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도 인도 빈곤층의 백내장 치료를 위한 ‘ARAVIND EYE CARE SYSTEM’을 설립한 벤카타스와미(Venkataswamy, 닥터 V)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맛있는 햄버거를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맥도날드의 대량생산시스템에 감명을 받아 이를 자신의 사명을 위해 활용하고자 했다. 아라빈드에 대한 이 유명한 이야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치즈와 패티가 오가는 작업대 위의 안구를 떠올리는 어이없고도 위험한 상상을 한번쯤 해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닥터 V가 이를 통해 의료라는 서비스 운영에 제조 및 생산관리시스템을 적용시켜 해마다 70%의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해주면서 40%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아라빈드는 의료계 사회적 기업의 거장으로 자리잡아 많은 사례를 남겨왔다. 선의의 사명감 위에 얹은 생산관리 시스템이 생산관리의 4가지 목표(Cost, Quality, Delivery, Productivity)를 효과적으로 달성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조직의 효율과 고객만족을 이뤄낸 것이다.
기술개발이라는 근본적인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COST REDUTION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실명의 80%는 백내장 때문인데, 이는 혼탁해진 수정체를 투명한 인공수정체로 교체하는 간단한 시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벤카타스와미는 초반에 인공수정체를 기부 받아 빈곤층들의 백내장을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번 기부 받는 인공수정체의 수량에 따라 치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수가 크게 영향을 받고, 수정체를 기부 받는다 하더라도 치료비 및 입원비는 빈곤층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나에 100달러를 호가하는 인공수정체 구입은 더더욱 힘들었다. 선한 사명감으로만 뛰어들었던 닥터 V는 ‘이윤 없이는 가난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없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업의 지속성을 위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그가 첫 번째로 택한 방법은 ‘원가절감’이었다.
원가를 혁신적으로 절감하고자 닥터 V가 택한 방법은 자체적인 인공수정체 제작이었다. 이를 위해 인공수정체 개발을 위한 연구소인 ‘AURO랩’을 설립하여 인공수정체 대량 생산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아라빈드 자체적으로 인공수정체를 낮은 단가에 대량으로 수급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생산되어 한 개에 100달러 이상의 높은 가격에 들여와야 했던 인공수정체의 단가를 2-3달러로 낮춘 것이다. 그 결과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는 파격적으로 낮아졌으며, 대량의 수정체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게 함으로써 빈곤층의 시력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었다. 또한 대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도 남는 수량은 수출을 하여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이는 원료의 자체수급을 통한 원가절감이라는 제조업적 시각을 철저히 의료서비스에 적용한 결과이다. 현재 AURO랩 에서는 1년에 70만개의 수정체를 생산하며, 이는 전세계 인공수정체 시장의 6%를 차지한다. 이러한 아라빈드의 근본적인 원가절감은 단순한 할인이나 품질 희생을 통해 저소득층시장(bottom of the pyramid)을 공략하고자 하는 현대의 많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혁신에 가까운 효율화가 필수임을 일깨워준다.
표준화를 통한 신속한 서비스의 제공과 질적 향상-QUALITY & DELIVERY
하지만 기존의 의료시스템으로는 대량의 인공수정체로 수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은 인도에서만 5개의 직영병원과 30개 이상의 Care Center를 가졌지만, 초반의 아라빈드는 고작 11개의 침대만이 놓여진 작은 병실이었다. 자신들이 제작한 대량의 인공수정체로 시력문제를 겪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혁신이 필요했다. 닥터 V는 시스템적 사고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품 제작 과정으로 보며 이를 표준화, 전문화시켰다. Ford사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조립라인은 대규모 생산, 즉 수많은 환자의 치료를 가능하게 했다. 닥터 V는 진찰에서 수술까지 모든 단계를 표준화했다. 접수단계에는 고졸 인력을 채용했으며 간단한 진찰 과정에는 경험이 적은 의사를 활용해 경험을 쌓도록 하였다.
