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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앵무새의 난독증 조유희 의자 위에 두 개의 오렌지가 놓여 있어요 나는 저 오렌지를 노란 앵무새라 불러요 한 마리는 어제로부터 날아왔고, 또 한 마리는 내일로부터 날아왔어요 어제의 혀가 내일의 혀를 그리워할 때, 당신은 내게 상큼한 거짓말로 다가왔어요 나는 당신을 앵무새라 불렀지요 당신과 나 사이의 간격은 너무 아슬해서 도저히 잡을 수 없어요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한 앵무새는 사ㆍ랑ㆍ해ㆍ사ㆍ랑ㆍ해를 원했어요 그럴 때마다 하나씩 뽑아낸 깃털 때문인지 앵무새는 몇 초마다 각을 세워요 나는 우울한 오렌지를 갖고 싶었지요 구차한 변명 따윈 상관하지 않을래요 잊지 말자는 그 매혹적인 말, 그 말을 따라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제의 의자에 내가 머물지 못한 것은 오늘의 당신이 혼자이기 때문이지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서 오렌지는 앵무새가 되고, 오늘의 의자가 어제의 오렌지를 기억하듯 나도 내일의 앵무새를 기억할래요 오렌지가 오렌지를 사랑하는 오늘밤에 과연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시부문 당선소감/ 조유희> “혼자 아닌 세상 가르침 새길 것” 아코디언 같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행진곡처럼 돌진하였고, 연가처럼 슬퍼서 주저앉았고, 그러다가 심장 박동 같은 운명임을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발견한다. 오후 다섯 시, 휴대전화가 울린다. 나는 얼떨결에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는다. 담당 기자분이 “기쁘지 않느냐”며 되묻는다. 나는 “잠결에 받아서요”라고 대답한다. 시는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자 절대자다. 원고지 같은 당선에 잠시 주춤한다. 혼자 걸어가는 길이기에 나는 두렵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세상과 함께 내게 들려주던 선생님들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정에 동참한다. 나를 아껴준 문우와 원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좌절할 때마다 나를 격려해 준 가족과 형제들에게 감사한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올린다. ■ 약력 1967년 목포 출생 2013 목포문학상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재학 중 <시부문 심사평/ 고은ㆍ최원식> “연애시 빌려 불통의 시대 횡단”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1인의 총 39편이다. 모처럼 따듯한 성탄 전날, 수원본사에서 회동한 심사위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당선작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엘뤼시온」과 「앵무새의 난독증」이 단연 돋보인다는 점에 쉽게 합의했다. 우선 두 후보자 모두 응모작들의 전체적 수준이 비교적 고르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작품들 사이의 비대칭성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면 미래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의 시는 아류로부터 자유롭다. 만만치 않은 시력(詩歷)이 감지됨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어떤 기시감(旣視感)에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하던 작품들에 대한 안타까움 탓에 두 작품이 보여준 자신만의 활달한 어법은 종요롭다. 「엘뤼시온」은 무엇보다 관념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사유능력이 주목된다. “타인의 웅변에 깃들어 살아왔다”로 시작되는 그 서두도 범상치 않지만 남의 시선에 지핀 즉자(卽自)가 그 장막을 찢고 스스로 대자(對自)로 진화하는 정신의 율동을 싱싱하게 보여주는 바가 아름답기조차 한 터다. 그런데 시 후반부로 갈수록 주의적(主意的)인 경구(警句)들이 돌출하여 관념성을 노출하는 게 흠이다. 교훈시 비슷한 경향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다. 「앵무새의 난독증」은 ‘당신’의 유혹에 응답하는 일종의 연애시다. 그렇다고 그냥 익숙한 낭만적 서정시냐 하면 아니다. 지적 조작이 만만치 않다. 리듬과 리듬, 이미지와 이미지, 그리고 논리와 논리 사이의 연락이 마치 재봉 자국이 보이지 않을 만큼 조밀한 터다. 그렇다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시를 지배하는 어조는 기본적으로 해학이다. “어제의 혀가 내일의 혀를 그리워할 때, 당신은 내게 상큼한 거짓말로 다가왔어요”라든가, “잊지 말자는 그 매혹적인 말, 그 말을 따라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처럼 말과 말 사이가 성글다. 그 틈 사이로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실험하는 물음이 솟아오른다. “오렌지가 오렌지를 사랑하는 오늘밤에 과연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연애시를 빌려 이 불통의 시대를 횡단하는 용기를 불사하는 시인의 뜻이 이만큼 절실하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삼는 데 최종 합의하였다. 축하한다. 정진을 바란다. 강원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상강 최영숙 장독대 옆에 살던 뱀은 산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허술해져 경계처럼 빗금을 긋는다 저렇게 주먹 불끈 쥐고 가는 길 너를 향해 가는 고추 벌레 구멍 같은 길 툭 부러지고 싶다 이제 그만 자리 잡고 눕고 싶은 생각 생각은 자면서도 깨어 있을까 꿈틀 나의 손을 치우는 돌서덜 그 돌서덜 위에서 숲은 작은 몸을 하고 툰드라의 바람으로 운다. [당선소감] 비탈길 눈 녹듯 한 우물 판 지 15년 만에 기쁨 만끽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러나 오늘은 눈이 녹아 내린다. 처마 밑에 서서 손을 내밀어 본다. 목숨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21g의 무게가 줄어든다 한다. 한 방울의 몸, 차고 가볍다. 응달의 눈은 여전히 녹지 않는다. 눈을 치우며 보니 내가 다니는 곳만 눈이 두께로 앉아 있다. 이 넓은 세상에 소심한 나의 발자국이 어둑어둑 보인다. 어두워지도록 눈을 치우고 있는데 당선 소식이 왔다. 일시에 얼었던 몸이 쫙 녹아내리는 듯, 불꽃으로 타오른다. 너무 기뻤다. 이 길에 들어선 지 어언 15년 만의 기쁨이다. 한 우물을 파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몸은 어느새 하늘로 둥둥 떠 찬 비탈길 눈을 다 녹인다. 이 길을 걷는데 가끔 발목을 걸던 남편에게도, 그리고 늘 힘을 실어 준 나의 아이들과, 한림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교수님과 교우들, 빛글문학 동인들, 홍천문협회원님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 최영숙(58) △ 양구군 生 △ 한림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수료 [심사평] 군더더기 없이 행간의 여백 만드는 솜씨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을 상회했고 개성적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조의 경우, 시와 시조가 한 자리에서 경합한다는 점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응모작이 늘고 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시조의 율격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와 시적 언술에 미치지 못하거나 진부한 소재와 발상을 보여 아쉬웠다. 시의 경우, 좋은 작품이 많아 즐거운 고민을 하는 가운데 의구심도 있었다. 새로운 독법을 요구하는 듯 보이는 낯설게하기가 지나친 기교주의로 흐른다는 느낌. 비틀리고 장황한 언술들을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 공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최종에 오른 작품은 `적멸보궁', `디딤돌이 있는 풍경', `모서리의 비밀', `상강'이었다. `적멸보궁'은 사유의 깊이와 묘사력이 돋보였으나 참신성과 독창성이 부족했다. `디딤돌이 있는 풍경'은 한 폭의 동화를 보는 듯 시상이 맑고 깨끗하게 다가왔으나 시는 사상과 형식의 등가물이란 점에서 볼 때 내면적 깊이가 약했고, `모서리의 비밀'은 전체를 견인하는 결미의 주제의식이 부족했다. 최종적으로 최영숙의 `상강'은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은 가운데 산뜻하게 응축된 시상이 참신하고 진정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다가와 당선작으로 올렸다. 상강 절기의 자연이법을 선명한 이미지로 포착하면서 고도의 상상력과 직관으로 군더더기 없이 행간의 여백을 만드는 솜씨가 탁월했다. 함께 응모한 `풍장' 역시 절제된 비유와 표현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영예의 당선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시인으로서 대성하길 축원 드린다. 이영춘·홍성란 시인 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체면 오서윤 막, 죽음을 넘어선 지점을 감추려 서둘러 흰 천으로 덮어놓고 있던 익사자 최초의 조문이 빙 둘러서 있다 발을 덮지 않는 것은 죽은 자의 상징일까 얼굴은 다 덮고 발을 내놓고 있다 다 끌어올려도 꼭 모자라는 내력이 있다 태어날 때 가장 늦게 나온 발 저 맨발은 결국 물을 밟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복사기처럼 훑던 흰 천 끝내 남은 미련을 뚝 끊듯 발목에 걸쳐져 있는 체면 가시밭길을 걷고 있거나 아니면 용케 빠져나와 눈밭을 지났거나 물길을 걷다가 수습되어 왔을 것이다 발은 죽어서도 끊임없이 걷고 있어 덮지 않는 것일까 만약에 발까지 덮어놓았다면 자루이거나 작은 목선 한 척이었을 것이다 경계는 저 물 속이 아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곳인지 모른다 발이 나와 있으므로 익사자다 고통도 화장도 다 지워진 얼굴은 체면이 없다 누군가 흰 천을 끌어당겨 체면을 덮어준 것이다 친구와 며칠 전에 본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세계관이 던진 메시지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이 마법이 되는 순간을 부러워하고 있을 즈음, 마법처럼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당선 통보였습니다. 삶의 단면에 몇 번은 마법과도 같은 기적이 끼어드는가 봅니다. 제게 아주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십대에 칠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던 일곱 권의 일기장입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뭔가 해낼 거라고. 그러나 특별하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문학이라는 마법에 걸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3학년 때 당선된 대학 문학상은 영원히 마법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는 더 강한 주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나태해져가는 일상을 깨운 것은 바닥에 납죽 엎드려 무릎을 꿇은 채로 시를 썼던 백일장이었습니다. 시를 향한 저의 최초의 경배이자 초심이기도 하지요. 시는 벅찬 동행이었고 선물이었습니다. 또 나를 기다리는 시, 통증의 두께와 깊이밖에 내세울 게 없지만 더 세게 끌어안겠습니다. 작년에 경남신문 최종심에 올랐습니다. 올해, 제게 주신 당선의 영광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과 남편과 두 아들, 두목회 동인, 이재무 선생님과 손광성 선생님, 선희 언니와 김주, 신공나라 문우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작품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과 경남신문에 허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겸허와 초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드립니다. △1958년 대구 출생 △국민대학교 졸업 △2011년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2013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 응모작들은 대부분 일상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생활에 밀착하면서도 소통과 공감에 주력하는 시들이 많았다.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을 내면화하여 구체적인 실감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으나 타인의 삶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점은 아쉬웠다는 것이 심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사람들이 투고하는 것이 신춘문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응모작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도와 신인으로서의 새로움, 진지하면서도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을 선택하자는 합의를 거쳐 이서빈, 문민철, 오서윤 씨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이서빈 씨의 뒤집기는 유비적인 상상력을 사용하여 아이의 첫 뒤집기와 노모의 화투패 뒤집기를 겹쳐 놓음으로써 탄생과 소멸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비적 상상력이 주는 단순함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문민철 씨 작품의 경우 거침 없는 화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자신만의 문체로 이끌어가는 힘도 좋았다. 신인다운 패기가 큰 장점이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었다. 심사자들은 어떤 이견도 없이 오서윤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택하였다. 오서윤 씨는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인식의 힘을 보여주었다.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고 시의 호흡을 잘 조절하고 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선작 ‘체면’은 익사자를 덮은 흰 천에서 삐져나온 발을 통해 삶과 죽음, 인간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태어날 때 가장 늦게 나온 발’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으며, 발의 드러냄과 감춤이 인간의 근본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통해 몸과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시이다. 고통스럽지만 기쁜,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시의 길에 들어선 것을 축하드리며 한국 시단을 빛낼 소중한 시인이 되시길 바란다. <심사위원 최영철 배한봉 장만호>
불교신문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바람의 사슬 심수자 거미도 없는 빈 거미줄이 도처에 무성하다 초읍동 일층 단칸방에 살다가 얇은 요위에서 오년 만에 발견된 독거노인은 백골이다 산동네 좁은 골목길이 얼키고 설켜 커다란 거미 한 마리쯤은 키웠겠다 한 생을 다한 그녀는 거미 몸에 들어 자신을 갇히게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풀어낸 실로 여리고 성을 쌓은 것이다 방 한쪽 구석엔 냄비와 그릇 두어개 빈 가스버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 한 겹 두 겹 아홉 겹 까지 껴입은 옷은 추위 멈추고 싶은 몸부림 이었겠지 무뎌진 낮과 밤의 경계에서 이끼는 바닥의 습기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녀가 백골이 되어 가면서 곤충들 더 이상 걸려들지 않을 때 거미는 자신을 걸어둘 장치로 바람 속에 집을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도처에 걸린 거미줄이 내 얼굴에 닿을 때 초읍동 반 마장 거리의 파도 자락은 이미 떠나고 없는 배의 후미인 듯 거미집 바람벽을 밀고 있었다
당선소감 / 심수자 쓸쓸한 누군가에게 한 모금의 물을 건네라는 현몽인가 … 엊그제 집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뼈에 금이 갔습니다. 지난 밤, 절뚝이며 시인을 꿈꾸는 문우들과 송년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을 만났습니다. 눈 오는 날이 흔하지 않은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눈이 전봇대 아래 내다놓은 연탄재들을 꽃무덤으로 피우는 고뇌의 순간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눈이 덮은 것은 연탄재이거나 한생을 다한 여러 쓰레기들이란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몇 걸음 더 옮기는 곳에서는 눈의 무게에 눌린 측백나무도 안타깝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받아내는 모습이란, 시를 생각하는 내게 길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밤 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눈은 녹겠지요. 버리기 위해 내다 놓은 것들도 더 측은해 지겠지요. 나무의 뿌리는 갈증의 목을 축이겠지요. 다리가 부러질 땐 헛꿈을 꾸지 말라는 계시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눈이 남은 아침에 나는 당선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세상의 어지러움을 손발과 정신이 시리도록 하얗게 문질러서 서럽고 쓸쓸한 누군가에게 한 모금 물을 건네라는 계시로 받아 들여야겠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늦었다는 생각도 지우겠습니다. 사는 일에 골몰하다 미루어둔 문학의 꿈을 이루도록 물가로 인도하느라 애써주신 대구시창작원 박윤배 선생님과 뒤를 묵묵히 지켜봐주신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형상시 문우들 먼저 신춘 문을 열게 됨에 왠지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뽑아주신 선생님들의 건강을 늘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애독하는 불교신문사의 번창을 기원 드립니다. 시 심사평 / 고은 이 시대를 실감케 하다 또 이 일을 맡았다. 가는 해 끝자락에서 만난 시가 새해의 시로 태어나는 일에 나도 설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많은 응모작들을 예선이라는 체로 걸러서 나에게 온 것들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숨찼다. 작자는 멀리 칠레까지도 가 있고 오세아니아의 어디에도 가 있는 화자(話者)로 등장한다. 지난 시대의 상습적인 고향타령은 이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이 시의 깊이보다 넓이 쪽으로 기울어지는 함정이 되기로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의 경향들이 더 바람직할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시의 길은 세상 안에서나 자아 안에서나 쉬운 노릇이 아니다. 예선작의 소감이 더 있다. 첫째 어떤 작자의 태도가 자신의 언어를 불손하게 다루고 있는 사실이다. 토속말로 우자부리는 수작이었다. 이런 현상 말고도 의식과잉이 자주 보였다. 그 과잉이 현학적인 기분이나 내고 있을 때는 눈살을 찌푸리게 될 만하다. 20세기 모더니즘 공과론에서 과(過)쪽에 속할 것이다. 지적인 분식은 어떤 경우에는 시 속의 죄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월과 백석으로 돌아가라는 정서소급을 위한 독려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저것 고르고 고르다가 6편이 남았다. ‘일출역동기’, ‘꿈의 잔영’, ‘내 데칼꼬마니’, ‘어머님, 그 해 가을은 행복했습니다’, ‘엇갈림’, ‘몸뻬바지’, ‘바람의 사슬’이다. ‘일출역동기’는 비교적 탄탄한 구문으로 되었다. 하지만 시가 표현이 아니라 해설이 될 위험이 있다. 긴 호흡은 장점이다. ‘꿈의 잔영’, ‘내 데깔꼬마니’는 시의 맛을 터득한 작품이다. 앞으로 시인생활이 보장되는 그런 작품이다. 다만 치열성이 뒤따라야겠다. ‘어머님, 그해 가을은 행복했습니다’는 풍성한 울림을 가진 작품이다. 그리고 쉽다. 서정의 힘은 지식의 조각 나열 따위나 은유의 자폐증 따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어딘지 빈곤하다. ‘엇갈림’과 ‘몸뻬바지’, ‘바람의 사슬’은 서로 겨룰만한 것들이다. 셋 중의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우리 동시대의 처절한 삶의 비극성 도출에 방점이 찍혔다. 물러선 두 편의 작자는 이번 말고 다른 기회에 세상의 문을 두드릴 것을 바란다. ‘바람의 사슬’의 실감이야말로 이 시대의 시적 절실성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광주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몬드리안의 담요 배세복
