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太學)의 제생을 깨우치는 글
국가에서 학교를 세우고 사유(師儒 대사성(大司成))를 둔 것은 실로 선비들을 가르치고 길러 훗날 조정에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니, 그 뜻이 우연치 않다. 비록 후세에는 가르치고 기르는 데에 있어 그 법이 상고시대처럼 성대하지 못하여 글을 외거나 문장을 짓는 낮은 수준과 명예나 이록(利祿)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만일 사유가 된 자의 학문과 행실이 학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고 또 성심으로 강마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비록 과거 시험을 위한 틀에 박힌 공부를 한다 해도 어찌 가르치고 길러 주는 내실이 없겠는가.
형편없는 내가 외람되이 이 직임을 제수받아 사직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관계로 뻔뻔스럽게 스승의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나 스스로 거칠고 경박하고 일천하여 선비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구구한 나의 뜻은 그저 매일 학궁에서 밤낮으로 제생들과 만나며 할 말이 있으면 서로 고해 주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서로 토의하고 선한 것을 보면 반드시 칭찬해 주고 잘못한 일을 들으면 반드시 주의를 주어, 마음과 뜻이 골고루 미쳐 교학상장(敎學相長)하게 함으로써 나를 임용한 국가의 뜻에 조금이나마 부응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질병과 우환 때문에 발이 묶여 자주 와 있지 못하고, 간혹 열흘에 한 번이라도 오게 되면 제생들이 또 마치 지나는 길손처럼 보아 가까이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종일토록 자리에 기대어 있어도 강론을 들으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제생이 읽는 글은 실로 모두 성현이 남긴 글이다. 비록 첩괄(帖括)을 암기하고 외느라 성현의 글에 마음을 쏟아 음미하여 정밀하고 오묘한 의리를 탐구할 겨를이 없다 하더라도, 글 뜻을 풀이하는 데에 있어 어찌 한두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그마저 강론하거나 물으려고 하지 않으니, 더구나 그보다 더한 것이야 아무리 일러 주고 싶어한들 그 누가 들으려고 하겠는가. 이와 같다면 비단 내가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직무를 방기하는 죄를 면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제생 또한 어떻게 가르치고 기르는 조정의 뜻에 부응하겠는가. 이 점을 생각하면 실로 개탄스럽다.
앞으로는 앞서의 잘못을 고쳐서, 내가 이곳에 들르는 날이면 제생은 상재인(上齋人), 하재인(下齋人)을 막론하고 각기 읽은 글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와 뵙기를 청하고, 의심나는 대로 거리낌 없이 반복해 가며 강론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한갓 사생(師生) 간의 허례에 구애되지 말고 오직 성심으로 도움받기를 구한다면, 사생 간에 서로 왕래가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고, 혹 조금은 서로 성장하는 유익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제생은 어찌 서로 함께 유념하지 않겠는가.
諭太學諸生文
國家設學校置師儒。固使之敎養多士。爲異日朝廷之用。其意不偶然也。雖後世所以敎且養者。其法不能如上古之盛。而不免出於記誦詞章之陋。聲名利祿之誘。然使爲師儒者。其問學行義。足爲學子所尊敬。而又能誠心相與講劘不倦。則雖於課試程法之中。亦豈無敎養之實。僕以無似。猥忝是職。辭避不獲。抗顏師席。自惟蔑裂輕淺。不足以矜式多士。區區之志。但欲日處學官。蚤夜與諸生相見。有話相告。有疑相討。見善必奬。聞過必戒。庶使情志孚洽。敎學相長。以少稱國家任使之意。而顧爲疾病憂患所錮。不得數以身來處。其或旬日一至。則諸生又視爲過客。無意親就。終日倚席。絶無一人聽講。竊惟諸生所讀。固皆聖賢遺書。雖拘於記誦帖括。不暇悉意探玩。以究極理義之精蘊。卽其文義訓說之間。豈無一二可疑者。而亦不肯講問。況進於此者。雖欲相告語。其誰肯聽之。若是則不惟僕無以自免於尸素曠職之罪。卽諸生。亦何以副聖朝敎養之意。思之誠爲慨然。自今以後。願改前轍。苟僕來過之日。諸生無論上下。齋人各持所讀書。自來求見。隨疑相講。不憚反復。無徒以師生虛禮爲拘。而一主於誠心求益。則庶不至於莫往莫來。而或不無一分相長之益矣。諸生盍相與念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