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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도 ♣
< 무후사 > < 두보초당 동상 >
◈ 요리의 진수, 사천요리의 고향 - 사천성(四川省 쓰촨셩)
중국에서 손꼽히는 볼거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4가지의 강, 즉 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의 4가지 강이 흐르는 곳으로 사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산지와 평원이 물과 한 대 어우러져 풍부한 자원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하는데 아미산, 장강삼협, 도강언, 구채구 등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한족과 더불어 이족(彛族), 창족(藏族), 묘족(苗族), 회족(回族) 등의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광동요리(澳菜), 호남요리(湘菜), 산동요리 등과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표요리인 사천요리의 고향이다.
사천고추의 매운맛과 독특한 향신료가 어우러져 잊지 못할 자극적인 맛을 내는데, 매운 맛이 한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는다.
주요 도시로는 성도, 중경, 난충, 완현(萬縣), 도구(渡口), 네이장, 루저우[濾州], 이빈, 다현(達縣) 등이 있다.
◈ 삼국지(三國志演義)의 배경, 2000년 역사의 도시 - 성도(成都 청두)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불리며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천연자원 및 식량을 소유한 성도평원의 중부에 위치한 사천성의 성도이다. 분지지형으로 4계절 온화한 기후여서 연평균온도 16.3℃로 혹한과 혹서가 없고 겨울에도 따뜻하고 강우량이 풍부해 땅이 기름져 농사 짓기에도 최적의 조건이다.
1992년에 개방도시로 지정되어 서남부 지역의 과학, 기술, 상업, 경제,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총인구는 980만 명이며, 전체 면적은 12,400㎢이다.
또한 성도는 전국시대부터 있어온 2000년 역사의 문화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도읍지였고 진(秦)·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청두현(
또 당(唐)의 현종(玄宗)이 안사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고, 수당(隨唐) 시대 때는 장안(長安), 양주(揚州), 둔황(敦煌)과 더불어 4대 도시였다.
이렇게 많은 역사를 겪어온 도시인만큼 많은 사적과 유적지가 있다. 그 중 제갈 량(諸葛亮)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를 비롯하여 두보가 '안사의 난'을 피해 피난을 와서 시를 짓던 두보초당(杜甫草堂)·망강루(望江樓), 그리고 불교의 성지에서 피서지와 휴양지로 즐겨 찾는 아미산(峨眉山:3,099m)과 노자를 모시던 청양궁, 전촉을 세운 왕건묘 등은 이미 유명하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성도에서 오래된 것이 있다면 음식과 술이다. 지금이야 중국 전역에서 사천요리를 맛볼 수 있지만 정말 사천요리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성도를 찾아야 할 정도로 성도 도시전체가 사천요리의 맛과 향으로 가득 차 있다.
성도는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봄에 여행하기가 가장 좋고 2001년 4월부터 아시아나 항공이 직접 취항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 동안 다소 불편했던 교통문제를 극복하고 우리에게 훨씬 더 가까워져 관광지로서 더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 관 광 지 ★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 “낙산대불”
낙산대불은 성도의 남쪽에 위치한 낙산시(落山市)의 민강(岷江), 청의강(靑衣江), 대도하(大渡河) 세 개의 강이 모여 흐르는 지점에 위치한 릉운산(凌雲山) 절벽을 깍아 만든 것이다.
아미산에서는 동쪽으로 31km 떨어져 있다.
"불상이 하나의 산이요, 산이 하나의 불상이다(佛是一座山, 山是一尊佛)"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가 거대하며 대불의 높이가 71m, 머리 높이가 14.7m, 귀 길이 6.72m, 코 길이 5.33m, 눈썹 두께가 24m나 된다. 대불 주위로 100명이 넘는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석각불상으로 꼽힌다.
불상의 뒤편의 절벽에는 "해사동(海師洞)"이라고 불리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는 대불을 만들기 시작한 해통법사가 기거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불은 당나라 시기였던 713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해통법사가 죽고 난 뒤인 90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어졌다. 대불을 구경하는 데는 배로 건너가 산을 돌고 버스로 돌아오는 방법과 산에 오르지 않고 대불만 보는 방법이 있다.
