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림 1월 연수 계획(예정) 다시 알립니다
-출발 : 2013년 1월 12(토) 10시 무렵
전주는 호성동 만수초등학교 주차장에서 출발 예정
- 점심 : (12시~1시 사이)
월출산 가는 길 중간에 나주를 거쳐 가야 하는데...나주지방의 유명 음식이 나주곰탕이더군요. 혹시 나주곰탕을 가는 길의 점심 메뉴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인터넷으로 유명 집을 찾아보니 → 노암집(주소 : 전남 나주시 금계동 23-5, 전화 : 061-333-2053)-아직 예약 하지 않았음
맛있는 것으로 추천 받고 있음 :
-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광주→영산포→영암읍 입구에서 장흥/강진 가는 길로 좌회전하여 5분 정도 가다가 월출산 천황사지구로 우회전(우측에 월출산이 보임)
-만나는 장소 : 영암군 월출산 천황사지구 주차장(월출산의 동쪽에 해당됨, 장흥/강진 가는 길에서 우회전), 전주에서 2시간 정도 시간 거리
- 월출산 산행 : 천황사 지구 왕복 2시간 정도(구름다리 까지, 천황봉까지 4시간 코스도 있음) 2시간 코스가 적당할 것 같음 → 천황사 지구를 나와서 왕인 박사 유적지(구림마을) 등을 들러 보고(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저녁 식사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저녁 식사 : 추천 바람(흑염소, 매생이탕 등)
- 숙박 : 온천수가 나오는 월출산관광호텔(061-473-6311) : 영암읍에서 5-10분 거리
온천욕 가능(온천욕 준비하시기 바람), 온돌방 큰 것으로 2개(남녀 각 1개씩) 예약하였음
- 아침 식사 : 8시 무렵 기상하여 차량 탑승 → 숙소에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남쪽 목포 가는 길)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낙지거리’에서 연포탕으로(독천식당, 전주식당 등) → 아직 예약은 안했으니, 더 좋은 곳이 있으시면 추천 바람
- 귀로 : 강진군 병영면 소재지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도병영’의 흔적(병영성, 홍교, 하멜기념관)을 보고 → 탐진땜을 지나 → 장흥군 유치면에 소재한 ‘보림사’를 들려....
또 다른 코스 : 추천바람(전라병영→ 월출산 무위사→집으로 귀가 하는 등 좋은 내용 있으시면 의견 주시기 바람
참여 못 하실 분은 연락주세요, 사모님과 같이 못 가실 분도....
좋은 소식 기다립니다.(010-3650-0811 김경호)
김경호 올림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여행자료 밑에 간단하게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참고하세요.
월출산 국립공원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소백산계(小白山系)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도갑사(道岬寺)•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岩峰)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龍湫瀑布), 동쪽의 구절폭포(九折瀑布), 남쪽의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 등이 절경을 이룬다.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월출산은 기암괴석의 장관이 이름난 산으로, 남도의 소금강산이라 불릴 정도의 절경이다. 최고봉은 해발 809m의 천황봉으로, 정상이 평평한 암반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곳이다. 월출산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구름다리는 지상120m 높이에 있으며, 길이는 무려5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이다. 월출산을 찾으면 이 구름다리는 빼놓지 말고 건너보는 것이 좋다. 월출산 사자봉 주변 중턱에는 칠치폭포가 자리하고 있는데 일곱 개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또한 천황봉 남쪽으로 무위사, 서쪽에는 도갑사가 자리하고 있다. 도갑사에서5km 정도 올라가면 구정봉, 그 아래 500m지점에는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도갑사의 해탈문, 무위사 극락보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소백산맥이 목포 앞 바다로 뻗어가다 평지에 돌출된 잔구 형태의 월출산은 천황봉(809m)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으로 산 전체가 수석의 전시장이라 할만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의 왕인박사와 신라말 도선국사의 탄생지이기도 하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또한 천황봉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단아한 모습의 무위사가 있고 서쪽에는 도갑사가 있는데, 도갑사의 해탈문(국보50호), 마애여래좌상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있다. 월출산의 입구인 도갑사를 지나 5km정도 오르면,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기이한 9개 단지 모양의 구정봉에 이르며, 그 아래로 500m쯤 내려가면 국보 144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월출산의 최고봉인 정상에 오르면 동시에 300여명이 앉을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있다. 월출산의 구름다리도 또다른 매력을 준다. 이 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건설된 길이 52m, 폭 0.6m의 한국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이다. 사자봉 왼쪽 산 중턱 계곡에서는 폭포수가 무려 일곱 차례나 연거푸 떨어지는 칠치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고, 도갑사와 무위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펼쳐진 미왕재의 억새밭은 가을이면 황홀한 절경을 이룬다.