성큼성큼 들어와 붉은 사각형을 담요에 던지며 그가 말했다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빛이야 그때부터 그는 우리집 벽에 살았다 어느 해 나는 내 서재를 한 번도 열어주지 않으면서도 간신히 아내의 장롱 속에 들어간 적 있다 캄캄했다 오래 전 걸어두었던 희망 같은 단어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그날 그는 검푸른 색깔을 마구 칠했다 살짝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무렵 나는 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사한 색깔의 연속은 불안을 가져온다 마치 잘못 맞춰진 목욕탕 타일의 무늬처럼, 그리하여 바람 푸르던 날 우리는 감탄사들을 날려 보냈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알고 보니 겨우 몇 개 밖에 안 되던 노란 한숨 같은 것, 올해에는 어떤 색을 보여줄까 형형색색의 아주 큰 보석을 보여줄게! 그는 한 해에 하나씩 그린 아홉 개의 사각형에 테두리를 치고 있었다 집을 지은 후 귀퉁이를 여러 날 마름질하듯 천천히, 잠이 덜 깬 우리들을 격자무늬로 엮어주며 서서히 벽 속으로 사라져갔다 [당선소감] “문학과 더 치열한 싸움 이어나갈 것” 당신과 인연을 맺고 두 번이나 십 주년이 지났습니다. 싸움도 못하면서 매일 당신과 싸웠습니다. 어느 해인가 처음으로 싸움을 시작하고 그해 마지막 날, 그간의 내력에 붉게 사각형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 다음해에도 싸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푸른 사각형……, 그 다음해엔 다시 노란 사각형……. 이렇게 근 이십여 년을 싸웠지만 승자는 없었습니다. 지친 채 백기를 들려던 오늘, 누군가 싸움의 경과를 알려옵니다. 당신과 저의 싸움에서 하루만 쉬어가도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겠지요. 이긴 건 더더욱 아니겠지요. 허나 오늘만큼은 사각형 무늬 가득한 담요를 덮고 달콤한 잠을 푹 자야겠습니다. 하지만 곧 깨어나겠습니다. 다시 저는 당신의 코피를 터뜨리거나 혹은 당신에게 광대뼈가 함몰되도록 얻어맞아 한 장 또 한 장, 여러 장의 담요를 차곡차곡 포개놓아야 할 테니까요, 사각형을 한 칸 두 칸 다시 채워야할 테니까요. 시의 길을 처음 열어주시고 묵묵히 지켜봐주신 구재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한결같이 못난 선배를 걱정해주던 길상호 시인, 청림문학동인회 선후배님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모님과, 오랫동안 유일한 독자였던 아내의 손도 꼬옥 잡아보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세상에 발가벗겨 주신 광주일보와 안도현 심사위원님께 깊이 고개 숙입니다. 세간살이를 집어던지면서라도, 문학과 더욱 치열하게 싸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배세복 ▲1974년 충남 홍성 출생 ▲한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충남여고 교사 [심사평] “차분히 읊조리는 시어 … 서사·서정적 감각 균형” 시들이 독자에게 애써 말을 건네지 않는다. 어떤 절실한 심장을 향해 하소연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고 독자를 설득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저 중얼거린다. 일정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시들일수록 소재가 제한적이다. 일상의 소소한 안쪽을 들춰 보여줄 뿐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쓴 시인데 시어가 중복되는 경우가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이미지를 비틀지도 않고 파격도 엿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시단의 흐름이라면 새로운 시인은 주도적인 흐름을 혁파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당선작으로 고른 배세복 씨의 ‘몬드리안의 담요’도 위와 같은 혐의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서사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을 균형 잡힌 감각으로 배합하는 능력은 다른 응모자들의 시와 뚜렷이 구별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의 내부로 숨기면서 결국은 할 말을 다 하는 시다. 화자의 목소리가 들뜨지 않고 차분한 것은 그만큼 내공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함께 응모한 시들도 단아한 서정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두텁게 했다. 고현도 씨의 ‘까치의 독후감’은 그리 새롭지 않은 소재를 자신으로 눈으로 해석하는 남다른 기량이 엿보인다. 시적 대상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어 호감이 간다. 그러나 시를 전개하는 데 몰두하다 보니 시인의 사유가 배어들 틈을 만들지 못한 게 걸렸다. 이정희 씨의 ‘신바람 수선집’은 유쾌한 동시적 작풍이 눈길을 끌었다. 수선집에 있을 법한 사물들이 마치 식구들처럼 명랑하게 움직이고 있어 흥미로웠다. 다만 시를 마무리하는 후반부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아쉽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김옥진, 최영은, 문화영, 조희진, 이세빈 씨의 시들을 마지막까지 눈여겨 읽었다. 모두들 건투를 빈다. **안도현 ▲경북 예천 출생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우석대 문창과 교수
세계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방장은 쓴다 이영재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안다는 것 요리는 곧 완성 된다 완성되기 전에 이 깨끗한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내 몸에겐 건강한 학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이곳은 학대에 매우 알맞다 떠나는 새조차 둥지를 훌륭하게 지을 줄 안다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휘파람이 휘파람을 불 생각이 없듯 우체통은 붉을 필요가 없다 다행히 라면집은 가끔만 문을 연다 요리는 완성될 필요가 없다 이 깨끗한 접시를 온전하게 버리기 위해 철새가 돌아올 둥지를 삶아 먹고 이사를 할 것이다 겨울과 더 가까운 곳에 주방을 열고 문을 닫을 것이다 어디서든, 시작하지 않기 위해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
*1986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졸업
무등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바람의 징후 최재하 붉은 헝겊 같은 노을이 살다갔다 죽은 나무에 혈액형이 달라진 피를 돌려야 할 심장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기다림의 대상이, 그, 무엇이었던 동안 더 이상 풀빛은 자라지 않았다 대신에 동구 밖의 삼나무들이 푸른 잎을 마쳤다 가두어 놓았던 귀를 풀어 놓자마자 귀가 아니라 입이었다며 우는 야행의 고양이와도 같았던, 그것은 단순히 후회에 관한 피력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소문처럼 스쳤다가 간 걸음 속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 전에 내렸던 눈이나 비가 다시 내계(內界)로 돌아갈지 모른다 당신이 보낸 전령사들, 그, 후로 당신이 직접 와서 지나간 자리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게 할 가능성은 방향에게 기대어 목을 꺾거나 내게로 오는, 그, 동안을 하르르 밟아주는 일이었다 당신은 증명하지 않고 증명되지 않는다 바람의 채집사를 자처해 보았을지도 모르는 전생보다 더 멀리서 걸어 왔던 세월 동안 뒷모습 쪽에만 대고, 훨씬 전에 지나간 유행가 같은, 낡은, 셔터를 겨누어 보기도 했을 거라는 가장 처음일 때 오고 가장 나중일 때 닿았던 당신의 징후에게, 더 이상 생의 손가락 하나를 걸어보는 행위를 파란이라거나 파탄이라는 이름으로 치유하지는 않겠다. <심사평> -------------------- 시는 그렇다면 기록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기록일까 정윤천 (시인) 적지 않은 투고작들을 빼놓지 않고 들추어내던 와중에, 한 때 왕성한 시력을 문단에 선보였던 이 지역 출신 시인의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이라는 시집의 제목이 하나 떠올랐다. 비문(非文)이었다. 그렇다면 저 문장의 속내는 해가 지지 않을 때까지의 쟁기질 정도를 이르는 말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이라는 생뚱맞은 문장은 시적인 어법의 환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매력과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시는 그렇다면 ‘기록’이상의 혹은 그 너머의 기척이며 기미까지를 비끌어 매야하는 난항과 고투와의 대면이자 확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작금 시단의 기류는 그런 정도를 넘어서서, ‘읽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읽히기’의 방식으로까지 세를 넓혀버렸다. 그런 사이 기존의 시들은 이미 전설이 되었거나 물을 건너버린 꼴이다. 요즘 따라 부쩍 시를 읽는 일이 무거워져 버렸다. 투고시의 대부분들은 자잘한 일상의 담론들에 그쳐 있었다. 뉴스는 신산스러운데 시들은 평안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을까? 뱀이 살아요(박평숙). 늪(곽성숙), 뿌리는 닫힌 문이다 (남상진) 보고서(한영희) 꿈의 각(박순옥) 어느 일요일 오후 (홍유나) 씨 등의 시들과 함께 조유희(앵무새의 난독증)과 최재하(바람의 징후)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두 사람의 작품은 당선권에 무난했으나, 진술의 뒤에 남겨진 여운은 “바람의 징후”가 더 깊어 보였다. 다시 또 일어나 앉아 끝장이 날 때까지 “쓰는 자”만이 시인일 것이다. ▲ 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등 다수 출간 <당선소감> ------------------------ 건실한 언어로 시인의 길 걸어갈터 최지하
여수에 간 적이 있다. 기차는 너무 먼 길을 에도는 것 같았고 저녁이 오고 있었다. ‘미리내’라는 단어 한 알을 알사탕처럼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남도의 달빛, 여수 바다의 파도 소리는 하얀하고도 섬세했다. 분명 바다의 바닥에서 기인한 것만 같았으리. 귀에서 작은 풍금소리가 울렸다. 그새 태어나지 않았던 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물이 났다. 머리칼이 아니 갈기가 마냥 헝클어진 아프리카의 검은 말(馬) 한 마리가 에티오피아의 커피향을 내뿜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시는 여전히 내게 아프리카의 들국 떨기들이었고, 에티오피아의 우물이었다. 검고도 검었던 날들이 내게서 나를 바닥으로 내려놓아 주었다. 두통의 아침이면 “두통, 두통” 새 한 마리 울다가 가곤 했었다. 오늘 나는 무언가를 영원히 잃어 버렸고, 무언가가 다시 내게로 왔다. 초긴장과 같은 이 시간을 나는 가장 건실한 언어로 받아 수첩에 옮길 것이다. 무등일보에 절한다. ▲충남 서천 출생 ▲광운대 대학원 석사 전북도민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열화되다 이승은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 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 딱 그만 크기의 추를 세우고 조그맣게 서 있다 저 추가 어떻게 뜨거움을 보여줄 것인가 작년 봄 2쪽 그즈음과 같은 모양새여서 땅이 열렸을 때부터 생긴 약속이라고 얼추 들은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넘나드는 순간 추가 넘어졌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매화꽃 일생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도 화르르 소란스럽다 단 한 개의 귀를 지닌 추는 냉정을 잃고 물기에 젖어 파리한 소리는 적막을 뚫고 꽃 이파리 하나 열린다 열화되지 않은 꽃은 없으리 바닥 바닥으로만 음각했던 우리들의 희망이 달리 드러난 것이다 여러 번 꽁꽁 얼어 있던 약속이 심장 속 온도에 팔딱거리는 작은 기립을 지지한다 쉿! 다음 쪽 봄꽃도 뜨거워지려 한다 <심사평> ------------------------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의 재탄생’ 신춘문예를 통해 이 땅의 시인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것은 눈부신 기쁨이다.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37명의 시 569편을 심사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은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토해 나오는 비단실을 보는 것과 같다. 떨리는 가슴으로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시를 쓰고 응모한 예비 시인들의 문학을 향한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이승은의 ‘열화되다’를 뽑았다.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 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라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끌었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꽃이 열리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호흡을 잠시 멈추고서 한 줄의 시로 완성한 모습이 시를 읽은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이 언어를 통해 재탄생하는 모습이 반갑다. 앞으로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구민숙의 ‘뒤란’은 오래 들고 있었던 작품이다. 바람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영상과도 같았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여 시의 언어를 조율한다면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윤정의 ‘풍화’, 김완수의 ‘독방일기’, 김종득의 ‘돌아온 만경들’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조미애<국제펜클럽한국본부 및 한국문인협회 이사> <당선소감> ------------------------- 겨울임에도 다니고 있는 직장 본 건물 옆에 새로 건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건물 앞으로, 옆으로, 일층에서 이층으로 무수하게 설치해 놓은 철구조물이 보입니다. 비계(scaffolding)입니다. 비계는 건설, 보수공사, 건물이나 기계를 청소할 때 작업인부와 자재를 들어올리고 받쳐주기 위해 쓰며, 알맞은 크기·길이의 발판재를 하나 또는 여러 개를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됩니다. 건물이 완성되면 흔적없이 사라져야하는 비계가 유독 눈에 들어봅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볼품없는 나는 내 시를 위한 비계입니다. 세상을 보이게 하고 드러내는 뜨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시를 남기고 비계처럼 사라지면 좋을 것이란 계획을 진즉에 세웠습니다. 나이 오십에 내 시를 세상에 나오게 해준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를 드리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부산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뱀을 아세요? 윤석호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 <심사평> "현대적 인간 존재의 외로움 참신하게 표현" 올해에는 유난히 투고작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의 논의를 거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시 부분에서 '귀' '물을 향해 걷는 나무 곁에서' '손을 부수다' '뱀을 아세요?', 시조 부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눈 오는 밤, 프란츠 카프카' 등 모두 6편이다. 시·시조 두 장르에서 당선작 1편을 뽑아야 하는 만큼 심사위원들의 고뇌가 컸지만, 작품의 수준을 제1의 원칙으로 한다는 기준이 있었기에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엔 큰 무리가 없었다. 시 '귀'는 실험적이면서도 언어의 미와 사유의 깊이가 잘 살아나고 있었지만, 너무 소품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물을 향해 걷는 나무 곁에서'는 표현도 참신하고 주제도 서정적이라 가작이지만, 표현의 묘미에 너무 치중한 감이 있다. '손을 부수다'는 존재의 본질적 슬픔을 여러 기발한 표현을 통해 잘 살려 내고 있었지만, 시의 내용이 관념으로 흐르는 점이 지적됐다. 시조 부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시조의 형식미와 서정의 깊이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전통적 정서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비해 '눈 오는 밤, 프란츠 카프카'는 시조의 형식미를 현대적으로 살려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도 동시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소외의 문제를 연시조로 그려 내고 있어 주목을 끌었지만, 당선작과 최종 경합에서 아쉽게도 2위로 낙착됐다. 그리하여 당선작은 '뱀을 아세요?'로 결정했다. '뱀을 아세요?'는 뱀이라는 존재의 특성을 통해 현대적 인간존재의 외로움과 그 지향을 참신한 표현과 깊은 사유로 살려 내고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 주었다. 일로매진하여 한국문단의 큰 별이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강은교·이우걸·김경복
<당선소감> "고립된 상황서 신기루 같은 가능성 확인" 고민하고 한 선택이라도 그 고민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선택은 그냥 입장권이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삶의 맨 가장자리에 서면 무모함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길 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민이 그랬고, 시를 쓴다는 것이 그랬다. 총을 들고 훈련할 때보다 휴가를 나와 거리 한복판에 군복을 입고 섰을 때 나는 내가 군인인 줄 알았었다. 이민 오고 한참 만에 고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이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모래를 벨 수 없다.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대적이지 않는, 때로는 친절하고 이해심까지 갖춘 상대를 무모함이라는 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밤에 걸려온 낯선 전화에(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당황해서 생각되지도 않은 말들이 입을 나서 수화기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침묵의 며칠, 희망을 놓아야만 하는 경계쯤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글을 쓰겠다는 똥고집 하나밖에 없는 사람에게 신춘문예는 신기루다 못해 신앙이다. 낯선 땅에 고립된 상황에서 가능성을 따져 접근하려는 것은 어쩌면 불경스럽다. 지난 몇 년 동안, 새해 첫날 각 신문사의 당선된 시를 읽으며 '당선되지 못한 소감'을 안으로 삭히는 데 익숙한 나에게 '당선소감'은 참 어색하다. 아버지께, 나의 무모함을 함께한 가족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분께 그리고 심사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매일신문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옹이 박주용
난다 냄새 난다 나는 내가 긁어 부스럼이라 냄새 난다 나는 나를 날린 셈인데 냄새 나는 나는 나는 새에게도 냄새 난다 냄새는 냄새를 전이시켜 새똥 싼 내 하늘도 냄새 난다 냄새는 자꾸 가려워 구름을 비벼대는 것이어서 충혈 된 내 먹구름도 냄새 난다 소나기 한 줄금 쏟아내면 냄새가 사라질 것이란 기대는 금물 사납게 짖어대는 내 번개가 아직도 그 속에 눈이 번쩍 도사리고 있어 크릉크릉 냄새 난다 아귀를 맞추어 장미꽃을 밀어 올리던 내 거미줄에도 말 달리며 방방 뛰던 꽃물이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 옹헤야 냄새 난다 어절씨구 냄새 난다 소리 높여 노래 부르기는 시기상조 이제는 내가 나를 더불고 슬금슬금 거문고를 타야 할 때 내가 나를 데리고 묵상에 들어야 할 시간 소리 없이 냄새 나고 냄새 없이 냄새 난다 내가 나를 산책한 냄새 한 무더기 내 안을 단단히 버티어 간다.
