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말합니다."
이 글의 제목이자 내가 정기 구독하는 잡지의 2021 신년 특집 기획 타이틀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들에 담겨있는 나를 향한 간절한 축복과 염원을 소리 내 부르면서 희망과 용기의 불씨를 되살리자는 취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풀어 놓은 몇몇 작가들의 소회는 이랬다.
부를 때 우스꽝스런 이름, 일제 시대에 일본 여자애들 이름 따라 짓느라 그냥 '자야'로 불렸던 이름, 기생 이름 같았던 이름, 외자라서 외로움이 더했던 이름 등등...
대개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되어서 싫었던 기억이 많았고, 더러는 지어 주신 분의 너무 큰 뜻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얘기도 있었다.
(Scene 1)
70년대 초반에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일일 드라마 <여로>를 기억하는 이라면 최소한 50대 후반 이상의 연식이 되는 이들일 듯하다. 공식 인증 시청률만 70%가 넘었고, 드라마 방영 시간에는 시내 거리마저 한산했으며 전국 각지의 수돗물 계량기가 멈췄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바로 그 드라마 말이다. 그래서 그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라면 대부분이 그 주인공 '영구' 역을 했던 남자 배우 이름이 '장욱제'라는 것까지도 쉽게 기억할 것이다.
(Scene 2)
코비드19로 온 세상이 시끄러워지면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국적의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각종 뉴스 화면과 지면에 심심치않게 등장해서 이제는 웬만큼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까지는 몰라도 그의 얼굴만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종욱'이란 분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그 WHO의 제6대 사무총장으로 재직했었다는 것까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Scene 3)
TV가 매스컴을 주름잡던 시대에서 세월이 바뀌어 요즘은 바야흐로 SNS 시대. SNS 중에서도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팟캐스트계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가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최욱"이다. 풀네임보다는 오히려 '우기'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위 세 Scene의 주인공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글자가 있으니 바로 '욱'이다. 한자로 구분하자면 Scene 1의 주인공은 旭(아침해 욱)이고, Scene 2의 주인공은 郁(빛날 욱)이다.
(솔직히 Scene 3은 잘 모르겠고, 같은 '욱'이라도 이 '旭'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旭日旗에 쓰이기에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욱'字가 바로 내가 잃어 버렸던 아니 어쩌면 잊고 있었던 이름, 어렸을 때 내 이름 '종욱'의 바로 그 '욱'이다. 그래서 나는 그네들 이름을 부르거나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내 어렸을 때의 그 이름이 생각나서 이런저런 추억에 젖게 되기도 했었나 보다.
게다가 Scene 2, 즉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이종욱' 님의 '종'과 '욱'은 내 어려서 이름과 똑같은 '鍾(쇠북 종)', '郁(빛날 욱)이어서 나는 솔직히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이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벌써 10여년 전 얘기가 되었지만, 반기문 씨가 UN 사무총장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출세한 분이라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이종욱 사무총장은 그보다 10년쯤 앞서서 이미 한국인 최초로 UN 공식기구의 존경받는 수장이 되셨으니 한때 같은 이름을 가졌던 나로서는 속으로 뿌듯했을 수밖에 ....ㅋㅋ
내가 '종욱'에서 지금의 '종상'으로 다시 태어난 건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까지는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언제 어디서나 나는 당연히 '종욱'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입시를 한 달쯤 앞둔 시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기억에 당시 중학 입시를 대비하여 각 국민학교에서는 자체로 배치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는데,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너는 시험지에 이름을 적을 때 '종욱'이 아니라 '종상'으로 적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입시가 공식적인 시험이라 집에서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호적상의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건 어린 나이에도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종욱'이 정식 내 이름이 아니고 '종상'이라는 호적상의 내 이름이 따로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기에 무척 당황했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할아버지께 여쭈어 본 결과 과연 그렇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때부터 나는 중학 입시에 낙방하지 않으려면 내 뇌리에서 그때까지의 '종욱'의 기억을 빨리 지워 없애야 한다는 거였다. 혹여 실수로 이름을 잘못 적었다가는 6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종욱'과 '종상'. 어떤 이름이 더 나다운 건지는 60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종욱'이면 '쇠북 종'에 '빛날 욱'이니 이종욱 WHO 사무총장처럼 '세상을 밝히는 종'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 내 깜냥에 그건 아닌 듯하니 일찌감치 그만두길 잘 했다 싶기도 하고...
'종상'은 '술잔 종'에 '서로 상'이니 '서로 술잔 나누며 오순도순 화평하게 지내라'는 거라면 그건 내 인생을 걸만도 하겠다 싶다.
또한 이름에서 '욱'이라는 글자가 없어졌는데도 아직도 툭하면 그놈의 욱하는 버릇이 비집고 튀어 나오니, 이름에 계속 '욱'을 달고 살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차 싶기도 하다.
이제는 거의 연락이 뜸한 고모들이 아주 예전에 가끔씩 나를 '종욱'이라고 부른 기억말고는 이제 나를 그렇게 부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살면서 내 주변에서 한글만이라도 같은 '종상'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곳에 가서 내 이름을 대면 상대방 쪽에서 컴퓨터로 이름을 조회하고는 몇 년생이냐고 묻는 경우는 가끔 있었다. 그러면 속으로 다른 이종상이 있기는 한 가보구나 생각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면 어찌 되었건 그에 걸맞게 나만의 색깔과 향을 간직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과연 지금까지의 내 삶의 색깔과 향은 무슨 맛이었을까 자문해 본다.
우리는 대개 이름하면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린다. 그래서 앞에서 얘기했던 잡지의 여러 작가들도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처럼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 같은 이름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에는 김춘수 시인이 불러주는 이름 못지않게 시인 박인환의 서늘한 가슴에 있는 잊혀진 이름도 있고, 독립운동가 시인 윤동주가 기억하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부끄러위서 썼다가 흙으로 덮어 버리는 이름, 하지만 자랑처럼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언덕 위에 묻힌 이름도 기억하고 있다.
사주명리학의 기본 요소는 팔자다. 그런데 인간이면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게 여덟 자씩의 八字를 타고 난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다. 마치 서울역의 노숙자나 세계 최고의 갑부에게나 하루 24시간씩 똑같이 주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하루 24시간을 어찌 쓰느냐에 따라 누구는 갑부로 불리기도 하고 또 어느 누구는 노숙자로 불리기도 하듯이, 팔자와 이름도 그걸 갖고 어찌 사느냐에 따라 활짝 피기도 하고 볼썽사납게 되기도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욱'이나 '상'으로 어찌 살 것인지도 신경써야겠지만 이제사 더 소중하게 깨닫는 건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사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연유로 '지금'을 사는 집으로 나우당(Now당, 娜友堂, 아리따운 벗들이 머무는 집)을 짓고, 그 옆에 '여기'를 사는 사랑방으로 희어재(Here재, 戱魚齋, 물 만난 물고기가 노니는 사랑방)를 꾸며 또 다른 나의 이름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족 : 현재 이종상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오만원권 신사임당의 초상화를 그린 일랑 이종상 화백이 아닌가 한다. 다만 그는 相이 아니고 祥이다.
2021. 1. 20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꾸르실료 잘 다녀오십시오! ^^-
감사합니다 신부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종보다는 서로 술잘을 나누며 화평하게 지내시는 것이 더 행복하실 듯~
지금처럼,, 처음처럼,, 참 이슬같이 ㅎㅎ
낮에도 주님
밤에도 주님
밤낮으로 주님만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