▷ 위치 : 낙산시 서쪽
▷ 교통편 : 성도에서 직행버스나 택시 이용(약 150km)
◇ 중국 육대석불(六大石佛)
1. 사천성 - 낙산(樂山)대석불 5. 하남성 - 준현(埈縣)대석불
2. 감숙성 - 감곡(甘谷)대석불 6. 사천성 - 동남(潼南)대석불
3. 사천성 - 영현(榮縣)대석불
4. 섬서성 - 삼현(杉縣)대석불
⊙대나무 숲속의 금성죽원 “망강루”
망강루(望江樓)는 성도시 동문의 바깥쪽을 흐르는 금강(錦江) 줄기의 한 자락에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숲은 현재 약 13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누각은 당나라 시기의 유명한 여류 시인 설도(薛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고적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숭려각(崇麗閣)"이라고 불리우며 현재는 사천성 주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설도는 기녀였지만 일생 동안 대나무를 자신의 지조에 견주어 사랑하며 시를 통해 대나무의 미덕을 찬미하였고, 이 곳에서 약 500여 수의 시작(詩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도 88수의 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이곳에 대나무를 심어 경의를 표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 대나무 숲에는 150여종의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공원의 대나무수가 80%이상이어서 이 곳을 "죽자공원(竹子公園)", "금성죽원(錦城竹園)"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다.
원내에 망강루, 탁금구, 음시루 등 5채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망강루이다.
망강루는 높이가 30m로 위의 2층이 8각이고, 아래의 2층이 사각모양의 청나라 후기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또 공원 안에는 설도가 물을 길었다고 전해지는 설도정(薛濤井)과 그녀의 동상이 있다.
▷ 위 치 : 성도시 남동쪽 교외
▷ 교 통 : 35번,19번,3번,18번,31번 버스 이용
▷ 입 장 료 : 3위안
▷ 개방시간 :
⊙무후사
무후사는 중국 3세기를 풍미한 유비와 장비 관우 등 촉나라의 여러 명장을 거느린 전설의 전략가, 제갈공명, 그 제갈량을 기리기 위해 서진 영안 원년에 만들어진 사당이다. 무후사의 이름은 제갈량이 죽은 후의 시호인 충무후(忠無候)에서 유래되었다.
경내로 들어가면 유비전과 제갈량전, 촉한의 문·무관 28위의 동상 및 '제갈고(諸葛鼓)'라 칭해지는 북, 동고(銅鼓) 등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유비전은 정문으로 들어가 최초의 건물인데 황금의 유비상이 안치되어 있고 벽에는 공명의 정치·군사상의 전략사항으로 유명한 융중대(隆中對)의 액자가 걸려있다.
관우, 장비 등의 문·무관 28인의 상은 옆 동(棟)에 있고 벽에는 그들의 문장과 업적을 기리는 액자와 연(聯)이 전시되어 있다. 제갈고는 공명이 남쪽을 정벌하면서 만든 것으로 낮에는 그것으로 밥을 짓고 밤에는 경보를 발했다고 한다. 또 무후사 뒤편에는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과 문장, 서법, 석각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꼽힌 당비(唐碑)가 있다.
무후사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시대의 사당으로 여겨지며 1961년 국무원에 의해서 전국 중요 문물 보호단위로 정해졌다. 무후사가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존재하는 무후사는 청대 강희 11년(1672년)에 옛 터 위에 중건된 것이다.
◇ 제갈량에 대해...
낭야군
유비가 죽은 후에는 어린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여 재차 오(吳)와 연합, 위(魏)와 항쟁하였으며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여겨진다.
또 제갈량은 유비가 그를 초빙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초가에 세번 갔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와 "신은 본래 포의로서 몸소 남양에서 밭갈이하며 구차이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을 보존하려 했을 뿐 ... "으로 시작하는 출사표(出師表), 그의 용병, 용인술을 대표하는 읍참마속(泣斬馬謖), 칠종칠금(七縱七擒) 등의 우리에게 친숙한 고사성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 위 치 : 성도시 남부 교외
▷ 교 통 편 : 1, 10번 버스, 무후사역
▷ 개방시간 :
⊙변검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재빨리 얼굴에 쓴 가면을 다른 가면으로 바꿔 쓰는 것)
변이란 바꾼다는 의미, 검은 얼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변검은 가면으로 얼굴을 바꾸는 일종의 마술 같은 묘기이다. 중국 연극의 일종으로, 주로 중국의 서남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사천지역의 지방극의 주요레퍼토리였었다.
현재도 변검의 비밀은 전수자에게만 알려지며 같은 단원끼리도 분장실을 따로 쓸 정도로 철저한 비밀이 지켜 진다고 한다. 변검의 달인은 열 걸음을 걷는 동안 백 개의 가면을 바꿔 쓸 수 있다고도 한다.