◇ 당선소감 이름 : 박주용(1961년생)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건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건양대학교병설 건양고등학교 교사 얇은 귀에 물고기를 통째로 날염했는지 핸드폰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마중 나가던 손이 너무 떨려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두려움과 설렘의 안테나 잘게 썰어 부재중 너머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춰 보았습니다. 순간 새들이 날아오르고, 지난 사월 아버지 곁에 벚꽃으로 가신 어머니가 오늘은 내게 눈꽃으로 오시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그립고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말입니다. 새들도 찔끔 눈물을 내려놓고 날아갑니다. 저는 시를 쓰며 그동안 낙엽수였습니다. 내 나무는 숨이 깊었던 달빛이 자꾸 흐릿해지고 뻐꾸기 울음도 등뼈를 슬슬 빠져나가 강물이 시나브로 말라갔습니다. 그 증상은 날로 심해져 습했던 속눈썹도 어리둥절해지고 점점 가벼워져 작은 바람에도 염기 없이 실실 웃었습니다. 숨 가쁘게 살아도 자꾸 주눅이 들어 옆으로 드러눕게 되고 가끔은 자신을 마셔버린 취객처럼 지그재그로 걸으며 구름 발자국을 찍어댔습니다. 앞으로도 이 증상은 계속 되겠지만 이제 든든한 뿌리 하나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겨울만 되면 고개 떨구던 나무를 믿고 응원해 준 사랑하는 사람과 딸 누리, 아들 한솔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합니다. 형 동생 내외를 비롯한 가족 분들, 특히 나뭇잎 신발로도 고향 청산을 지키고 계신 작은아버지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몸을 담고 있는 건양학원의 가족들, 하현달로 용기를 준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동기와 시목동인들, 옥천문인협회, 테니스동호인, 한우물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반으로 접히는 나이에 한창나이로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매일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치열한 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작가 나이 앞지른 시적 미덕 예심을 통과한 새로운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은 우선 즐거움에 가깝다. 우리 시단의 시적 근경인 난삽하고 편협한 가독성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일상과 사유가 시의 그물망에 들어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투고한 분들의 연령층이 높다는 것은 곤혹스럽다. 등단 연령의 상승은 신춘문예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이십 대에 등단한다는 희망은 이제 사치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우리는 박주용 씨의 작품을 선택하는 하나의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당선작은 박주용 씨가 투고한 세 작품, ‘나뭇잎 신발’, ‘데칼코마니’, ‘옹이’에서 가려야만 했다. 당선작인 ‘옹이’는 옹이를 소재로 섬세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작품‘옹이’는 옹이를 기의로, 냄새를 기표로 하되, 냄새라는 독특한 흔적만으로 시적 의도를 정치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옹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나무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 또는 그것이 난 자리” 이면서 “굳은살”이거나 또는 “귀에 박힌 말이나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품 ‘옹이’의 배후는“귀에 박힌 말이나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에 해당되겠다. 가슴에 맺힌 개별적 감정을 옹이/냄새가 주술적 공간과 서정적 공간을 통과하면서 자기 심화에 도달하게 되는 발화 과정이 노래말로 엮어졌다. 우리말의 리듬에 기댄 이 냄새의 상상력은 낯설지만 기시감에 가깝고, 재빠르지만 부박하지 않다. 해설도 분석도 필요없이 감각으로 다가오는 시적 속도감은 ‘옹이’의 매혹이다. 박주용 씨의 ‘옹이’를 당선작으로 미는데 심사위원 두 사람이 합의했지만 씨의 연령이 오십대라는 걸 우려했다는 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시적 미덕이 나이를 앞질렀다. 다음에 거론된 분들의 작품도 몇 번이나 읽어야만 했다. 우선 이명우의 ‘실직’과 ‘척추’, 특히 ‘실직’에는 “햇빛에 나무가 더 가늘게 깍이고 있다”라는 시선이 있고, ‘척추’에는 “골조건물에 길게 세운 철근 몇 가닥 / 바람을 빼내지 못한 인부들의 허리를 갉아먹는다”라는 쓸쓸함이 있다. 조유희의 ‘앵무새의 난독증’과 김재연의 ‘슬리퍼(Sleeper)’도 우리가 주저한 작품이었다. “슬리퍼라는 단어가 / 영원히 잠든 사람들의 발자국, / 이라고 생각해보자”라는 ‘슬리퍼(Sleeper)’의 첫 연은 이후에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구절이었다. 이 분들 역시 시인이 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믿어진다. 문인수(시인)·송재학(시인)
경향신문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갈라진 교육 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는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걸. 그게 안 먹히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고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생긴 엄마가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 예쁜 우리 새엄마! <심사평> ------------------ “불편·설렘 동시에 안겨주는 당당함…생생하다” 본심에 넘어온 10인(장혜령·김영미·서진배·서명옥·이현우·김묘숙·박승렬·이호준·엄기수·심지현)의 후보작들을 검토하며, 오늘의 삶과 의식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후보작들 다수가 그 음울과 살풍경을 막막하게 앓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고통의 복판을 피해갈 시의 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시는 ‘참말’을 하려 한다. 담긴 메시지가 논리적·도덕적으로 맞다거나 합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초 이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갔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생이 진부하기는커녕 매순간 새롭고 아프고 기막힌 것이며, 누구에 의해 대신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참이다. 그때 ‘참말’은, 설사 낯익은 메시지를 싣고 있는 듯 보일지라도 반드시 새롭고 절실하다. ‘참말’은 또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습성화된 느낌과 생각과 말의 회로로부터 우리를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그러한 참말의 힘은 겉을 꾸며 흉내낼 수 없다. 오직 온몸을 던진 낮은 포복을 거쳐 이루어질 뿐이다. 신춘문예가 일부 문학 지망생들의 잔치를 넘어, 전 한국어 사용자들의 공동 관심사이며 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의 기꺼움과 설움과 고뇌를, 우리의 아름다움과 매혹과 깊이를, 나아가 우리의 공포와 분노, 우리의 파렴치와 비열함까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예민하게 앓고 노래해줄 새 소리꾼, 새 만신, 새 예언자를 기대하는 사회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재독을 거쳐 우리는 이호준·엄기수·심지현 3인으로 일단 후보를 압축했다. 이호준의 감각과 솜씨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매력적인 언어들은, 필요하다면 신선함조차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련함과 자신감의 과잉이 오히려 시적 모험의 기개와 순결성을 손상하기도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엄기수도 이미 능숙한 시인이었다. ‘이끼소녀’ 등의 시편들이 보여주는바 비애를 갈무리해 내는 낮은 톤의 목소리는 오랜 습작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투와 시적 조형방식에는 선배 시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낯익음이 없지 않았고, 시들이 좀 더 다채로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심지현의 당돌함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동시에 설렜다.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어딘가 불균형한 듯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새롭고 생생한 발화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면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삶과 세계의 잔혹과 비극성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슬픔과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언어들은 감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련과 안정감보다 심지현의 이 용기와 젊은 당당함 쪽을 선택했다. 세상의 고통과 환희를 자신의 것으로 깊이 앓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오른쪽)·시인 김사인씨
<당선소감> ------------------ “읽히는 것만으로도 영광…더 좋은 글 향해 정진”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 있어요. 허공에 잠긴 밤들을 살았지요. 학교에서는 글을 썼고, 그렇지 않은 시간엔 질투를 했어요. 저를 글 쓰게 하는 사건들이 올해 참 많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진심을 쓸게요. 폭탄이 터졌는데 어쩐 일로 기쁘대요? 어머니, 아버지. 조금 다른 걱정들을 하기로 해요. 바르게 걸을 수 있는 계기이자 감동인 현우에게 아픔이 다신 없기를. 김수복 선생님, 박덕규 선생님, 강상대 선생님, 최수웅 선생님. 매일 되새길 수 있는 배움들이 있어요. 위태롭던 제 글에 바닥을 그려주신 이덕규 선생님 감사해요. 새봄맞이, 그 처음을 가르쳐주신 이시영 선생님, 그 시간들로 글을 썼어요. 다 지난 4년 전이 여태껏 벅찬 이유, 문과 임, 박, 김, 조. 그립지 마요. 든든한 재롱받이 요섭 선배와 기호 선배, 동우.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시누리. 우리에겐 무엇이라도 괜찮을 논쟁이 있어 즐거워요. 단단하나 날카로운, 성규는 내 성장의 원동력. 우리 서로의 부러움을 자랑하도록 해요. 내가 먼저 말할게요, 그대의 가슴! 읽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임이 분명해요. 감사해요. 김사인 선생님, 황현산 선생님. 아무리 잘해도 부족한 보답이겠지만 더 좋은 글을 보일 수 있도록 정진할게요. 심지현 △1990년 경남 김해생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경상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 이원복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금붕어를 닮은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다 냉정해지자, 탁할수록 냉정해지는 게 필요하다 모두들 잠을 자는 시간, 바람의 음역대는 위험하다 저녁에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이 고음역대 바람의 성대를 찢고 항아리의 주둥이 부위부터 깨고 있다 물 위를 부유하는 기름의 무지갯빛 닮은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스멀스멀 헤엄치는 항아리 속 성대를 다친 소녀들 입을 벌린 항아리처럼 앉아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어 한다 소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암보(暗譜)다 소녀들의 등에 지느러미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항아리 속에서 소녀들이 다친 성대를 회복하고 다시 항아리 밖 거친 바람의 음표를 따를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 깨져 허물어지는 항아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거기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 [신춘문에 시부문 당선소감-이원복]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문 하나를 얻다 문득, 이 ‘문득’이라는 단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 하릴없이 이 ‘문득’이라는 단어를 둘로 쪼개 재미삼아 문(門)과 득(得)이라 뜻을 부여하며 나만의 단어놀이로 얼어붙은 머리를 예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겨울 아침 아직 시린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의 배터리가 따뜻해졌기 때문이겠지만, 괜찮다. 나는 당선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심장에서 뻗어 나온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아 이 손바닥까지 당도하여 내 손바닥이 금방 따뜻해졌다고 믿으면 그만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귓속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날 아침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정말 문(門) 하나를 얻었다.(得) 막상 덩그러니 문 앞에 서있으니 낯설고 긴장된다. 그러나 낯설고 긴장된 이 마음으로 다시 시를 쓰기로 다짐해본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문득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문 앞으로 이끌어주신 심사위원 정진규 선생님, 그리고 경상일보사에 감사를 전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사랑하는 아내 혜원씨, 그리고 소중한 딸 로운이, 아들 루신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다. -이원복- -1974년 울산출생 -2008년 울산산업문화축제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심사평-정진규] 시적 공간속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 탄력있게 조정 30명의 예심 통과 작품 114편을 즐겁게 읽었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로 수련의 흔적이 역연했다. 신춘작품을 읽다 보면 대체로 두 개의 폐해에 직면하기 마련인데 이번 경상일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그러한 점들이 깨끗하게 극복되고 있는 징후들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그 두 개의 흐름이란 신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교실 지도의 냄새가 나는 작위적 유형의 흐름과 요즈음 젊은 시인들의 편향된 흐름인 관능적 환상의 자폐적인 몸짓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들이 극복되어가고 있는 자율적인 모색의 투명한 시편들이 상당수 눈에 뜨이고 있음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의식과 표현의 균형과 질서에 대한 점이다. 사유적인 면과 지적 성찰이 너무 앞서 작위와 경직에 머무르거나 헤픈 정서의 노출로 불필요한 반복과 난삽을 일삼고 있음이 그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가 표제가 좀 작위적인 인상이 있었으나, 앞의 작품들보다 투명하고 탄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금붕어와 항아리와 성대를 다친 소녀들을 하나의 시적 공간 속에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을 탄력 있게 조정하고 있었다. 소녀들의 성대를 다치게 한 시간의 상처에 대한 사유와 인식, 그 치유를 향해가는 건강한 포즈도 잃지 않고 있어 믿을 만했다. ‘저녁을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들의 표현에서는 시인이 지녀야 될 비의적(秘儀的) 시력(視力)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함에 모자람이 없었다. 축하한다. -정진규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공기는 내 사랑>, 육필시집 <淸洌集>, 한국대표명시선100 <밥을 멕이다>, 한국현대시인총서 <정진규 시 읽기 本色> 등. 한라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풍경에 놀다 송지은
하나의 풍경을 읽었다 찬 냉기의 한쪽 모퉁이부터 뜯어내는 봄비의 가느다란 손놀림에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모르는 비 맞은 고양이 울음에 가슴 안에서 빗방울처럼 또박또박 싹이 돋아나는 걸 무심히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카드로 얼굴을 바꾸는 계절의 어디쯤에서 하나의 풍경에 빠졌다 내 몸까지 다 내어주고 버려진 사마귀의 심장을 법당을 급하게 빠져나오다 문살에 찍힌 구름의 숨소리를 발뒤꿈치 갈라진 틈으로 새어나오는 겨울의 쓸쓸한 문장으로 읽다가 바람이 긴 바퀴를 돌리며 어둠을 몰아가는 산 어디쯤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고요는 소란을 낳느라 고요를 주저앉히고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끝내 다른 풍경으로 일어서는데 죽은 쥐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는 것을 엿보다가 문득 나도 그 삶의 연속무늬 쪽으로 줄을 섰다 교회의 철탑이 모텔 건물에 지그시 그림자를 얹듯이 달이 제 몸을 지우며 죽음이 낳는 새로운 시간을 보여주듯이 풍경이 내 배경이었으므로 나도 풍경의 배경으로 지기로 했다 너에게 [ 시 당선소감] 송지은 "시가 되지 않는 시의 함정"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물병아리 가족이 살아남는 법을 본 적이 있다. 마른 연못에서 더 큰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길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넓은 도로를 지나야 하고 들개에게 쫓기는 모습을 불안한 마음으로 보았다. 하지만 어미는 달랐다. 앞서가다 뒤돌아서서 새끼들을 기다리고 또 앞서가다 멈추길 반복했다. 도로를 건너고 수로를 건너고 마침내 큰 저수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미는 어서 와라, 이리 오라고 재촉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앞서가서 말없이 지켜보고 기다릴 뿐. 내게는 시가 그러했다. 어미처럼 묵묵히 기다리다 위안의 눈길을 건네주는 존재였다. 그것은 고통이면서 아픈 부분을 치유해주는 내 삶의 진통제였다. 하지만 그 문턱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시가 되지 않는 시의 함정에서 오래 머물렀다. 지금도 그 함정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 없으나 건조한 겨울에 눈이 있듯이 먹빛 가슴에 가끔은 초록으로 퍼지는 파장을 볼 수 있다. 겨울 하늘은 차고 푸르다.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해도 혹독하게 날을 세우는 이 계절이 나에겐 희망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하리라 믿으며 함께 글공부했던 동기들이 내 이름을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부를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라일보사에 고마운 마음 올린다. 글의 바다에 밀어 넣어주신 은사님들. 나보다 더 크게 기뻐하는 형제와 친구에게도 느낌표가 되는 시로 보답하고 싶다. 아직도 내 삶에 풍경이 되어 주시는 팔순의 어머니, 이제는 지하에서 둥근 웃음만 보이는 아버지께 술 한 잔 올려야겠다.
▷1964년 충남 금산 출생 ▷서울문화예술대학 방송문예학과 졸업 [시 심사평]허상문 문학평론가 "미적 형상화 시도 탁월" 신춘문예란 말 그대로 한 겨울의 눈보라와 삭풍을 견뎌내고 새봄에 피어나는 꽃과 같이 가장 찬란하면서도 권위 있는 등단의 관문이다. 따라서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하는 작가에게는 지난겨울을 힘들게 이겨낸 치열함, 새봄에 태어나는 참신성, 앞으로 멀고도 힘든 길을 나아가야 할 가능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지역의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한라일보 신춘문예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올해 1100여 편의 작품이 시 분야에 응모했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이 일상의 현실에 숨겨진 대상을 치밀한 묘사력과 참신한 비유로 표현해내거나, 인간과 세상의 모습을 개성 있는 언어로 변주해내는 시적 능력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지은의 '풍경에 놀다', 송재선의 '발로 읽히는 유서'를 만난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풍경에 놀다'는 현실의 삶을 '풍경'의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끌어당기거나 체감하여 미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탁월했다. 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방식의 감수성과 화법도 두드러졌다. '발로 읽히는 유서'는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고뇌의 흔적이 담겨 있어서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하지만 한 편의 시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자 하고 다소간에 사변적이어서 주제의식이 산만해졌다. 두 작품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을 거듭했으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은 신춘문예의 의의에 더욱 어울리는 작품으로 송지은의'풍경에 놀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송미선의 '꼬리연', 남상진의 '섬', 조성필의 '물허벅'과 같은 작품들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을 바란다.
