돈 한 닢이 그녀를 성실한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덕담대로 공부도 1등, 달리기도 1등, 중학교 배구부의 주장 선수(공부를 위해 운동을 접었지만), 잘나가는 통신업체 입사 등으로 보답을 해왔다.
섬사람들의 끈질김으로 삼촌은 수산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고, 늘 발을 동동거리며 모아 둔 돈을 신문지가 벌어지도록 싸서 지원했던 큰며느리(그녀 어머니)와 시동생의 관계도 섬사람들의 강한 가족애로 버티어 왔던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텅 빈 배와 출렁이는 바다를 멍하니 주시하다가 그녀의 대리 시절 직장 상사였던 허 과장도 만난다. 그는 함양이라는 산골로 전보되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바다가 그리워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1년 동안 고통스러워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바람소리마저도 바다의 환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 명인名人으로서 언제나 귀에 철썩이는 바닷소리에 가슴을 부여안고 바닷바람을 쐬기 위해 주말마다 통영으로 달려갔다 오면 좀 숨 쉬고 살 것 같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다사람과 예술의 혼은 그렇게 하나로 살아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창고 앞에서 펼쳐지는 노천 영화 상영관은 늘 구경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광목 같은 큰 천으로 만들어진 영화 상영관에 들어가기 위해 일찌감치 밥을 먹고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고 허탕을 치는 판이니 아버지로선 돈도 꽤 많이 벌은 셈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어린 시절엔 늘 손에 돈을 쥐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술, 화투, 외도로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애지중지했다. 아버지와 함께 찾은 남해섬의 푸른 바다가 눈물 솟게 맑고 아름다워 시인이 되려고도 했다. 우연히 문학인들과 함께 찾았던 남해섬. 거기 소나무와 백사장, 달빛 받은 조가비, 돌담을 돌며 어릴 적 추억에 잠기던 밤.
그 여인은 왜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낚시를 하고 있을까. 이곳에 와서 낚시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낚시광인가. 아니면 물고기인가, 인어공주인가.
잠시 후, 그녀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해양박물관 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어쩌면 그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 동백꽃과 열대식물은 해양박물관의 얼굴마담처럼 관광객들에게 손짓을 한다.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빛이 마치 눈웃음을 치는 듯하다.
해양박물관에 전시된 바다 역사와 함께한 인물들, 도구들, 생활 터전들. 한쪽에선 해양어류들이 바다 속인 줄 착각하고 활기찬 물 가르기 놀이를 한다. 대형어장이라 그렇게 느낄 정도의 쾌적한 환경이긴 하다.
일본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안내원 목소리 또한 활기차다. 해양박물관에 관한 벤치마킹 차 방문했다고 한다. 한국어로 안내하는 안내원의 말을 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신호를 보낸다. 망원경으로 한참 바다를 구경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짧은 대화를 가지기도 한다.
짧게 자른 주변머리가 어쩐지 삼면이 절벽인 듯한 느낌을 주는 오십 대 일본인 하나가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고는 막 포로수용소로 떠나려는 차를 타면서 함께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서투른 한국말 솜씨에도 그는 한국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게 마냥 유쾌한 모양이다. 그녀가 손을 내젓자 그는 서운하다는 빛을 띤다. 그 모습이 아무래도 가식인 것 같아 그녀는 얼른 몸을 돌려세우고 만다.
선창가 방파제로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화투놀음은 계속되고 있다. 바닷가에서 술, 회, 음담패설, 욕설, 저항 섞인 소리 쏟아내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모양이다. 그녀가 나타나자 어디 갔다 왔느냐,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관심 있어 하는 소리인지 화투 치면서 심심풀이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들만 날아왔다.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는데…….
그녀는 방파제 위에서 수평선 바다를 보며 바다낚시를 떠난다는 연선이 선배를 만난다. 혼자 사는 자신의 유일한 탈출구가 바다낚시라고 영웅처럼 호탕하게 웃고 떠나던 모습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바다낚시 하면 숨통이 트인다고, 그 매력에 빠져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녀 가슴에 바닷바람을 지피던 그 선배는 늦게 결혼해서 1년을 못 넘기고 이혼한다.
김호철 과장도 시간만 나면 바다낚시를 즐겼다. 광풍으로 바다에 쏠려 들어갈 뻔한 일도 아름다운 추억인 양 맛깔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다 큰일 나실 수도 있잖아요?"