특히 서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 풍경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수와 천황봉에 항상 걸려있는 안개,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 등 사시사철 다양하고 독특한 모습을 자랑한다.
천황사
천황사는 월출산(809m) 동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월출산 등산로 시작 지점에서 구름다리 방향으로 약 350m 정도 오르다 보면 바람골(절골) 남쪽으로 있었던 사찰이다. 천황사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해발 200m 내외로 북동쪽으로 사자봉(408m)이 올려다 보이며, 절의 영역은 주변의 가파른 산사면 중에서도 다소 평탄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영암읍의 평야지대가 내려다 보이며 주위는 월출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천황사에 대한 최초 기록은 "大覺國師文獻集"의 ‘寶月山 獅子寺’라는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해 볼 때 천황사는 고려전기에 대각국사 의천이 사찰을 찾아올 정도로 사세가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1995년 실시한 1차 발굴조사결과 목탑지와 법당지가 확인되었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獅子寺’명 기와와 ‘獅子寺’라는 절명이 일치하면서 천황사의 본래 명칭이 ‘獅子寺’로 확인되었다. 그 후 2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隆慶六年壬申閏二月’銘 기와는 선조 5년(1572)에 천황사가 중창 불사되었음을 증명하였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이 16세기 후반을 넘어서지 않고 있어 정유재란(1597)때 화재를 기점으로 사세가 급격히 위축되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2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隆慶六年壬申閏二月’銘 기와는 선조 5년(1572)에 천황사가 중창 불사되었음을 증명하였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이 16세기 후반을 넘어서지 않고 있어 정유재란(1597)때 화재를 기점으로 사세가 급격히 위축되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 편찬된 "靈岩郡鄕土誌"에도 천황사에 관한 기록이 일부 있다. “‘光武十年十一月三十日(고종 43년, 1906)에 창건하였으며, 한각성선사가 법맥을 잇던 중 1953년 5월 19일 최성암주지가 완성하였다”는 내용이다. 천황사는 근래까지 법당 겸 요사채로 사용된 건물 1동이 있었으나 2001년 4월 15일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현재 요사채 1동이 복원되어 임시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1, 2차 발굴조사 결과 현재의 천황사 본래의 명칭이 사자사로 확인되어 2001년 12월 13일 ‘목탑지’를 ‘사자사목탑지’로 명명하고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197호로 지정하였다.
도갑사 [ 道岬寺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도갑리(道岬里)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守眉)가 중건하였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의 해탈문(解脫門)은 현존하고 있는 한국의 건물 중 보기드문 옛 건축물이며, 이 밖에 대웅보전(大雄寶殿:지방유형문화재 42)·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89)·도선국사비(지방유형문화재 38)·명부전(冥府殿)·팔각석등대석(八角石燈臺石)·3층석탑·5층석탑·석제(石製) 구유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도선 및 수미대사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사찰로 오르는 길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득하여 봄철 벚꽃이 필 때면 월출산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도선과 수미를 추모하기 위해 1653년에 세운 도선수미비가 있다. 도갑사는 맑은 기운으로 가득한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조선시대 3갑사로 유명하였지만 계속된 화재로 아담하고 고즈넉한 외관만이 남아 있다. 지금은 조용히 거닐고 싶은 한적한 경내를 대표하고 있다.
