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께 올림
삼가 문안드립니다. 영감(令監)의 체후(體候)가 어떠하신지요? 앙모(仰慕)하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대승은 외람되이 후하게 염려해 주신 덕분에 근근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에 선생께서 보내 주신 1월 5일의 서신 한 폭(幅)과 아울러 역책 한 부를 받고 반복해서 완미(玩味)해 보니 느껍고 흐뭇한 마음 많았습니다. 우둔하고 무식한 저는 바닷가에 살면서 선생의 여훈(餘薰)을 앙모하여 늘 따라가고자 노력하였는데, 연전(年前)에 다행히 문하(門下)를 방문하여 서론(緖論)을 듣고는 개발(開發)된 것이 진실로 많았습니다. 황홀할 정도로 심취하여 머물러 있으면서 모시고자 하였으나, 병든 몸이 심한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고, 게다가 또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드디어 떠날 계획을 하였습니다.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리자 고향에 대한 염려는 조금 풀렸지만, 선생의 덕을 사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쌓여 항상 생각이 그쪽으로만 쏠려 슬퍼지고 정신이 멍해지니 어쩌겠습니까.
더구나 급제한 뒤로는 응접(應接)하는 인사(人事)가 자못 괴롭고 번잡한 데다가 질병마저 침입하여 정신은 혼미하고 육신은 노곤해서, 전에 배운 것은 까마득하고 새로 안 것도 엉성하므로 평소의 뜻을 영원히 저버리게 될까 몹시 두려워하고 옛사람을 따라가기 힘든 데 대해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질이 박약하여 뜻을 굳게 세울 수 없는 소치로 세속의 물결에 파도처럼 휩쓸려 부침(浮沈)하는 사람이 되어서 옛것을 사모하고 도를 행하려던 평소의 마음이 세속에 붙좇고 이익을 따르는 몸으로 전락하였으니 통탄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선생께서 버리지 않으시어 진정을 보여 주고 연마하도록 깨우쳐 주셨으니, 어찌 저를 이야기할 만한 상대라고 여기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송한 마음 더욱 그지없습니다.
사단ㆍ칠정에 대한 논(論)은 바로 제가 평생 동안 이에 대해 깊이 의심해 온 사안입니다. 그러나 저의 식견이 아직도 분명치 못하고 어렴풋한데, 어찌 감히 망녕된 말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삼가 선생께서 고치신 설(說)을 자세히 연구해 보니 의심이 풀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에는 먼저 이(理)와 기(氣)에 대해서 분명히 안 뒤에야 심(心)ㆍ성(性)ㆍ정(情)의 뜻이 모두 낙착(落着)되는 곳이 있어서 사단ㆍ칠정도 분별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후세의 여러 선생이 논한 것이 자세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자사(子思)ㆍ맹자(孟子)ㆍ정자(程子)ㆍ주자(朱子)의 말씀으로 질정(質正)해 보면 모두 취지가 다른 것 같으니, 아마도 이ㆍ기에 대하여 분석을 하지 못해서인 듯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소견을 진술하여 선생께 시정(是正)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오랫동안 정신없이 바빠서 다시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글로 쓰다 보면 잘못되기 쉬운 염려가 있어 감히 진술하지도 못했습니다. 봄여름의 어름에 서울로 가게 될 것이니 그때 만나 뵙고 가르침 받기를 기다리며 지금은 우러르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마침 심기(心氣)가 피곤한 탓에 서둘러 답서를 쓰다 보니 자획(字劃)이 단정하지 못하고 언사(言辭)도 질서가 없어 황공합니다. 살펴 주십시오. 삼가 백배(百拜)하고 답사(答辭)를 올립니다.
기미년(1559) 3월 5일 후학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은 상장(上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