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을 모집하기 위한 글〔募粟文〕 무술년(1598, 선조31)
우리나라를 하늘이 돌보아 주지 않아 전고에 없던 병화를 입어 우리 성상께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면서 창을 베개 삼아 자고 쓸개를 걸어 놓고 맛보신 지가 지금까지 7년이나 되었다. 병력은 피폐해졌고 재물은 탕진되어 나라가 깎이고 망해 감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 스스로 떨쳐 일어날 힘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의 성천자(聖天子)께서 측연히 불쌍하게 여기고 혁연(赫然)히 노여움을 발해 전후로 크게 병마(兵馬)를 보내, 처음에는 평양(平壤)에서 크게 승전하였고, 다음에는 직산(稷山)에서 크게 이겼으며, 세 번째로는 울산(蔚山)에서 크게 승리하여, 왜놈들로 하여금 바다로 물러가 있으면서 감히 몰아쳐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즉 우리 생민(生民)이 죽음을 면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다 명(明)나라 군사들 덕분이다.
지금 명나라 대장들이 대병(大兵)을 거느리고 양남(兩南)에 주둔해 있는 것이 별처럼 퍼져 있고 바둑돌처럼 벌여 있으면서 위령(威靈)을 떨치고 있어, 지킬 적에는 호랑이가 산에 있는 형세가 있고 싸울 적에는 태산이 새알을 누르는 듯한 기약이 있게 되었다. 이에 얼마 전부터는 왜놈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바야흐로 성책(城柵)을 수리하면서 겨우 스스로 보전할 생각만 하지, 다시는 병졸들을 풀어 우리 변경을 소란하게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더러운 흉적을 소탕하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말끔히 씻어 버릴 날이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시원스럽지 않겠는가. 다만 염려가 되는 것은 10만 대군을 움직이는 데에는 하루에 천금이 소비되는바, 큰 병력이 주둔하는 곳에서는 많은 식량을 계속 이어 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성천자께서는 이것을 염려하여 중국의 쌀 70만 섬을 실어다가 지금 이미 의주(義州)에 쌓아 두고 뱃길로 강화(江華)까지 운반해 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성상께서도 이를 염려하여 경창(京倉)에 있는 쌀과 콩을 또한 배로 실어 충주(忠州)에 보내어 조령(鳥嶺)을 거쳐 아래로 잇달아 내려보내고 있다. 단지 근심되는 것은, 우리 도내의 관창(官倉)에 있는 양곡이 부족하여 큰 병력의 한 달 소용을 지탱하기 어려우며, 뒤에 올 군량 또한 길이 멀고 백성들이 피폐하여 기일 안에 대 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이른 바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고 한 말이 바로 오늘날의 근심인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 경상도 사민(士民)들은 평소부터 충의로써 서로 권면하는바, 지난겨울에 큰 병력이 내려올 때에도 저마다 가지고 있던 곡식을 바친 것이 몇 만 섬이나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단지 우리 성상께서만 가상히 여기셨을 뿐 아니라, 명나라 총독(總督)과 경리(經理)와 어사(御史) 및 명나라의 각 아문(衙門)이 모두 의롭게 여겨 찬미하였다. 지금은 철이 늦어 곡식이 귀하고 백성들이 지쳐 양식이 모자라니, 비록 힘을 다해서 군향(軍餉)을 돕기를 지난겨울처럼 하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대가(大家)와 거족(巨族)들 중에는 아직도 쌓아 둔 곡식이 많아 뒤주와 곳간에 가득 찬 자도 있으니, 만약 이러한 때 곡식을 내어 군수(軍需)에 쓰게 한다면, 나라에 대해 공을 세우는 것이 어떠하겠으며, 나라에서 그에게 보답하는 것 또한 어떠하겠는가.
