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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별 산악회(불광동 천주교회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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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어 스크랩 처칠경의 유모어
이테파노-2 추천 0 조회 29 10.10.04 16: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표시하기를....)

  Click!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
                                    화면이 나오면 계속 크릭

 

Click! 아름다운 풍경모음

 

 

 

여름을 보내는 비

              

          
 

뜨거운 대지를 적시는

9월의 비가

내리고 또 내리네요

 

빗줄기 하나에

섭섭함이 씻겨가고

또 하나에

원망이 사라져가요

 

또박 또박 내리는

빗줄기 타고

지나간 시간이 비워지네요

 

어둠이 지나면 빛이 살아나듯 

비우면 채워지겠지요

 

미움의 자리에 용서가

오해의 자리에 이해가

나만의 자리가 너와 함께로

 

사랑으로 새로 태어나길

기도해 보아요   


 

 -옮긴글-



 
 
윈스턴 처칠 경의 뛰어난 유머
 

윈스턴 처칠 경 (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년 11월 30일 ~ 1965년 1월 23일)
영국의 전 총리(2회), 노벨 문학상 수상자, 작가.
20세기 영국 정치사에서 유일한 귀족 혈통의 총리.
160cm를 겨우 넘는 단신에 뚱뚱한 대머리.
그리고 일그러진 인상에 등은 굽어있고, 목은 거의 안보이며
입술은 너무 얇아 없는 듯 보였다.
나비넥타이, 시거는 그의 상징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시거를 피지 않고, 의 맙【언론이 사진을
찍을 때만 시거를 입에 물어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2002년 BBC에서 설문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중에
세익스피어, 뉴턴, 엘리자베스 1세를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되었다.
욕이었던 V자를 빅토리의 의미로 만들어낸 처칠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

그는 본래 사치를 하며 고급스러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가 귀족이었고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명망높은 귀족가문의 자제였지만 유산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도 낙제할  수준의 처칠은 후에는 노벨문! 학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작가였기에, 그 인세로 생활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의 유머감각은, 웃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신의 주관과 오랜 독서의 산물이기도 했다.

1. 처칠의 교수형

미국을 방문한 처칠에게 한 여인이 질문을 던졌다.
"연설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리가 미어 터지게 모여드니
기분이 정말 짜릿하시겠어요?"
처칠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정치연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형을 당하는 것이라면 지금보다 최소한 2배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란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2. 윈스턴 처칠 불독

어느날 처칠의 비서가 일간신문을 들고 돌아와
처칠 앞에서 그 신문사를 맹 비난했다.
처칠을 시거를 문 불독으로 묘사한 만평을 실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가 막히게 그렸군.. 벽에 있는 내 초상화보다 훨씬 나를 닮았어.
당장 초상화를 떼어버리고 이 그림을 오려 붙이도록 하게."

3. 윈스턴 처칠 경은 알아도 얼굴은 몰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계의 결속을 모으는 연설을 하러 방송국에 가야 했던 처칠.
택시를 잡았다.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운전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저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한시간 후에 방송되는 윈스턴 처칠 경의 연설을 들어야 하거든요."
이 말에 기분이 좋아진 처칠이 1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 운전수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자 운전수는 처칠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타십시오 손님. 처칠이고 뭐고 우선 돈부터 벌고 봐야겠습니다."

."그럽시다 까짓 것!"

4. 난감한 노출 상황

2차 대전 초기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으로 건너간 처칠.
숙소인 호텔에서 목욕을 한 뒤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데
갑자기 루즈벨트 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때 공교롭게도 허리에 감고 있던 수건이 스르르 내려갔다.
정장의 루즈벨트를 향해 처칠은 어색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전환 시킨다.
양팔을 넓게 벌리며

"보시다시피 영국은 미국과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 것도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5.  마누라가 예뻐(1)

처칠이 처음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처칠의 상대후보는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칠은 늦잠꾸러기라고 합니다.
 저렇게 게으른 사람을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처칠은 아무렇지 않게 응수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연설장은 폭소가 터졌다고 한다.

6.  마누라가 예뻐(2)

5번의 유머는 총리가 되고도 한 번 더 쓰였는데
국회에 늦은 처칠은
늦어서 미안하다면서 같은 유머를 사용했다.
단지 이번에는 발전해 추가되는 게 있었으니

"그래서 앞으로는 회의가 있는 전날에는 각 방을 쓸 생각입니다."

