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행일지 16일, 리산과 함께
2017.11.8, 낭랑
어둠이 내린 저녁에 리산을 만났다. 지역사회에서 뜸뜸 보아온 리산과는 보은취회를 통해 깊은 얘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순행을 시작하고 종종 집 앞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통해 나의 무게감을 내려놓기도 하였다.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어 고마웠다. 스스로 지고 있는 삶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고 가볍고 건강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1991,2년쯤 지역대안학교 조사하고 간담회하는 자리에서 아시반을 처음 만났다. 2002년 여름 우리쌀지키기운동, 보은취회가 속리초등학교에서 진행되었다. 비가 많이 왔고, 보은화폐를 사용했는데 신선했다. 이를 윤중이 기획했는지 몰랐다. 토방에서 간담회를 했다. 이때 동학에 기여하고 흔적없이 사라진 여성들을 찾고 싶다고 했다. 박범을 이때 만났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참여하다 121돌에서 기록을 맡으면서 연속해서 활동을 한지 4년이 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한편에 있었다. 아동학대예방센터부터 여장연으로 온 이유는 아이들의 문제에 부모가 학대를 하니 답이 없었다. 그때는 쉼터도 없었고. 근데 누가 장애여성들 아이들도 힘들다했다. 엄마가 힘들지만 애들을 때리지는 않잖아. 의논할 수 있다 생각했고 근무지를 옮기면서 이전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보은취회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용우형님이 사상이 좋으면 뭐하냐, 전수되어야지라는 말을 하면서 대안하교 아이들과 함께하자 했다. 첫해에는 빗살이 준비했는데 난 해방구를 찾은 것 같았다. 여기에서 아이들과 하면 되겠구나하고 신났어. 죄책감과 동학과 아이들을 이 공간에서 만나서 뭔가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애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술, 담배문제가 있으면서 순천사랑어린학교가 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는 이것부터 상처였던 것 같다, 어른들과 술 마시는 것에는 관심 없고 동학전수, 아이들과 동학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타로도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난 이를 위해 술마시며 회의를 하는데도 참은 거지. 많이 참은 거고 이제 어른들에게 폭팔을 한 거지. 여기서 아이들이 주는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얘기하기는 할 만하지 않았어. 복실하고도 동학메세지를 락마당에 구현하자 했고 곡을 써 보자 했는데 안해서 실망했다. 내가 집착하는 부분인데 설명없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실망, 내 의도를 모르니 타로카드에 어른들이 줄서는 것도 실망스러웠다. 어른들에 대한 실망이 누적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동학과 아이들이 만나는 공간인 것과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는 것이 좋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그럼 책임은 누가 지느냐. 문제가 되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잖아. 성숙한 사람이 해야 좋은데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니 참 곤란하구나. 하지만 좋았어. 각자에게 권한이 주워지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보은취회가 앞으로도 지향하면 좋겠다라는 생각. 이런 거는 매력적이다. 그래서 작년까진 이런 곳이 없다, 즐겁다. 자랑했는데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왜 아이들과 동학을 얘기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뭔가 비젼을 가져보면 좋겠다. 탈학교, 소외된 학생들이 종교에 열심히 기대듯이 동학에도 기댈 수 있지 않을까. 모델을 보여주면 어떨까, 이왕이면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상이면 좋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싶다. 보은취회에서는 함께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전처럼 보은취회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아직 모르겠어. 결국 사람이잖아. 난 이 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가 자문해 보는 중이다.
보은취회는 잘 되면 좋겠어. 지금 이 시대의 이슈가 동학과 연결되어 이 마당에서 얘기되면 좋겠고, 아이들이 동학을 접할 수 있는 부분이 지역마다 있으면 좋겠고 여기까지 온 보은취회가 이 부분들을 쭉 가져갔으면 좋겠고 나는 그 부분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좀 해 보겠고, 동학하는 사람들을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장으로도 나쁘지 않겠지. 나도 동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한편으로 안심한 부분이 있다. 윤중의 천제, 화백처럼 무언가 하나 잡아서 1년 동안 자기수양하고 1년 후에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일부라도 10년쯤 쌓이면 좋을 것 같아. 게속되는 것이 있었으면 한다. 작년에 보은취회에 오는 이유라는 얘기마당에서 보은취회를 어떻게 보안 구성해야겠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처음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나 박물관 지어달라는 요구도 해야 할 것 같고
이제 순행의 마무리인데 뭔가 떨어져 있는 느낌인데 우리 잘 꿰매볼 수 있을까? 꿰매보려고 순행을 다니는 건데 시벌에서 어떻게 꿰어질까? 나도 그때까지 내 마음의 방향을 정해야지. 시벌 가서는 내 마음을 이야기해야지 하는데 다들 그런 마음으로 시벌에 와야 하잖아. 어떻게 가능할까?
순행하는 낭랑과 종종 얘기하면서 표현하면서 그때만큼 상처가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상처가 희석이 되는 것 같아. 그때는 정말 다시 보겠나 싶은 맘이었다. 시간이 약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