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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버지
윤형복
강수(康壽)는 일요일만 되면 선친(先親)의 묘를 찾아 참배하곤 한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낫으로 거칠게 돋아난 풀이 있으면 베어주고 잡초는 뽑아내어 버린다.
선친에게는 다른 형제들도 많지만 특히 강수만은 선친에 대한 사모(思慕)의 정이 뼈에 사무쳐 선친의 묘소를 찾는 일이 다른 형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잦은 편이었다.
선친 이만석(李萬錫)씨는 할아버지 이상호(李相湖)씨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유복한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랐으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부터 가운(家運)이 기울기 시작하여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해가며 학업을 닦아야 했다.
선친은 중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유학하지 않고 굳이 한국에 남아 OO전문학교를 졸업하셨다. 전문학교에 재학 때는 일본인 학생 하나를 몽땅 패준 탓으로 옥살이를 하기도 하셨으며, 해방이 되어서는 정계에 투신, 정당 활동을 시작, 마침내는 당(黨)을 만드시어 그 당을 이끌어가는 당의 핵심 멤버가 되셨다. 그리하여 선친께서는 OOO정권 때에도 가장 강력한 야당의 국회의원을 하셨고, OOO정권이 들어섰을 때에도 제1 야당의 당수가 되셨다. 두 정권을 거치는 동안 선친께서 당해야 했던 고초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다. 한마디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셨다. 그러나 그런 온갖 난관 속에서도 선친께서는 굽힐 줄 모르고 이 나라를 위해 의정 단상에서 혹은 유세에서 불의(不義)와 싸워 오셨던 것이다. 또 당원들에게는 정치 자금을 전혀 독식한 일이 없이 공평하게 골고루 나누어 쓰곤 하시어 모든 당원들로부터 신임을 받은 것으로 강수는 알고 있다. 한마디로 선친께서는 적어도 6·25 사변 같은 흉악한 전쟁이 일어나도 국내에서 투쟁하실 분이었다. 이스라엘 국민처럼 국외에 있다가도 국내로 들어올 분이셨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도망칠 생각을 지닌 그런 비겁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친께서 병상에 눕자 그토록 자주 찾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선친께서는 병상에 누워서까지도 정치 활동을 하다 진 빚 때문에 빚 독촉을 혹독하게 받아야 했던 것을 강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요컨대 강수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선친이 정계에서 어쨌건 간에 그건 강수로서는 알고 싶지도 않고 거기에 대해서는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강수가 겪은 아버지 상(像)만을 얘기하고자 한다.
선친께서 비록 야당의 국회의원이기는 했지만 살아 계실 때의 그 위력은 대단하셨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관할 파출소장이라든가 관할 경찰서장이며 장차관들이며 별을 단 장군까지도 선친을 찾아와 굽실거리며 벌벌 떠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선친께서 그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는데 그 나무라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그토록 호소력 있고 절실한 말들일 수 없었다.
강수는 그때부터 선친께서 비록 야당 국회의원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의 위력이 얼마나 당당한가를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친께서는 또 자녀들의 교육방법이 남달랐다.
강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때가 되어서였다. 그러니까 강수의 나이7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밤인가 강수가 잠결에 들으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서로 의견대립이 되어 마구 다투고 있었다.
여보, 아 글쎄 당신 요새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녜요. 그 어린 것만 시골로 내려 보내어 굳이 시골뜨기를 만들겠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나 원 참.
이 요망스런 계집년아, 글쎄 사내대장부가 하는 일을 네깟 년이 뭣을 안다고 지랄이냐 지랄이. 강수를 시골할머니한테 내려 보내려는 것은 내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서야. 한마디로 말해서 그 녀석을 좀 더 폭넓은 체험을 하게하고 거기다 정서적이고 건강하게 키울 생각에서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강수 녀석을 유치원에 보내려고 할 때에도 당신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더니 이제 와서는 폭넓은 체험을 하게하고 정서적이고 건강하게 키우겠다고 그 어린 것을 시골로 내려 보낸다고요? 아니 뭘로 보나 서울에서 공부하는 것이 폭넓은 체험이고 정서적인 면으로도 낫고 건강도 낫지 어째 시골이 낫습니까? 당신 말대로 그 어린 것을 시골로 보내어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부모 품을 떠나 있다고 탈나서 죽을 놈 같으면 그런 자식은 나에겐 처음부터 필요 없다고. 서울에서 응석이나 부리며 키워 놓았다가는 그놈의 장래가 캄캄하다 이거야. 어려서부터 천덕스럽게 키워놓아야 자라서도 모든 고난을 잘 이겨낸다는 걸 알아야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강수를 시골에 내려 보낼 수 없어요. 정서적인 면이 단 일 푼어치가 없어도 좋고 나중에 커서 병골이 되어도 좋아요.
