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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큰누님 81회 생신을 맞이하다~~~~
언 제 ; 2013년 음력시월열아흐레
계시는곳 ;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리 419-2
계사년 시월달 가을의 정취가 물신 풍기는 계절에 나에게는 부모님 같은 큰누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집사람과 적은누님 모시고 큰누님댁으로 향했다.
매년 생신때에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다녀오는 곳이지만 금년에는 평소에 건강보다
나빠지셔서 걸음을 짝지에 의존하시는 모습이 아~~ 많이 늙으셨구나를 느겪으며
특히나 21세에 시집와서 60년의 대장정을 다른곳으로는 별로 움직이지 않으시고 한곳에서
유년시절(20대~30대), 중년시절(30대~50대), 한창 젊은시절(50대~60대),
마지막 늙은 모습시절(60대~80대)의 스크린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주셨다.
큰누님의 생애를 간략하게 여기다 실어보려고 이런 이야기 ,저런이야기들을
누님께 물어서 대강 기억나는 되로 중간 중간에 실어 봅니다.
누님댁 들어가는 동리 어귀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큰누님 19세에 어머님 운명하시고 물론 적은누님은 10살 아래(9살)
나는 적은누님보다 4살아래(5살) 정말 억안이 막히는 순간 우리 삼남매는 누님의 말씀에
눈에는 눈물이 핑돌고 잠시 슬픔에 잠겼다가 다시 큰누님은 말씀하신다.
앞에 집이 있고 옆에 큰집들이 있어서 정면에서 담기가 어려워 비스듬이 담아 보았다
큰누님 21세(1953년) 2월에 전통혼례를 하였는데, 그것도 울산 이화에 문화류씨 가문
물론 할아버지(세미할아버지)가 양반곳이라고 하여 어머님 돌아가시고 2년도 채 가시기
전인데 윗어른분들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혼인을 하고 그해 10월 시집을 오셨다고
하셨다. 물론 삼남매는 눈물에 얼룩진 얼굴을 맞대고 많이도 울었다고 이야기하시면서
눈에는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셨는지 눈물이 글썽인다.
1985년도에 새로 지으신 2층 양옥집
시집이라는 이곳에 오니 가사가 너무도 가난하여 밥지을 쌀은 커녕, 보리쌀도 없으니
또 가슴이 미여지드라는 이야기시다. 어떻게 양식을 마련할까 연구끝에 처녀때 배워온
글(주로 초상때 올리는 제문)을 동리에다 이야기를 퍼뜨러 작품 한점을 써주시고
보리쌀 몇되로 몇일을 연명하고, 또 떨어지면 이웃에 장내(몇말이나 몇가마를 꾸어먹고
그 배를 주는일)를 내려니 믿을만한게 없어서 줄수가 없다하니 적막강산이였단다.
남동쪽에서 담아보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 큰누님 나이 이십오세부터는 시조부님이 중풍에 심름하시고
그 다음해에 시조모님도 중풍, 다음해에는 시어른, 시안어른 동시에 중풍이라는 병고.
그래서 사랑채(그것도 기어들고 기어나올 정도의 초가집 아래, 웃채) 큰방에는
시조부님,옆방에는 시조모님 안채 큰방에는 시안어른, 옆방에는 시어른 네분이 중풍으로
계시니 큰누님이 사랑채 두곳, 안채 두곳 번갈아 가면서 대변과 소변을 치우고 죽끄러
올리고 나면 밤이 새는것은 보통이었단다.....
안채 손수로 주어와서 자대를 만들어 놓은 돌장식도 담아 보고~~~
병수발 오~육년 그때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니 그냥 세상을 하직하고픈
이야기하시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핑돌고~~~
크고 작은 돌들을 모으면 마음이 굳건해 진단다.
4~5년을 중풍의 어른들을 한분 두분 해서 네분을 초상치고 나니 계속해서
그때 새형님(큰누님의 남편)께서 부산 어떤 고무공장에 다니시며 약간의 액수를 올려주는
금액으로는 의식주 해결에는 택부족, 식량 걱정이 하루도 끝날 날이 없었단다.