⊙사천요리
< 마파두부 >
사천요리는 송대에 형성된 유파로서 중국의 양쯔강(揚子江) 상류 지역, 특히 운남과 사천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요리로 기름지지 않고 매워서 우리의 입맛에 거부감이 없다.
이러한 요리가 발달하게 된 것은 바다가 먼 내륙에서 더위와 추위가 심하여 이러한 악천후를 이겨내기 위해 마늘과 파, 고추 같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천후로 인해 악천후에도 잘 상하지 않는 절임과 건량 등의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품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사천요리의 음식재료는 산이나 들에서 나는 채소와 가축 및 강에서 잡은 어패류 등을 사용하며 요리방식은 소초(少炒 : 짧은 시간에 볶는 방법)와 건소(乾燒 : 조림), 포(泡 : 데치기), 건편(재료를 볶아서 말리는 방법), 회(전골) 등이 있으며 맛의 종류 또한 다양하고 복잡하다. 또 사천요리는 독특한 향료를 사용하는데 어향(魚香 : 생선요리에 쓰이는 양념), 홍유(紅油 : 붉은 고추기름), 괴미(怪味 : 이상한 맛), 마라(산초의 매운맛) 등의 다양한 향료를 사용해 맛의 변화를 준다.
보통 촨차이(川菜)하고 부르며, 채소요리가 뛰어나 자차이(搾菜)와 같은 특산물과 마파두부(麻婆豆腐), 양고기 요리 등은 반드시 체험할 만하다. 그밖에 대표적인 요리로는 궁보계정(宮保鷄丁), 마파두부(麻婆豆腐), 개수백채(開水白菜) 등이 있으며 음식 맛이 소박하고 참신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사천지역을 여행할 때에 고량주에 곁들여 사천요리를 맛보는 일은 사천여행 중에 잊지 말아야 할 필수코스다.
※대표적 사천요리인 마파두부
마파두부는 중국의 두부요리 중에서도 가장 지방특색을 풍부하게 살린 요리 중 하나로 이미 사천의 대표적 요리로 널리 알려졌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요리는 청나라 동치(同治)시대에 성도시 북쪽의 만복교 근처 한 조그만 요리집 주인 진림부(진부춘 이라고도 불렸다)의 부인인 유씨부인이 처음 만들었다. 유씨부인은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어 사람들은 그녀를 진마파(옛날 중국에서는 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랐다/마마자국이 있는 진씨 노파라는 뜻.)라고 불렀고, 후에 그 음식점도 "진마파 두부점"이라 이름 붙여졌다. 1909년 출판된 <성도통감>에는 22개의 그 시대 최고 요리집을 열거해 놓았는데, 이 중에는 진마파의 두부와 진마파 두부점도 있다.
마파두부의 특색은 "烧"(샤오/먼저 익힌 다음에 기름으로 볶는 조리법)를 사용하여, 설백의 보드라운 두부 위에 붉은 색의 소고기와 청색 마늘종으로 장식하고 겉에는 투명한 홍유를 뿌려 매우면서도 부드럽고, 화끈거리면서도 신선한 그러면서도 바삭함이 있는 독특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사천의 현존하는 유일한 불교사원 “
사천성 대부분 절이 문화혁명 때 파괴된 탓에
이곳의 전신은 당대의 묘원탑원(妙圓塔院)으로 송나라 때는 신상사(信相寺)로 불리웠다. 명대에 전화(戰火)로 소실되었으나,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청나라 때 어떤 사람이 밤에 붉은 빛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붉은 기운속에서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하여 청대 강희(康熙)30년(1691년)에 문수원으로 다시 개명 재건하였다.
그 중, 관음대사상(觀音大士像)은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정교함이 돋보인다. 또한 광희제가 말한 공림의 8가지 볼거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옥불은 1922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이밖에
1942년 남경에서 3조각이 발견되어 현재 한조각은 남경에 있고 다른 한조각은 서안에 있으며 마지막 한조각은 당증이 출가하게 된 곳이 성도이기에 성도 문수원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교 통 : 16번,55번,64번 버스 이용
▷입 장 료 : 2위안
▷개방시간 :
⊙아미산 최대의 불교사원 “보국사”
아미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보국사는 아미산 최대의 사찰로 아미산 관광의 기점이면서 산을 오르기 위한 대문의 역할을 하는 절이다. 아미산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융성한 절이 바로 보국사이며 아직도 경내에는 수도하고 있는 고승들이 많다.