아, 지랄한다. 요것이 강수의 장래를 영 망쳐놓을 작정이구만. 당신 만약 강수를 내가 뜻한 대로 시골로 학교를 보내지 않는다면 나와 이혼할 줄 알아. 남편 말에 순종하지 않는 그런 아내와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좋아요. 이젠 못할 말이 없군요. 갈라섭시다! 갈라서요!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고 있을 때 강수는 덮고 누워 있던 이불을 걷어 젖히고 벌떡 일어나.
엄마야, 가지 마!하고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던 일이 엊그제처럼 선한 강수였다.
아무튼 끝내 선친의 고집대로 강수는 선친의 고향인 K읍으로 내려와 할아버지네 집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강수는 자기만 시골에 떼어놓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서울로 상경하려 할 때 어머니와 떨어지기가 싫어 퍽도 울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할머니와 마을 아이들에게 정이 들어 어머니가 없어도 별로 슬픈 줄을 모르게끔 되어 갔다.
K읍은 시골 중에서도 두메산골에 속하는 벽촌이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옷차림이라든가 그 모든 것이 서울의 어린이들과는 차이가 있어 한동안은 이상하게 생각되었으나 그런 생각도 곧 없어져 버렸다.
시골은 서울과는 너무도 다른 점이 많았다. 집도 그렇고 길도 그랬다. 소며 닭이며 염소며 농시짓는 일이며 마을 사람들의 지내는 모습이며, 그 모든 것이 강수의 눈에 새롭기만 했다.
수영도 서울에서라면 풀장에서 했는데 시골에서는 냇가에서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도무지 해 볼 수 없는, 냇가에서 피라미를 몰아 잡는 일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는 빵빵거리는 차 소리뿐인데 시골에서는 소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매미우는 소리, 닭이 홰를 치며 우는소리, 그리고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 수수, 밤, 대추나무들을 실제로 봤다. 그리고 강수의 새하얗던 살결은 어느 틈엔지 거무튀튀하게 되어 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꼴쯤 시골에 내려오시는 어머니께서도 처음과는 달리 강수의 변화에 퍽 흐뭇해하시곤 하셨다.
어쨌든 강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윽고 중학교를 졸업, 곧 서울 집으로 올라와 서울에서 이름난 고등학교인 OO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갑자기 달라진 새로운 환경 때문에 강수는 서먹하기만 했다. 아버지도 남의 아버지만 같았고, 집도 남의 집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강수는 비교적 모든 학과의 성적이 뛰어나게 우수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낮은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강수에게 특히 질색인 학과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독일어 과목이었다.
영어는 아쉬운 대로 취미가 붙어 해 갈 수 있겠는데 독일어는 어떻게 된 셈인지 영 공부하기 싫은 학과 중 하나가 되었다. 가뜩이나 명색이 서독(西獨)에 유학까지 하고 돌아왔다는 독일ㅇ어 선생인 최낙명(崔洛明) 선생은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빨리하기 때문에 독일어 시간만 돌아오면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칠판 글씨라도 바르게 써야 하는데 이건 뭐 장마철에 닭들이 진 땅을 밟고 왔다 갔다 한 것 같은 글씨였다. 가뜩이나 싫은 학과목인데다 선생조차 그 모양이니 강수뿐 아니라 강수의 급우들은 거개가 독일어와는 담을 쌓을 정도였다.
1학년 2학기 때의 어느 날이었다. 강수는 수업을 막 시작하려는 독일어 선생님에게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이강수 군, 무슨 일이지?
선생님, 아이들이 그러는데요, 오늘은 수업을 하지 말고 선생님께서 서독에 유학하고 계셨을 때 얘기 좀 들려 달래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때라는 듯이 강수의 반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한 녀석이 일어나며,
그래 주세요, 선생님 서독에 유학하고 계셨을 때 재미있었던 얘기 좀 들려주세요.
그러자 딴 학생들도 다투어 나서며 그 학생과 합세했다. 반 전체의 분위기가 그쯤 되자 최 선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서독에서 유학하고 있었을 때 겪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서독에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거의 귀한 손님 모시듯이 하고 있어요. 특히 대학 교수가 유학하러 가면 그것은 그 나라의 제일 높은 관리(官吏) 대우를 해 주고 있어요. 내가 하숙하게 된 집은 독일의 휴양지인 바덴바덴의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중산층의 가정이었어요. 집주인 내외분은 생업으로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었고, 두 아들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 딸은 내 모든 뒷바라지를 도맡아해 주었어요.
이 대목을 얘기하고 있을 때 학생들은 하나같이,
와하하하.하고 웃어대었다. 그러자 최 선생은 여유 있게 싱글벙글 웃어대며,
짜식 들, 뭣을 안다고 여자 얘기를 하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구만.
