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호칭(呼稱)과 분파(分派)
▪ 10세(世) 판관공 계권파(判官公 係權派)에서 시작되는 분파
▪ 11세(世)에서 감찰공 영전파(監察公永銓派), 진사공 영균파(進士公 永勻派), 부사공 영추파(府使公永錘派), 장령공 영수파(掌令公 永銖派)로 분파된다.
여기서 감찰공파는 12세에서 학생공 호파(學生公 琥派)와 장사랑공 환파(將仕郞公 瓛派) 15세에서 진사공 홍파(進士公 弘派), 진사공 등파(進士公 登派), 구애공 응파(龜厓公 譍派)로 분파됐는데 구애공파 옛보에는 감찰공 원파(監察公 元派)로 기재됐으며 파계를 이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세인 진사공 영균파(進士公 永勻派)와 부사공 영추파(府使公 永錘派)는 모두 하계(下系)에서 더 분파되지 않고 그대로를 호칭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부사공파를 수원부사를 지낸 연유로 수원공파(水原公派)로 호칭되기도 한다.
같은 세수(世數)인 장령공 영수파(掌令公 永銖派)에 있어서는 이 파명은 잘 호칭되지 않고, 그 아래의 12세 및 14세, 15세의 분파명이 많이 호칭되고 있다. 즉 12세는 삼당공 영파(三塘公 瑛派), 서윤공 번파(庶尹公 璠派), 진사공 순파(進士公 珣派)의 3형제의 파 분류를 하였다.
첫째, 삼당공파는 14세에 증승지공 규보파(贈承旨公 奎報派)에 이어서 15세에 승의랑공 극파(承議郞公 克派), 증승지공 태파(贈承旨公 兌派), 춘당공 원파(春塘公 元派)의 3형제파를 이루고, 또 14세에 목사공 성보파(牧使公 星報派) 및 봉사공 지효파(奉事公 至孝派), 통훈공 정보파(通訓公 政報派)가 있다.
둘째, 서윤공파는 15세 선에서 문정공 상헌파(文正公 尙憲派=일명 淸陰公派), 휴암공 상준파(休庵公 尙寯派), 문충공 상용파(文忠公 尙容派=일명 仙源公派), 부사공 상관파(府使公 尙寬派=일명 長湍公派), 부윤공 상복파(府尹公 尙宓派=일명 廣州公派)로 분파되고, 14세에 학생공 선효파(學生公 善孝派=일명 公派)로 호칭되고 있다. 서윤공파는 우리 안동김씨를 크게 빛나게 한 일족으로서 열다섯 분의 정승, 세 분의 왕비, 두 분의 나랏님 사위를 비롯한 고위 고관 석학들을 많이 배출하여 안동김씨의 위상을 드높인 일파라 하겠다.
셋째, 진사공파는 3파를 이루었는데 13세에 사직령공 생하파(社稷令公 生河派), 눌재공 생명파(訥齋公 生溟派)를 이루었으며, 특별한 일파로는 20세 휘 달행(達行)을 파조(派祖)로 하는 원천공 달행파(源泉公 達行派)를 두었다. 이 파도 진사공파라는 것은 인정되나 진사공 이하 7대가 실전되고 없어 부득이한 조치로서 20세 원천공(源泉公)을 파조로 삼은 일파를 둔 것이다.
▪ 10세 정헌공 계행파(定獻公 係行派)에서 시작되는 분파(分派)
정헌공파는 일명 보백당공파(寶白堂公派)라 호칭되고 있다. 정헌공의 아들 5형제 즉 11세에서 참봉공 극인파(參奉公 克仁派), 진사공 극의파(進士公 克義派), 생원공 극례파(生員公 克禮派), 학생공 극지파(學生公 克智派), 군수공 극신파(郡守公 克信派=일명 文川公派라고도 함)로 파는 나누고 있으나 대내외적으로는 통틀어 정헌공파 또는 보백당공파로만 통칭되고 있다.
▪ 9세 어담공 삼익파(漁潭公 三益派)
이 파는 삼근(三近), 삼익(三益), 삼우(三友)의 3형제 중 둘째 인데 자손이 번성하지 못한 탓으로 분파하지 않고 어담공파로만 호칭되고 있는 편이다.