서울신문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알 박세미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 거기엔 무단 투기 금지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당당했지 버려진 적 없으니까 어느 날 거기 옆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누가 널 낳았니 이름이 없어 좋겠다 털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 정체가 발각되는 것이니까 집을 나오는 길 두 발이 섞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얼굴과 머리카락이 엉키고 몸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흩어져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뭉쳐질수록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로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내 정체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분류하지 않는 곳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지 바깥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 욕조 안으로 들어가면 반쯤 잠기는 몸 최초의 기분은 여기에 있지 출렁인다 다리 하나가 기어나간다 시 당선 소감-박세미 손에 쥔 알… 깨지든 태어나든 마주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시간들을 놓칩니다. 어쩌면, 놓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던 순간에도 주저앉아 울거나 소리라도 시원하게 질러 볼 타이밍을 보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꼭 남아 있습니다. 금방 터질 것 같은데, 아직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끌어안은 채 나는 시를 만납니다 그녀들의 언어와 인격은 겹쳐지며 반짝입니다. 너무나 눈부신 나의 김행숙 선생님과 이원 선생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문드러진 나의 스무 살, 뼈를 심어 주셨던 우성환 목사님. 늘 그립다는 말을 이제 전합니다. 나의 가족. 박종주, 홍미숙, 박대인. 가장 뜨거운 세 개의 이름. 그리고 다정하게 내 이름을 발음해 주는 사람들. 나는 당신들이라는 숲에서 크게 숨을 쉽니다. 시나락 아이들. 우리 오랫동안 함께 걷자. 미숙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신 황현산 선생님, 나희덕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알 하나를 손에 쥡니다. 깨지든, 태어나든. 어떤 것이라도 마주하겠습니다. ▲1987년 서울 출생 ▲강남대 건축공학과 졸업
시 심사평 세계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대화의 자세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10명의 작품은 예심위원들의 젊은 안목 덕분에 정형화된 신춘문예 스타일과는 다른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심사는 한 편의 ‘잘 빚어진 항아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개성적 독법과 화법’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수사적인 표현에만 의존한 시, 지나치게 관념적인 시, 낯익은 발상에 머물러 있는 시 등이 우선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은 박세미, 김잔디, 이현우의 작품이었다. 김잔디의 시는 이미지를 조형해 내는 솜씨가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풍경을 의심하는 초식동물의 눈은 까맣다”라든가 “우유곽 바닥을 훑는 빨대 소리에 놀라 수목은 뿌리를 내리고” 등 매력적인 구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과 이미지들이 파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뚜렷한 구심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이현우의 시는 상상력이 활달하고 다양한 소재를 유니크하게 소화해 낸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실러캔스, 달의 착란, 손금의 태계, 프로토아비스…. 그는 무엇이든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시에도 자신을 전폭적으로 걸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재주의적 경향이 그의 유창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망설이게 했다. 박세미의 시는 간결한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증폭시켜 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노래하는 그는 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 당선작인 ‘알’에서도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상투적 연민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난생설화를 탄생시킨다. 화자의 교체나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행과 연을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세계를 향해, 바깥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그 질문과 대화의 자세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쓸 것이라 믿고, 또한 지켜볼 것이다. 심사위원 나희덕(왼쪽)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
전북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소가 있는 풍경 노동주 시소는 늘 기울어 투석기처럼 한쪽 팔을 바닥에 떨구고 있다 빈둥거리는 그 사내의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울까 쏘아 올리기에는 시소의 두 팔이 너무 길다 곤장이라도 맞은 듯 매번 엎어져 있다 사내도 굄돌처럼 하늘을 인 듯 무겁다 햇빛 그늘진 저 받침점이란 건 뭔가? 가슴팍에 점 아닌 섬처럼 박힌 저것 누구도 그 중심에 안착해 본 적 없다 시소는 늘 중심을 빗나간 기웃거림의 형식으로 흔들리며 웃고 운다, 끽끽거린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가 가볍게 시소에 앉는다 브라보콘을 흘리는 일곱 살의 오후가 번쩍 들린다 그 기울어진 시소의 경사면을 따라 문득 이삿짐 트럭이 오르고 영구차가 내려간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출근길이 열리고 이부자리에 맨발 모으는 저녁 냄새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사내의 엉덩이도 시큰거린다 중심으로부터 몸이 무거울수록 가깝게 가벼울수록 멀리 앉는 게 균형을 맞추는 법이라지만 늘 빈손인 사내는 거구여도 뒷자리에 앉고 천근의 추를 몸에 단 흐릿한 얼굴은 맞은편에 앉았다 간다 시소는 땅 속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나무처럼 직립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곗바늘처럼 좌우로 훅훅 언젠가 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진짜 시소의 균형이란 때를 기다리는 것, 엉덩이 짓무르도록 방아를 찧을 때마다 꺽꺽 시가 울고 있다
▲ 노동주, 1985년 김제 출생, 전주교대 졸업, 김제 진봉초등학교 근무 [20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 잊지 않겠다" 경적이 울립니다. 뒤돌아보니 택시입니다. 혹시나 싶어 앞사람 등짝에 툭 던지는 소리, 그 생활의 방식을 ‘시’라 믿습니다. 굳게 뒤돌아선 사물의 뒤통수에 대고 오래 말을 걸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게 늘 퇴짜일지 몰랐지만, 힐끔 고개 돌린 옆모습이라도 기억했다가 그걸 받아 적는 밤은 늘 깊었습니다. 영혼의 반을 시인이 되는 길에 걸었습니다. 내 반쪽만을 통과한 사람들아, 아이들아 미안하고 고맙다. 퇴근 후 방문을 닫고 무언가 헛것만을 쓰고 있는 아들의 어깨를 보며,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시간을 사셨을까. 오래 살아계시라. 아들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들으소서. 금이 번진 벽에 새로 도배를 하던 날, 몇 번의 귀얄질로 벽지 속 국화꽃이 천장까지 피어오르던 오후가 있었습니다. 쥐가 달그락거릴 때마다 아버지가 천장을 치대던 그 밤도 생생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 삶의 실금 위로 떨어져 내려쌓인, 그 따뜻한 국화꽃잎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나. 시 쓰는 삶에 한 아름 꽃잎을 보태주신 종호 선배, 지웅 형, 안성덕 선생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박성우 선생님, 정양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제 생활의 반인 가족과 친구와 진봉초 식구들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나를 시인처럼 살게 해준 하연, 사랑합니다.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은 생활로써 대신 갚겠습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두 선생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번 제 시의 뼈대를 부러뜨리던 강연호 교수님, 저는 언제나 강골이 될까요. 은혜가 깊지만 갚을 수 없는 깊이이므로 갚지 않겠습니다. 더 빚을 지렵니다. 늘 건강하세요. [20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시 정신의 집중과 몰입 매우 뛰어나" 지금 시는 산업화 광속의 감각 때문에 멀미를 앓고 있다. 인쇄 언어의 앞날이 걱정이다. 그럼에도 시와 시인은 여전히 존재하고 증가하면서 진화하는 추세에 있다. 한 마디로 시대적 아이러니이다. 본심의 작품들 중 「금강」외3편(이인애),「거울을 긁다」외2편(박평숙),「즐거운 독」외4편(문화영),「장수 한우축제」외4편(이근영),「생골 아지매」 외 3편(임미성) 등은 모두 한 사람이 쓴 작품처럼 진술 형태가 비슷비슷하다. 평범한 어조에다 일상적 서정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관객이 무용 공연장에서 춤은 사라지고 패션만 보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시는 사라지고 언어만 난무한다면 헛심이 팽길 것이다. 옥석을 가리는 작품에서 언어와 시정신은 섬광처럼 빛나야 한다. 끝까지 남은 작품으로 「나무의 관상(觀相)」(한병인)은 서정 묘사에 치중, 비교적 안정된 심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무’에 대한 깊은 인식과 언어 구조의 층이 얇아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것 같다. 「바다의 구두」(이지산)는 사람 중심의 편견에 의한 자연(바다)의 희생과 새만금 방조제와의 불협화를 풍자한 생태학적인 시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미래파적 추구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3·5연의 청신한 진술에 비해 끝부분 8·9연은 긴장이 풀어져 어색한 상투성과 불투명하고 난삽한 언술로 되어 있다. 짱짱하고 단단하게 응축시켜 공력을 살려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작품이다. 당선작 「시소가 있는 풍경」(노동주)은 인간 사회의 중심축과 평형감각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에 천착, 치열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언어의 함축적 의미나 비유의 정확성과 긴밀성, 그러한 심층 구조의 역동성에 의해 흡인력과 시안(詩眼) 전개의 안정감도 돋보인다. 덧붙이면 대상의 내면을 투시할 줄 아는 시정신의 집중과 몰입,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상쾌하고 투명한 미의식 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 두 사람의 의견도 일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더불어 초심을 잃지 말고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 시인들의 중심에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
국제신문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단한 물방울 김유진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밤을 깐다 복도가 나오고 수 많은 문이 보인다 벌레는 아주 가끔씩 빛처럼 부서졌다 그때 흔들린 손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한 말을 다시 반복하는 뉴스는 보았다 나는 물을 마신다 물이 흩어진다 수 많은 문이 열린다 흩어진 수 많은 껍질을 문이라 할 수 있을까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윗부분 중간을 칼집 내어 잡아 당긴다 형광등은 자주 깜박거렸다 천장 한쪽 구석에 거미줄이 불빛에 걸려 움찔하면 아무도 없을 때 더 시끄러워지는 나는 그동안 꾼 꿈과 마주치고 다양해진다 초인종이 울린다 나는 다시 한 곳에 모인다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거울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어본다 웃음이 길게 늘어지며 읽을 수 없는 표정들이 지나간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명언들이 노랗게 바래지고 있다 자주 삶은 베갯닛과 닮았다 인쇄해두고 한 번도 가지 않은 여행지를 자꾸 머리 속에서 내몬다 종이를 본다 얼룩진 곳이 단단하다 창문 위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고 방에서 물방울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 당선 소감 아버지 붙들고 흘리던 눈물, 영광으로 다가와 날씨가 몹시 흐렸고 이내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하루를 생각하고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흐릿하게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의 당선 소식. 잠시 휴대전화를 의심하고 귀를 의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올여름 폐암 수술을 하신 아버님께 제일 먼저 이 기쁨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술하지 않으시겠다던 아버지 붙들고 울며 흘리던 그 눈물이 바로 오늘의 영광인 '단단한 물방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숨 고르고 돌아보니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참신한 상상력으로 늘 새로운 시의 길을 안내해 주신 김영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의 손을 놓으려 할 때마다 다시 용기를 북돋아 준 이기홍 선배님, 심명수 선배님, 그리고 정동진역 회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언제나 저를 최고로 믿어주는 송경수 씨, 당신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첫 독자가 되어 쓴소리를 거침없이 해준 지혜, 지연, 나경에게 사랑한단 말 전합니다.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는 동생들 완희, 영진, 병관, 정희, 종일이와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음지의 숨소리를 건져 올려주신 김명인 선생님, 박태일 선생님, 최영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을 약속하오며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국제신문사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1963년(본명 김옥진) 서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시 심사평 온건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일상의 풍경 자아내 신춘문예 투고시가 두 켜로 나뉜 지는 오래다.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소수 전문시와 흔한 생활시 다수가 그들이다. 그만그만한 표현력을 갖춘 전문시는 우리 사회에 시를 꾸준히 학습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생활 감각을 담아낸 소박한 생활시 또한 문학이 삶의 중요한 취향문화임을 한결같이 일깨워 준다. 문제는 이런 속에서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작품이나 새로운 시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적당한 수준의 언어감각을 바탕으로 소극적인 표현성에 머문 작품이 대종이다. 올해 투고시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뽑는 이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셋이었다. 조유희의 '고양이의 대화법', 김태형의 '비 내리는 공단', 그리고 김유진의 '단단한 물방울'이 그들이다. '고양이의 대화법'은 고양이를 대상으로 삼은 날렵하고도 예각적인 인상화다. 글감으로서 흔한 고양이를 시인 나름의 신선한 서정 공간으로 감싸고자 했다. 표현주의적인 필치까지 겨냥한 역량이 뛰어났다. 거기에 견주어 '비 내리는 공단'은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 풍경에 대한 집중적인 응시가 빛나는 작품이다. 대범한 수사로 그려 담은 날카로운 현장성은 시인의 넉넉한 뒷심까지 엿보게 한다. 앞서 가는 삶보다 뒤서는 삶이 차라리 건강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시다. 그럼에도 두 편 모두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완성도가 떨어졌다. '단단한 물방울'은 방에 앉아 밤을 까는 가벼운 일상을 독특한 상상적 직조술로 즐긴 작품이다. '고양이의 대화법'처럼 표현성을 극도로 좇지도 않았고, '비 내리는 공단'과 같이 현실의 무게에 표현이 밀리지도 않았다. 그만큼 온건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풍경을 자아낸 셈이다. 이 작품이 지닌 나날살이에 대한 섬세한 상상력은 아무나 넘볼 경지가 아니다. 함께 보낸 '핀셋' 또한 좋은 작품이었다. 당선작으로 밀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두어 군데 막연한 진술이 흠을 키웠다. 따라서 뽑는 이는 김유진의 '단단한 물방울'을 즐겁게 당선작으로 민다. 힘차게 날아오를 앞날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더욱 가혹한 말의 형벌 속으로 쉼 없이 내려서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 박태일 최영철 시인 동아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리시계 이서빈
겨울, 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온다. 연못으로 들어간 발자국과 나간 발자국으로 눈은 녹는다. 시침으로 웅덩이가 닫히고, 방수까지 되는 시간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무심한 시보(時報)를 알린다. 시침과 분침이 걸어 나간 연못은 점점 얼어간다. 여름 지나 가을 가는 사이 흰 날짜 표지 건널목처럼 가지런하다. 시계 안엔 날짜 없고 시간만 있다. 반복하는 시차만 있다. 오리 날아간 날짜들, 어느 달은 28마리, 어느 달은 31마리 가끔 붉거나 푸른 자국도 있다. 무게가 덜 찬 몇 마리만 얼어있는 웅덩이를 보면 손목시계보다 벗어놓고 간 시계가 더 많을 것 같다. 결빙된 시간을 깨면 수 세기 전 물속에 스며있던 오차들이 꽥꽥거리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웅크렸던 깃털을 털고 꽁꽁 얼다 풀리다 할 것 같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빛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다.