무위사 [ 無爲寺 ]
전남 강진군 성전면(城田面) 월출산(月出山) 남동쪽에 있는 고찰. 창건시기 617년 (신라 진평왕 39) 창건자 원효,
《사지(寺誌)》에 의하면 617년(신라 진평왕 39)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는데, 875년(신라 헌강왕 1)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 개칭하였다. 946년(고려 정종 1)에는 선각(先覺) 형미(逈微)가 3창하여 모옥사(茅玉寺)라 하였다가, 1550년(명종 5) 태감(太甘)이 4창하고 무위사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경내에 있는 보물 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의 비명(碑銘)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도 이미 무위갑사(無爲岬寺)로 불렸으므로 《사지》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당우(堂宇)는 본절이 23동, 암자가 35개로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는데, 그 후 화재 등으로 축소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남아 있는 당우는 극락전과 명부전 및 요사(寮舍)뿐이었는데, 1974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 ·해탈문(解脫門) ·분향각(焚香閣) ·천불전(千佛殿) ·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면서 옛날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중 국보 제13호 극락전은 벽에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本尊佛) 뒤의 탱화(幀畵)만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어떤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왕인박사 유적지(도 기념물 제20호)
소재지 :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현 상 : : 왕인(王仁)박사 유적은 구림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유적지에는 왕인박사 사당과 전시관, 탄생지, 문산재, 양사재, 책굴, 지침바위, 왕인석상등이 있다.
남도의 소금강 월출산과 도갑사, 미황사 그리고 온천이 가까운 곳에 있고 또 남도 여행의 일번지 강진 가는 길목이 있어 언제가도 좋은 곳이나 특히 벚꽃이 피는 4월이 가장 좋은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가면 왕인문화축제도 열려 볼거리도 다양하다.
왕인박사는 백제 제14대 근구수왕(서기375~384년)때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탄생하여 8세때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하시어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고,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되었고,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 야공, 와공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가요를 창시하고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일본인들이 큰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飛鳥)문화와 나라(奈良)문화의 원조가 되어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이 유적지에 대하여서는 일본인들이 더 잘 알고 관심이 더 많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오사카(大阪府) 히라카타(枚方)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대판부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유적지는 대략적으로 사당이나 탄생지들이 있어서 신성한 느낌이 드나 이 곳의 유적지는 신성한 느낌보다는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어서 가볍게 산책 하면서 왕인박사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알고 가는 부담없는 곳이다.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묘 [ 王仁博士遺蹟地王仁廟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왕인박사유적지에 있는 사당이다.
고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일본 태자(太子)의 스승이 되었던 백제시대의 학자 왕인(王仁)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진행된 왕인박사유적(전라남도기념물 제20호)의 유적정화사업을 통해 세워졌다. 건물면적은 82.5㎡로, 강원도 태백산의 춘양목과 충청남도 부여의 백제기와를 탁본한 기와를 이용해 만든 맞배지붕 주심포식 목조건물이다. 매년 4월 열리는 영암왕인문화축제 때 이곳에서 전통제례의식인 춘향대제를 올린다.
구림의 문화와 전통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일대는 장천리 선사 주거지가 말해주듯 최소한 삼한시대로부터 백성들의 삶터였다. 헤아릴 수 있는 역사만 2,200년이라는 점은 구림이 얼마나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인지 알 수 있다.