그는 갑자기 심드렁한 표정이 되며 말했다.
"바위에 몸을 매달고 낚시하는 재미는 그만큼 값어치가 있으니까요. 고기 잡는 재미는 목숨을 걸고 낚시하는 맛을 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화투짝을 들고 다섯 명이 화투방석 주위에 둘러앉아 놀음에 집중하면서도 간헐적으로 바다를 내다보면서, 바다가 보여야 운이 따른다고 하던 김 과장이었다.
"난 안 그래. 산이 보여야 운이 따르더라고."
그가 하던 말도 떠오른다. 그가 노름을 즐기던 사람이었던가. 모르겠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바다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것인가.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제발 그렇게 되길 바라는 형편없는 소망 같은 것.
그녀는 시린 가슴으로 보고 듣는다. 방파제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그 사이를 거니는 연인들, 바닷물에 귀를 적시듯 들려오는 엄마의 소리, 소리들. 아빠의 바다 친구들인 숭어, 도다리, 광어…….
충무 앞바다를 바라보며 3년을 다니면서 노을빛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저 바다가 없었다면 그녀는 더 슬픈 출퇴근길을 다녔을 것이다. 노을과 섬과 파도 앞에서 우울한 일상을 털어내고 기쁜 마음으로 귀가하곤 했다. 충무김밥이 생각나면 바닷가에서 2대째 김밥을 말고 있는 집을 찾았다.
*
바다는 환생인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방파제 밑의 테트라포트들이 서로 엉겨 붙어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거대한 네 개의 뿔 모양의 그 구조물은 왠지 사람 마음을 버겁게 한다. 부딪치는 파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표면이 아주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릴 광경이 펼쳐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용케 그 테트라포트에 올라가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함성을 지르는 장발의 청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인인 듯한 갈색머리 젊은 여자가 그를 향해 연방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한다.
저, 저러면 위험할 텐데……?
그녀는 불안했다. 어쩐지 예감도 좋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급기야 그녀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청년이 올라서 있던 테트라포트에서 다른 테트라포트로 옮겨가려다가 그만 사고가 터진 것이다. 발을 헛디디고 만 것이다.
"악!"
젊은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그녀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특히 조수 간만에 의해 잠겼다가 드러나는 위치에 있는 테트라포트에는 파래 같은 해초류가 붙어 자라기 때문에 매우 미끄럽기 마련이었다. 해초를 밟으면 미끄러져 크게 다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갯바위는 위험하다고 인식하여 조심하지만 테트라포트 방파제는 안전한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누가 신고한 걸까. 삐뽀! 삐뽀! 하는 경보음과 함께 119구급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휴대폰 덕택에 그렇게 빨리 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년은 목숨만은 건질 수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엄청난 마음의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영원히 치유 불가능한 바다기피증으로.
어쨌든 그들 연인은 구급차에 실려 곧장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던 바닷가에는 다시 바다 속 같은 고요가 밀려들었다.
그녀는 홀연 전율했다. 정말이지 이런 고요는 싫다.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언제나 지금 같은 침묵이 끼어들곤 했다. 누구든 먼저 입을 여는 쪽이 진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고나 할까. 그의 말처럼 그럴 때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사다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으로 발을 옮긴다. 거기서 바라본 눈부신 은빛 바다에 기어이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태양이 내려준 은광에 눈이 부시다 못해 쓰릴 정도다. 해석 찾기, 언제나 바다 같은 엄마의 품,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바다를 한 번씩 찾는 사람, 바다에서 해수욕이나 즐기고 떠나는 사람, 바닷가를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바다를 찾고, 그곳에서 화투를 치는 사람들, 일본 사람들, 그리고 그녀. 바다는 세상을 씻어 내린다.
바다의 영광을 위한 많은 도구들이 널려 있다. 그녀는 파도가 척척 갈라지는 쾌거를 맛보며 머리카락을 날리며 등에는 지느러미를 달아 본다. 아니, 바닷가에 서면 누구나 물고기가 된다. 태양의 파트너들을 만난다.
"엄마, 저 은빛 바다 좀 보세요."
"그래, 보기 좋구나."
"저 은빛 구슬들을 모아서 엄마 목걸이를 해 드리고 싶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목은 은빛으로 눈부셔서 아무도 볼 수가 없을 거야."