이렇게 말했다. 최 선생의 이 말에 학생들은 이제 숨죽여 웃어대고 있었다.
그때 그 집 딸은 서독에 있는 모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이었어요.여대생이면서도 내 양말이라든가 속옷이라든가 그 밖의 세탁물을 서슴없이 빨아 주곤 했지. 그리고 내가 외출할 때면 그 아가씨는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이것저것에 대해 물으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곤 했었지 정말 그토록 참하고 친절했던 아가씨는 여태껏 겪어 본 일이 없을 정도야.
학생들은 또 끼득끼득 숨죽여 웃어대고 있었다.
..... 이밖에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잃어버렸던 우산이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일이야. 그러니까 나는 어느 비오는 날 우산을 버스에 놓아둔 채 내렸는데 그 이튿날 그 우산이 내가 하숙 들고 있는 집에 와 있는 거야, 굳이 우산뿐이 아니고 뭣이든 분실물이 있으면 며칠 후에 내가 하숙하고 있는 집으로 어김없이 와 있는 거야. 신기할 정도라구.
최 선생의 얘기는 간단했다.
이밖에도 많은 얘기가 있지만 그것은 틈틈이 얘기해 주기로 하고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어.
최 선생은 이렇게 말하며 수업을 시작하려 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얘기를 들려주겠다는데야 강수며 많은 학생들은 더 할 말이 있을 수 없었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얘기를 듣고 있을 때는 못 느꼈던 지겹고 짜증나는 것이 수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강수는 아예 책상 밑에다 소설책을 펴놓고 읽고 있었다. 그때 인기를 모으고 있던 소설책이었다. 그걸 눈치 챈 최 선생은 수업을 하다 말고 강수 쪽으로 다가와 열심히 읽고 있던 소설책을 빼앗아 들고는 그 책으로 강수의 귀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다.
강수는 아무 소리 못한 채 맞고 있었다. 순간 학생들의 온 시선은 강수에게로 쏠렸다. 교실 안의 분위기가 그쯤 되자 최 선생은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는,
자, 오늘 수업은 이만 마치겠다. 하고는 교실을 나서려다 말고 강수에게로 다가와 교무실로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날 강수는 교무실에 불려가 늦게까지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 최 선생은 강수더러,
그만 일어나.했다. 강수는 그제야 무릎을 꿇고 있던 몸을 일으키고는 고개를 숙인 채 최 선생 앞에 서 있었다.
이만큼 다가와.
그 말에 강수는 고개를 숙인 채 선생이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너 어쩌자고 내 수업시간에 소설책을 읽는 거지?
‧‧‧‧
강수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말해 봐, 딴 학과의 수업시간에도 소설책을 읽고 있나?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내 수업시간에만 소설책을 읽고 있지?
독일어 공부에 취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취미로 하나? 공부란 학문이지 잡기(雜技)처럼 재미로 하는 건 아니잖아?
아무튼 독일어만은 취미가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취미가 없다 해도 해보려는 성의가 있어야 할 게 아냐. 이를테면 너는 여러 가지 반찬이 있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 반찬은 먹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나?
그건 아닙니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 잘 아는구만, 마찬가지로 독일어라는 학과목도 마찬가지라구. 네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네가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는 동안 꼭 익혀야 할 학과목 중의 하나란 말야. 그래서 교육부며 교장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의 검토가 있은 뒤에 독일어라는 학과목을 시간표에 넣었던 거야.
알겠습니다.
뭘 알았다는 거야?
앞으로 반찬을 골고루 먹듯이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정말 그래줘야겠어. 오늘 벌 받은 걸 섭섭하게 생각지 말라구.
네,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돌아가.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강수는 깍듯이 인사하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홀로 앉아 있는 최 선생의 표정이 퍽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강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 학기말 시험 때였다. 강수는 독일어 실력이 없는 10여 명 가량의 학생들을 규합하여 이른바 백지동맹(白紙同盟)을 맺었다. 요컨대 이번 독일어 시험을 칠 때 시험지를 받아 반이며 이름, 해답은 물론, 아무 것도 쓰지 말고 시험지를 받은 그대로 제출하자는데 뜻을 함께한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이런 사실을 시험감독선생님이 눈치 채게 되었을 때는 이름과 반만 적은 후 시험지를 제출할 때는 지워 버리도록 했다. 이토록 완벽하게 백지동맹을 규합한 주모자는 말할 것도 없이 강수였다.
이윽고 시험이 끝나자 백지동맹을 맺은 학생들을 일일이 만나 확인해 보았다. 동맹원들은 하나같이 약속대로 백지로 제출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실은 독일어 선생인 최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교장선생님에게까지 알려져 백지동맹을 맺은 학생들을 찾아내어 정학처분을 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중 특히 백지동맹을 선동한 주모자인 강수에 대해서는 퇴학처분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꼭 학생들에게만 탓이 있는 것이 아니고, 최 선생에게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으니 최 선생도 학교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사실이 강수의 집에도 알려져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께서 고래고래 화를 내셨다.