구림마을이 터를 잡은 구릉지는 깊숙한 만(灣)의 한쪽에 튀어나온 곶으로 추정된다. 구림마을은 지정학적으로 바다의 뱃길이 열려 있었으며 마을을 감싸안은 주지봉 품안에 700여 호의 대촌이 자리잡아 살기 좋은 곳, 그곳이 구림마을이다. 삼한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구림마을은 436년 전통의 대동계가 현존하며, 백제 왕인박사, 신라말 도선국사, 고려초 최지몽선생을 배출한 곳이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시원이 되는 황토자기의 발상지이며 선사시대부터 이 고장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황토자기가 전국에 보급되었으며 해상을 통한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시작한 여러 흔적들이 남아 있다. 또한 마을 곳곳에서 대규모의 가마터와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마을내에는 유형문화자원인 회사정, 국암사, 담숙제 등 12개의 누정과 전통가옥, 돌담, 고목나무 등이 즐비하게 옛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매년 올리는 당산제와 구림 대동계 등 민속문화자원이 전승되고 있다. 구림마을의 "영암 도기박물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황토를 재료로 하여 1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구림도기를 한국적인 정서가 깃든 영암도기로 재현하고 있다. 전시실, 체험실, 판매장 등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반남고분군
일찍이 고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영산강 유역은 농경문화의 근간인 강물과 넓은 농토가 있고,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영산강이란 통로가 있어서 고대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에서부터 삼한시대의 수많은 옹관고분까지 오래된 고대 유적들이 많다.
장어요리로 유명한 구진포 아래 복암리 고분군에서부터 시작한 영산강 유역 나주평야의 고분군들은 반남면의 신촌리, 대안리, 덕산리 일대에 32기의 고분군을 지나서 영산강을 따라 내려와 영암의 시종면 고분군들에서 끝난다.
이 일대의 고분군은 대부분 일본 강점기에 대부분 도굴되었다. 신촌리 6호 분은 1939년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5기의 옹관과 함께 토기, 유리구슬, 청동환이 출토되었다. 또한 9호분이 1917년에 발굴 조사된 것을 보면 12기의 옹관과 금동관 (국보 제295호), 금동신발, 금반지.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결과를 볼 때 백제가 들어서기 전 한반도의 막강 세력이었던 마한의 맹주국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남고분군 여행을 마쳤다면 조금 더 내려가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고분을 이해하기 쉽게 공원화하여 조성해 놓은 마한문화공원도 여행해 보자.
보림사
선종이 최초로 들어온 사찰로 주요 보유 문화제는 국보 : 보림사 삼층석탑 및 석등,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 - 보물 : 보조선사 창성탑외 7점 , - 동양 3보림(인도, 중국, 한국)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 선사들이 즐겨 마신 작설차의 향기와 아름다운 비자나무 숲의 신비로움을 느껴보러 떠나보자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이 사철은 동양 3보림 (인도/중국/한국)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원표대덕(元表大德)이 터를 잡을 당시인 759년에는 초암(草庵)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 하며,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이곳을 찾는 이들을 흥미롭게 하고, 곳곳에 그와 관련된 땅 이름이 남아 있다. 옛 모습의 보림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으로 쇠락하다가, 한국동란 병화(兵火)를 겪기도 하였다. 현재 보림사에는 철조비로사나불 (鐵造毘盧舍那佛)등의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가 남아 있어 역사의 흐름과 우리나라의 불교 미술사를 엿볼 수 있다.
병영성
전라육군본부가 있던 곳이 강진 병영이다. 동학혁명 때 정부군과 혁명군이 치열하게 싸우는 바람에 망가진 병영성은 현재 열심히 복원중이다.
강진 병영성은 도강현의 치소로 있다가 1417년(태종17)에 남해지역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하여 병마절도사영을 설치하고 전라도의 53주와6현을 통할하였다. 그러나 이병영도 1894년 동학혁명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고, 병영의 관문으로 배진천에 건축된 홍교만이 남아있다.
배진천은 급류이기 때문에 기반시설이 매우 견고한듯한데 홍예의 저부와 위의 표면은 제모습을 잃고 있다 그러나 홍예 부분만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미적인면이나 건축학적인 면을 엿볼수 있다. 직사각형 화강석재 74개를 무지개(홍예)형으로 서로 짜맞추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후 점토로 다리위를 다졌다.