명대 만력(萬歷)년간에 지어졌으며, '보국사(報國寺)'라는 이름은 청대
보국사에는 3대 보물로 일컬어 지는 것이 있는데, 첫번째는 칠불전(七佛殿)내에 자리잡고 있는 대형 와불, 두번째로는 높이 7m 14층의 화엄탑(華嚴塔), 세번째로는 높이 2.3m, 무게 25t의 대동종(大銅鐘)이다. 화엄탑은 현재 복호사(伏虎寺)로 옮겨졌다.
⊙당대의 대시인, 두보가 시를 읊던 두보초당(杜甫草堂 : 두푸차오탕)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하나로 “詩聖(시성)"이라 불리는 두보가 성도에 잠시 있을 때 기거하던 곳으로 성도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평생 정치에 대한 뜻을 두었음에도 그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두보가 759년 겨울, 안사의 난(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정권찬탈을 위해 일으켰던 반란)을 피해 현종(玄宗)을 따라 촉으로 피난을 왔을 때, 친한 친구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서쪽 교외의 경치 아름다운 호숫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수 있었다.
피난 이듬 해 봄에 초가집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이곳을 성도초당(成都草堂)이라고 불렀다. 또 완화계(浣花溪) 근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완화초당이라고도 한다. 두보는 이 곳에서 4년여 동안 살았는데, 이 때 지은 시중에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시는 240여 수가 넘는다.
대표적으로 복거(卜居), 춘야희우(春夜喜雨), 강촌(江村) 등의 시는 초당에서 지내던 그의 시름없는 한가로운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초당은 1500년과 1811년 두 차례의 확장공사로 인해 넓이가 20ha가 조금 넘으며 경내에는 대해(大懈), 시사당(侍史堂), 공부사(工部祠), 사능초당(沙陵草堂)의 석비 등 건축과 다른 많은 문화재가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시사당과 두보의 소상(塑像)이 있고, 양쪽의 진열실에는 두보의 시집과 연구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위 치 : 성도시 서쪽 교외 완화계(浣花溪)
▷ 교 통 : 4번, 17번, 35번 버스 통혜문(通惠門), 초당사 역에 하차 하면 된다.
시내에서 삼륜차를 탈 경우 5위안 정도면 닿을 수 있다.
▷ 개방시간 :
▷ 입 장 료 : 30위안
⊙구름의 불산, “아미산”
< 아미산 관광센터 > < 보국사 >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형당산계의 공래산맥에 속해 있으며, 대아미, 2아미, 3아미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대아미의 주봉은 만불정으로 해발 3,099m. 사방으로 수 백리에 펼쳐져 있고, 구름폭포 속에 웅장한 기세와 수려한 산세를 뽐내고 있다. <아미군지>중에는 이런 말이 기재되어 있다. "구름의 아름다움이 비취와 같고, 검푸른 귀밑머리와 같으니 진정 미인의 이마와도 같아 가늘고 길며, 아름답고 아득하다"
이곳에서 비롯하여 그 이름도 '아미산' 이라 칭했다. 아미산을 불교에서는 '광명산', 도교에서는 '허령동천' 이라고도 한다.
당대시인 이백은 시로써 아미를 칭송한 바 있으니, "촉국에 선산이 많으나, 아미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또 "아미는 천하에 수려하다."와 "아미를 유람하지 않고서는 사천성을 유람했다 말할 수 없다."가 그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아미산에는 일찍이 동한후기(기원2세기)부터 도교의 사원이 있었으며, 당송 이래 불교가 날로 흥성해 연이어 불사가 건조되었고, 명청대에는 온 산이 절과 도교사원으로 뒤덮혀, 크고 작은 사원이 약 백 여개에 달했다.
전설에 따르면 <보현보살>이 현령하신 법사라고도 한다. 산서성 오대산, 안휘성 구화산, 절강성 보타산과 함께 <중국 불교 4대명산>으로 불린다.
청대 이래로 불교가 점차 쇄락하고, 더구나 산세가 높고 험하며, 비가 많고 습윤하여 대다수의 불사가 몰락하여, 해방전야에는 '보국사' '만년사' '화엄사' '세상사(지)' '복호사' '뇌음사' '대아사' '광복사' '우선사' '연화사' '중봉사' '관음사' '신개사' '선봉사' '백운사' '오룡사' '대평사' '백룡사' '용문동' '금정사' '천불정' '만불정' 등 불교 흥성 시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불사만이 남아 있다.
