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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사 연구입문(원재연) 5주차 수업 답안
강정식 추천 0 조회 207 19.04.07 21:54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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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9.04.09 13:38

    첫댓글 그동안 산발적으로만 알고있었던 그리고 모르고있던 여러가지사실을 잘
    요약해주시어 너무 잘보고 이해했읍니다.감사합니다.

  • 19.04.09 14:12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정진하십시오.

  • 19.04.09 15:05

    대단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를 더한다면 초대 조선 대목구 브뤼기에르 주교의 역활이 조선에서의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속적인 활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조선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자진해서 시암에서 조선으로 오는과정은 복음의 선교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계속해서 앵베르주교로 이어지며 파리외방의 조선 선교는 지속되며, 어떻게 보면 정하상 유진길이 교황님께 보낸 서한(1824)의 좋은 결과로 보여집니다. 단 8대 교구장인 뮈텔주교는 초임신부시절 1882년 82위 가경자 시복재판관으로 시복추진을 맡아 조선에 입국했으며 1890년 조선 대목구 주교로 임명된후 조선교회보호라는 이유로 친일

  • 19.04.09 15:16

    식민정책에 적극 동조한 행위는 조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서양 프랑스인이라 당시 대국의 식민정책을 당연시 하는 걸로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고 (베트남/아프리카 국가들) 다른 주교들과는 달리 선교사의 길을 오래하지못해서 조선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수도 있었을것 같습니다. 하옇든 결과론적인 글이지만 당시 조선인은 많이 실망하였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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