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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205, 495장)
신4:41-43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 ‘원혐’이란 ‘원한이나 미움’을 뜻하고, ‘부지중에 오살하다’라는 말은 ‘실수하여, 또는 뜻하지 않게 살인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라는 말은 원한이나 미움이 없이 실수로, 또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연 상관없이 살인한 자를 뜻하는데, 이렇듯 부지중에 오살한 자만이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베셀’ 아모리 족속의 평원, 또는 고원 지방에 있던 성읍 중의 하나로서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신학자 ‘알렉산더’(Alexander)와 같은 학자는 ‘헤스반’(Hesban) 동쪽에 있는 부라신(Burazin)의 옛터나 ‘베르사’(Berza)의 옛터에 의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곳은 후에 르우벤 지파의 성읍이 되었습니다(수21:36). ‘길르앗 라못’, ‘라맛 미스베’(수13:26)와 같은 곳으로서 ‘빌라델비아’의 서쪽으로 여섯 시간, 또는 로마식 마일로 15마일 정도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현재의 ‘살트’(Salt), 즉 ‘암만’(Amman)으로부터 여섯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듯합니다. ‘바산 골란’는 ‘유세비우스’(Eusebius)는 이곳을 ‘골론’(Gaulon)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그 지역이 ‘바타네아’(Batanaea)의 큰 성읍이었으며, 그 성읍으로 인해 ‘골로니티스’ 또는‘욜란’(Jolan)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특이한 제도에 대한 기록으로서,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해 ‘베셀’과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의 세 곳에 위치해 있는 ‘도피성’에 관한이야기입니다. 도피성의 보호는 부지중에 오살한 자만이 받을 수 있었을 뿐 고의로 살인한 자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속으로는 악한 생각과 자신의 죄악에 대한 회개의 마음은 조금도 없으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의 보호와 용서의 능력을 믿는 것처럼 바라고 행동 지라도 그에게 다가오는 궁극적인 결과는 고통과 멸망일 뿐입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에서 세 성을 구별하였습니다. 위험에 처한 약한 사람들이 보호를 요청하여 피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도피성은 르우벤 지파 땅에 있는 광야 평원의 베셀과 갓 지파의 땅에 있는 길르앗 라못, 그리고 므낫세 지파 땅에 있는 바산 골란 등이었습니다. 이 도피성은 오늘의 교회상에 많은 빛을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구별된 장소입니다.
모세는 세 성을 도피성으로 지명하여 구별하였습니다. 구별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거룩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들 세 성은 거룩한 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으로 피신하게 되면 원수라도 살인자를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도피성을 구별한 이유는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민 35:12)이었습니다. 잘못으로 살인을 하게 된 사람은 복수를 당할 약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온 회중 앞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고 그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복수에 눈이 먼 피해자는 살해자를 죽이러 찾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살해자는 도피성으로 피함으로 올바른 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피성은 다른 성들과는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는 구별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아서도 안 됩니다. 국가도 권력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거룩히 여겨질 수는 없습니다. 이 여호와께서 선택하여 이루어진 우리 교회도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구별된 것입니다.
2. 불가침입니다.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가 도피성으로 도피하였을 때, 그를 잡기 위해 그 누구도 도피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구별되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에게 복수하려는 보수자는 도피성에 들어갈 수 없고 오살한 살해자는 그곳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약자에게 이처럼 좋은 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도피성은 거룩한 곳이며 그렇기 때문에 신성불가침 지역입니다. 도피하는 사람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잠시 쉬려해도 이 세상의 악함이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자녀들이 쉴 수 있는 도피성이 있습니다. 죄악에 쫓기던 우리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도피성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이 교회에서 안식을 얻고 새 힘과 용기를 얻어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구별된 곳이요 거룩한 곳입니다. 어떤 죄악도 이곳에는 못 들어옵니다. 교회는 거룩하기에 어떤 죄악도 불가침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것들이 교회에 침입해 오려 할 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순교로써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 왔습니다. 우리도 이 귀한 교회를 거룩한 성으로, 불가침의 성으로 지키고 보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3. 공의의 성입니다.
이 성에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나 죄가 있는 사람, 범죄자, 도주한 노예, 채무자, 정치적 망명자 등이 들어와 보호를 요청하게 되는데, 그러면 즉시로 그들은 복수의 심판으로부터 보호받게 됩니다. 가해자 측도 피해자 측의 피의 복수를 방지하고 공정한 판단을 받게 해주는 사회에 유익을 주는 중요한 성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자칫하면 힘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어느 것이 올바르냐가 판단 기준이 아니고, 어느 것이 더 힘이 세냐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힘과 힘의 대결장이 되고 가장 큰 힘이 공의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도피성은 힘의 난무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여기는 힘의 난투가 아닌 공정한 재판이 있습니다. 공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이 세상에 공의를 끼치는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가르쳐 주는 구별된 곳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생명을 보전합니다.
복수를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가 이 성에 들어오면 그의 생명을 건집니다. 이제 아무도 그의 목숨을 탐할 수 없게 됩니다. 죄악의 세력에 얽매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사를 통해 죄악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성, 거룩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시들어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을 주께서 살리셨습니다. 이 도피성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 어떤 악한 세력도 침입할 수 없는 불가침의 성역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공의를 가르쳐 힘과 힘의 난투 마당을 평정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또한 교회는 생명을 보전케 합니다. 이 귀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데 힘쓰는 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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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과희망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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