"그럼 투명인간이네? 야, 신나겠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바다의 은빛에 너의 눈을 고정시켜 봐라. 태양이 주는 저 은빛이 눈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오늘 내내 저 은빛만 바라봐야겠네요."
"넌 언제나 욕심보야. 그 은빛은 너의 욕심대로 오랫동안 자기를 볼 수 없게 할걸?"
"아, 싫어요. 그런 게 어딨어?"
"눈이 부셔서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봐야 한단다. 조물주가 잘 만들어 놓았단다. 귀한 것은 조금만 맛보게 하고, 그래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피이, 엄마는 아들만 귀하다고 늘 불면 하늘로 날아갈까 땅으로 꺼질까 노심초사하시는 걸 저는 아는데요, 뭘."
"내가 자식 사랑을 숨기고 또 숨기면서 아무도 모르게 가슴에 품은 그 사랑을 끄집어내어 보곤 했는데 그걸 네가 훔쳐보고 있었구나. 요 엉큼한 것!"
"그냥 보인 거예요."
"그래? 그런데 어쩌겠냐? 자식사랑은 저 바다에 출렁이는 은빛처럼 영원한 것이야. 태양이 있는 한 말이다. 아니지. 태양이 사라지더라도……."
"우리 엄마 과학자다! 아니, 시인이다!"
"자식도 부모가 있는 한 영원한 부모사랑의 빛이 은빛으로 전달되는 것이지. 은가락지 낀 손에 뺨을 맞으라고 했듯이, 은빛은 어떤 부의 상징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세상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랑의 빛이라고들 한단다."
"난 돈도 벌고 멋진 사람도 만날 거예요. 두고보시라고요."
"자, 지금부터는 이따위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저기 붙어 있는 굴이나 한 번 돌로 깨서 끄집어내 와 봐라. 바다에 오면 그 기찬 맛은 뺄 수 없는 추억거리이지."
"엄마, 저기 밀려오는 것이 파래가 아닌가요?"
"아니, 그 옆엔 미역도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네, 미역하고 파래도 있어요. 파도가 밀고 왔나 봐요."
"얼른 뜯어 와라. 오늘 저녁 밥상을 바다상으로 한번 걸게 차려 보자."
딸은 신바람이 났다. 엄마는 추억의 바다상을 차려 보겠다고 바위에 밀려온 파래와 미역을 뜯기 시작한다.
엄마는 바위가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고 타이르지만 딸은 겁 없이 파도가 가져다놓은 파래와 미역에 정신 팔려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기면서 비닐 팩에 가득 담아 온다. 엄마는 오늘 저녁 밥상은 걸게 먹게 생겼다고 웃으신다.
바다의 노을을 좋아했던 엄마, 당신이 보고 싶어 이렇게 미친 듯이 달려온 바다바다는 은빛 그대로이고 파래와 미역은 파도에 밀려 바위에 걸터앉아 있건만 엄마는 없다. 말씀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아니다. 바다낚시, 파래며 미역 뜯는 사람들, 그 속에 엄마의 소리는 남아 맴돌고 있다. 엄마의 웃음이 파도를 타고 와서 그녀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한다. 물새들을 좋아하며 훠이훠이 손짓하던 엄마를 볼 수가 없어 물새와 함께 운다. 파도도 운다.
엄마는 여수 오동도의 동백을 좋아했다. 해풍을 맞아 푸르름이 투명한 은빛이 내려앉은 듯한 그곳의 동백을 좋아했다. 동백꽃이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던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일까. 맹감을 따먹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더라는 말씀을 자식들에게 들려주던 때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바다는 이런 추억을 훔쳐간다. 지워 버린다. 포개 버린다. 엄마의 꿈은 한낱 소꿉장난이었다고,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소비하지 말라고 냉정히 쏘아댄다. 다시 시작하라고. 인생의 이모작을 위해 갑판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금강산 갔다 오다가 들른 울릉도 밤바다의 그 파도.
진미장어집의 여주인. 남편은 관광선 선주, 여동생은 우울증 환자.
"우리 집안에서 제일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는데 저렇게 우울증이 심해서 남편이 애를 먹고 있어요."
"정말 영리했지요. 당연히 우리집 보배였고……."
앞바다에 정착한 배들, 그 위를 나는 갈매기들.