▪ 9세 휘 삼우(三友)의 아들 10세에서 계공랑공 맹구파(啓功郞公 孟龜派), 중파(仲派), 숙파(叔派), 등암공 계구파(藤庵公 季龜派)로 분파(分派)
계공랑파는 12세에서 참봉공 시좌파(叅奉公 時佐派), 참봉공 시량파(叅奉公 時亮派), 생원공 시우파生員公 時佑派)로 분파되고 계공랑공의 둘째 아들 11세 생원공 이려파(生員公 以礪派)를 이루었다.
중파(仲派) 파조는 휘 중구(仲龜)이고 숙파(叔派) 파조는 휘 숙구(叔龜)인데 모두 후사(後嗣)가 없고 파명만 남아있는 현실이다.
등암공파는 13세에서 습독공 엄파(習讀公 淹派), 첨사공 온파(僉使公 溫派), 항재공 낙파(恒齋公 洛派), 낙와공 치림파(樂窩公 致林派=옛 족보에는 목사동파로 호칭됨)로 나누어지나 통상은 등암공파로만 일컬어지고 있다.
▪ 7세 참봉공 언적파(參奉公 彦迪派)에서 시작된 분파
참봉공파에서는 14세 휘 존수(存水)계통에서 15세에서 별장공 홍파(別將公 洪派), 국헌공 준파(菊軒公 浚派=옛족보에는 學生公派로 기록됨), 학생공 수정파(學生公 遂晶派)로 분파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참봉공파로 통칭되고 있다.
▪ 단일파(單一派)로 내려오는 여러 파(派)
7세 현감공 지철파(縣監公 之哲派), 6세 호장공 처상파(戶長公 處商派), 6세 사헌공 원수파(司憲公 元水派), 5세 사과공 열파(司果公 烈派) 등이 있다. 이 파들은 파조 위의 상계(上系)는 모두 실전(失傳)되어 알 길이 없으며, 단일파로서 족보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 아직도 누보(漏譜)된 일족 예의소승공 생파(禮儀少丞公 生派)가 있다
예의소승공 휘 생(生)은 8세에 해당되며 가장 근자에 나온 1984년의 제7간 갑자보(甲子譜)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누보되어 왔다. 향후 대동보편찬사업이 진행될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입보되어야 할 것이다.
▪ 10세인 판관공 용파(判官公 龍派) 및 시중공 학파(侍中公 鶴派)
이 2개파는 2세 여기(呂基)·여중(呂重) 두 형제분 중 계씨(季氏=동생)인 선군공 여중파(選軍公 呂重派)에서 시작되어 6세에서 판관공 용파(判官公 龍派), 시중공 학파(侍中公 鶴派) 두 갈래로 나누어져 내려오고 있다. 판관공파는 그리 번성한 편이 아니나 시중공파는 매우 번족이며 많은 사연을 지니고 내려오는 파이다.
시중공파 파조이신 시중공께서 고려 충렬왕(忠烈王 : 1275~1308) 때 좌시중(左侍中)이었다. 국사(國使)로서 원(元)나라에 갔었는데 사신들의 석차(席次)를 정함에 있어 고려사신의 자리를 오랑캐들 아래로 배정함에 강력히 항의했다가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샀다. 원나라 황제는 고려왕에게 시중공의 엄벌을 요구해 왔다. 즉 시중공을 사형으로 다스리라는 것. 이에 고려 왕은 도리어 충신을 잃을 수 없다면서 진(秦)씨로 성을 고치게 하고 강원도 삼척(三陟)의 깊은 산골에 숨어 살게 했다. 이래서 시중공 후손들이 생명을 이어왔고 조선조 순조(純祖)때 이르러 나라님께 간곡히 호소하여 비로소 진씨(秦氏)에서 김씨(金氏)로 성씨를 되찾게 되었다.
그래서 시중공파를 별칭 복성파(復姓派)라고도 일컫는다. 왜 하필이면 김(金)을 진(秦)으로 변성시켰을까? 김(金)자의 맨 아래의 (一)자 획에다 (二)자 획을 합쳐서 (三)자 획으로 만들어 김(金)자란 본성을 잃지 않도록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늘날에 김씨로 환원되지 못하고 진씨(秦氏)로만 살고 있으며 환원하고 싶어 무한 애쓰고 있어 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안동김씨 대종회-상임고문 素林濟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