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無量한 變奏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 김진수 (설핏)-김부회

[사마난추]

▣無量한 變奏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

- 김진수 시집 [설핏]을 읽고

-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시는 삶의 경전이라는 말이 있다. 경전이 삶의 기준점이 되는 자기반성의 요체라고 가정할 때, 시를 쓴다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말이며 성찰의 필수요소인 되돌아보기와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유추하거나 새롭게 다짐한다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자신만의 혜안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혜안은 불교에서 말하는 오안(五眼) 중 하나의 눈.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이기도 하고 모든 차별과 망집을 버리고 진리를 통찰하는 눈을 일컬음이다. 한 편의 시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인이 겪어야 할 고통은 섣불리 짐작조차 어렵다.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낸다는 것의 압박과 어설픈 단정 일 수도 있을 결과에 대하여 글로 표현하거나 묘사한다는 일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수 있기에 시라는 문학적 예술작품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그 속엔 아픈 화두가 숨어 있을 것이며 자신만의 직관이 담겨있을 것이다. 천양희 시인은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이라는 글에서 시를 짓는 행위에 대하여 언어로 짓는 사원이라는 말을 했다.

시를 쓰는 사람들도 구도자의 정신과 자세로 시를 쓰라는 뜻에서 '시(詩)' 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중략, 그런데 나는 지금도 컴퓨터를 하지 못해서 원고지로 글을 쓰는데, 원고지 앞에 앉으면 사각의 모서리가 절벽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가 그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이 제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 시가 밥 먹여주냐고 물으면, 나는 "시가 내 정신의 밥이다"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 천양희」일부 인용

천양희 시인의 말처럼 시는 정신의 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란 것은 살아온 길의 어느 부분이라도 되돌아보고 스스로 그 길 앞에 답을 내리거나 신념을 갖고 정답을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길에서 길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길이라는 수단, 어쩌면 목적이 될 수도 있는 곳에 가야 그것이 합당한 길인지, 출구가 없는, 다만 길이 되고 말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삶과 시라는 것에 병치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詩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시에서 시를 묻는다는 말은 시에서 삶을 묻는다는 말과 어색하지 않은 조합이 된다. 삶이 시가 될 때,  서두에서 언급한 ‘시는 삶의 경전’에 올바른 답이 된다는 생각이다. 니체는 일찍이 ‘좋은 글은 피의 여로를 거쳐야 한다.’ 고 말했다. 그만큼 시 한 편에 쏟는 집중과 정신의 깊이는 자신의 혼을 갉아먹는 작업이기에 숭고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기계적으로 무한 반복되는 음표가 아니다.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변주를 하게 되며 장조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때론 단조로 변주하거나 음계와 음역에 변화를 갖게 된다. 그렇게 무량한 변주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 지나쳐온 삶의 한 부분을 되돌아볼 때 눅진한 내 삶의 과거가 나에게 어떤 형태로 투영되는지? 음각의 깊이와 양각의 도드라짐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을 때 김진수 시인의 [설핏]을 아무 페이지나 들춰보자. 어쩌면 그 속에 내가 간과한 삶의 이유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음을 보고 울컥하는 심정이 들지 모른다. 김진수 시인의 시집 속 길을 따라 걷다 문득, 길에서 길을 묻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설핏]은 피의 길을 걸어온 작품이기에 글자 하나하나에 시인과 나의 삶이 등비수열等比數列처럼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시의 맛이며 우리가 시를 읽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설핏]의 몇 편을 선택해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경청해 본다.

어머니의 강 

 다 왔어!

 물소리 잦아들고 갯냄새가 물씬 한 걸 보니

 참 길고 오랜 여정이었다 근 백년

 이젠 멈출 때도 되었지

 또렷하던 굽이굽이가 희미해지네

 어찌 흐르기만 했겠나

 하늘이 쥐락펴락하는 날씨도 어디 한결 같던가?