누님이 사용하시는 안방도 담아 보고~~~
당시 아이는 남매 큰누님도 일선에 뛰려고 부산 자갈치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서
서면 주위 범일동, 문현동을 생선을 이고 등에는 애기를 업고 다니시며 팔아 보았으나
별로 도움이 안되어 4년의 세월만 허송하고 큰누님 내외는 고향에 다시 귀착하셨단다.
작은방에 있는 돌장식장도 담고~~~
지혜가 깊으신 큰누님은 새형님(큰누님의 남편)과 의논하여 당신이 13대인가 14대인지는
잘 모르지만 주손이니 문중 묘답을 짓기로 어른분들께 말씀드리니 허락하여
그때부터 주야로 논과 밭에 나가 열심히 경작하고
가을 묘사에 제물(떡이며 과일 도적)을 풍요롭게 하였드니 매년 단조롭던
제물보다 너무 훌륭하다고 칭찬 받으니 새형님(큰누님의 남편)은 좋아서
싱글벙글하시고 큰누님 생각은 식량이 풍부해졌으니 아이들 먹는것도 충분해지고
해서 생각은 다른 , 그르니까 먼 훗날 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은게
가난보다는 잘 살수있도록 해주려고 마음을 다짐하셨다고 하신다.
돌장위에 손자들 사진도 담아 보고~~~
문중에 묘답은 언젠가는 돌려주어야하므로 내 논,밭을 장만하려고 불철주야
움직이면 뭔가 남겠지 하면서 밤낯없이 계속 논밭의 작물들을 손질하여
새벽시장을 누비셨다고 하신다. 물론 울산에는 공업단지가 되여 인구도 많으며
소모되는 량도 많으므로 그것을 이용, 촌에서 나온 식품 계절마다 콩잎,깨잎, 호박잎
미나리, 정구지, 상추, 옥수수, 촌두부 많은 분량을 장만하여 울산 역전 번개새벽시장
(새벽1시에 일어나 준비하여 2시에는 집에서 출발 2시반~3시에 시장에 도착해서)에
가면 시골 순수한 할머니 오셨다 하고 너도 나도 좋아라 하면서 잠시에 모두 넘길수 있었단다.
나중에는 식당에서 단골(일본어 돋구이)하자고 하여서 농작물을 장만 못하여 못팔 정도였다고
하시며 그때 그 시절이 큰누님에게는 돈벼락을 맞은 시기이였다고 상기하신다.
왼쪽은 주방이고 2층 다락방 올라가는 계단도~~~
하시는 말씀이 나는 어려워 남에게 도움을 별로 못받았지만 자신은 농작물을
자식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먹을 정도로 량껏 가져가라고 배풀고
어렵다고 하면 형편되는되로 도우려고 마음 먹으니 자식들이 잘 풀리더라고
미소지으시며 말씀하신다.
나와 적은누님께도 먹을 수있은 만큼 가져가라고 온밭을 맞기신다.
아내와 적은 누님은 10여년을 큰누님께서
(물론 씨뿌리고 물주고 약치고,묶음하고는 생질 내외와, 생질녀 내외가 와서 다하지만)
길러놓은 배추로 김장을 하는데 울산 큰누님댁에서 큰통에다 소금쳐서 쩌린후
32시간후 깨끗이 씻어서 오곤한다.
올해는 날씨도 따뜻하고 비도 안와서 배추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이란다
그르니까 시집오신지 올해로 만60년 대장정을 걸어 오면서 자녀도 많이 두셨고
재산도 놀라울 정도로 모으신 것은 내(본인,큰누님) 생각이 올바르게 그리고
성실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아내와 적은누님은 배추를 고르고 생질(재환)은 경운기로 배추를 집으로 옮기고~~~
그 동안에 울산 역전 번개새벽시장을 40여년을 누비시며 재물도 엄청 많이 모았으며
집안에는 자식이 딸 넷 아들 하나 중에 맡사위는 누님 일가 영일정씨 가문에서 왔고,
둘째와 막내사위는 경주최씨 문중이고, 셋째 사위는 여헌 장현광선생의 후예가 왔으며,
며느리는 지산 조호익 문중에서 왔으니, 나중 내가 누님께 그 집안들에 대하여
아는되로 말씀 드렸드니 매우 좋아 하시며 얼굴에는 미소를 지으셨다.