7. 화장실 유머(1)

대기업 국유화를 놓고 치열한 설전을 벌이던 의회가
잠시 정회된 사이 처칠이 화장실에 들렀다.
의원들로 만원이 된 화장실에는 빈자리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유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당의 당수,
애틀리의 옆자리였다.
하지만 처칠은 다른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를 본 애틀리가 물었다.
"제 옆에 빈자리가 있는 왜 거길 안 쓰는 거요?
 혹시 저한테뭐 불쾌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처칠이 말했다.

"천만에요. 괜히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은 뭐든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주장하는데,
혹시 제것을 보고 국유화 하자고 달려들면 큰 일 아닙니까?"

8. 나도 나이가....

처칠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80이 넘어 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처칠의 젊은 시절 유머감각을 기억하는 한 부인이 짖궂은 질문을 한다.
"어머 총리님. 남대문이 열렸어요."
일제히 시선이 처칠에게로 향했지만 처칠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
 이미 '죽은 새'는 새장 문이 열렸다고 해서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까요."

9. 죽음도 두렵지 않다!

영국 의회 사상 첫 여성 의원이 된 에스터 부인.
하지만 처칠과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처칠은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아내라면 서슴치 않고 당신이 마실 커피에 독을 타겠어요."
처칠은 태연히 대답한다.

"내가 만약 당신의 남편이라면 서슴치 않고 그 커피를 마시겠소.

10. 왕따 처칠

영국이 나은 세계적인 극작가, 버나드 쇼가 처칠에게 연극표 두장을 건네며 말했다.
"제 연극에 초대합니다.
혹시라도 동행하실 친구분이 계시다면 함께 오십시오."
처칠은 동행할 친구조차 하나 없은 외톨이라는 점을 비꼰 것이다.
처칠이 응수했다.

"첫날은 바쁜 사정으로 어려우니 다음날 가지요.
연극이 하루만에 끝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11. 부인 그건 신성모독입니다

한 미모의 여성이 공화당의 남부재건정책을 반대한 사실을 들어
"처칠 의원님! 지금 의원님 앞에 재건(Reconstructed)을 반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라며 처칠의 반응을 살폈다.
처칠은 깊게 팬 그의 가슴을 힐끔 쳐다본 뒤 말했다.

"부인! 부인께서 재건(Reconstruction 유방재건수술)하신다면
 그것은 신성모독행위가 될 것 같습니다!

12. 다시 한번 넘어지겠습니다!
 
처칠은 연단 위에 오르려다 넘어져 청중들이 웃자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제가 넘어져 국민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넘어지겠습니다!"

13. 화장실 유머(2)

1940년 첫 임기가 시작되는 날,
 연설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데 그곳의 직원들은 처칠의 모습에 당황했다.
만세를 하듯 벽에 두 팔을 붙이고 볼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처칠에게 묻자 처칠이 말했다

"의사가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해서."

14. 난 괜찮은 사람...

몽고메리 장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제 8군을 지휘할 시절 처칠에게
독일군에 대한 공세를 빨리 취하라는 열화같은 독촉 때문에
처칠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처칠을 만났을 대 이런 농담을 했다.
"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100%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처칠이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술과 담배를 하는 200%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15. 저작권은?

미국을 여행하던 중에 할리우드에서 찰리 채플린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처칠은 채플린에게 다음에는 어떤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지 물었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플린은
 "예수 그리스도 역활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처칠은 그에 되물었다.
"저작권은 확보해 두셨습니까?"

16. 시거를 즐겼던 처칠

옥스퍼드 대학의 졸업 축사를 하게 된 처칠
비장한 각오로 담배를 문 채 나온 처칠에게 환호성이 쏟아진다.
작은 목소리로 처칠이 말했다
"포기하지 마라! You, never give up!"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You! never give up!"
 
그리고 강단에서 내려왔다.
처칠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연설이다.
우리는 모두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벌레일거야."
 
                                                                     - 웃긴 글에서 -
 

 

테네시월츠

 

 

"국민 다수가 자신을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오늘 오후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문화일보 홀)에 나온 독일계 한국인 李參씨는 완벽한 한국어로 흥미진진하게 두 시간의 강연을 이끌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의 답답함'이란 주제였다.
 
