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승니록東國僧尼錄
작자 미상
김두재 (역)
총목차總目次
Ⅰ. 명승名僧
본여선사本如禪師 혜철선사慧徹禪師 홍척선사洪陟禪師
무염선사無染禪師 현욱선사玄昱禪師 각체선사覺體禪師
도균선사道均禪師 품일선사品日禪師 가지선사迦智禪師
충언선사忠彥禪師 대모선사大茅禪師1) 증선사證禪師
척선사陟禪師 순지선사順支禪師 지리산화상智異山和尙
흠충선사欽忠禪師 행적선사行寂禪師 청허선사淸虛禪師
금장화상金藏和尙 청원화상淸院和尙 와룡화상臥龍和尙
서암화상瑞岩和尙 박암화상泊岩和尙 대령화상大嶺和尙
대무위선사大無爲禪師 운주화상雲住和尙 경유선사慶猷禪師
혜선사慧禪師 구산화상龜山和尙 혜운선사慧雲禪師
이상은 신라인이다.
설악영광선사雪嶽令光禪師 도봉산혜거국사道峯山慧炬國師
이상 고려인이다.
만항萬恒 혼구混丘 혜근惠勤 관선冠宣 법언法言
이상 고려인이다.
순응順應・이정理貞 희랑希朗 보조대사普照大師 이거인李居仁
이상 신라인이다.
보덕普德
고구려인이다.
휴정休靜 유정惟政
이상은 조선(本朝)의 사람이다.
묵행자嘿行者
Ⅱ. 니고尼枯
김씨金氏
신라인이다.
Ⅲ. 시승詩僧
대각국사大覺國師 무애지국사無碍智國師 대감국사大鑑國師
구산담수선사龜山曇秀禪師 무기無己 탁연사卓然師 치악노승雉岳老僧
Ⅳ. 역승逆僧
신돈辛旽고려조 사람이다.
Ⅴ. 간승奸僧
보우普雨본조 사람이다.
Ⅰ. 명승名僧
본여선사本如禪師2)남악회양南嶽懷讓3)선사의 법제자[法嗣]4)이다.
혜철선사慧徹禪師5)
홍척선사洪陟禪師6)서당지장西堂智藏선사의 법제자이다.
무염선사無染禪師7)마곡보철麻谷寶徹선사의 법제자이다.
현욱선사玄昱禪師8)
각체선사覺體禪師장경회휘章敬懷暉9)선사의 법제자이다.
도균선사道均禪師남전보원南泉普願10)선사의 법제자이다.
품일선사品日禪師11)염관제안鹽官齊安선사의 법제자이다.
가지선사迦智禪師대매법상大梅法常12)선사의 법제자이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네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곧 너에게 말해주겠노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매산大梅山13)의 종지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낙酪과 우유[本]를 동시에 던져 버리라”『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충언선사忠彥禪師 대매법상大梅法常 선사의 법제자이다.
대모화상大茅和尙 귀종지상歸宗智常 선사의 법제자이다.
상당上堂14)하여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스승을 알고자 하면 무명심無明心에서 알아 취해야 하고,
항상 머물러 있어서 마르지 않는 성품을 알고자 하면 모든 물질이 변천하는 곳에서 알아 취해야 하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모大茅의 경계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칼날을 드러내지 않는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 칼날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감당할 사람이 없느니라.”『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증선사證禪師
척선사陟禪師
순지선사順支禪師15)앙산혜적仰山慧寂16) 선사의 법제자이다. 본국 호는 요오대사本國號了悟大師이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불자拂子를 세우셨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곧 옳지 않은 게 아닙니까?” 대사가 불자를 내려놓았다.
스님이 물었다. “이以자도 성립되지 않는다 하고 팔八자도 옳지 않다 하면, 그것은 무슨 글자입니까?”
대사께서 원상圓相을 그려 보이셨다. 어떤 스님이 선사 앞에서 다섯 개의 고리 모양의 원상을 만들어 보이니,
대사가 찢어 버리고 따로 원상 하나만을 그렸다.
지리산화상智異山和尙임제의현臨濟義玄17) 선사의 법제자이다.
어느 날 대중들에게 설법하셨다[示衆].
“겨울인데도 춥지 않으니, 섣달이 지나거든 보자.” 곧 법상法床에서 내려 오셨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흠충선사欽忠禪師석상경제石霜慶諸18) 선사의 법제자이다.
행적선사行寂禪師19)석상경제 선사의 법제자이다.
청허선사淸虛禪師석상경제 선사의 법제자이다.