해방 후 두 차례에 걸쳐 비교적 큰 규모의 보수공사를 거쳐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으며, 사천성의 중점 관광 풍경구이다. 현존하는 관람 가능한 사찰로는 '보국사' '만년사' '홍춘평' '산봉사' '복호사' '세상사' '무선사' '금정' '뇌음사' '백룡사' 등 십 여 곳이 있다.
⊙금정
아미산 최고봉의 명칭이다. 만불정과 가까우며 해발3,077m에 위치한다.
불사는 동한대에 건축되었고, 당시에는 '보광전'이라 불렀으며, 아미산 고찰중의 하나이다. 산이 우거지고 천둥이 자주쳐서 여러차례 수리를 했으나, 여전히 새로 짓고 다시 허물어지는 상황이다. 정전은 영명화엄사라고 불리우며, 청 광서12년 (기원1886년)에 중건되었다가, 민국 25년(기원1936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전 뒤 가장 높은 곳에는 원래 동전(銅殿)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금전>이라 부르며 폭은 20여m 앞 뒤 길이는 수m이며 정중앙에는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고, 좌우에는 만불상이 늘어서 있다. 전문에는 흑산산천이 음각되어 있다.
전내에는 명대 성화년간(기원1465~1487년)에 주조된 동비가 있는데, 정면에는 "대아산영명화엄사에 동전을 신축함을 기념하다." 란 글이 씌어 있고 뒤편에는 "아미산보현금전비"라고 씌어있다. 동전의 화엄사는 이미 화재로 소실되었고, 비(碑)만이 전좌측의 '와운암'내에 보존되고 있다. 암자 좌측으로 수십분 떨어진 곳에 '서광대'가 있는데 일출 운해를 감상할 수 있는 불광(佛光)성지이다. 절 뒷편으로는 좁은 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절앞은 만길 낭떠러지여서 속칭 '서선암'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수백리밖까지 내다보이며, 크고 작은 설산이 바라보인다. 만불정 위에서 바라보는 '불광'과 '불등'은 아미산의 가장 볼 만한꺼리이다.
⊙팬더의 낙원, “와룡 팬더 자연보호구역”
성도의 서북지구에서 사천분지와 청장고원으로 이어지는 자연보호구로 성도에서 서쪽으로 10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중심지는 사만(沙灣)이고 면적이 20만 평방 킬로미터에 달한다.
자연 지리조건이 특이하고 지형이 복잡하면서 다양하여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공기도 매우 깨끗하여 달콤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고산협곡(高山峽谷), 폭포비천(瀑布飛泉),빙산설봉(氷山雪峰), 고산 초원방목지, 원시삼림, 희귀한 꽃들과 풀, 운해일출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보호구 내에는 아열대 식물부터 한대 식물군까지 4000여 종의 식물이 산을 따라 수직 분포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식물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희귀동물이 있어 국가중점보호의 희귀야생동물이 57종이나 된다.
조사에 의하면 구내에는 백여 마리의 팬더곰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수는 전국 팬더곰 전체의 약 10%를 좌우한다고 한다. 인공사육 번식한 팬더곰은 그 중 39마리이며 세계 인공사양번식 총수의 3분의 1수준이어서 팬더곰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63년에는 중국 최초로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1980년에 연합국교재의 생물보호구역으로 등록되었으며 같은 해에 세계 야생생물기금연합회가 중국팬더연구센터를 설립해 지금까지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 교통 : 성도에서 소금(小金)행 노선버스를 타고 와룡역(사만)에 하차
♣ 구 채 구 ♣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구채구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비취처럼 영롱하고 명랑한 색을 띈 구채구의 물은 구채구를 대표하는 미경(美景)이다.
구채구는 성도시에서 460㎞ 떨어져 있는 사천성 창족(羌族)·장족(藏族) 자치구의 구채구현 내에 위치해 있으며 최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등장했다. 골짜기 안에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 '구채구'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되었다. 총면적이 720㎢이며, 그 중 52%가 빽빽한 원시림이다. 그 안에 봉우리, 골짜기, 호수, 폭포, 시내 등이 있고 100여종의 식물과 희귀동물도 살고 있다.