부지런한 생질(재환)은 현대자동차부설회사에 다니면서 8시간 작업하고 집에 와서는
농사를 다짓는다고 한다. 이날도 경운기로 배추를 밭에서 집으로 옮기는 담당은
자기가 하고, <본인 앞으로 등기된 재산만도 엄청 많다고 큰누님은 은근히 자랑하시고>
갈때마다 벼를 찌어 쌀을 40키로씩 이모와 나에게 주니 고맙고 반갑기
그지없어 서로 정을 주고 받는 것이 보통 생각이 아닌듯 싶어진다.
말씀하시다 사진도 순수한 그대로 한 장면 담고~~~
다음으로 큰누님께서 딸 넷과 아들 하나지만 딸들과 아들내외 모두가 너무 잘해주니
<중간 중간에 사위들의 성씨, 며느리 성씨에 대해서 성값한다고>
그리고 본인 말을 한번도 딸이며 사위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거역하지 않으니
자식은 대견하고 손자 손녀는 귀여워 마음이 흐믓하다고 말씀하신다.
울산 시내 고급 횟집을 예약하여 큰누님 81회 생신을 축하하는 파티가 한창이다.
또한 올해는 증손녀를 둘이나 봤으니 내 생애 요즈음보다 더 기쁠 수가 있겠는가고
말씀하시고 손자,손녀가 몇이냐고 여쭈어 보았드니 손자가 여덟이고 손녀가 둘인데
그 중에 맡딸의 딸(첫손녀)이 시집을 가서 올해 쌍둥이 딸을 생산하니
손자,손녀가 열이고 증손녀가 둘이니 내 가족도 많아졌다고 하시면
싱긋이 웃으신다.
큰누님 사위들과 딸 며느리 그리고 적은누님과 나 또 손자 손녀들이 저녁을 맛있게 먹고~~~
적은누님 모습과 막내사위 내외
(막내사위는 울주군청에서 주사로 있다가 지금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
귀여운 손자들의 모습도~~~
내 모습도 한 장면 넣어 보고~~~
며느리가 회를 시어머님께 권하는 모습도~~~
내 눈에는 큰 애기와 적은 애기 구분이 잘 안된다.
증손녀 경선이와 경서 쌍둥이 모습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손자,손녀들 중 군에간 애, 특근가고, 수험준비하는 관계로 빠지고
여기 모인 손자,손녀들을 모아보았다.
맡손녀와 손서 배서방(쌍둥이 아버지다)
둘다 울산병원 간호원으로 근무한다
술도 담배도 하지않을뿐아니라 성실하고 부지런하기가
어른들 빰을 친단다.
적은누님의 김장이 많아 이모님도 뵙고 김장 가지러 온 홍희주교수
(홍박사는 대학 강의에 바쁘면서도 엄마의 부탁을 재일 잘 들어준단다)
이 집에는 둘째딸은 의학(소아과전문)박사 막내딸은 유아교육학 박사
사위는 의학(안과전문의)박사로 현재 경북대병원에 근무하면서 대학에 교수로
강의하니 무척이나 바쁘다고 한다.
큰누님이 소장하고 계시는 정수경전과 김이명문록이다.
정수경전은 송나라시대의 작성된 글로 어머님이 옮기셨으며, 김이명문록도 전라도
순천 사는 성이 이씨라는분을 두고 작성된 문장들인데 이것도 어머님이 옮겼셨는데
큰누님께서 한겨울 기나긴 밤에 이 책이며 소장하고 계시는 문건들을 읽으신다고
말씀하신다.
정수경전 첫장 어머님의 필적을 여기서 볼 수 있다.
김이명문록도~~~
다음장에 글도 담아 보고~~
사돈지로 적은 어머님(평촌)이 누님시집 갈때 쓰신 글이란다.
제문((1961년 친정 큰아버지(사리골백부) 돌아가시고 큰누님이 지으신 글)
슬픈 감정을 어찌나 잘 표현하셨는지 그리고 무척 길게 지으셔서
지금 들어도 감개무량할 정도이다
아래 작품들은 지금 소장하고 계시는 6편의 제문들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니 화분과 돌들이 새롭게 보여서~~~
겨우 들수 있는 돌들도~~~
무척이나 큰 벌집이 걸렸기에~~~
☆ 큰누님 81회생신 기념촬영을 권장했드니 모든것은 자연스런 분위기가 좋다고
그리고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이 있고 식사후에는 취기가 있어
분위기를 잡을 수 없었는데
적은누님은 자연스런
사진들이 더 좋다고
하셨다.