금장화상金藏和尙동산양개洞山良价20) 선사의 법제자이다.
청원화상淸院和尙구봉도건九峯道虔 선사의 법제자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공을 다투면 누가 얻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 누구도 그 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떤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선사가 말하셨다. “비록 다투지 않는다고 해도 허물은 있느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그 허물을 면할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애당초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잃지 않는 이치를 어떻게 단련해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두 손으로 떠받쳐도 일으키지 못하느니라.”
와룡화상 (臥龍和尙) 운개지원 (雲盖志元) 선사의 법제자이다.
물었다. “어떤 것이 대인大人의 모습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자줏빛 비단 휘장 속에서는 손을 드리우지 않는 것이니라.”
물었다. “어째서 손을 드리우지 않습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존귀尊貴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또 물었다. “온종일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원숭이가 모충毛蟲을 잡아먹듯이 하라.”『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서암화상(瑞岩和尙) 곡산장(谷山藏 )선사의 법제자이다.
물었다. “희고 검은 눈동자를 다 없애버리고 불안佛眼만 뜨고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속으로 집착할까 걱정스럽구나.”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왕자의 탄생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깊은 궁궐 속에서 끌어내도 나오지 않는다.”
박암화상泊岩和尙
물었다.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오래된 무덤은 집으로 삼지 못한다.”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공연히 거마車馬 자국만 남겼구나.”
또 물었다. “어떤 것이 교敎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패엽貝葉에는 다 쓰지 못한다.”
대령화상 (大嶺和尙) 모두 곡산장(谷山藏 )선사의 법제자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동관 (潼關)에 이르러서 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길 가운데에서) 살아갈 궁리를 할 뿐이니라.”
또 물었다. “길 가운데에서 살아갈 궁리는 어떤 것입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체득하면 옳겠지만 당면해서는 옳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체득하면 옳은데 어째서 당면해서는 옳지 않습니까?”
화상이 말하였다. “체득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분한 위에서의 일이니라.”
말하였다. “그 속에서의 일은 어떤 것입니까?”
화상이 말하였다. 존귀尊貴한 척 하지 않는 것이니라. 『전등록傳燈錄』
대무위선사(大無爲禪師) (설봉의존(雪峯義存) 선사의 법제자이다.
운주화상(雲住和尙) 운거도응)雲居道膺) 선사의 법제자이다.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못한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할 수 있습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노승老僧이 말할 수 있다.”
또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못한 것을 화상께서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화상이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은 곧 내 제자이니라.”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화상이 대답하였다. “군왕君王을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스무 방망이는 때렸어야 했었느니라.”『전등록傳燈錄』
경유선사慶猷禪師25)
혜선사 (慧禪師) 운거도응(雲居道膺 )선사의 법제자이다.
구산화상(龜山和尙) 장경혜릉(長慶慧稜) 선사의 법제자이다.
당나라 때에 상국相國(정승) 배휴(裴休)공이 법회를 열고 경을 읽는 스님에게 묻기를
“무슨 경을 보십니까?”라고 하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언동자경無言童子經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이 다시 묻기를 “몇 권입니까?”라고 하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두 권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다시 묻기를 “이미 말이 없다고 했거늘 어찌하여 두 권이라 합니까?”라고 하자,
스님이 대답하지 못했다.
화상께서 그 스님을 대신하여 답하기를 “무언無言을 논한다면 두 권만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전등록傳燈錄』
혜운선사慧雲禪師백조원白兆圓 선사의 법제자이다.
설악영광선사雪嶽令光禪師천룡중기天龍重機 대사의 법제자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和尙의 가풍家風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분명히 기억해 두어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온갖 법의 근원根源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가르쳐 주어서 고맙다.”『전등록傳燈錄』
도봉산道峯山 혜거국사慧炬國師27)청량문익淸凉文益28)선사의 법제자이다.
국사는 처음에 정혜淨慧선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었는데, 본국本國(고려)의 왕이 그를 사모하여 사신을 보내
돌아오라고 간청하므로 마침내 본국에 돌아왔다.
본국의 왕이 마음의 요결[心訣]을 듣고는 더욱 극진하게 예우했다.
어느 날 국왕의 초청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 법좌法座에 올라 위봉루威鳳樓를 가리키면서 대중들에게 설법하였다.
“위봉루는 여러 상좌들을 위하여 이미 거양擧揚을 마쳤다.
상좌들이여, 알겠느냐? 만일 알았다면 무엇이 알았으며, 만약 모른다면 그 무엇이 위봉루를 모르는가?