 비 오는 날 있으면 볕 좋은 날도 있듯이

 내 강도 그러하였지

 폭포처럼 아우성치던,

 소(沼)에 모여 수다 떨며 깔깔 거리던,

 그 웃음, 가슴 밭에 심었지

 때 되니 싹트고 꽃 피더만, 저승꽃, 그거 그리 슬픈 것만은 아냐

 나름 행복이기도 했지

 가슴 치던 날, 그 화, 가슴 곳간에 쟁여뒀지

 몇 날 안 본 새, 주름살 하나 둘 그렇게 느는

 물살이 여려지고 물결이 되물린다 

 다 왔는 건지 아님

 쉬었다 가라는 것인지 

 하긴 급할 것도 없지

 몇 며칠, 왜가리 하고 데이트도 하고,

 가창오리 군무도 보고, 

 갈대시인의 시낭송도 듣고, 

 잉어랑 용궁구경도 가고, 그러다

 하구언 수문 열리는 날

 가는 거여 없는 듯 묻어서 가는 거여 

 저 너머, 큰물이 되는 거지 

 바다로 가 고래랑 놀 거여 

 이보게! 나, 가네 

 어머니가 눕는    

「어머니의 강」전문 인용

시의 소재를 선택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의 하나는 어머니일 것이다. 어머니라는 명제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하기까지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대명사 같은 명사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당혹의 순간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자취, 냄새, 흔적, 말씀, 그리고 그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눈빛일 것이다. 삶의 순간마다 어머니의 흔적과 대입하고 그 흔적의 어느 곳에서 스스로 위무하거나, 혹은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의 심상이기에 어머니의 삶을 하나의 큰 강이라 생각할 때 그 오랜 여정엔 분명 그저 흘려보낼 수 없는 역경의 시간이 있기에 더듬어 보게 되는 것이다.

 참 길고 오랜 여행이었다 근 백년

 이젠 멈출 때도 되었지

 또렷하던 굽이굽이가 희미해지네

 어찌 흐르기만 했겠나

 하늘이 쥐락펴락하는 날씨도 어디 한결 같던가?

 비 오는 날 있으면 볕 좋은 날도 있듯이

 내 강도 그러하였지

어머니의 강을 바라보면서 내 강줄기 역시 어머니의 역사와 비슷했음을 알게 된다. 볕 좋은 날도, 비 오는 날도  모두 지난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순응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때때로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그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그러했다는 말은 운명의 동질성을 떠나 삶의 보편타당성일 것이다. 분명 고졸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와는 다른 말이다. 부정의 어머니가 아닌, 긍정의 어머니에서 시는 시작된다. 어머니의 강을 지긋이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시인, 삶을 마무리하기 전 왜가리와 데이트도 하고, 갈대시인의 시 낭송도 듣고, 용궁구경도 하다 그렇게 남은 여생을 즐기다 가는 것이 삶의 순리이며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가는 거여 없는 듯 묻어서 가는 거여 

 저 너머, 큰물이 되는 거지 

 바다로 가 고래랑 놀 거여 

 이보게! 나, 가네 

 어머니가 눕는    

살다 보면 삶은 어느 한 부분의 작심으로 인하여 질주하게 된다. 질주 본능은 옆이나 주변을 돌아보거나 배려하기에 시간상으로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질주가 끝나고 완주든 중도 포기든 어느 지점에서 멈췄을 때 비로소 보이는 보통의 삶과 인생. 어쩌면 시인이 바라본 인생은 삶이 수단이 아닌 목적일 수도 있을 것이며,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의 외곽이든 내곽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나고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화내고 안타까워하며 살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승적 관점. 그 정점에 어머니의 강이 있다는 것을 시인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와 시인과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권면하는 시인의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형성하게 된 보통의 삶이라는 명제일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하느냐 하는 것에서 삶은 분명 다른 모습으로 각인 될 것이다. 아름답게 혹은, 그 어떤 의미의 미래라는 말로.......

생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의 눈길이 가는 시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이 시집의 시제이기도 하며 범상치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설핏]의 시 한 편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시인과 같이 볼 것인가?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시다.

설핏

잠이 헤프다

설핏, 붉은 눈알이 덮쳐온다 

돌아누워 앞을 보니 

절벽 같은, 관(棺)이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산자 인가 죽은 자 인가

문이 열리고 

거룩한 손 여섯 침대를 들고 나간다

계단을 오른다

오르고 올라도 계단이다 

기울어지지 않는 관 

사람은 반듯하고 잠은 깊다 

얽힌 수초처럼 잠이 열리지 않는다 

침대가 잠을 붙들고 있는지 

관이 잠을 붙들고 있는지

아님 잠이 잠을 붙드는 지 

그는 반듯하다 

비상등을 켠 리무진이 움직인다

나는 더듬어 문을 찾는다 

조금 전까지 있던,

관이 빠져나간 문이 없다

밤새 헐떡이다 떠나는 숨처럼 별빛이 스러진다

별빛이 시려 다시 돌아눕는다

또 설핏,  

발이 시리다

어머니가 오셨다 오늘도 맨발이다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딛고 간 발자국마다 

하얗게,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설핏」전문 인용

설핏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모습 따위가 나타나거나 떠오르는 모양을 이야기한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향수/ 정지용」일부 인용

