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을 거쳐 세관 검사대를 가기전 가방을 찾으려고 해도 가방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은 겨울인데 내 옷차림은 반팔 티셔츠와 얇은 바지뿐이었다.
이곳 항공사 직원에게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직원은 서류를 기입하면서 가방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며 각종 종류의 물건을 기입하고 3일~7일이 지나야 찾을 수 있으니까 그때 연락을 해주기로 하고 만약 7일이 지나도 도착이 안되면 가방과 물건 값을 변상해주기로 하였다.
나는 서류에 싸인을 하고 여름철 옷을 입고 세관 검색대를 거쳐 나오는데 세관원이 나에게 짐이 없느냐 묻길래 가방이 아직 도착이 안됐다고 했더니 이 옷차림으로 어떻게 집으로 가느냐(그때는 12월 중순이다)길래 나는 어쩔수 없지요 말하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여름철 옷을 입고 서있으니까 추위가 내 몸을 스칠때마다 재채기가 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떤 나라 사람이 여름철 옷을 입고 덜덜 더는 모습을 보고 안됐다는 식으로 말하고 지나친다.
우선 여행사를 찾기로 마음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쪽으로 가 서있는데 버스 승객들은 나를 유심히 쳐다 보고 있는다.
창피하더라도 어쩔수 없이 참기로 했는데 이들은 내가 민망할 정도로 자꾸 쳐다보고 뭔가 신기한지 내가 내릴 때까지 계속 쳐다보면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마 나는 후진국에서 온 불법 취업자로 생각하고 계절을 몰라 여름철 옷을 입고 온 모양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등포에 내린 나는 시장에 들러 웃옷만 아주 싼옷을 사 입고 여행사로 갔다.
여행사에서 여러 나라를 수배를 하였는데 마침 값싼 필리핀 항공이 있다기에 그것을 예약하기로 했다.
있는 돈을 털어 차비만 남겨두고 여행사에 비행기표로 주었다. 예전에 구미에 있는 모전자회사 굴뚝에 글씨를 써준적이 있어 그 돈을 받으러 갈 차비만 남긴 것이다.
구미에 가서 회사를 찾아가서 경리 담당에게 돈을 받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나에겐 친근한 숙소인 서울역 지하도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만 견디면 다시 날씨가 더운 나라 필리핀으로 갈 수 있다.
한참 자고 있는데, 이곳에서 노숙한 친구(노숙자들)가 먹다 버린 소주병을 내게 던지고 소리치면서 악다구니를 쓴다.
"어떤 놈이 내 허락도 없이 여기서 자고 있어?"
소리나는 쪽을 보니까 이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욕을 해대는 것이다.
"왜 형씨, 뜳어? 여기가 형씨 안방이야!"
나는 자체 방어할 능력도 없고 살아가면서 싸운 적은 별로 없다.
싸워봐야 고아원 생활하면서 조금 있다뿐이지 대부분 맞고 자랐다.
하도 맞고 자라서 이자들이 나를 때릴 것인지 행동만 봐도 알았다.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병을 던져 내 뒤통수를 맞았다.
"야! 거기 서지 못해"
내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말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
내가 몰매를 맞은 것은 두 번째이다.
한 번은 **시장 건너편에 있는 재건대(넝마주이)에서 일할 때였다.
내가 제일 막내다 보니 형들의 수발이(심부름과 술을 사주는 일)는 내 몫이었다.
일(쓰레기통 및 거리종이나 철, 유리종류 등을 줍는일)을 마치고 피곤해서 먼저 자고 있는데 "막내! 막내!" 부른다.
그럴때는 얼른 대답부터 하고 수발이를 한다.
만약 동작이 늦다하면 형들에게 맞는데 그것도 반항도 못하고 흠씬 맞는다.
맞고나서 "형님! 분을 푸세요" 말하면 "막내야! 미안하다"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또 마찬가지다.
내가 재건대에서 일을 나가면 다른 재건대들과 싸움이 붙는 경우가 있다. 힘없는 나는 도망가는 형들 몫까지 맞았다.
두명 내지 3명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고 넝마롱(대나무 바구니)을 빼앗고 무진장 몰매를 때린다.
한 번은 몰매를 너무 맞아 3일동안 정신이 나간적도 있었다.
재건대는 각 구마다 자기 구역이 있는데 다른 재건대가 자기 구를 침입할 때는 패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갈고리나 칼, 쇠파이프 등 여러 가지로 패싸움을 한다.
대부분 인원이 적은 쪽이 싸우다가 도망치는데 상대인원이 비슷하면 죽기살기로 싸운다.
경찰이나 누가 와도 싸움을 막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은 패싸움이 있다하면 집집마다 서로 경계하고 동네사람들은 바깥 출입도 못하고 멀리서 싸움이 끝나길 기다린다.
그래서 재건대들은 오야지(대장)들이 구마다 다니면서 서로 화해도 하고 자매도 맺는다.
재건대는 선후배가 철저한 규율이 있어 배신하는 경우에는 큰 보복이 따른다.
그야말로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재건대이다.