또한 수술실에서는 의사 1명과 간호사 4명이 한 조가 되어 수술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한 수술실에 두 수술대가 있어 의사는 시간낭비 없이 한 수술이 끝나면 바로 옆의 환자를 수술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작업자가 주어진 작업을 지체 없이 반복해나가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반복은 의사들이 자신들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원칙을 정하고 지킴으로써 가능했다.
또한 환자들의 불필요한 대기시간을 줄일 수가 있다. 이러한 진료 시스템을 통해 연 백만 여명 이상의 환자들이 아라빈드에서 치료를 받으며 약 30만 건의 수술이 집도된다. 이렇게 해서 누적된 환자만 1억 명이 넘으며 그 중 200만 명 이상이 백내장 수술 환자이다. 위와 같은 어마어마한 임상경험은 의료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표준화를 통해 의사 1명은 매년 약 2천여 건의 백내장 수술을 집도하며 순수 진료에만 집중함으로써 그들의 전문성과 명성을 높여나갈 수 있다. 이는 값싼 속성치료가 아닌, 낮은 가격으로 높은 수준의 안과서비스가 보장되는 합리적인 의료 시스템인 것이다.
사명이 만들어낸 2의 생산성-PRODUCTIVITY
그렇다면 이 저렴하고도 질 높은 진료만을 1년에 수백만 건 본다고 해서 70%의 환자에게 무상 치료를 제공하고 40% 이상의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그들의 이윤을 지속시켜주는 요인은 따로 있었다. 아라빈드는 의료용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수요자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을 취했다. 소득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높은 진료비를 책정하고, 소득이 낮은 환자들은 진료비의 3분의 1정도를 내거나 아예 무상으로 진료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이러한 차등을 둔 진료비 책정은 환자의 공식적인 수입을 증명할 수 있는 절차가 없이 진행된다. 돈이 많은 사람도 빈곤층으로 속여 무료 진료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라빈드의 명성과 발전된 의료시스템, 그리고 빈곤층에게 혜택을 제공하고자 하는 선한 목표를 인지한 부유한 환자들은 사회에 기부를 하듯 일정 수준 이상의 진료비를 기꺼이 부담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전체의 30%인 부유한 환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진료비를 내고, 나머지 70%의 환자들은 부유한 환자들이 낸 진료비를 통해 일부 혹은 전체 지원을 받게 된다. 이들이 제공한 서비스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1차적인 생산성을 넘어서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도울 수 있는 2차적 생산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성의 증대는 결국 아라빈드의 의료 서비스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자체의 증대를 가져왔다. 개개인이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지가 어려운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요자에 따라 의료 서비스의 가격에 차등을 두는 방식은 ‘아라빈드 모델’로 자리잡았으며 좋은 선례로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 150여 곳에서 이러한 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의료서비스는 개인에 맞는 진찰과 치료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개인에게 맞춰져 제공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아라빈드는 이러한 의료 서비스를 마치 제조상품처럼 분업화ㆍ표준화하여 비용, 질,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불어 고차원적인 생산성을 갖추도록 했다. 의료 서비스 운영에 생산관리시스템을 적용시켜 조직의 효율과 고객의 만족을 모두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단순한 이익 창출을 위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사명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기 위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아라빈드는 굳이 원가를 낮추기 위해 인공수정체를 직접 만들 노력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전달하기 위해 표준화를 통한 빠른 진료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필요한 시각장애를 없애겠다는 그들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보다 더 큰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포용하고 발전시키며 사회의 이익을 꾀할 수 있는 더욱 더 발전된 형태의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임이 분명하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위해 쓰일 돈이라면, 부가가치의 창출과 생산성의 극대화라는 다분히 자본주의적 구호도 Weconomy(We+Economy, ‘우리’가 주인공인 자본주의)라는 단어로 선(善)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