당선소감 빨간불에서 오래 기다렸는데 이젠 잡고 올라갈 버팀목 생겨 빨간불에서 오래 기다렸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울수록 봄볕의 따스함이 소중함을 아는 법이다. 그 먼 길들 위에서 지금은 날개가 없는 말도 날고 소도 날고 있다. 모두 빛나는 천지간을 건너가야 할 때이다. ‘당선’이란 말 한마디에 일어난 일들. 이제 잡고 올라갈 튼튼한 버팀목 하나를 얻었다. 욕창이 생긴 등으로 나날을 뒤척이고 계시는 아버님과 간병하시는 어머님. 당선 소식에 “장하다”를 외치셨다. 너무 좋아 자꾸 우신다는 소리에 가슴이 저리다. 간병에 지치신 어머님도 “고맙다”를 연발하셨다. 과분한 사랑이다. 바람만 불어도 “어미 왔나 나가 보라”며 성화하셨다는 말에 많이 울었다. 며느리가 가져온 음식은 뭐든 맛있다고 잘 드시는 아버님, 완쾌하셔서 봄에는 꽃보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길. 늘 말없이 지켜봐 주시는 친정 부모님께도 당선 소식 전해 드린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지 치고 덩굴손을 잘라 주신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인간이 먼저 되라 강조하신 신세훈 선생께 고맙다는 인사드린다. 당신은 대쪽같은 선비정신으로 시 정신을 다져 주셨다. 이 나라 가난하고 힘든 시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셨다. 해진 가방, 오래되고 낡은 옷이 어떤 명품보다도 더 값지게 보이는 건 아마도 선생의 삶 자체가 명품인 까닭이겠지. 제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 함께 공부하는 ‘자유문학 문예교실’ 화요반 동료들, 나와 친한 모든 분과 이 기쁨 나누고 싶다. 온갖 투정 다 받아 주고 도와 준 남편이 고맙고, 두 아들 상걸, 치걸, 사랑한다. 심사위원 오세영, 장석주 선생께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젊은 시인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당신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뒤돌아서 당신들을 따라가고 있다. 꽃 지게 지고 내내 신세 지겠다. △1961년 경북 영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交響… 열린 감각 천진한 발상 돋보여
이담하 조상호 정지윤 성지형 유준상 김본희 임수현 문희정 임승훈 이인숙 이서빈, 열한 분의 시가 본심에 올라왔다. 첨단과 전위는 없었다. 열린 감각, 언어 감수성, 시를 찾아내는 촉(觸) 같은 시의 기본 재능을 갖춘 시들이다. 이인숙의 ‘갈대모텔’, 임승훈의 ‘순종적인 남자’, 문희정의 ‘몽유 이후’, 임수현의 ‘노곡동’, 이서빈의 ‘오리시계’를 최종 결심작으로 골랐다. ‘갈대모텔’은 깔끔한 서정시다. ‘흔들리는 것들은 흔들리는 것들을 잠재우고/흔들림에 기대어 다시 일어선다’라는 시구 정도는 예사로 쓸 수 있는 시인이다. 다만 갈대숲을 새들과 바람의 모텔로 본 발상이 평이했다. ‘순종적인 남자’는 낯선 이미지들을 엮고 시공을 확장하는 재능이 놀라웠다. 큰 재능의 잠재성을 확인했지만 조탁(彫琢)이 더 필요하다. ‘노곡동’은 홍수 속에 내팽개쳐진 이들의 시련을 따뜻한 관조와 유머에 버무려 시로 써냈다. 유머는 이 시인의 장점이다. 더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 사유의 입체성을 갖추시길. ‘몽유 이후’는 성장통을 다룬 시다. ‘쥐젖이 돋아난 어머니의 팔 안쪽을 더 이상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같은 시구처럼 체험의 구체성이 도드라졌다. 안정되었으나 화법이 새롭지는 않았다. 사유의 도약이 필요하다. 고심 끝에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선택한 것은 이서빈의 ‘오리시계’다. 완결미가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놀랄 만큼 새롭지는 않지만 발상이 천진하고 관찰력이 좋았다.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향(交響)이 있고, 특히 우주 시공을 한 점 구체적 사물로 전환시키는 마지막 연이 좋았다. 신기성(新奇性)에 쏠리고 감각의 착종에 매달리는 시류에 휩쓸려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자기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장석주, 오세영
조선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발레리나 최현우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발레의 점프 동작
[당선소감] "눈이 내렸다… 오늘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팠다고, 외로웠다고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시를 앓는 사람들이 다 아프고 외로워서 혼자 특별하게 피 흘린 척할 수가 없다. 시와 현실의 압력 차이로 사람이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며, 희망과 절망을 양 겨드랑이에 한쪽씩 목발 삼고 걸었다. 편한 쪽으로 기대려다가 자꾸 넘어졌다. 주저앉는 곳은 어디나 골목이 되었다. 그 담벼락에 실컷 낙서나 하다, 침도 뱉다가, 날아다니는 나방을 세어보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희망과 절망에 같은 힘을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십원짜리 동전을 세우는 일 같았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김혜순·송찬호 두 심사위원께서 호명해주셨다. 스무 살 때 허연 시인이 영혼에 열병을 심어주셨다. 불치병이 되었다. 박찬일 교수님과 김다은·윤호병 교수님께 목구멍의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형우 교수님과 많은 술잔을 기울였고, 임경섭 선생님과 거짓말처럼 한 약속이 있다.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추계 학우들의 축하 때문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고, 부모님께 아직도 반찬 투정하는 아들이고, 내게 미현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간밤에는 목발을 잠시 내려놓고 주저앉아 길게 자란 발톱들을 깎았다. 날이 밝았다. 이곳에 눈이 내렸다. 그 위로 누군가 모스부호처럼 흘린 발자국, 오늘은 해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989년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 문창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발뒤꿈치 들고 도약을 시인이여, 더 높게 발롱(점프)!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의 말과 현란한 드라마 대사 속에서 시가 나아갈 길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꽃·별·구름·사랑과 이별, 버려진 구두 한 짝, 창문의 덜컹거림, 전화기 속의 흐느낌… 등을 질료 삼아 늘 그래 왔듯 묵묵히 시를 쓰는 것. 황지우 시인은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고 하였다. 갑갑한 소화불량의 사회에서 시는 더욱 예민해졌고 더욱 갈급한 형식이 되었다. 이번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송민규의 '곰팡이로 만드는 바람소리'外, 조창규의 '불안한 상속'外, 서문정숙의 '시간여행자들'外, 최현우의 '발레리나'外를 주목해 읽었다. 위 응모작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인으로서 외침은 있되 아직 그 울림이 뚜렷하지 않고 자기만의 웅얼거림에 갇혀 있는 듯했다. 고심 끝에 최현우씨의 '발레리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발레리나'는 '한 번의 착지를 위해' 거듭 삶을 연습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에서 계절로부터 '부슬비'의 가는 발목을 발견하거나 바람으로부터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원시의 무용을 발견하는 응시의 시선이 돋보인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들고 돌거나 도약과 착지를 거듭해야 하는 고된 춤이다. 시도 이와 다를 게 무어랴. 당선자는 오래 습작기의 열정을 내려놓지 말기 바란다. 새로운 시인에게 시가 발롱! 더 높게 발롱! 심사위원 : 김혜순, 송찬호 영남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피운다는 것은 송지은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어둠이 찰지게 들어있는 방에서 꽃은 게으른 손목에 잡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이 스민 계절은 부풀고 어디에도 합류하지 못한 이력서 같은 천리향 나무 잎사귀 몇 장이 형광등 불빛에 말라 떨어지고 있다 손톱만한 잎사귀의 먼지를 닦아내면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목마름을 견디며 버틴 푸른 힘줄이 보인다 비정규직 자리에 새 흙을 끌어와 분갈이를 한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나무에 물이 오르면 꽃잎 하나가 어둠을 빠져나와 봄의 이마에 붉은 웃음을 낙점하고 확대한다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에게나 꽃피울 자리는 있다 피운다는 것은 쓰러지기 위한 눈부신 허무 향기를 피우고 곰팡이를 피우고 바닥의 통증까지 밀어올리고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도둑처럼 사라진다 피우는 것들은 모두 어둠을 본적지로 두고 있다
[당선소감] 홀로 깨어 있다는 것... 외롭지만 행복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글 쓰고 싶다 두통과 함께 날아온 당선 통보는 한동안 나를 혼돈의 늪에 밀어넣었다. 집 앞의 오래된 버드나무가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일 때마다 분명 이럴 것이라는 생각과 겨울 하늘에서 우는 단말마의 새소리도 촉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도심을 벗어나 흙을 밟고 산 지가 3년이 되었다. 자라던 풀들과 곡식들이 안식이거나 소멸한 자리에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나 또한 홀로 깨어 있어서 행복하다. 생각의 뼈를 세우고 감성을 마름하는 일들은 고난이자 내 삶의 의무이므로 멈출 수는 없다. 두통은 느닷없이 찾아왔지만 시는 늘 나무늘보처럼 움직였고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멀리 혹은 높은 곳에 있으면서 가끔은 축지법을 쓰는 너. 기다리는 일로 익숙한 나에게 혼돈이 밀려든 것은 길을 잘 찾아가라는 무언의 메시지일 것이다. 거실에서 각혈을 하듯 잎을 다 쏟아내던 천리향 나무는 화분을 벗어나 앞마당에서 흰 눈을 맞고 있다. 서둘러 오는 봄에는 꽃이 필 것이고 어둠을 거머쥐고 나온 향낭들이 얼마나 많은 종소리를 쏟아낼지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이 그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또 분홍색 연속무늬 가슴앓이를 하게 될는지 모른다. 하루 동안 곁에 머물던 편두통이 빠져나간 공간에 내일처럼 기뻐해줄 사람들을 호명해 본다. 그 이름들로 하여 잘 견디었고 넘어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부족한 글에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남일보에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시의 몸이 아닌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글을 쓰겠다고 정갈하게 다짐을 한다. [심사평] 시대 아픔 녹여낸 어두운 응모작 많아... 당선작, 매 순간 삶 꽃피우는 힘 내재 2014년 영남일보문학상 시 부문 응모작과 응모자 수는 총 1천862편에 389명. 대한민국이 여전히 문학을 귀히 여기는 문학공화국임을 과시하는 놀라운 수다. 전 세계 보기 드문 우리 민족의 문학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심사에 더욱 엄정을 기했다. 남녀노소 고루 보내온 응모작을 당대의 삶과 사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현상지. 올해 응모작은 어두웠다. 혁명도 사랑도 순정도 없는 시대를 살아내는 아픔들이 그대로 현상돼 나왔다. 특히 ‘비정규직’이 우리 시대의 키워드로 떠오르며 신유목시대 뿌리 뽑힌 이미지가 곳곳에 편재해 있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자는 25명. 읽고 또 감상하며,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송지은씨의 ‘피운다는 것은’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자잘한 우리네 일상에서 삶의 끝, 간 데 없는 깊이를 천착해가며 우리 사회를 둘러보게 하는 힘, 끝내는 허무일지라도 푸른 힘줄처럼 매 순간의 삶을 꽃피우는 힘이 있었다. 같이 보내온 응모작 ‘벙어리 뻐꾸기’의 한 부분 “울음의 표기법이 달라서 건너갈 수 없는 슬픔/ 가슴을 쳐서 북이 된다면/ 살에 닿는 아픔을 녹여 수수꽃다리 같은 소리를/ 너에게 물려주고 싶었다”에서 처럼 소통과 감동이 있었다. 머리로 짓는 시가 아니라 생살 터지는 아픔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그 감동, 진정성의 힘이 있기에 당선작으로 흔쾌히 밀었다. 당선작과 함께 ‘해바라기’와 ‘오랑캐꽃을 위한 광시곡’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같이 보내온 작품들을 참조하며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해바라기’는 아직 덜 영글어서, 이에 비해 ‘오랑캐…’는 절실하기는 하나 너무 농익어, 무엇보다 기성시인들의 시법과 시의 구절 등이 자꾸 연상될 정도로 개성이 약한 게 흠이었다. 한국일보 2014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대화 김진규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 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한 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이곳과 저곳의 국경을 넘는 사람인 거 같아 누워있는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할 때 구겨진 새의 몸을 손으로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 듯 나도 어떤 말인지 모를 말들을 했던 것 같아 새의 부리가 날보고 웅얼거리는 것 같아서 내 귀가 어쩌면, 파닥거리다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무옹이를 나뭇가지로 쑤신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삼키지 못할 것들을 밀어 넣듯이 밀어 넣는다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심사평 세심한 관찰력…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진화
응모자는 884명이었다. 이분들의 시 4,000여 편을 예심해서 우선 30여 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소위 '미래파'가 많았다. 기존 시단의 미래파가 예비 시인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징표일 테다. 최종 본심에 김동수('새가 그려준 지도'외 2편), 이재근('토르소' 외 5편), 김진규('나무라기엔' 외 2편)를 올렸다. 다른 분들이 최종 본심에 못 든 이유는 2%가 모자라서다. 미래파건 전통파건, 앞의 '유행'에 젖은 뒤 그것을 돌파해야 하는데, 강력한 경향이랄지 추세에 흔들렸다. '영향에 대한 불안'이 부족해 보였다. 휘둘리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이재근의 '토르소'는 시적 논리가 이미지의 다양성을 제압할 만큼 탄탄하고 스케일이 큰 시다. 우리 삶에 대한 긍정적, 남성적 힘이 있다. 그런데 굳이 흠을 잡자면 논리가 과해서 이미지를 밀어낸다. 이 부분을 해결하면 뚝심 있는 큰 시인이 되리라. 김동수는 시를 상당히 많이 써 본 솜씨다. 이미지 전개가 조화롭고 참신하다. 기발하면서도 튀지 않는 시어들로 논리와 이미지 사이가 친근하다. 그런데 전하는 바가 또렷하지 않다. 물론 좋은 시는 해석의 지평이 열려 있게 마련이지만, 시에 허용되는 '모호함'에도 한계가 있다. 두 분 시 모두 이만하게 쓰기 쉽지 않아 아쉽지만, 한 편만 뽑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는다. 김진규의 '대화'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 구겨져 있다', 죽은 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을 '구겨진 새의 몸을 감싸서 누구한 내밀듯'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같은 시구가 달래준다. 김진규는 관찰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세심한 관찰로 잡아낸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전화(轉化)한다. 아마도 죽음을 아는 게 성년이리라. '비성년' 이미지에서 시작해 '비성년'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스런 움직임이 고통스러우리만큼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당선을 축하 드린다. 새로 태어나는 시인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김진규 당선소감
별 하나 뜨지 않은 새벽에 조용한 방안에서 전화를 끊고 난 뒤는, 담담하다 못해 암담했습니다. 베란다에 가끔 기타만한 갈매기가 앉아 한참을 울다갑니다. 밤길에는 라쿤들이 구석에 모여 자기 그림자를 빚습니다. 시로 아직 옮기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캐나다에서도 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에게 말 걸어보겠습니다. 착한 척 하며 숨지 않고 시로 아직 옮기지 못한 많은 것들에 말 걸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쁜 역할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빠서 주목받느니 착하게 뒤에 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착한 척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에게만 나쁜 역할을 주어볼까 합니다. 착한 척, 거짓으로 사는 걸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못난 저에게 많은 걸 알려주신 김용범 선생님, 이윤학 선생님, 홍우계 선생님, 윤한로 선생님, 조동범 선생님, 박주택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양예고 문창과와 경희대 국문과 선후배 동기, 왓 형님들, 오록당 멤버들, JJ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 경희 문예창작단 식구들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가고 싶습니다. 무뚝뚝한 아들 때문에 힘드셨을 부모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어설픈 저에게 기회를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 드립니다. ◆김진규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 경희대 국문과 4학년 재학 중.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김진규 당선자 인터뷰 "서른살전에 첫시집 내고 싶어"
"세상 모든 것들이 '나'라는 필터를 통해 어떻게 전과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 부지런히, 치열하게 써보고 싶습니다."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김진규(25)씨는 현재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 밴쿠버에 체류 중이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 휴대폰 번호로 원고를 보낸 탓에 당선 소식을 부모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로 전해 받았는데, 그때가 마트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동료들과 가진 조촐한 술자리를 끝낸 새벽 두 시였다. "처음엔 휴대폰에 찍힌'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 열 글자가 너무 얼떨떨해서 저를 속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한국과 전화 연결이 안 돼 밤새 잠을 자지 못하다가 마침내 당선 사실을 확인했 고, 그날 하루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감격의 여운이 오래갔다. "저는 제가 외로운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외로운 사람인 척하며 사는 게 아닌가 여겼었죠. 그런데 당선 소식을 듣고 나니 잊고 있었던 힘든 일들, 서럽던 일들만 떠 오르더라고요. 남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열심히 쓰고 있으면서도 자괴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김씨는 '문필 신동' 출신이다. 시인인 어머니 김연자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일기를 쓰게 했고, 일기에 소재가 떨어질 때면 동시를 대신 쓰곤 했던 게 시작(詩作)의 시작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열심히 쓰게 된 건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새얼백일장, 만해백일장 등 전국의 여러 백일장을 석권했고, 덕분에 경희대 국문과에 문예특기자로 입학했다. 신춘문예 응모는 올해가 세 번째. 두 차례 모두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아주 어린 나이에 혜성처럼 딱! 하고 문단에 등장할 줄 알았던" 꿈은 "말도 안 되는 꿈이었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올 9월 캐나다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영어학원도 다니고 틈틈이 외국인들과 운동도 하며 이제 막 생활에 적응한 참이다. "이번에 당선되지 못했다면 내년에 또 응모했을 거예요. 그게 제가 쓴 시들에 대한 예의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낳은 자식들인데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 지 않겠어요?"1년 예정의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 그는 "치열하게 시를 쓰며 시 쓰기의 '폼'을 만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수줍게 덧붙인 말. "그리고 서른 살 전에는 첫 시집을 내보고 싶어요." 2014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길고양이 정 순
다음엔 용서 할 수 없어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가볍고 은밀한 흔적들 생선과 맞바꾼 몇 개의 발자국 속엔 아직도 비린내의 안쪽을 훔쳐봤을 집요한 눈빛이 묻어있고 문 열린 주방 한 켠 함지박에 담가놓았던 저녁의 분량만이 온데간데없이 썰렁하다 도둑맞은 함지박 속의 물들은 꺼른하다 아직도 미련을 놓지 못한 듯 우물거리고 있는 갈치의 미세한 비늘만이 느릿한 공복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한때 함지박 속의 사연들은 내 오랜 날들의 청빈을 닮았다 쉽사리 쏟아버리기엔 못내 아쉬운 애증의 볼모같은 것 나는 오랫동안 비린내 어린 시장기를 구해와 어스름의 도둑들을 초대해 왔다 한낮의 환한 부주의를 풀어 놓고서 공복의 저녁들을 키워 왔다 아끼면 아낄수록 말썽을 부리는 무수한 날들의 불청객, 소금 한줌 집어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스름들에게 희고 짭짜름한 충고를 야광처럼 던져주었다
■ 시 당선소감 / 정순 ● 1959년 전북 완주 출생 ● 2011년 평사리문학대상 대상 수상 ● 차령문학 동인 ●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더 많은 언어 찾으라는 채찍 어릴 적 내 꿈은 국어선생님이었다. 산과 들과 꽃들의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 교실 안에서 올망졸망한 말들의 선생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가을 이었을까? 수업료를 받지 못한 학교는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그 이후의 삶들은 좀처럼 국어선생과 관련이 없었다. 더는 꽃들의 이름과 계절의 행방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내가 성장통을 빠져나와 어떤 세상으로 가는지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했다. 실어증 같은 날들을 명치께에 묻고서 세월을 보낸다는 것, 그러나 그 잃어버린 말들의 안쪽에 더 많은 내가 더 많은 그리움의 언어들과 더 많은 슬픔의 나라들이 더 오롯이 숨 쉬고 있을 줄이야! 그게 시였다. 무심코 마주친 시는 나를 아니, 나의 문장들을 논두렁 저쪽으로 자화상처럼 떠돌게 했으며 돌아오는 길엔 꽃들의 조언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말들 속에서 더 많은 언어들을 찾아낼 수 있는 것,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끝으로 이곳까지의 나를 챙겨주신 차령문학 박경원 선생님과 김은실 시인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의 등불 한 사내와 내 소중한 분신 재옥, 재복, 재승이와 함께 당선을 자축하며 난문을 건져 올려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 자리를 펼쳐주신 동양일보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시 부문 심사평 / 길고양이 통해 인간의 삶 접근...고정관념 벗어나 선자에게 넘겨진 응모작품(469편)들을 숙독하고 느낀 점은 모두 일정수준을 갖췄으나 새롭게 내놓을만한 작품으로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찾기는 쉬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엇비슷한 것은 전국 각지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문학강좌의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어휘들이 난무하고 난삽한 작품들이 많아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김현승의 ‘엄마의 완경기’와 김지숙의 ‘주막’ 그리고 권인희의 ‘고등어 굽는 여자’ 와 정 순의 ‘길고양이’란 작품이다. 김현승의 ‘엄마의 완경기는 꽃피는 봄철이 오면 고향집 앞뜰에 채색된 봄이 피는 엄마의 우주를 그려내고 있다. 완경기란 폐경기를 말하는데 이는 여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의 전환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착상이 돋보였다. 김지숙의 ‘주막’이란 작품은 장삿길 떠난 아들을 위해 사거리 큰 도로 옆에 작은 주막을 차리고 기다리는 모정을 그리고 있다. 강나루가 사라지고 버스정류장이 생기고 아들이름을 내건 주막에서 인생의 석양을 맞는다. 세상을 뜨고 빈 집만 남아 노모의 가슴처럼 기다림의 애틋한 정감을 더하고 있다. 권인희의 ‘고등어 굽는 여자’에서 달빛에 고등어를 굽는 여자의 삶 속에서 여자의 삶이 고등어를 닮아가는 팽팽한 삶 그물자락을 바다 한가운데서 펼쳐 보이며 여자가 그물 옷에 묻은 저녁을 털어내고 있다는 등 바람의 흔적이 끊이질 않는 작품이다. 정 순의 ‘길고양이’란 작품은 삶이란 명제에서 길고양이와 인간의 삶이 하나로 오버랩되고 있다. 콜렛은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절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다’라고 했고 웨슬리 베이츠는 ‘고양이가 있는 집에는 특별한 장식물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집고양이가 아닌 길고양이와의 관계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진다. 다각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동시다발적인 것들이 삶의 실체 속에서 적절한 관계 접근을 통해 내포한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다. 정 순의 길고양이를 당선작으로 밀며 앞으로 튼실하고 절제된 탈관념의 사물시 쓰기에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정연덕(시인) 201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반가사유상 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최찬상 시인 약력>> *1960년 경북 칠곡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2014 영주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 김지희
한잔 노동이 넘실대는 부엌에는 여자의 일생이 부조되어 있다 엄마 허벅지 베개 삼아 달게 잠들었던 소녀시절이 캄캄해 보이지 않는 새벽 어스름 잠든 아이의 꿈자리를 지나 슬그머니 부엌에 나가 불을 켠다 문득 완전한 어둠 속에 던져졌던 세상 한 곳이 환하다 옹이 박힌 가슴으로 숭숭 새는 물소리를 잠근다 부엌 속에 갇혀 맵고 짜고 달고 가끔 바삭바삭 타는 소리 너머 나는 세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존재하지 않은 가을이었다 부엌에 앉아 작은 상을 성좌처럼 펴고 나의 언어를, 별을 찾다가 웅크린 어깨선이 어느 파도에 부딪혀 무너지는지 속이 거북하다 살다 남은 시간을 쪼개고 찬 손을 비비고 싱크대 속에 갇혀 몇 년째 속앓이 한 냄비를 닦고 예리한 어둠에 그을린 낯선 도시를 헹구며 깊은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세우고 국을 끓인다 파, 시금치 온통 날것인 것들이 불꽃으로 저를 살라 새로운 맛을 낸다 모든 사랑의 고통의… 뉘우침으로 한 그릇을 위한 부엌의 노동엔 어떤 해석도 필요치 않다 성찬식 밀떡처럼 작은 평화를 입에 물고 부조의 문을 밀고 나와 식구들의 잠든 귀를 깨끗하게 여는 저 폐경기의 새벽!