이 시의 해설피는 어원적으로 ‘해가 설핏하다’에서 온 말이다, 설핏의 근친 의미에는 이처럼 약간 어둡고 낮은 음색이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 부사 또는 형용사로 쓰이는 단어다. 시집의 제목을 [설핏]이라고 제호 한 것은 두 가지 모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잠시 떠오르는 생각만이 아닌 그 배후에 어둡고 낮은 음색의 다소 음울할 수도 있는 어느 지점에서의 생각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하한 이유로 문득 잠을 깨 주변의 사물을 가만히 응시해 본다. 불빛과 가구들 모두 어제의 것과 동일한데 같이 잠을 자는 사람 역시 분명 살아있는데, 그 모든 풍경이 잠시 멈춰 생소한 그림이 되었을 때 머릿속에 설핏 스치는 생각들. 식스센스라는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이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고 생활했는데 결국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영화의 반전, 그 반전은 늘 우리 삶 속에 가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일상이 아닌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현재의 내가 참 현재의 나인지? 공교로운 일이다. 

기울어지지 않는 관 

사람은 반듯하고 잠은 깊다 

얽힌 수초처럼 잠이 열리지 않는다 

침대가 잠을 붙들고 있는지 

관이 잠을 붙들고 있는지

아님 잠이 잠을 붙드는 지 

그는 반듯하다 

침대를 관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에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다는 변신의 한 대목처럼 어쩌면 불현듯 찾아온 무의식의 세계와 하필 그때 창문 밖에서 장의차가 지나가고 어머니가 현몽처럼 오시고 첫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설핏은 이미지즘에 입각한 묘사에 철저하게 대입된 구성이다. 묘사와 진술의 차이는 의미를 에둘러 말하는 것이며 그 배후에 화자의 마음을 담아내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기에 글의 배후를 캐내기가 수월하지 않다. 사유가 깊다는 말이다.

또 설핏,  

발이 시리다

어머니가 오셨다 오늘도 맨발이다

시인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머니, 시인에게 어머니는 늘 시인의 의식과 함께하는 동반자이며 그리움의 존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시인의 어머님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의 인식을 다른 한 편의 시에서 인용해 본다. 

알배기 한 마리 골라 샀다 

배를 가르니 쏟아져 나오는 알 알 알

알집을 들어내니 껍데기뿐이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다 껍데기로 사는가 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싱퉁이 두루치기

한겨울, 당신이 좋아해 자주 만드셨지만

새끼들 먹이느라 

정작, 한두 점, 짠 김치만 드셨다

「싱퉁이」일부 인용

시인에게 있어 어머니는 삶 전부였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껍데기로 사는가 보다/ 정작, 한두 점, 짠 김치만 드셨다/에서 알 수 있는 시인의 어머니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숙명처럼 품고 사셨다. 그렇기에 [설핏]을 읽으면 시 전편에 흐르는 낯익어 푸근한 정서적 공감을 인지하게 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가고, 

이제야 안다 

어미 속 갉아먹은 것이 나였고

나도 어느새 

그 어미란 것을

「싱퉁이」일부 인용

시인의 회한과 반성과 아쉬움의 처절한 속내가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같은 의미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시의 본질은 그런 것이다. 문학적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시의 정신적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글이 가진 진정성에 무게를 더 둔다면 시는 한결 편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생각을 어렵게 하되 글은 편하게 쓰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 한 편의 가치는 글 한 줄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처럼 치열한 피의 행로를 걸어야 어두운 날, 달밤의 윤슬 같은 빛을 발하는 것이며 그 빛이 켜 둔 정제된 시의 가치에 감동하는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이렇게 정의 할 수 있다. 

‘어머니의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시집 전면에 흐르고 있는 기조는 서정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본인이 겪거나 느낀 감정이나 정서를 시로 표현했다는 말이다.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에서 기인한 시는 가장 원론적으로 독자에게 와 닿는다. 희로애락의 변화는 서두에서 언급한 인생이라는 큰 틀의 악보 속에서 상황에 맞게 변주를 하게 만든다. 비 내리는 날엔 비와 어울리는 감정의 변주를, 바람 부는 날엔 가슴 속 첼로를 몰래 꺼내 계절을 운지해 보는 것이다. 무한 반복되는 그 변주의 어느 언저리에서 포착한 감정의 변이를 관찰하거나 물끄러미 바라본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현상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이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진수 시인의 시가 서정에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서정을 기초로 현대시의 다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몇 편의 작품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글 색과 지향하는 미래의 시적 질감의 변화를 잠시 살펴본다.

끼워들지도 앞지르기도 하지 않는 

어디로 가야 되냐고 묻지도 않는

상자들 

「물류 센터」일부 인용

물류 센터에 쌓인 택배 상자를 보며 자신이 갈 곳을 기다리는 상자들의 침묵, 상자 안의 내용물은 자신의 방향성이 없다. 주소에 적힌 배달처가 목적지일 뿐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목적지로 가는 이미 결정지어진 당위성만 존재한다. 삶은 어쩌면 거대한 물류센터인지도 모른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할머니가 들어있을지도 모를, 내가 들어있을지도 모를.

