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 한용운(1879-1944)
나는 서투른 화가畫家여요.
잠 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이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샘 파지는 것까지 그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작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 번이나 지웠습니다.
나는 파겁破怯 못한 성악가聲樂家여요.
이웃 사람들도 돌아가고 버러지 소리도 그쳤는데, 당신이 가르쳐 주시던 노래를 부르려다가 조는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는 바람이 문풍지를 스칠 때에 가만히 합창하였습니다.
나는 서정시인抒情詩人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봐요.
‘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
당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집과 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습니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전문적으로 일삼는 행위에 구별이 있을 뿐이다. 공자는 “시에서 영혼이 깨어나고 예에서 시의 형식이 세워지고 즐거움에서 영혼의 구원이 완성된다. 興於詩 入於禮 成於樂”고 하였다. 이를 “시에서 감성을 일으키고, 예를 통해 바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공자는 이 세 가지를 개인의 수양덕목에서 중요한 바탕으로 삼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인용한 시 「예술가」는 성악가, 화가, 시인을 통해 그리움의 대상인 ‘당신’을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북송의 소식蘇軾이 당대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보고 평하기를 “시중유화詩中有畫 화중유시畫中有詩”라 하여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음을 말했던 것처럼 「예술가」는 읽혀지고 있다.
당나라 3대 시인을 꼽으라면 이백과 두보, 왕유를 꼽는다.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하는데 이백은 풍류 넘치는 삶을 살며 호방함과 낭만적인 서정을 토로하였다. 두보는 우국충정, 유학을 바탕으로 전란에서 고통하고 있는 사회 민생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음으로 하여 그를 시성詩聖이라 하였고, 시불詩佛 왕유는 불교에 심취하여 세속적 번뇌에서 해탈의 정서를 묘사하였다. 왕유의 시는 자연의 정취와 불교적 선취가 넘치는 서정의 극치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동양화 역사상 수묵산수화를 창시한 대화가大畵家이기도 하다.
한용운은 다분히 왕유의 시풍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유불선儒佛仙의 3대 시인 가운데 가장 가까운 종교적 동질성에서도 왕유에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왕유의 ‘해탈의 정서’와 서정이 넘치는 시를 통하여 조국의 불운한 시대를 『님의 침묵』으로 시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시업을 이루었다.
시인은 “서투른 화가”로 “가슴”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백 번이나 지”우고 또 그리는 지고지순한 도법圖法을 사용하고 있다. 또는 “파겁(익숙해져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어짐) 못한 성악가”로 “조는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차마 못 부르고 “바람이 문풍지 스칠 때” “합창”하는 정도로 노래를 부른다. “소질 없”는 “서정시인”으로 “즐거움” “슬픔” “사랑” 같은 말로 멋을 부리거나 꾸미는 것은 “쓰기 싫은” 시인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쓰고 싶은 시인, 그가 “기루어하는” 대상은 유일한 ‘당신’이기 때문이다.
시집 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대상은 ‘당신’, ‘반달’ 또는 ‘계월’, ‘논개’ 등으로 호명하고 있지만 모두 ‘님’으로 불리는 사랑, 그것은 하나의 사랑이다. 시인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사랑의 네 가지 종류(아가페agape, 에로스eros, 필리아phillia, 스토르게storge)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표현表現인 것을 보았습니다./진정한 사랑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그들은 나의 사랑을 볼 수는 없습니다./사랑의 신성神聖은 표현에 있지 않고 비밀에 있습니다.”(「칠석」)라고 사랑을 담담히 밝히고 있다.
시인은 그 하나의 사랑을 더 적극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시 「이별」에서 “진정한 사랑은 곳이 없다.”하였고, “진정한 사랑은 때가 없다.”하였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장소나 시간의 구애拘礙를 받지 않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사랑의 존재」에서 “사랑의 비밀은...그들만이 압니다.”고 한 시인은 “나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여요.”(「‘사랑’을 사랑하여요」라고 한 것처럼 영원한 ‘사랑’을 사랑한 시인이다.
사랑의 시인 한용운은 그림과 노래와 시를 통해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사라하는 까닭」)한 사실로 통해 왜 ‘복종적 사랑’을 말할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피상적이고 나약한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예술이 진정한 사랑을 구가謳歌하고 있는데, “님이 주시는 한숨과 눈물은 아름다운 생의 예술입니다.”(「생의 예술」)라는 말처럼 생 자체를 승화시키는 고결한 한국의 미, 하나의 사랑을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