31년째 한국에 산다는 그는 자신이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한국論은 한국인이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기에 청중들의 박수와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는 한국이 원래부터 多元主義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해석하였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한국화하고 꽃을 피우고, 평화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건축, 한글, 음식 등에는 철학과 과학성이 깔려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강점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나라를 1천년간 다스린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철학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는 온통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동해물, 백두산, 남산, 소나무, 하늘, 바람 등등.
한국처럼 드라이브 할 때 5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연과 조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은 환경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진돗개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진돗개가 한국인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잘 훈련된 셰퍼드가 독일인의 애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면 한번은 꼭 싸웁니다. 그리하여 서열이 정해지고, 이 서열에 따라 질서가 잡혀 더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싸워서 진 개가 이긴 개에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보스 기질이 강하여 모든 개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돗개를 조사하였는데 세 집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 세 집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진돗개를 멧돼지 사냥에 이용하는 거예요. 멧돼지를 진돗개가 1 대 1로 상대하여선 다 죽습니다. 그러니 세 마리가 공동작전을 펴서 멧돼지를 피로하게 한 다음 물어서 죽입니다.
 
강한 敵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협력하다가 보니 세 마리가 친해져서 사이 좋게 지냅니다. 한국인들도 공동의 敵,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그런 경우이지요." 
 
(이 대목에서 첨언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렇다.어디 한강의 기적뿐인가.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내 가족, 내 친족, 내 동네, 내 동문, 내 파당 등등으로 갈라져서 제편만 옳고 잘났다며 지역싸움, 당파싸움을 일삼고...
불안한 장래에 대하여도 각자가  다 다르게 개인적으로 혼자의 방식과 비책으로  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한번  뒤돌아 보자.
나라에 매우 큰 환란이 닥쳐올 때에는, 참 신기하게도 국민 대다수가  순식간에 한 가족처럼 일치된 공감대(共感帶 consensus) 와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면서,  초당적으로 단결, 각자의 비책을 교환하며 너나없이 국난타개에 앞장서 몸바쳐 왔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 정도가 아니라 임진왜란이 그랬고 6.25전쟁이 그랬다.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하고 6년동안이나 삼천리강산을 들쑤셔 대던 20만대군(지금같으면 2백만정도의 대군)의 왜구가 종국엔 거의 다 죽고 패퇴하였는데...그것은 이순신장군 혼자서 이룩한 승전이 아니라 ,  각처에서  온 백성이 의병, 승병, 학병, 심지어는 의기 논개와  부녀자들의 치마부대가 결사항전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나?
 
제2차 세계대전의 용장으로서 6.25전선에 투입된 미국의 한 장성(밴플리트 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한다.
"내가 오랜동안 크고 작은 전쟁터를 다 다녀 보았는데, 한국군 같은 독종(?)은 보지 못했어요.
38선에서 밀리기 시작해서 한강, 수원, 대전, 낙동강등 전선마다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한국군 패잔병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거 같은데, 항상 저희들 끼리 새 부대를 편성하여 <일선에 다시 보내달라! 무기를 달라! >고 절규하는거야...
당시엔 탱크도 없어서, 나가면 죽는게 뻔한데... 
유럽 전선에서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패잔병은 도망쳐 초야에 흐터지면 그만이었지." 
      ㅡ hweenam  )
 
 이찬씨는, 독일에서도 16세기 초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위대한 성취나 인물이 적었다고 한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인간이 교회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개인의 소중함이 인정되면서 위대한 국민, 위대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인주의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아직도 획일적인 생각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은 골프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여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경우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한국인의 성격이 잘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에너지는 세계적이란 것이다.

 
그는 독일인과 한국인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고 하였다. 
 철학자 헤겔이 지적한대로 독일인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情이 깊다, 애국심이 강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편감, 신부감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는 한국인, 어디 아프다고 하면 모두 약사가 된 것처럼 각자 좋은 약을 추천하는 한국인, 국민 다수가 자신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자신감의 예로 들었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李參씨는 비판하였다. 너무 "우리끼리 경쟁"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동양예의지국이 아니라 동양무례지국처럼 된 것도 교육의 실패이다.

 
李參씨는 한국인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멧돼지 같은 사냥감, 즉 국가적 목표와 비전, 또는 大義를 국가지도부가 만들어내어야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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