나, 내가 매달린 하늘과 수면 속 하늘 

이 불가분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나요

「번지점프를 뛰다」일부 인용

번지점프를 뛰기 위해 준비하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청춘도 하기 어렵다는 그 30미터 뜀 판에서 바라본 하늘과 추락해야 할 강江의 수면, 군중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드디어 추락이다. 줄 하나에 의지에 허공에 대롱거리는 시인의 눈 속에 들어온 하늘과 수면에 비치는 하늘, 내가 늘 보며 살아왔던 하늘이 뒤바뀐 것을 시인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당혹해 한다. 누구에겐가 설명하거나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거꾸로 매달린 상황. 살다 보면 부지기수다. 그래서 삶은 뚜렷한 정답이 없다고 하는가보다.

 가깝고도 먼   

 중환자실, 배려는 없고 약속만 고집하는  

 문안에 그가 있고 문밖에는 내가 있다 아니

 그가 문밖에 있고 내가 문안에 있다 

(중략)

일순,

모든 시그널이

잠시 숨을 고르다 수평이 된다

경고음마저 목소리를 잃었다 

「 코드블루」일부 인용

코드블루는 병원 용어다. 심정지가 왔을 때 보이는 시그널이다. 중환자실에서 지인의 심정지 소릴 들었을 때, 시인의 말처럼 환자가 나인지? 내가 환자인지? 수평이 된 그래프를 보는 것이 나인지? 환자인지? 시인은 끊임없이 영혼과 정신에 대해 탐색을 한다, 실존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묻고 되묻는 것이다. 시는 이렇듯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각성에 바탕을 두고 삶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던지는 유의미한 반성이며 인식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내 속에 돈키호테가 있을까

 뒷골 당기는 통증이 등줄기 타고 내리면 가난한 의식은 갈 곳을 찾는다 비수처럼 꽂이는 비웃음, 꼬치 꿰듯 꿰어 굽고, 젖비린내 나는 비겁을 연탄불에 던져 용기이라는 불꽃을 입히는

 참, 

 부딪히는 면면이 풍차였다

 쉽게 타협했고

 무채색 속에 나를 가두었다

「 이젠 돈키호테이고 싶다」일부 인용

시인의 말처럼 김진수 시인은 돈키호테를 꿈꾼다. 무채색 속에 자신을 가둔 날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비상하고 싶어 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 내 속에 돈키호테가 있을까’라는 시의 마지막 결구에 극명하게 나타난 의지의 천명 같은 [별]일 것이다. 

지금부터 돈키호테를 키우는 거다

 나를 짓밟아버리고

 그리고 가자

 빌딩숲, 저 바오밥 나무에 매달린 별을 따러 

몇 편의 시를 통하여 김진수 시인을 전부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시와 삶이 모두 일치한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시적 질감이나 정서적 감성의 범위와 현상에 대한 눈높이를 독자 입장에서 맞춰 갈 때 비로소 내면의 빛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핏]에서 보여준 삶에 대한 다양하고 진지한 탐색과정이 아름다울 뿐이다.

현대시의 많은 문제점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다. 자칫 폐쇄적 소통은 시와 독자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기도 하지만 시인 자신에게도 세상과 고립되게 만드는 일방의 부정적인 편향성을 갖게 만들지도 모른다. 시가 일방적인 언술 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통이라는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어야 한다. 교감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접촉하여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말이다. 교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교감이 아닌 나와 상대, 즉 [함께]라는 말이다. 정서가 같다는 말은 내 성찰의 본위가 독자 성찰의 본위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선제적 조건이 따를 것이다. 시인이 시 한 편을 짓기 위해서 사유의 깊이가 무한대로 깊어도 결국 이해하고 공감하는 독자가 없다면 헛말에 불과할 소지가 크다. 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별이라고 인식하고 볼 때일 것이다. 별에 행성이나 항성, 우주를 떠도는 먼지 등의 과학적 잣대를 대고 별을 보기 시작할 때 별은 이미 우리 정서 속에서 반추되는 별이 아닐 것이다. 김진수 시인의 [설핏]은 시의 가장 기본인 서정과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한 시집이라는 느낌이다. 불현듯 시집을 펼치면 어느 부분에서 내 삶의 한 단면이 보일 것이다. 결코, 나와 다르지 않은 시인의 삶의 군상과 모습이 오버랩 될 때 우린 그것을 시적 질감의 상호교감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부회]

▣무량한 변주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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