[당선소감] “시를 결코 허욕과 명예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다. 시라는 견고하고 딱딱한 옥석을 말없이 석수장이처럼 갈고 닦는 일만을 했을 뿐이다” -발레리 새벽녘 ‘별’을 가지고와 ㄹ을 갈고 갈아 ‘벼’를 만들기도 해보지만, 과연 나는 시를 쓰며 ‘시라는 옥석을 말없이 석수장이처럼 갈고 닦는 일만을 했을 뿐’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늘 반문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보다는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며 언어 속에서 마음의 극치를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언어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안으로 갇혀 캄캄한 바위 속 소통할 수 없는 무늬만 그리고 있었다. 노을이 모닥불처럼 피어, 식어가는 12월을 태우는 거리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느 상점에서 흘러나온다. 절망도 경쾌하게…. 낡은 전통에 매달려 있는 언어를 지우고, 손 끝마디로 새겨 넣은 뿌리로, 달의 큰 통 안에 있는 여자로, 투명한 모음들이 풍선처럼 솟아오르는 언어로, 겨울 가로수가지 끝에 걸린 새벽별로… 말없이 견고하고 딱딱한 시라는 옥석을 석수장이처럼 갈고 닦을 것이다. 이번 겨울이 지독하게도 따뜻하다. 약력: 성주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수료 [시부문 심사평] 삶의 곡진한 국면과 신선한 이미저리의 조화 올해 마지막 수확거두고자 하는 의욕 덕분인지, 이번 영주 신춘문예에는 멀리 호주와 미국을 비롯 한국어의 영토가 펼쳐진 곳들로부터 많은 응모작들이 쏟아졌다. 문학적 열정으로 가득 찬 1천여 편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며 선자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응모작들의 분량도 예년에 비해 몰라보게 불어났지만, 문학적 성취의 경중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시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자들은 흔히 신춘문예 투라 불리는 지나친 수사와 단단하게 엮여 있지 않은 이미 저리의 남발이 불거지는 시편들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데 합의하였다. 개중에 어떤 이의 작품은 명징한 이미저리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시적 전개를 뒤에서부터 뒤집었더라면 더 효과적일 것 같기도 하였다. 그만큼 작자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작위적이고, 파편적인 사유가 팽배된 시편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선자들은 시적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분별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네 삶의 다양한 국면을 진지하게 담고 있는 시들, 시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는 이미저리의 구사 능력, 사전적 의미를 넘어 사물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을 가졌는가? 등의 여부에 중점을 두어 본심서 논의할 만한 작품들을 골랐다. 그 결과 김은정 씨의 <폭설>, 김곳 씨의 <읽어버린 길>, 이명옥 씨의 <구두코를향하여>, 김지희 씨의 <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 등을 본심에 올려놓고 논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하는 묘사력과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신선한 의미망을 환기하는데 상당한 수준을 견지하고 있었다. 김은정의 작품들은 그같은 점에서 주목이 갔지만 작자가 품은 세계관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고, 시의 전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아직 착근이 덜 되었다는 데서 아쉬움을 남겼다. 김곳의 작품들은 이중적 의미망을 엮어가는 알레고리의 구사에 치중하였지만 모호하거나 전개가 되지 못한 채 마무리를 서두르는 미숙함을 노출하였다. 이명옥의 작품들은 해체적이면서도 명징한 이미저리들이 돋보였지만 현실과의 긴장 관계가 이완되어 그 절실함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김지희 씨의 작품들은 여성의 삶의 무대인 살림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한 사려 깊은 천착에 바탕 해있다. 피로를 유발하는 도로를 넘어 화자를 참인간으로 재탄생하게 하며, 나아가 식구들의 건강하고 밝은 삶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사랑의 정신을 담지하고 있다. 그것들이 과하지 않은 이미저리를 동반하여 처리되고 있는 점들이 주목을 끌었다. 몇 군데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은 산문적 잔재와, 다소 부족한 정적(靜的) 모티프들이 선자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선자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을 놓고 벌인 토론과 장고 끝에 최근 들어 지나치게 언어 유희와 낯선 상상력의 세계로만 치닫는 신춘문예의 병폐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에 따라 삶의 곡진한 국면들을 시의 그릇에 담아내면서도, 명징한 이미저리의 강구를 통해 사상(事象)들에게 새롭게 접근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점들을 사서 김지희 씨의 작품을 로 밀기로 하였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앞으로의 정진과 분발을 당부하며, 아울러 이번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도 더욱 정진하여 새로운 기회의 문을 활짝 열기 바란다. 심사위원 : 박몽구(시인, 글), 변종태(시인)
[2014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뇌태교의 기원 이소연 은빛 잠을 수집하는 뇌의 바깥에는 조용한 산책과 쇼팽의 음악이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관념으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을 좋아해요 덩달아 창을 물어뜯는 별자리의 감성을, 나무 위에 앉은 곤줄박이의 감정을, 마당 앞의 바위의 감상을 좋아해요 그때 뇌는 주글주글한 감성과 지성을 가공하고요 나는 뜨개질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바늘코에 걸린 실 한 가닥으로 일요일 붉은 공화국에 대해 점을 치는 거죠 그러나 굴뚝이 아름다운 공장지대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피해야 해요 뇌는 풍경을 쪽쪽 빨아 먹고 조금씩 단단해지거든요 참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면 뇌가 더디게 어제의 풍경을 음미할지도 몰라요 뇌를 호두알로 생각하면 위험해요 뇌는 오 분간의 육류를 꼭꼭 씹는 것을 황홀해해요 하지만 나는 핏줄과 신경, 눈 코 입을 위해 십 분간의 채식을 하지요 식물성은 아이의 성격과 눈동자의 색까지 결정하니까요 나는 감상적인 욕조 속에서 돌고래들의 꿈을 꾸고, 뱃속의 아이는 벌써 뇌태교의 기원을 생각하는지 양수를 동동 차네요 [당선소감] "출산 통해 한단계 더 성장" 시는 가슴을 통해서 몸으로 온다. 내 몸에 잉태된 시만이 다른 나를 뱉어낼 수 있었다.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 그러니까 시가 되고 싶은 이미지를 품고 끙끙 앓지 않고서는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나는 시를 잉태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런 면에서 단 한 번의 임신과 출산이 나를 자라게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당선 소식이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과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나는 문학만 공부했다. 그런데 시인이 되는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자주 나약해졌고 잦은 패배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좀 단단해졌던 모양이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거침없이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나의 따뜻한 지도교수이신 박철화 선생님과 이승하 선생님을 비롯해 중대 문창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내가 쓴 허접한 소설을 읽어주셨던 정지아 선생님과 신상웅 선생님께는 면목이 없다. 그리고 사랑한다. 문우들은 내 전화를 받아준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받아줬다. 정말 고맙다! 다들. 당선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해준 전인철 선생님과 양가 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1쇄 시인(아직 1쇄밖에 찍지 못한)’ 이병일과 아들 서진이에게 오랜만에 곰국을 끓여 먹이고 싶은 저녁이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구원자라고 불러본다. 청년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 ▷경북 포항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학·석사 [심사평] 음악이 깃든 전언과 정교한 문장 매혹적 나이 제한 탓에 응모작품 수는 여타 신춘문예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없었으나 뛰어난 작품들은 절대 적다고 할 수 없었다. 김선욱, 김선화, 박명린, 박세랑, 이소연, 임소라, 정수미의 시를 두고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다음 세 명의 작품을 두고 논의했다. 박명린의 ‘쑥 인절미’ 외 4편은 순결한 청춘의 기록이다. 자신을 ‘그대’에게 줄 인절미에 빗대는 마음이 그렇고, 밀어(密語)를 밀어(密魚)로 바꾸는 변환이 그렇고, 고백을 사랑과 동일시하는 시선이 그렇다. 그런데 청춘에는 본래 비교급이 없어서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감상과 과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이다. 김선화의 ‘홈리스 소행성’ 외 4편에는 단정한 말들 속에 풍요로운 사연을 쟁여 넣는 솜씨가 있었다. 사물들이 제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시는 이미 다른 세계에 가 닿아 있다. ‘빛의 샤워’ 같은 작품은 이 응모자가 풍경과 사연의 이질동상(異質同像)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말들이 제가 가야 할 마지막 경지까지 가지 못했다. 결구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이 점만 보완한다면 곧 다른 지면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소연의 ‘뇌태교의 기원’ 외 4편은 단번에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음악이 깃든 전언은 아름답고, 정교하게 구축된 문장은 매혹적이었으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어조는 화려했다. 그러면서도 과장도 과소도 없이 제가 가야 할 사유의 목적지에 정확히 이르고 있었다. 시편들이 고른 성취를 보이고 있는 점도 신뢰할 만했다. 좋은 시인을 만나게 된 기쁨이 크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최승호·김기택·권혁웅 [2014 경제신춘문예 시 당선작] 집배원 권삼현
그동안 뭐 했냐고 묻지 마라 우체국으로 걸어간 봄은 온통 꽃 필 생각이다 울퉁불퉁 생긴 대로 볼품없는 세월 집배실 옆 차르르르 햇살 엎질러진 모과나무는 안다 향기란 어쩌면 제 몸을 뚫고 나오는 연둣빛 새순 같은 것 오늘도 백오십리길 꽃 소식 앞장세우고 배달 나가는 집배원 빨간 오토바이 휘청이도록 봄바람 분다 풀빛 연애편지는 내가 업어주고 싶은 것들 바람 불고 황사 자욱한 땅에 모과나무는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꽃 필 생각이다 봄을 찾아 가다가 막막했던 모든 것들이 꽃길이다 번지가 지워진 봄날의 주소를 한 땀 한 땀 기워가며 환한 우표로 들여다보았을 그처럼 제 몸에 감춘 것들은 기다리다가 꽃이 된다 아침 오는 길목 푸른 물길 지피는 봄바람 속에 우리 살아가는 동안 봄날이다 꽃 피는 나무다 201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옥돔 이명숙
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 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 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시 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 때 늦은 국수 한 사발 입술주름 펴진다
식용유 한 스푼에 열 올려 튀겨내면 뼈째 먹는 보약이라나 오일장 할망 입심 바다도 통째 팔겠다 검정 비닐 속 찬거리
[당선소감] 미용실 쉬는 날, 중문 가는 길 1,100도로 전망대에서까마귀들이 하늘을 업고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흑요석 같이 땅에 앉은 까마귀의 검은빛 그 단색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순간 그것이 그리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이런 뜻밖의 좋은 소식을 접하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몇 십 년 넘게 살던 서울에서 제주까지 와야만 했던 이유가 시조를 쓰기 위해서였나 보다. '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는 은혜로운 선생님의 시론을 기억한다. 아직은 제주의 오름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잘 모르지만제주의 뿌리 깊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기를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많은 정성과 시간을 제주를 이해하는데 쏟게 될 것이며 시조를 쓰는 것으로아름다운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뭍에서 제주를 찾는 인구들이 늘어나는 요즘제주를 알리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글을 쓰려거든 제주로 오라'잊고 있던 모든 감성이 제주에 와서 활화산처럼 폭발한 것은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높고 큰 하늘과 부드럽고 넉넉한 바다가내게 주는 느낌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람 그리고 초록빛 생명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쓰는 내 시조의 바탕은 사랑이다.도로를 해안을 중심으로 한 겉모습만 봤지만이제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속의 사랑을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시조, 율격이 아름다운 춤사위로선보이고 싶다. 젊은 사고로 우리 시조의 나이까지도 줄여서'시조' 하면 고루하게 생각하는 젊은 영혼에 신선한 충격이 되는 시조를 짓고 싶다.부족한 작품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는 남편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약력: 서울 출생. 2013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10월 장원 현재 헤어디자이너 [심사평] 시조는 정형양식의 시이다. 정형양식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대시로서 불리한 점이기도 하다. 좋은 시조는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야 하고 3D 동영상처럼 입체적이며 동적으로 다가올 때 실감과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 영주신춘문예에 공모된 작품들의 수준은 고르게 높았다. 여러 차례 정독을 하고 심사위원간 돌려 읽기와 소리 내어 낭송하는 과정을 거쳐 이명숙의 「옥돔」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함께 보내온 9편의 응모작도 당선작을 결정하는데 역할을 했다. 「옥돔」은 오일장에서 옥돔을 파는 좌판의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 시대의 서정을 우려낸 작품이다.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3시’에서는 감각의 수준을, 할머니의 구수한 입심이 실린 ‘바다도 통째 팔겠다’에선 시의 너른 품이 읽혀진다. 최종심에서 겨룬「여줄가리 닭의장풀」과 「가을적벽」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을 떠나지 못했음을 밝힌다. 아쉬움을 전하며 더욱 정진을 빈다. 거듭 이명숙 님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권갑하(시인, 글) 박명숙(시인)
201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풀꽃을 말하다 박복영 햇볕이 제 몸 꺾어 담벼락을 올라간 곳 담장 밑에 땅을 짚고 깨어난 풀꽃하나 시간의 경계 밖으로 내몰린 듯 애처롭다 뿌리박고 살아있어 고마울 따름인데 손때 묻은 구절들이 꽃잎으로 흔들린다 흔하디 흔한 꽃으로 피어있는 이름처럼 살면서 부딪치며 견뎌온 시간들이 따가운 햇볕에 파르르 떨고 있다 켜켜이 자란 잎들이 꽃 향을 우려내고 풀꽃,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할 듯 감아쥐고 올린 꽃은 또 흔들리고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일어선 꽃 대궁이 절창이다 <당선소감 >"율격 속에 책임과 자유가…" 땡볕에 시간이 낯설어지면 홀로 이마에 땀방울을 찍으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좋았고 그 그림자에 나를 세우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남루의 들판을 덮어오는 눈발이 좋았고 일찍 찾아온 어둠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내 몸 안에 문학의 깊은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시조의 뿌리가 저에게 기꺼이 신발 하나 내어주어 고맙고 부족한 글속에서 어둠보다 그늘이, 그늘보다 햇볕이 좋음을 일깨워 주신 이달균 시인님, 장성진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저에게 돌아온 큰 몫은 몸 안에 뿌리 하나 튼실하게 키우라는 뜻으로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먼 길을 기다려준 아이들과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쟁이가 되겠다고 감히 약속도 해봅니다. 또한 빈터 동인들, 그리고 수원의 홍 시인, 김 시인, 윤 시인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끈 풀린 자유보다는 율격 속에 더 많은 책임과 자유가 있음을. 이제 그림자 하나 기꺼이 제 몫으로 지고 산길을 걸을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1962년 전북 군산 출생 ●1997년 월간문학 시 당선 등단 ●2001년 방송대 문학상 시 당선 심사평 "풀꽃의 안간힘 형상화 뛰어나" 새로운 갑오년 첫날을 열면서 또 한 사람 시조인의 장도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700년을 이어온 시조의 위의를 생각하고 그 과업을 계승할 단 한 사람의 신인을 뽑으면서 우리는 자못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라는 정형의 그릇 속에 미감이 좋으면서도 영양이 잘 갖춰진 음식을 담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포착한 대상이 구태의연해서도 안 되고 가락의 긴장감이 느슨해서도 안 된다. 늘 말해 왔듯이 밖으로 일탈하고자 하는 원심력과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구심력의 균형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시조는 발현된다. 다시 말하면 가락을 유지하면서 제 할 말을 하는 신인을 찾으려 했다. 우선 마지막까지 선에 든 응모자는 조경섭, 송가영, 권예하, 박복영 네 사람이었다. 조경섭의 ‘소매물도에서’는 마디를 끊어가는 안정감은 있으나 결구를 맵시 있게 요리하는 솜씨가 부족했다. 송가영의 ‘초꼬슴, 초꼬슴처럼’은 대상을 끌고 가는 힘은 좋지만 참신한 이미지보다는 지나치게 산문적 서술에 의존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권예하의 ‘거미’는 남성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점에 눈길이 간다. 8각형의 거미집이 기하학적 형식미를 갖는 이유는 먹이는 걸려들지만 바람과 햇빛은 통과시킨다. 결국 거미집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한 편의 절창처럼 완벽하다. 이 작품은 굳건한 건축에는 성공하였으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세공에는 실패한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박복영의 ‘풀꽃을 말하다’를 최종 당선작으로 민다. 이 작품 역시 흠결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자연의 한 존재로 살아가려는 풀꽃의 안간힘을 형상화한 노력에 점수를 준다. 군데군데 서술적 표현이 거슬리지만 넷째 수 종장의 완결미가 이를 보완해 주었다. 더욱 정진하여 빛나는 시세계를 열어나가기 바란다. 응모한 작품들을 일별하면서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에 메스를 대고 싶었다. 대체로 연시조로 승부를 거는 것은 신춘문예 당선작의 경향성에 의도적인 짜맞추기를 하려는 증거로 보인다. 단수라 하더라도 상상력이 독특하거나 서정성의 완결미를 보여준다면 당선의 영예를 얻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굳이 장황하게 연을 늘여 긴장감을 잃어버리기보다 정형시 본연의 압축과 절제를 보여준다면 훨씬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드리고, 아쉽게 선에 들지 못한 이에게는 재도전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에게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장성진·이달균>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뜨게 부부 이야기 외 1편 곽길선 내 가난은 에멀무지 뜨개질 하고 있다 도안 없는 가시버시 그 실눈 크게 뜨고 허공에 색실을 놓아 곰비임비 재촉한다 이랑뜨기 몰래하다 코 놓친 지난날이 너설을 빠져나와 휘감아 본 길이지만 마음은 삐뚤삐뚤한 아지랑이 길이 된다 어영부영 또 하루가 저녁으로 흘러가고 양지에 펼쳐놓은 눅눅해진 저 그리움들 오늘도 발바닥에 밟힌 티눈을 뽑아낸다 -뜨게 부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남녀 -너설: 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 나온 곳. 양파의 시 날마다 집에 갇혀 봄날을 기다렸던 한겨울 불면의 밤 스스로 걸어 나와 창문에 드리워진 슬픔 입김으로 닦는다 긴긴날 시린 생각 껍질을 벗겨내고 반짝이며 날아온 햇살의 지문으로 꽉 막힌 울대를 만져 닫힌 말문을 연다 얼룩진 그리움들 눈먼 시간도 지워 백지로 떠오르는 욕망의 흰 속살에 몸으로 움켜잡은 먼 길 바람이 읽고 있다