바다에 얽힌 스토리, 정보, 기억의 저편 조각들. 엄마는 물고기 스페셜이나 특집을 좋아했다. 와서 보라고 하신다. 물고기도 스트레스 받으면 지쳐 죽으니까 얼굴 펴고 웃고 살라고 주문하신다.
말레이시아의 바다에서 물고기와 함께 놀면서 수영하도록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오리발과 물안경을 받아 자신이 부정맥환자임도 잊어버리고 물고기들과 오랫동안 술래잡기를 했었다. 그뿐인가. 젊은 후배가 수영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현장 교습을 하기도 했다. 그랬었는데, 그땐 그런 열성과 남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는데.
물에 발을 담그고 발 위에 과자를 던지면 그것을 먹으러 몰려드는 고기떼들이 발을 간지럽게 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웃고 야단 난리들이었다. 그녀 고향 남쪽 바다에서는 생업에 쫓기는 어부들의 투쟁이 눈물겹도록 힘든 현장인데 비해, 그곳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어 한 코스를 지나면 또 다른 놀이터가 나타나곤 했었다.
웃고 즐기고 다시 찾고 싶은 바다관광 명소를 만들기 위해 2시간짜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엔 두려움이 앞섰다. 하동에서 충무 갈 때 배를 탔는데 멀미도 하고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가슴 졸였던 바다인가.
다음 코스는 여섯 명의 팀원들이 바다에 버려진다. 모두는 다시 그 보트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그러고는 이내 올라오지 못한 사람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손은 보트에 매달린 끈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팀원들을 구하는 게임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심장이 멎어버릴 수 있는 위험에 접한다. 그래도 그 스릴 넘치는 바다게임을 놓칠 수 없어 도전하고 또 정착하고 다시 따라나선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다음 코스인 백사장은 조개껍질로 되어 있었다. 조개사장이다. 조가비가 바다 물결로 잘게 부서져 모래알처럼 되어 있는 해변가에서 조개 팩을 하는 사람, 조개사장에 목만 내놓고 찜질을 하는 사람, 그들 곁을 지나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손바닥 두 개 크기만 한 바닷게를 먹는다. 맛은 한국의 게맛을 따라올 수 없이 퍼석거린다.
다음 코스는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하게 된다. 찌를 끼워주는 안내원들이 있어 관광객들은 낚시를 바다에 던져 넣기만 하면 물고기가 물게 돼 있다. 잘 조련된 물고기들이 입질을 금방 금방 해댄다. 모두는 2시간 정도를 그 바다낚시로 즐긴다.
이윽고 이국의 낙조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붉은 기운은 사람 몸보다 마음을 더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무연히 들었다.
"저는 노을을 보면 붉은 평행선이 생각나지요. 어쩐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의 선 같은 것 말입니다."
그녀는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붉은 신음처럼 말했다.
"영원히 섞여 분리되지 않는 물감이라고 보면 안 되나요?"
……그곳은 그녀가 그와 처음 만난 여행지였다.
*
어둠이 바다를 삼켜버렸다. 낙조를 보지 못했다. 낚시꾼들과 회를 먹던 사람들, 디스크 환자의 아내와 머리 좋은 노파도 돌아가고 없다. 갈매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바다와 어둠 그리고 그녀뿐.
그런데 그녀가 막 방파제 위로 올라가 껌껌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어쩌면…… 뛰어내리기 직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바다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경보음들이 있었다. 아까 밝을 때 보았던 119구급차와 역시 이마에 붉은 등을 단 경찰 순찰차가 서로 경주라도 하듯 그녀가 있는 방파제 옆을 지나쳐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간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들었다. 119구급차에선지 경찰 순찰차에선지 그것은 확실히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차들 중 하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전기로 다급하게 주고받는 소리였다. 그녀는 그만 발목 꺾인 사슴처럼 방파제 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남자야? 뭐? 이미 늦은 것 같다구? 젠장! 물고기 뱃속이 제 엄마 뱃속인 줄 아는 자들이 왜 이리 많은 거야? 바다를 없애버리든지 해야지."
*
김동민│전경련소설현상공모 및 《월간문학》 당선. 2005년을 대표하는 문제소설 작가 및 길 위의 인문학 추천도서 선정. 《경남일보》 대하소설 〈돌아오는 꽃〉 연재. 장편소설 《박연피리소리》 외 6권, 창작집 《빨간 이발관》 외 3권, 평론집 《창조적 문학비평》 외 1권, 평전 《꼼쟁이 할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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