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월 10일은 이현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까치 오혜성의 생일이다. 그런데 진짜 생일은 아니다. 어느날 짝꿍 엄지가 까치에게 생일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그는 "10월 10일"이라고 대답한다. 엄지는 가을이라서 좋고 외우기도 좋다고 말한다. 까치는 그냥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쉬운 숫자로 대답했으니 당연히 외우기 쉽지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는 자식에게는 무관심한 홀아버지 밑에서 크면서 자기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엄지는 10월 10일이 오자 혜성에게 작은 생일 잔치를 열어주기도 한다.
엄지가 그에게 처음으로 따듯한 관심과 참된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까치는 그에게 평생 헌신하게 된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혜성의 고백은 한국 문화사에서도 길이 기억될 한 마디이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고 편지를 주고 받는데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 서로 만난 자리에서 혜성은 엄지에게 "너는 나에게 신이고 네 편지는 나에게 성경이었다"라는 말도 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결말이 행복하지 못하다. 엄지는 정신병자가 되고 혜성은 장님이 된다. 젊은 이현세(1956 ~, 이 작품을 완간했을 때 불과 만27세)는 왜 이 지고지순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슬픈 운명을 선고했던가?
혜성이 엄지에 대해 보여준 헌신은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이었다고 본다. 요즘 읽고 있는 <좌우명 365일>에서 어젠가 엊그젠가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다"라는 피히테의 말을 만났다. 이 말을 풀이하는 안병욱 선생의 말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이도 없고,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살 필요와 보람이 없다. 인생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우리의 육체는 밥을 먹고 살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사랑을 먹고 산다. . . . 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정신적 양식이다. 소외감과 허무감과 고독감을 느끼면 사람의 마음과 인격은 심한 병이 든다. 정신의 영양 불량에 걸리고 만다. . . . 인간의 주성분은 사랑이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사랑의 양식을 골고루 가질 때 건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 (154쪽)
사실 이런 말은 그리 듣기 어려운 말은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좋은 말씀"이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이런 맞는 말씀, 상식적인 가르침이 가슴에 깊이 스며든다.
오늘에도 까치처럼 '10월 10일'을 자기 생일로 지어내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댓글 정수라가 불럿던 난 너에게 인가요? 다시 듣거 싶네요.~
예, 그 노래 맞습니다. 영화는 1986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음... 그렇게 슬픈 결말이었던가요? 그당시 힘든 시대상 때문인지 그당시 만화는 다 그랬던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