돈 몇 푼을 아끼겠다고 서울역 지하도 노숙을 하다가 양아치들에게 몰매를 맞았으나 다행이 돈은 빼앗기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울역 건너 **동으로 가 우선 여인숙을 잡고 피묻은 옷을 빨았다.
날씨는 추었지만 손을 불어가며 찬물로 피묻은 옷을 빨았다.
눈이 심하게 부어 가게에 가서 게란을 사 눈주위를 맛사지하고나서 아픈 몸을 이끌고 근처 중국 집에서 짜장먹을 먹었다.
여인숙에 와 다시 잠을 청하는데 갈비뼈가 너무 아파 신신파스를 바르고 진통제를 사먹고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나도 돈이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내일이면 필리핀을 가는 몸인데..나도 한심해 한심해'
다음날 아픈 몸을 이끌고 여행사로 가서 나머지 돈을 지불하고 비행기표를 받았다.
출국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공항으로 갔다.
내게는 입출국 카드를 쓰지 못하는게 여행할 때 가장 큰 골치거리다.
그만큼 배우지 못한게 후회스럽고 다시 한 번 기회가 있으면 배우고 싶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면 졸지 말고 기내식인가 하는 것을 꼭 챙겨 먹을거야! 전번에는 괌 비행기 안에서 졸다 먹지 못했는데..'
나는 무식한 티를 내고 보딩패스하는 여직원에게 출국카드를 부탁했다.
아가씨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아저씨! 몸이 아파 치료받으러 마닐라로 가십니까?"
"아니요 그냥 어떤가 보러 갑니다"
"아저씨! 몸이 아주 안좋아 보이는데요"
"네! 조금 아파요..."
내 모습은 형편없이 얼굴이 망가져 있고 또한 옆구리가 조금만 돌아서도 아프니 남이 보기엔 중병환자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더운나라로 가면 나는 얼어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다.
지금 같이 자연산 에어컨을 내가 가장 싫어 하는 것이다.
배가 고파도 날씨만 좋으면 나는 살아가는데 별지장이 없다.
보딩패스를 받고 여직원에게 몇 번 출구인가를 묻고 이전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해 몇 번 출구인지 번호를 손바닥에 적었다.
이민국에 가서 심사 순서를 기다리는데 검역관이란 직원이 와서 내 얼굴을 보고 "아저씨 무슨 병이 있어요?"하면서 잠깐만 따라오라고 한다.
나는 필리핀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도망갈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검역실로 가서 담당 직원에겐 말을 꾸며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어제 술주정꾼에서 매를 맞았다... 그래서 얼굴부분이 엉망으로 되었다...
그직원이 "다른데는 아프지 않아요? 얼굴만 그래요?" 묻길래 나는 겁이나서 옆구리도 아프지만 거짓말을 했다.
만약, 옆구리도 아프다고 하면 필리핀가는 것이 취소될까봐 무척 걱정하는데 "아저씨! 예방접종은 했는지요?"하고 묻는다.
"예방주사요?"
"네. 콜레라 예방주사요..."
나는 초등학교때 예방주사를 맞기 싫어 도망치다가 선생님께 들켜 혼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전부가 주사맞기를 싫어해서 선생님의 감시아래 울면서 주사를 맞았는데, 다음날에는 반에 절반이상이 팔이 퉁퉁 붓고 부작용이 심해 주사맞은 부위가 곪아 며칠동안 고생을 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주사만 봐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애들을 쉽게 울릴수 있는 도구는 역시 주사기다.
나는 원치 않는 콜레라 예방 주사를 맞고 다시 출입국으로 가서 심사를 마치고 면세점 물건들을 구경하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일찌감치 출구에서 기다렸다.
내가 첫번째로 탑승을 했다.
비행기안은 넓었고 내 좌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 잠깐 서있었다.
그러자 승무원이 내 좌석을 배정해주고 "가방은 좌석 밑에 넣으세요" 한다.
비행기 안에는 외국인이 많이 타고 이 비행기가 미국 LA를 들러 서울과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거쳐 태국, 프랑크푸르트, 런던으로 간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이어 간단하게 비상시 대비할 수 있는 구명조끼를 입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대형화면에는 각 나라 기온과 날씨, 비행기 노선이 표시되어 나왔다.
이 곳 기내는 여러나라 여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어 언어에는 불편이 없었다.
나는 저번 괌행 비행기를 탑승했을 때 무식한 까닭에 기내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 했었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알 것 같다.
벌서 비행기타는 것이 세 번짼데, 마냥 무식하게 지낼 수만 없지...
긴장을 풀기위해 맥주를 시켜 연속으로 마시고 나니 스튜어디스가 또 와서는 더 마시겠냐며 묻는다.
주위사람들 아랑곳 하지 않고 주는대로 마시고 먹었다.
'기내식(음식)이 나온 것을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맛이 있는데 왜 진작 소고기 음식을 시키지 않았을까? 저번에는 닭고기를 먹었는데 맛이 별로였고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은 깃동차게 맛있으니..거기에다 위스키 세잔과 함께 먹으니..'
기내에서 훌륭한 음식을 술과 함께 먹었으니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