[당선소감] 시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 밤이면 자주 시를 쓰는 꿈을 길게 꾸었습니다. 어릴 적 글쓰기를 좋아했던 저의 꿈은 노벨 문학상을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을 잊고 산 몇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운명처럼 시조를 만났고 그 막연했던 꿈이 다시 열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시를 공부하면서 날마다 저의 욕심을 뜨겁게 담금질했습니다. 그동안의 신춘문예 낙선이 매우 쓰라렸지만, 그 좌절의 시간이 저를 더욱 튼튼하면서도 강하게 키운 힘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시조를 위해 넓고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경상일보사 관계자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시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 운명이 선명하게 각인되고 천착될 수 있도록, 그동안 희망과 용기를 주신 이교상 선생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수업한 김성현 시인, 유선철 시인, 이병철 선생님, 김석인 선생님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묵묵히 저를 지켜봐 주고 배려해준 든든한 남편과 소중한 가족들께 이 영광을 모두 돌립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입선 제21회 신라문학대상(시조부문)수상 [심사평]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20명의 78편이었다. 경상일보 응모작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조라는 정형이 시를 어떻게 빛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만만치 않은 내공의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차례 숙독을 하다가 처음 가려낸 작품은 ‘사리의 바다’ ‘엇박자 풍악놀이’ ‘목이 긴 새’ ‘계산기’ ‘뜨게부부 이야기’였다. 물론 같은 투고자의 다른 작품도 꼼꼼히 읽은 후의 결정이었다. 위 작품들은 두드러진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해내는 점에서, 일상적 경험을 자연스레 시화해내는 능력면에서, 대상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점에서, 난해한 이미지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구성면에서 보면 ‘계산기’가 좋지만 너무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목이 긴 새’는 섬세하고 치열하나 기성시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결국 심사위원의 눈은 ‘뜨게부부 이야기’에 닿았다. 이 작품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천착,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신산한 우리시대 삶의 풍경을 잘 삼투시키고 있다. 그런 미덕들이 개성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였다. 같은 시인의 ‘양파의 詩’를 더하여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우걸 시조시인
201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흑점(黑點) 이나영
한사코 뿌리치는 너의 어지럼증엔 무언가 있지, 싶은 가을날 해거름 녘 비밀리 자라고 있다던 뇌하수체 꽈리 하나 좁아진 시야만큼 햇빛도 일렁인다며 태양의 밀도 속에 움츠러든 코로나처럼 궤도를 이탈하는 중 너는, 늘 오리무중 당선소감 언어의 우물에 시조의 두레박을 대학교 3년 동안 철없고 덜 여문 나날들을 영글게 해준 것이 제겐 시조였습니다. 어떤 궤도로 진입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던 저에게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길을 잡아주는 나침반이었지요. 스물둘, 초록의 날을 고스란히 바치며 시조 한 수 한 수를 열매로 달기 위해 두근거리는 언어들을 품어왔습니다. 왜 하필 시조냐며 자꾸만 다른 안테나를 들이밀던 세상의 말들에도, 꿋꿋이 타자기를 두들겼던 보람이 이렇게 꽃핍니다. 시조의 운율 속에 내 마음결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고등학교 시절이었지요. 그때부터 시조의 행간을 오가며 어설픈 발걸음으로나마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내게 평안과 힘을 가져다주는 이 길이 언젠가는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이기를 믿습니다. 성공과 취업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그늘진 젊음의 시간을 시조가 구원해 주었듯이 그들에게도 따스한 위안이 되고 한 줄기 빛을 내어줄 수 있는 시인이기를 원합니다. 아직은 들끓는 태양의 운동처럼 들쑥날쑥하지만 살아 있는 언어의 우물에 시조를 길어 올릴 두레박을 힘껏 던집니다. 홀로 방황하며 망설였던 날들은 이제 날려 보냅니다. 궤도로 진입했으니 주저함은 떨치고 당차게 시조의 길을 갈고 닦겠습니다. 길목에서 손잡아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바르게 시조를 지켜내는 시인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재촉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부족한 맏딸을 끝까지 믿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온 마음을 바칩니다. 매운 가르침 뒤에 늘 따스한 격려를 잊지 않으셨던 이승은 선생님께도 금싸라기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그리고 ‘좁아진 시야’ 가운데에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 친구가 참말 고맙습니다. 이제, 새해 햇귀에 시조의 오늘을 얹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이나영 1992년 대구 출생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2013년 중앙시조백일장 제14회 전국가사시조창작공모전 입선 심사평…의학·과학 용어 도입… 상징·은유로 집약 시조는 정형률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적 기율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장과 구의 개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밑바탕으로 내용의 축조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응모작들이 형식에 갇혀 자신의 생각을 개성적으로 풀어내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오랜 절차탁마로 극복할 길 밖에는 없다. 으뜸의 자리에 오른 이나영 씨는 장래가 촉망된다. 당선작 '흑점'이 그것을 잘 말해줄 뿐만 아니라 같이 보내온 세 편의 탄탄하고 참신한 작품들이 그 점을 넉넉히 뒷받침해준다. '십자드라이버' '스물의 자취' '별똥별'이다. 두 수로 직조된 '흑점'은 은유의 깊이와 폭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전문적인 의학`과학 용어가 시어로 도입되어 효과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흑점이 폭발하면 지구의 기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어지럼증’을 안기는 셈이다. 흡사 몰래 자라고 있는 머릿속 ‘뇌하수체 꽈리’처럼. 흑점 폭발로 태양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온화된 고온의 가스로 구성된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 영역인 ‘코로나’는 움츠러든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도 ‘코로나’처럼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려는 존재가 있다. 궤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줄로만 여기는 기성세대의 눈길로 볼 때 ‘오리무중’으로 일탈하는, 일탈을 감행하는 요즘 청소년들이 몹시 불안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당선작 '흑점'은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시조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중층구조의 상징과 은유로 집약화한 결실이다. 즉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새로운 발화로 생명의 존엄과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명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신인으로서 신뢰가 가는 강점이다. 그 점을 높이 산다. 최종까지 오른 용창선, 이한, 안은주, 박경화, 후인영, 김광희 제씨들의 응모작들도 공정의 깊이를 보였지만 당선에 이르기까지는 몇 가지 미흡한 점이 있어 다음 기회로 밀렸음을 밝힌다. 당선된 이나 결승선 직전에 주춤하게 된 이들 모두 가일층의 분발을 빈다. 이 궁핍한 시대에서 시조 쓰기란 우리 삶을 보다 윤택게 하고, 개개인의 내적 품격에 꽃 이슬을 얹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 이정환 시조시인 >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꽃피는 광장 정승헌 돌담도 스크럼 짠 유월의 대한문 앞 물대포 날아드는 왜자한 화단 너머 샐비어 붉은 깃발이 자리싸움 한창이다 질끈 두른 머리띠에 징소리가 울린다 응어리진 선소리꾼 목이 쉰 구호마다 신호에 발 묶인 차들 덩달아 소리치고 발 디딘 한 뼘 땅을 탐하려는 트레바리 촛불도 고개 숙인 분향소 흘금대다 저물녘 도시 소음에 귓불이 시려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 문 메아리들 흘레바람 비를 몰아 묵은 앙금 씻고 나면 헐벗은 저 꽃밭에도 봄은 그예 오겠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바람의 풍경 김석인
억새의 목울대로 울고 싶은 그런 날은 그리움 목에 걸고 도리질을 하고 싶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 모습 세워놓고 부대낀 시간만큼 길은 자꾸 흐려지고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벼 봐도 흐르는 구름의 시간 뜨거울 줄 모른다 내려놓고 지워야만 읽혀지는 경전인가 지상에 새긴 언약 온몸으로 더듬지만 가을은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온다
[경상일보 2014년 신춘문예 당선작-동시] 나, 소금이야 양예준
고집으로 뭉친 소금. 누구도 소금을 떠먹으려 하지 않죠. 고집스런 소금이 배추에 술술 뿌려지고 나물에 솔솔 섞여지고 국물에 한 솥 녹아들면 비로소 맛 나는 음식이 되죠. 사람들은 맛과 음식을 기억하지만 그 안에 눈물 같은, 소금이 몰래 녹아있죠. 살짝은 알게 됐죠. 소금이 꼬옥, 움켜 쥔 속내를요. [당선소감-동시] 나무처럼 피우고 버리는 과정 계속해 나갈 것 나무가 해마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달고, 다시 무수한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그러한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산에 있는 흙은 낙엽이 썩어 켜켜이 쌓인 세월의 지층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우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 견고하게 자라는 나무. 문학이라는 나무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얼마나 피워내고 버렸는가. 속살(나이테)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어린 나무에 머문 거 같다. 매 해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였다. 게으르거나 슬럼프일 때는 한두 군데, 의욕이 과할 때는 열군데 넘게 보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 가지 회의가 든 것은, 나는 작품을 정말 제대로 쓰고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확신할 수 없었다. 피워내고 버리기의 과정이 너무 고되고 지난했던 것일까. 올해는 우체국에 들어가서도 표정이 심드렁했고 뒤돌아서면서 응모한 사실을 지워버렸다. 그러던 중 당선 통보를 받았다. 동시라는 장르는 볼수록 신기하고 어여쁜 어린 아이와 같다. 삶이 지루하거나 힘들 때, 세상이 어수선할 때, 내면에서 선과 악이 맞물릴 때, 동시를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눈에서 별이 반짝인다. 동시의 힘은 거기에 있고, 동시 한 편이 마음에 깃든다면 세상도 아름답게 변해가지 않을까. 하지만 좋은 동시를 쓰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피워내고 버리는 과정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이 나에게 이로운 밑거름이 될 것이기에. 끝으로 서울과기대 대학원 문창과 김미도 교수님 및 모든 교수님들께 뒤늦게나마 마음의 빚을 갚는 것 같다. 축하를 해준 옛 원우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미흡한 제 작품을 기꺼이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달고 맛있는 열매가 처음으로 열렸다. 계절이 바뀌면 누렇게 떠서 우수수 떨어질 것이고, 다시 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양예준 1966년 서울 출생 2012년 장생포고래창작동화 공모전 동화 당선 [심사평-정두리] 시의 따뜻함과 희망 함께 읽을 수 있어 이번 신춘문예 동시부문 응모작은 예심을 거쳐 온 20명의 작품 81편이었다. 81편의 작품을 꼼꼼히 읽으며 전체적인 성향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미 예심을 거쳐 온 작품들이라 작품의 수준은 고르고 비슷했다. 신춘문예 동시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리라 생각하지만, 응모자들이 동시를 대하는 태도는 곧 글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시의 주제나 표현기법에서 특별하게 격을 허물거나 새로운 시도를 준비한 작품은 없었다. 그 것은 신춘문예 작품에 거는 ‘새로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기도 했다. 81편 중에서 ‘신문지 연’ ‘땡감’ ‘안과’ ‘나, 소금이야’ ‘국화꽃 핀 계단’ 5편을 골라내고, 이 작품을 다시 읽었다. 다섯 작품 모두 동시를 다루는 솜씨가 엇비슷했고, 시의 소재를 어린이의 감성에 맞게 소중한 인연으로 엮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나, 소금이야’를 놓고 잠시 망설였다. 함께 보내 온 ‘날개와 깃털’이 걸려서였다. ‘나, 소금이야’는 마지막을 맺는 행에서 갑작스런 마감을 한 점이 서운함을 주었으나, 함께 보내 온 다른 작품들과 함께 시가 주는 따뜻함과 희망을 함께 읽으며 동화되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나, 소금이야’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자는 한 분이어서 아쉽지만, 그 한 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응모한 모든 분께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정두리- -1982년 한국문학신인상 시부 당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방정환문학상, 가톨릭문학상, 펜(Pen)문학상 수상 -<신나는 마술사> 외 동시집 다수 조선일보 2014년 신춘문예 공모 동시 당선작 엄마 마음 김정수 지각할까 허둥지둥 나가는데 현관 앞에서 불러 세우는 우리 엄마 퉁퉁거리는 나를 붙잡고 한참을 놓아주지 않아요. 외투를 매만지며 툭툭 목도리를 다시 여며주며 툭툭 장갑 낀 손도 쓸어보며 툭툭 바지 단 밑 신발 끈까지 잡아보며 툭툭 잠시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빠르게 내 몸을 쭈-욱 살피더니 마지막으로 내 엉덩이를 툭툭 그제야 출발신호 받은 말처럼 풀려났어요. 학교로 달려가는 내내 쌩쌩 바람이 외투와 목도리를 벗기려 괴롭혀도 난 조금도 춥지 않았어요. 그제야 알았어요. 툭툭, 엄마 손길이 닿은 곳마다 엄마는 오래도록 식지 않는 손난로를 붙여놓았다는 걸요. [당선소감] "아동문학이란 줄넘기, 망설임 없이 넘을거예요" 어릴 적 줄넘기 놀이가 생각납니다. 두툼한 줄이 땅을 거칠게 때렸습니다. 줄을 꽉 움켜잡은 손 들은 고집스러웠습니다. 난 공기를 찢고 땅을 가르는 파열 음이, 불끈불끈 위협하는 줄잡은 손의 근육들이 정말 두려 웠습니다. 그렇다고 물러나 구경만 하기는 싫었습니다. 친 구들은 성큼, 잘도 뛰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꼬마야 꼬마 야'란 노래를 완벽하게 마치고 사뿐하게 빠져나가 박수까지 받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또다시 나의 뒤 를 압박해왔고 그 틈에서 난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바랐습 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온 나의 차례. 난 두 눈을 꼭 감 고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 주춤주춤 들어섰지만 매번 거칠고 딱딱한 줄에 얻어맞아야 했습니다. 설레고 즐거운 줄넘기 놀이가 내게는 늘 불안이고 두려움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도전에서야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줄의 리듬이 눈에 들어오는 듯합니다. 이젠 아동문학이란 줄넘기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을 작정입니다. 문학의 길로 이끈 김옥림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게으름과 무지는 새로운 것에 대한 최대의 적이다"란 말씀 새기겠습 니다. 남편 서용석, 딸 유진, 아들 지원, 늘 응원해줘서 고마 워! 덜컹거리는 길 나란히 걸어준 문우 정가람, 존재 자체만 으로 채찍이 되어준 현대수필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마지막 으로 심사위원 선생님, 좋은 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1970년 충남 당진 출생 ▲2006년 현대수필 등단. 김옥림 글쓰기교실 [심사평] 절묘한 의성어 구사… 생동감 있고 자 연스러워 응모작들은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참신함과 새로 움이라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 인 내용을 장황하게 산문적으로 풀어 쓴 작품이 많았다. 그 리고 과거의 동심이 아니라 현재 아이들의 정서와 감각과 생활을 참신한 시적 표현에 담아내기를 바란다. 최종적으로 서담, 최정희, 박은실, 문신, 김정수의 작품을 검 토하였다. 서담의 '마당이 넓어졌다'는 작품에 담겨 있는 생 각이 동시답게 산뜻했다. 그런데 함께 보낸 작품의 기복이 심해서 미덥지 않았다. 최정희의 '나무 도서관'은 동화적 발 상과 활달한 상상력이 눈길을 끌었으나 기성 동시에서 흔히 보았던 발상이었다. 박은실의 '겨울나기'는 잔잔한 시상 속 에 뜨개질 털실처럼 훈훈한 동심을 담았다. 그러나 이미 많 이 다루어진 소재와 주제여서 새로움이 없었다. 문신이 보 내온 작품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시적 역 량에 신뢰가 갔다. 그러나 동일한 소재의 반복이라서 단조 로웠고 '별못'은 아름다운 상상과 시적 재치가 번뜩였으나 작위적인 면이 흠이었다. 김정수의 '엄마 마음'은 아이를 세 심한 데까지 알뜰살뜰 보살피는 엄마 마음을 실감 나게 그 렸다. 의성어의 절묘한 구사와 생동감 있는 리듬감이 돋보 이고 시상의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엄마의 사랑을 손난로에 비유한 것도 참신했다.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와 참신한 비유가 조화를 이루어 깔끔하고 산뜻하게 완 결된 작품이어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 이준관)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쑥떡 서지희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다가 떡집에서 산 쑥떡을 먹으면 - 아 맛있다, 맛있다 - 엄마도 한번 먹어봐 - 너나 많이 먹으렴 엄마와의 대화가 없던 나도 어느새 파릇한 쑥처럼 쑥덕쑥덕 말이 많아진다.