아, 슬프다. 명나라 군대가 만리의 먼 길을 와서 해를 넘기면서 우리를 지켜 주고 있는데, 편안함을 좋아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것은 인정에 있어서 다 같은 것이다. 부모를 떠나고 고향을 버린 채 화살과 돌이 날아다니는 싸움터에서 이슬을 맞는 것이 어찌 그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겠는가. 단지 우리나라를 건져 주고 우리 백성들을 살려 주며, 우리의 적을 막아 주고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려고 해서 오랫동안 이 장정(長征)하는 고생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위엄과 성세를 믿고 뒤로 물러나 편안함을 누리면서 도리어 우리들이 먹다 남은 곡식을 아껴 명나라 군사에게 내주지 않는다면, 사리로 헤아려 볼 때 어찌 그와 같이 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양곡을 계속해서 대 주지 않으면 병정들이 난병(亂兵)이 되는 법이다. 비록 명나라 장수의 법령이 아무리 엄명(嚴明)하다고 해도 그 지경에 이르러서는 역시 그들이 사방으로 나아가 약탈하면서 촌락을 뒤지고 산골짜기를 수색하는 것을 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재산을 파괴하고 우리의 부녀자들을 욕보여서 그 피해가 이루 다 말할 수조차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재물을 끝내 보전하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오늘날에 일찌감치 스스로 내주어 공사(公私) 간에 빛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 피해가 얕은 것이다. 군량이 떨어지면 병력이 머물러 있을 수 없고, 병력이 머물러 있지 못하고 철수하면 왜적이 반드시 또다시 발악할 것이며, 왜적이 또다시 발악하면 우리가 모아 가지고 있던 것이 모두 다 큰 도적을 위해서 쌓아 둔 셈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와 늙은이와 어린아이가 전부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포로가 되어 끌려갈 것이다. 그때를 당하여서는 비록 명나라 군사들에게 양식을 내주지 않아 이와 같은 큰 화를 입은 것을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다 곧바로 닥쳐올 일로, 현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실로 감히 일부러 횡설수설하면서 말을 꾸며 대어 사민(士民)들을 꾀고 속이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이해(利害)를 따져서 한 말이다.
그러나 또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윤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이치요 땅의 의리이다.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가 치욕을 당하고,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목숨을 바치는 것은, 고금에 걸쳐 바꿀 수 없는 큰 정도(正道)이다. 참으로 이것에 대해 하찮게 보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곧 사람의 윤리가 끊어진 것이다. 강토(疆土)가 날마다 쪼그라들고 국세(國勢)가 날로 위급해지는바 근심치고 오늘날보다 더 큰 근심이 없고, 사직(社稷)이 잿더미가 되고 능침(陵寢)이 보전되지 못하였는바 치욕치고 오늘날보다 더 심한 치욕이 없다. 무릇 우리 인민으로서 용기가 있는 자는 변방에 나아가 싸우다가 죽고, 재물이 있는 자는 관아에 바쳐, 우리 선왕(先王)과 우리 임금의 깊은 사랑과 두터운 은택에 보답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또 소홀히 여겨서야 되겠는가.
이제 마땅히 모집하는 데 속히 응하여 각자 있는 대로 다 털어 관청 창고에 바쳐 군량으로 보태게 하고, 가난해서 재산이 적은 자들도 마땅히 서로 권장하여 힘이 닿는 대로 수합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럴 경우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가 되는 것이니, 군량을 계속해서 대어 주는 방도에 있어서 어찌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만약 재물만 중히 알고 의리를 모르며, 제 집만 알고 나라는 생각지 않는 심보를 가지고, 쌓아 둔 곡식을 아끼면서 관가에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가가 위태롭고 망하는 것을 마음 편하게 여기고 왜놈 편으로 들어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는 자이니, 우리 고을에서 다 같이 버린 바가 될 것이요, 국가의 형벌에 있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 천하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예의(禮義)로써 일컬어져 왔으니, 어찌 다시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데다가 우리 경상도는 예로부터 충효(忠孝)와 문장(文章)과 유아(儒雅)로써 일컬어져 왔으니, 어찌 다시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 군량이 부족하여 사세가 심히 다급하므로 속마음을 다 피력해서 두루 효유하는 바이다. 나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서로 감응하여 함께 큰일을 헤쳐 나아가기를 사민(士民)에게 깊이 바라는 바이다.