하멜 기념관
전라병영성 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표류기](1666)의 저자 핸드릭 하멜 (1660~1692)을 기리는 전시공간이다.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이동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하여 서울,강진,여수등에 유배되어 13년간 살았다. 특히 하멜은 이곳 강진 병영에서 7년을 지냈다, 강진군은 이를 기념하여 1998년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자매결연하였다. 이후 강진군은 호르큼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통해 2007년12월3일 이 기념관을 개관 하였다
높은 돌담장에 특이하게 돌을 비껴 쌓은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하멜의 흔적이라고도 한다. 또 우리나라 나막신을 통으로 만드는 게 혹시 네덜란드인 하멜이 남긴 유산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하멜 혼자 있었던 게 아니라 하멜 일행이 7년간인가 머물렀다. 최대 33명이었다. 하멜표류기에는 조선인들이 쉽게 거짓말을 한다는 모욕적인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와 모순되게 또 조선인들을 쉽게 속여먹을 수 있었다고도 적혀 있다. 하멜일행은 정부로부터 배급받는 식량이 모자라 걸식도 하고, 그리고 기록의 행간을 미루어볼 때 훔치기도 하고 조선인들을 속여먹기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며 지내다가 결국 여수를 거쳐 일본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병영면의 은행나무]
수령800년 천연기념물 제385호, 하멜표류기에서 조선의 강진 커다란 나무를 소개하였다는데 이 은행나무를 가르키나 봅니다. 이 은행나무가 마을 중심에 있어 오랜 세월 지키고 있듯이 가옥의 마당이나 거실까지 뿌리가 들어와 있다 합니다,..은행나무 둘레 아래 커다란 마당바위는 마을주민들이 쉼터처럼 휴식도 취하시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장소입니다. 100년 된 정미소와 오래된 교회를 빠져나오면 이 웅장한 은행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월출산관광호텔(숙소)
월출산의 수려한 경관과 드넓은 영암평야를 배경으로 ‘남도 기행’의 관문에 자리잡은 월출산 온천 관광호텔은 1등급호텔로써, 온천 1호, 2호, 3호공의 지하 600m에서 솟아나온 맥반석 온천수는 각종 성인병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으며, 본 호텔은 1997년 12월 준공되었고 2003년 10월 새롭게 개관하였음.
월출산온천수는 맥반석온천에 전형적인Ca(Na)-Cl 계열의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서, 피로회복, 신경통, 류마치스,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무좀 등에 탁월한 의학적 효과가 있습니다.
-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6-10
- 전화번호: 061-473-6311
※온천 안내
월출산온천관광호텔은 온천 1호공, 2호공, 3호공을 보유하고 있어 항상 순수한 천연온천수만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월출산온천은 지하600m 맥반석 암반대에서 형성되어 있는 순수 청정 수맥에서 용출하는 100% 천연 온천수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월출산온천은 인위적으로 미끄러운 효과를 내고자 단 1%의 화학약품도 첨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100% 천연온천수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월출산온천수는 ca(na) -cl 형 약알카리성 식염천으로서 게르마늄을 비롯하여 20여 종류의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이 함유된 알카리성 맥반석온천으로 체내에 흡수력이 빨라서 의학적 효과가 탁월합니다. 월출산온천수는 ph 8.38의 약알카리성 광천수로서 피부 및 혈액의 상태를 가장 이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월출산온천수에 함유된 게르마늄은 암의 예방과 치료는 물론 혈액순환과 조절작용에 효과가 커서 성인병 및 당뇨병 예방과 치유에도 놀아운 효과가 있는 기적의 원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월출산온천수에 목욕을 하시면,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항전되므로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여러가지 질환(신경등, 고혈압) 및 통증을 수반한 질환(관절염) 치유에 효과가 있습니다.
월출산온천수맥을 품고 있는 맥반석은 예로부터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등 대표적인 의학서적에서 다양한 약재의 원료로 사용하면서 신비의 자연석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맥반석은 게르마늄, 규소, 세레늄, 아연 등이 포함되어 있어 방부, 향균 및 신진대사 촉진과 세포활성화 작용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