첫댓글 울산 아지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자세히 담아서 자손들에게 '고생끝에 영광'이온다는 교휸을 배우게 한점이 좋게 보입니다.정말 고생했네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울산 아지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르니 소홀이할배, 개무덤이 아재와 동갑이니 나와도 동갑이네요!
매년 매가로 누나의 생일에 가는 삼강아재의 성의도 놀랍습니다. 삼 남매의 한자라를 한 모습도 아름답습니다.앞으로 다들 더욱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하갈 빕니다.
예 고맙습니다.
어느 시절에는 癸酉生,다음은 단기 4266년,요즈음은 1933년생
이렇게 이름짓는 나이도 여러가지였었는데 아무려나 酉(유) 닭띠생이
인구월연에는 많으셨고 더구나 모제공 후손에 많이도 계셨는데 지금은 한분 두분이
닭띠생분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세월이 정말 유수라지요
긴 글 읽으시고 댓글까지 그리고 항상 칭찬해 주시니 감사한 마음 어찌 보답해야할지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울산할머니 생신을 늦게나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25사변후에 우리집은 전쟁통에 다 타버리고 원산댁 아랫채에 살때 몇년내에 기계할배 내외분,
우리증조모님 세분이 세상을 떠났지요,
우리거처와 담하나 사이에 울산할매 기역은 별로없고 양항할매 남매분이 어린생각에
매일 아침 저녁상석에 곡(울음)그칠 날이 없었지요, 이제야 울산할매 과거사를 알고보니 이해가 가네요,
옛 어른분들은 모두다 어러운 시절이라 고생은 많았지만 고생하신 보람으로 자녀들 휼륭하게 잘키워서
이제 남은여생 보람되게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드립니다,,
참 삼강할배 내외분께서도 두누님에 대한 애증이 본 받을만합니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구려
스레 기억이 나는데 그리고 내가 고집이 조금 세어
무척이나 고맙구려
어릴적 기억은 잘 나지는 않지만
더듬어 보면 집 뒤에 국동형님과 병진이 형제는
싸움을 해도 지고는 억울해서 못 견디는 성격이라 힘은 없으면서
자산(병진)과도 그리고 금성형님과도 많이도 싸웠는데 번번이 힘이
모자라니 질수밖에 없었지 그러면 원산아즈매께서 자산이와 금성형님을
무척이나 나무라며 꾸중을 하시니 나는 더욱 슬퍼서(엄마가 없으니까) 울기도 했었지
그렇게 눈물로 자라온 나이기에 성장해서는 누님 두분께는 더없이 정도 생각도 많이 하여
모든일을 힘이 자라는데까지 같이할려고 마음먹고 살아왔었지
울산누님 81회 생신을 경하드리며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음 하고 마음속으로 크게 축복 드립니다
그어려운시절 부모님 다가시고 삼남매의 장으로 너무 어렵게 살으신누님 그나마도 시집가셔서 그고난가운데 성실과 근면으로 살으셔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수없는 그 고통과 과정이 너무 애달퍼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 누님 이재 누님의 그지극정성 올바르게 살으셔서 하느님께서도 많은 자식들과 수많은 자손들을 주셨으니 건강하게 만수무강하시길
축원드립니다 . 오늘의 누님이 우연이아니고 누님의 삶의 승리였습니다 . 주님께서 이가정에 더욱 큰 은혜배푸셔서 새상모든 이의 모범이 되게 하셨음 합니다.
예큰누님께서는 겁게 해주는건 형님 말씀대로 우연이 아니고
성실과 근면의 결실이라 믿으며
이제야 고생의 보람이 오는듯 가족이
무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채울 수 있는것
같습니다. 숫한 고생을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였었는데
결과가 마음을
삶의 승리이고 이 모든건 하나님이 보살핌이고 그래서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며 올바른 인생 행로를 배우고 익히시며 살아가고 계시는 것이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