진중하라.” 대사의 설교는 중국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임종도 알 수 없다.
만항萬恒고담古潭 혜감국사慧鑑國師이다.
속성은 박씨요, 진사進士 경승景升의 아들이다. 웅진군熊津郡 사람으로서 기유己酉(1259)년에 태어났다.
국사는 구산선九山選)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충렬왕忠烈王이 삼장사三藏社30)에 머물기를 명하였으며, 제자는 700명이나 되었다.
연우延祐(元 仁宗의 연호) 기미己未(忠肅王 6, 1319)년에 병이 들었는데, 전날 저녁에 남쪽 산봉우리에서
큰 나무가 저절로 쓰러지고 붉은 요기[赤祲]가 산골짜기에까지 뻗쳤다.
나이는 71세였고 법랍法臘은 58년이었다. 왕이 시호[慧鑑國師]를 내리고 그 탑을 광조廣照라 하였다.
스님은 유가儒家의 자제로서 스님이 되었는데 어릴 때부터 영리하였으며, 스스로 학문에 힘썼고
장성해서는 더욱 게을리하지 않았다. 구산선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풍악楓嶽(금강산)으로 갔다가 여름이 지나간 뒤에 지리산智理山으로 옮겨가서 지냈다.
배가 고파도 맛있는 음식을 거듭 먹지 않았고 아무리 추워도 갖옷을 껴입지 않았으며,
여러 해 동안 자리에 편히 눕지 않았고, 자취를 감추려 하였으나 그의 명성은 더욱 드러났다.
충렬왕이 삼장사三藏社에 머무를 것을 명하였고, 그의 스승인 조계曹溪 원오圓悟화상도 또한 그렇게 하라고 타일렀으므로
마침내는 삼장사에 갔다. 그 뒤 낭월사朗月社・운흥사雲운흥사雲興社31)・선원사禪源社32) 등의 절에서 주지를 역임하였다.
경전을 가르칠 적에는 마치 귀머거리는 분명하게 듣는 듯하였고, 술에 취한 사람은 금방 깨어나듯 하였다.
제자가 7백 명에 이르렀는데, 사대부로서 제자가 되어 입사入社한 사람만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중오中吳33)의 몽산덕이(蒙山德異, 1231∼1308)가 그의 글과 게偈를 보고 칭찬을 마지않았으며,
십수 편의 시로 화답하고 이어 편지를 보내 고담古潭이라는 호까지 지어 주었다.
황경皇慶(元 仁宗의 年號) 계축癸丑(1313)년에 대위왕大尉王이 영안궁永安宮에 계실 때에, 편안한 수레를 보내고
겸손한 말로 맞이하므로 스님이 경성京城으로 갔다.
그때 마침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이름난 스님들[名流]을 모아서 날마다 차례로 불법을 강론하고 있었는데,
국사가 그곳에 이르러 방할棒喝)의 풍습을 일으키고 변론이 물을 내리쏟는 듯하니,
임금이 매우 기뻐하면서 같은 수레를 타고 가서 손수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리고는 별전종주중속조등묘명존자別傳宗主重續祖燈妙明尊者라는 법호를 내려주고,
가사・웃옷・하의[裙]・모자・버선과 은폐銀弊 50일鎰을 노자로 주었다
. 스님은 산문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살고 있는 스님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사사로이 간직하지 않았다.
(8월 18일에)35)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유서遺書를 써서 스스로 장사 지낼 자리를 잡아놓았다
. 밤이 깊어지자 시자侍者를 불러 북을 치게 하고, 가사袈裟를 걸치고 선상禪牀에 의지하여
소리 내어 게를 읊어 작별을 고하니, 그 게송은 대략 다음과 같다.
廓淸五蘊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확 트이고 맑아지니
眞照無窮 참되게 비추는 것이 그지없구나.
死生出沒 태어나고 죽고 나타나고 사라짐이
月轉空中 달이 허공을 맴도는 것 같다네.
吾今下脚 내 지금 다리를 내려디디려 하노니
誰辨玄蹝 어느 누가 그 현묘한 자취를 분별하리.
告爾弟子 너희 제자들에게 이르노니
莫謾捫空 부질없이 허공을 더듬지 말라.
선자禪者 경호景瑚가 가고 머무는 이치[去住之意]를 물으니,
“사람이 어느 곳인들 만나지 않겠는가?
큰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는 말만 남기시고는
무릎을 치고 합장한 채 웃으면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