주요 풍경구는 "Y"자 모양을 띠고 있는데 풍경구는 크게 수정(樹正), 일칙(日則), 즉사(則査) 3개의 골짜기로 구성된다. 수정구는 구구(溝口)에서 락일랑(諾日朗)까지로 총 길이가 약 13.8km이며, 락일랑은 구채구의 중심이다.
여기서부터 구채구의 가장 높은 장해(長海)까지는 17.8km이다. 관광지의 해발이 1,980m-3,100m 정도이며, 가장 높은 곳은 4,700m인 곳도 있다.
1월 최저 기온이 2.5℃, 7월 최고 기온이 17℃여서 1년 중 언제라도 여행을 하기엔 좋은 날씨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을에 이곳을 찾는다.
구채구 내의 풍경지로는 본경탄, 갈대해자, 범해자, 쌍용해자, 수정군해 중 제일 큰 와룡해, 수정군해, 수정폭포, 낙일랑폭포, 계절해, 오채지, 장해, 경해, 구채구의 가장 큰 폭포인 진주탄폭포, 오화해, 팬더곰해자, 검죽해, 백조해, 원시삼림 등이 있다.
수 백 년 동안 침묵 속에 있었던 선경(仙境)은 1970년대 몇 명의 벌목공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후 1978년에 정부의 엄격한 보호를 받는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1990년에는 중국 40대 주요 명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 92년에는 유엔 교과문 조직의 세계자연유산위원회(WHC)에 의해 세계자연유산목록에 수록되었으며 이어 97년 파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 생물권 보호구에 수록되었다.
구채구는 아직 우리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최근에 교통사정이 좋아지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 의해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관광객들이 첫 손으로 꼽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있다.
구채구의 신비한 운해(雲海), 맑은 물과 폭포, 기이한 지형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마치 신화 속의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 송판가는 길
구채구와 황룡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천성 북부, 창족(羌族)·장족(藏族) 자치구의 오래된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구채구와 황룡은 이 송판시에 속해져 있다.
해발 약 2,850m의 높이에 있는 산간 고성마을로 사천성의 성도인 성도(成都, 청두)에서 335km 거리에 있다. 구채구와 황룡이 있는 곳인 만큼 경치가 수려하고 오래된 곳 이어서인지 운치가 있다. 이곳의 성은 명 초기의 홍무제 12년(1379년)에 쌓은 것인데, 지금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성문과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이곳으로 오는 방법은 성도의 장거리버스정류장인 서문버스정류장(西門汽車站)에서 매일
★ 관 광 지 ★
⊙구채구의 미경이 모여있는 곳, 수정구(樹正溝, 슈정고우)
< 수정폭포 > < 호위해 >
수정구는 구채구의 중요한 구(溝)로서 수정궁(水晶宮), 분경탄(盆景灘), 호위해(芦韋海), 화화해(火花海), 수정폭포(樹正群瀑布), 낙일랑폭포(諾日朗瀑布), 서우해(犀牛海)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정구에 있는 40여 개의 해자는 구채구 안의 총 호수 중 4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구채구의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수정구의 여러 풍경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것은 수정궁(水晶宮)으로 물이 맑아 주변 산의 풍경이 그대로 물에 비쳐 마치 물속에 다른 산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화화해 역시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한데, 이름만큼이나 선명한 풀과 꽃, 물의 색이 두드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또 수정한(樹正寒) 부근에 있는 수정폭포는 40여 개의 해자(海子)가 7km길이로 층층이 늘어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제일 윗부분에 있는 해자의 물이 솟아 흘러내리면서 폭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곳 폭포의 낙차가 가장 작은 곳은 1, 20미터고 가장 큰 것을 30미터에까지 이른다.
락일랑 폭포 역시 수정폭포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폭포로 140여 미터의 폭으로 양쪽에서 물이 솟구치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마치 폭포가 산림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색의 오색찬란함, 화화해(火花海, 후어화하이)
해발 2187m, 깊이 9m, 총 면적이 36,352m인 수정구에 있는 짙은 남색의 호수다.
매일 이른 아침, 안개가 겉이면서 그 사이로 햇살이 들면 마치 물위에 불이 붙은 듯한 붉은 꽃 모양의 빛들이 여기저기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 보인다.
이 모습이 짙고 푸른 물빛과 어울려 휘황찬란한 보석들로 호수가 가득 차는 듯 하다.