[신년특집 신춘문예 당선작]새봄에 돋아나는 파릇한 쑥 같은 수작
/심사평/
산뜻했으면 좋겠다. 새봄에 돋아나는 새순 같은 티도 흠도 없는 순결한 동심을 담은 동시였으면 좋겠다는 게 두 심사위원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 세상에는 없는 동시, 앞으로도 없는 동시면 더더욱 좋겠다는 게 선자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속이 깊으면서도 감칠맛 나는 작품도 생각했다. 응모작을 한 장 한 장 촘촘히 읽으면서 응모자들의 동시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열정과 헌신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했다. 몇날 며칠, 아니 몇 년 몇 해를 두고 갈고닦았을 눈물과 한숨과 고뇌를 떠올리니 응모작 앞에 캄캄해졌다. 오랜 시간 몇 번의 뒤집기 끝에 서지희의 `쑥떡'을 당선작으로 올렸다. 비비 꼬거나 뒤틀려 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수사가 없어서 좋았다. `쑥'과 `쑥떡'과 `쑥덕쑥덕'이 갖는 시어의 고리가 잘 풀어졌다. 때로는 은유나 상징 역설 같은 장치로 은근한 재미나 즐거움을 주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반전도 필요하겠으나, 동시는 단순해야 한다는 원론적 관점으로 보아서 손색이 없다 하겠다. 새봄에 돋은 파릇한 쑥 같다. 심사소감 사족, 신춘문예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평가받는 기회이기는하나 자신이 시인으로 살아갈 소명인지를 먼저 되새겨보는 마음가짐도 필수요소라 생각하면 좋겠다. 특히 동시를 쓰는 시인은 순결하고 결연한 시정신을 가진 시인으로 한 생을 마감하리라는 의지가 필요하다. 유혹에서 자유로워야 시인으로, 시로 남을 수 있다.이재경의 `봄눈', 강현의 `귀', 조계향의 `알쏭달쏭'과 김민수 김영옥을 비롯한 몇 몇 응모자들의 작품도 빼어났음을 밝히며 당선자에게 큰 축하를 보낸다. 이화주·이창건 아동문학가 [신년특집 신춘문예 당선작]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동시 쓰고파
/당선소감/ 한참 있다 웃었다, 소 한 마리처럼 기쁜 일이 있어도 / 한참 있다 웃는 소 / 슬픈 일이 있어도 / 한참 있다 우는 소. 석동(石童)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 `소'의 일부다. 소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이 시를 읽고, 동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저 최선을 다해 소 한 마리처럼 느릿느릿 우직하게 썼다. 책과 종이는 쌓여 갔지만, 정작 시를 위해 가슴은 비워야 했고 마음만이 무거웠다. 그리고 한참 뒤. 이렇듯 시가 나를 웃게 만들 줄이야. 당선 통보를 받고, 감성적이고도 이상적인 `낭만' 그 자체 `동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있어 현재의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순간이었다. 항상 저를 지지해 주시는 어머니, 얼룩송아지는 엄마 소를 닮아 얼룩소인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제 동시를 선(選)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강원일보사, 부족한 제자 밥도 잘 사주고 펜과의 싸움에 호된 격려를 해준 노원호 스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동시가 문학의 별임을 잊지 않고, 머나먼 한 편을 위해 순수한 소의 눈으로 동심을 파헤쳐 나가겠습니다. △ 서지희(25) △ 서울 生 △ 프랑스 INSEEC 경영대학 국제무역학과 졸업
매일신문 2014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등걸에 핀 꽃 김옥매 뒷산에 올랐다. 고라니 뜀박질에 바짝 언 할미꽃이 겨우 숨을 고르는 고갯길, 상수리 잎 성긴 그늘이 연신 산길을 쓸어댄다. 남실바람에 몸을 푼 송화는 구름과 비를 찾아 허공을 탐색한다. 정상에 서니 소나무 등걸 하나가 눈으로 들어온다. 모진 풍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그 남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신산한 바람이 인다. 생명의 끈을 놓아 버려서일까? 수런대는 숲의 기지개에 미동도 않는다. 드러난 뿌리는 소임을 다한 듯 허물어져 간다. 한때는 푸른 꿈을 꾸며 청춘을 불살랐겠지. 쭉쭉 뻗은 가지는 새들을 불러들여 생명을 보듬었을 거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젖은 땀방울 식혀주기도 했으리라. 그 영광된 날이 꿈인 듯 지나가 버린 허망함을 어찌 견딜까.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으리라. ‘그래, 원 없이 꽃피워 보아라!’ 뿌리째 뽑아 집으로 가져왔다. 허물어져 가는 몸뚱이에 착생식물인 풍란을 심어 주었다. 이른 아침, 정체 모를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자신이 표시한 영역을 확인하는 들짐승처럼 근원을 찾아 이리저리 코를 실룩거린다. 베란다가 가까울수록 짙어지는 향기, 창문을 여는 순간 향수병을 쏟은 듯 뿜어져 나오는 내음에 정신이 아찔하다. 날름 내민 꽃잎 사이로 살포시 발산하는 우윳빛 향기, 나뭇등걸이 품은 풍란이 주범이다. 꽃을 일으켜 세웠다. 곱게도 키웠다. 온기 한 점 없는 빈 가슴 어디에 힘이 남아 있었을까. 더는 내어줄 게 없었던 초라한 밑동, 그의 봄은 향기로 일어난다. 숲의 편견은 일흔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더는 나무로 봐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푸른 마음은 서슬의 톱날에 무참히 잘렸다. 늘 베푸는 것에 익숙한 삶이었다. 다섯 자식을 건사하며 퍼주기만 했던 사랑이었다. 이제 더는 줄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나. 그의 마음은 첫서리에 내려앉은 나뭇잎처럼 무너진다. 그보다 더한 것은 오랫동안 몸에 밴 일이 순간에 없어진 허탈감이었으리라. 앞만 보고 살아온 당신의 인생이 등걸처럼 허물어져 간다. 아이들의 고운 눈망울이 별똥별처럼 떨어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조롱조롱 매달린 무게가 천근만근이 되었으리라. 농사로는 초롱초롱한 별빛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얼마 되지 않은 땅뙈기를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신 아버지. 험한 골짜기의 쓸모없는 논은 아무도 사려는 이가 없어 남의 손에 맡겼다. 어쩌면 애써 팔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평초처럼 떠돌다 섬으로 남겨둔 그곳에 이르러 쉬고 싶었을까. 고향에 든든한 뿌리를 내려두고 어디에서 든 흔들림 없는 삶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살이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치유의 땅을 원했을 수도 있겠다. 고향에 봄이 왔다. 복숭아꽃들이 속살대는 언덕 아래 서 마지기의 다랑논이 나직이 앉았다. 보리밭 이랑에 몸을 걸친 할머니, 그 뒤로 투덜투덜 밭고랑만 세는 내가 보인다. 새하얀 다리에 거머리를 떼어내며 모를 찌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다. 쟁기질하는 아버지의 소 이끄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밤 숲을 적시던 개울은 쉼 없이 흘렀다. 뒷걸음치던 가재는 사라지고 세월도 휭 지나가 버렸다. 남의 손에서 서른 해를 돌고 돌아 다시 찾은 땅, 그것은 아버지의 풍란이었다. 도시의 골목을 서성이던 발걸음은 깃털 같은 날개를 달고 흙으로 향한다. 정을 느낄 새도 없이 떠나보낸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땅. 홀어미로 노심초사하며 키워 오신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서린 요람의 땅. 두 분의 땀 냄새가 밴 그 아득한 언저리에 앉은 아버지. 과일나무 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또르르 당신의 눈가에 떨어진다. 등걸보다 건조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평생을 업으로 잡았던 망치가 아버지의 손에서 가볍게 춤을 춘다. 손끝 매운 솜씨로 작은 쉼터를 지었다. 이랑마다 아버지의 푸른 꿈이 새록새록 자란다. 주렁주렁 열린 과일이 당신의 땀방울을 먹고 쌔근쌔근 자란다. 나뭇가지로 재잘재잘 자식들이 모여들었다.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아버지. 숲에서 밀려난 아버지는 이제 더는 숲을 꿈꾸지 않는다. 푸른 마음은 어디에서나 키울 수 있으니까. 복숭아 자두 꽃이 내려앉은 개울물에 발을 담근다. 두 발 모아 밤송이 가르던 추억 한 자락이 여울을 따라 흐른다. 입안에 텁텁한 밤 껍질이 씹힌다. 가시투성이로 멍들었던 개울은 이제 꽃 그림자를 안았다. 가시밭길 인생의 끝에서 다시 꽃 피우는 법을 터득하신 내 아버지처럼. 감나무 잎을 흔들며 산들바람이 분다. 도미노처럼 스르르 창틈을 뚫고 들어와 풍란의 향주머니를 쓰러뜨린다. 아버지의 땀 냄새인 듯 달콤하다. 그 향기에 취해 눈을 감으면 어느새 아버지의 뜰에 닿아 있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이랑 위에 앉은 아버지. 내 아이의 아이들이 그 뒤에서 이랑을 세고 있다. 아득한 그날의 나처럼. ◇ 수필 당선소감 김옥매(1964년생) 학 력 : 고졸 약 력 : 대구수필문예대 수료 대구수필문예회 회원 낯선 번호로 휴대폰이 울립니다. 순간, 알에서 깨어난 새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날아옵니다. 원고를 보내던 날 꿈에서 보았던 녀석입니다. 새를 마음에 가둬둔 것을 보니 가당치 않은 욕심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선소식이 믿기지 않습니다. 심장이 다듬잇돌이 놓인 것처럼 방망이질 칩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지난여름 꽃그늘을 만들던 장미 나뭇가지에 매미의 허물이 훈장처럼 달려있습니다. 제 몸을 키우기 위한 녀석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온전한 자신의 이름을 찾아 떠난 흔적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지금 애벌레로 땅속에 웅크려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입니다. 그 암흑을 뚫고 누군가 날개의 존재를 알려 주네요. 내 작은 몸피 어디에 그것이 숨어 있을까요. 믿고 싶어집니다. 탈피의 과정을 인내하렵니다. 언젠가 돋아날 날개가 있다기에 조심스럽게 비상을 꿈꾸어 봅니다. 등걸처럼 허물어가는 영혼을 위해 희망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혼탁한 가슴을 정제하는 향기로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으실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바지랑대처럼 묵묵히 내 인생의 줄을 받치고 있는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대구수필문예회 박기옥 회장님 덕분입니다. 대구수필문예대 이동민 학장님과 여러 스승님 고맙습니다. 함께 공부한 문우 여러분 사랑합니다. 날개의 존재를 일깨워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꼭 필요한 만큼의 언어, 문장 구성·이야기 풀어가는 솜씨 남달라 신춘문예는 ‘작가의 꿈’을 실현하는 관문이다. 마땅히 치열한 문장 수련과 문학을 향한 열정이 작품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최소한 수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 다시 말해서 낱말의 부림이나 문장의 구성, 주제의 설정과 형상화, 그리고 사람살이의 지혜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거기다 신인다운 참신성을 겸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신변잡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응모작이 태반이었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성찰하는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주체 밖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에 관해 서술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작가 개인의 자잘한 신변사를 글감으로 삼는데, 자칫하면 무늬 없는 평범한 작품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외당’, ‘순수의 계절’, ‘피아노가 있던 자리’, ‘석곡’ 같은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남편이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또는 사물에 관한 보편적인 현상을 평범하게 나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 ‘외당’, ‘순수의 계절’, ‘피아노가 있던 자리’, ‘등걸에 핀 꽃’, ‘석곡’을 놓고 거듭해서 읽고 토론하였다. 그 가운데 한 편을 가려 뽑는 작업은 힘들면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고심 끝에 문학적 품격이 돋보이는 ‘등걸에 핀 꽃’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등걸에 핀 꽃’은 뒷산에 있는 소나무 등걸에서 착상된 작품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등걸을 집안에 들여놓고 거기다 풍란을 심는다. 어느 날 그 풍란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가족의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본다. 고향을 떠나 도시의 골목을 서성이던 고단한 삶,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환하게 웃음을 되찾은 가족들의 모습을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낱말의 부림이나 문장의 구성이 탄탄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부족할 것도 넘칠 것도 없이 필요한 만큼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읽고 나면 뒷맛이 삼빡하다. 당선,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여 꽃을 활짝 피우기 바란다. 백정혜(수필가)ㆍ김종욱(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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