募粟文 戊戌
我國家遭天不弔。罹前古未有之兵禍。我聖上沫血飮泣。枕戈嘗膽七年于今。而兵疲財竭。國之削亡。日以益深。殆不能自振。幸賴我聖天子惻然以愍。赫然以怒。前後大發兵馬。一大捷於平壤。再大捷於稷山。三大捷於蔚山。使倭奴退屯海上。不敢長驅。使我生民得免於糜爛。以保有今日。皆天兵之力也。目今天朝大將領大兵列屯于兩南者。星羅棋布。震疊威靈。守有在山之勢。戰有壓卵之期。頃日以來。倭奴大怖。方修城理寨。僅爲自保之謀。而不復縱兵侵突。蕩擾我邊彊。掃平兇醜。澄豁妖氛。將自此機始。豈不快哉。所慮行師十萬。日費千金。大兵所駐。糧餉難繼。聖天子爲此慮。發天朝米載七十萬石。今已積置于義州。海運至江華。聖上爲此慮。京倉米豆。亦令船運至忠州。由鳥嶺以下陸續相繼。特患道內官糧。所在不敷。不足以支大兵旬月之用。後頭運來之粟。又因路遠民疲。不得及期。諺所謂遠水無救於近火者。正今日之憂也。惟我本道士民等。素以忠義爲勸。去冬大兵下來時。各出其所有以供兵。以累萬計。此則非特聖上嘉之。總督,經理,御史天朝各衙門。無不義而美之矣。今則節晩穀貴。民老懸磬。雖欲竭力助餉亦如去冬之爲。其可得乎。其間大家巨族。儲峙尙多。至有盈園滿庾者。若於此時捐出此粟。以爲軍需。則其功於國家爲如何。而國家之酬報亦當如何。嗚呼。天兵萬里遠來。連年戍守。好逸惡勞。人情所同。離父母棄鄕井。暴露於矢石之場。豈其所欲。特爲拯濟我邦。存活我民。捍我寇賊。復我讎怨。而久此長征之苦。我乃藉其聲威。退坐其後。以享其安。而顧愛食餘之粟。不以供天兵。則揆之事理。豈宜如此。矧惟糧餉不繼。則兵爲亂兵。雖以天將法令嚴明。到此地頭。亦難禁其搶掠。發 村閭。遍搜山谷。破其財產。辱及婦子。其害將有不可勝言者。與其若此而財終不保。曷若今日早自捐之爲有光於公私耶。然此猶淺之爲害矣。食盡則兵不可留。兵撤則賊必更肆。更肆則其所聚有不爲大盜積者耶。而男女老弱。擧將不死則俘。當此之時。雖無悔其不供天兵以取此禍。亦不可得矣。此皆立至之事。而不待明者而知。實非敢故爲縱橫之說以誑誘于士民也。唯以利害言之耳。尤有甚於此者。君臣大倫。天經地義。主憂臣辱。主辱臣死。乃亘古亘今不易之大方。苟有恝於此者。卽人理絶矣。土疆日蹙。國勢危急。憂莫有如今日之憂。社稷成灰。國陵不保。辱莫有如今日之辱。凡我人民。有勇者死於邊。有財者輸之官。以報我先王我聖上深仁厚澤。正在今日。其又可忽耶。今宜急速應募。各罄所有。納之官倉。以補軍餉。其貧而小資者。亦當相爲奬勸。隨力收合。則聚塵成山。積涓爲海。其於繼糧之助。豈不多哉。如有重財忘義。徇家亡國。吝惜積聚。不肯納官。則是爲安國家之危亡。而甘折入於 倭奴。鄕黨所共棄。刑章所不容。然人有秉彝。天下寧有如此之人耶。況我國素以禮義稱。寧復有如此之人耶。況本道素以忠孝文雅稱。寧復有如此之人耶。爲此軍餉不敷。事勢甚急。披瀝心肝。徧爲曉諭。兩心相感。共濟大事。深有望於士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