또 여름에는 호수주변에 야생화가 만발하는데, 새벽의 이슬 맺힌 꽃들과 붉은 태양빛을 받아 불붙는 듯 붉어진 꽃들이 호수에 비춰진 모습이 동화 속의 풍경처럼 예쁘고 신비스럽다.
⊙장해
구채구 내에서 가장 큰 호수로 해발 3,103km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수 길이가 4.5km에 달할 정도로 장대한 곳이다.
물이 나가는 출구가 없어 증발이나 지하침수로 배수가 된다. 하지만, 여름에 폭우가 오더라도 물이 불어나 제방을 넘기는 일이 없으며 겨울에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
한겨울에는 호수가 꽁꽁 얼어 빙상 스포츠를 즐기기에 아주 좋다.
⊙황룡사
옥취봉(玉翠峰)을 뒤로하고, 황룡계곡(黃龍谷)을 앞으로 하고 있는 목조건축의 오래된 불교 사원이다.
황룡풍경구(黃龍風景區)라는 이름도 이 사원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황룡사를 중심으로 황룡풍경구가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을 수림이 빽빽하게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황룡사 뒤 쪽으로는 깊은 석회동굴인 황룡동이 있고, 절 남쪽으로는 민산(岷山)의 주봉인 설보정(雪寶頂)이 있는데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만년설로 덮여 있으며 높이는 약 5,588m 이다.
음력 6월 16일이면 절 내에 임시 시장이 열려 근방 수 백리에 거주하는 장족, 강족, 회족, 한족들이 장을 보러 와 매우 번잡하지만 소수민족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 구채구에서 황룡사까지..
구채구와 황룡사 사이의 거리는 128km 나 된다. 단체 여행객들은 단체 관광버스를 이용하면 되지만, 개별 여행객들이 구채구에서 황룡사로 이동할 시에는 먼저 송판(松潘)이나 성도행 버스를 타고 92km 정도 떨어진 천주사(川主寺/홍군대장정 기념비가 있는 곳임)에서 내려 다시 평무(平武)방향의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41km를 가면 황룡사에 도착할 수 있다.
⊙오채지
18KM에 달하는 이 구간에는 볼만한 호수가 모두 끝부분에 있어서 돌아보기가 수월하다.
버스를 타고 30~40분 가면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채지가 나온다.
여기저기 가라앉은 나뭇가지와 물감을 탄 듯 푸른빛을 발산하는 오채지는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오채지의 상반부는 짙은 남빛을, 하반부는 등적색을 띠면서 알록달록한 색채가 정교하면서 경쾌한 모습이 오화해와 막상막하다.
⊙송판고성
국가지정 역사문화명성인 송판고성(松潘古城)은 진(秦)나라 때부터 중국의 역대 왕조가 감숙성, 청해성, 산서성 일대를 연결하며 통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명왕조 홍무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성내에는 이슬람교 사찰 청진사(淸眞寺)와 고송교(古松橋), 영월교(映月橋), 7층루(7層樓)등 문화적 의미가 풍부한 유물들이 많아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인공적인 기교가 가미 안된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과거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측사와구
낙일랑 폭포에서 장해까지 17km 구간으로 넓은 호수 뒤로 끝없이 펼쳐진 일년 내내 녹지 않는다는 설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일측구
< 진주폭포 >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경해, 바위에 부딪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진주 알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진주탄 폭포, 오색 물빛이 햇빛이 비추면 공작의 깃털처럼 아름다운 색채를 자랑하는 오화해, 구채구에서 제일 낙차가 큰 고폭포 등이 있다.
석회질이 침전된 강바닥에 물이 고여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연못인데, 하얀 석회암에 고인 맑은 물은 깊이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내며 용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석회암 연못 외에도 5개의 폭포와 4개의 석회 동굴, 3개의 사원도 빼놓을 수 없는
* 관광포인트 *
석회암층이 지상에 노출되어 옛날의 계단 논처럼 자연스럽게 층위를 이루고 있었고 그 위에 물이 흐르기 때문에 지형이 매우 독특하였다.
전체적으로 물과 단구가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어 말 그대로 황룡과 같은 모습을 한 경관이다
* 명소수식어 *
석회암층이 지상에 노출되어 옛날의 계단 논처럼 자연스럽게 층위를 이루고 있었고 그 위에 물이 흐르기 때문에 지형이 매우 독특하였다. 전체적으로 물과 단구가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어 말 그대로 황룡과 같은 모습을 한 경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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