아, 이 녀석아! 글쎄, 네 애비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그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어?
아버지께서 뭐라고 해도 강수는 아무 말을 못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국 학교에서는 강수에게 퇴학처분을 했고, 그리고 나머지 9명의 학생들에게는 정학처분을 내렸다. 또 최 선생은 최 선생대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학교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이때 아버지는 강수를 데리고 학교에 찾아와 교장 선생님을 만나 선처해 주기를 빌었다.
강수가 지금껏 보아온 아버지와는 판이하게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거의 빌다시피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수는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장선생은 자기 혼자서 결정한 것이 아니고 여러 선생님들과 협의하여 취해진 조처이니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만약 그런 사건을 그냥 넘겨 버리면 그것이 관례가 되어 앞으로 학생들을 어떻게 다스리겠냐고 반문하자 아버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한숨만 몰아쉬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의 말에 조금도 융통성이 없음을 알고는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은 채 교장실을 나오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또 강수와 함께 최 선생의 집을 찾아 가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최 선생님을 만나자 최 선생 앞에서도 말할 수 없이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강수의 잘못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최 선생은 어둡고 쓸쓸해 뵈는 얼굴에 활짝 미소가 번지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의원님, 모든 게 제가 부덕한 탓이었습니다. 제 부덕이고말구요.하며 모든 잘못을 최 선생이 전부 안아 버리셨다. 그 말을 들은 강수는 최 선생이 자기를 모질게 나무라는 말보다 더 아프게 들렸다.
어쨌든 그 사건 때문에 최 선생은 고등학교 교사 자리를 잃었으나 몇 개월 안 되어 대학 교수가 되셨다. 결국 그 사건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한편 강수는 강수대로 가까스로 XX고등학교에 편입하여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다. XX고등학교로 옮긴 뒤로 강수는 거의 말수가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졸업하는 그날까지 죄인이 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해야 했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강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H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Heogkr 2학년 때였다.
그때도 강수의 선친은 국회의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2학년이 되자 강수에게 현역 입영영장이 나왔다. 영장을 받은 강수는 마음이 심란하기만 했다.
강수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입대하거나 아니면 아버지의 힘을 빌려 병역면제 혜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영날짜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강수는 그날따라 밤늦게 돌아오신 아버지의 방 앞에 서서 기침을 몇 차례 하고는,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라며 문 밖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아버지는,
무슨 얘기냐, 들어와서 말해라.하고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 말이 떨어져서야 강수는 방 안에 들어섰다.
아버지, 실은 다른 게 아니고 저에게 현역 입영영장이 나왔어요. 그래서.....
강수는 뒷말을 꺼내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자,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입영날짜가 되면 입영하면 될 거 아냐. 국가가 너에게 이제 얼마 동안 나라를 지켜 달라는 영광을 베풀었구나.
아버지,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다 말고 군에 입대해 버리면 2년 동안 공부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되잖아요.
뭐, 임마? 어째서 허사가 된단 말이냐, 군복무를 마치고 와서 복학하면 될 거 아냐?
2년이 넘도록 군대생활하고 나오면 그동안 배운 것 전부 까먹는단 말예요.
얘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야, 임마,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네 의견을 말해 봐?
아버지께서 국회의원이시고 하니까 제 병역문제 하나쯤이야 해결해 줄 수 있잖아요, 해당기관에 조금만 힘을 쓰시면 군대에 가지 않고도 제대증이 나온다는데요?
뭐라고? 너 이놈, 지금 뭐라고 했냐? 네 애비가 국회의원이니까 고위층에 압력을 넣어서 너에게 군복무도 하지 않은 채 제대증이 나오도록 해 달라 그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제 아는 친구 중에 그런 식으로 제대한 친구들이 더러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너도 국회의원인 네 애비를 이용해서 군대에도 가지 않고 제대한 것처럼 꾸며 달라 그 말이지?
예....하며 강수는 두 번 말할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병역의무를 면제시켜 줘야지. 나라를 지키는 일보다 대학에 다니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그렇게 해 주어야지 별 수 있나, 기다리고 있거라. 내 곧 해결해 줄 테니.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후 전화기 옆으로 다가서더니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다이얼을 돌리시는 것이었다. 이윽고 상대방에서 전화 받는 소리가 강수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거기 112 순찰차요? 나 국회의원 이만석(李萬錫)이라는 사람이오. 즉시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 아들놈을 연행해 헌병대에 연락하여 논산훈련소에 입영시켜 주십시오. 곧 오셔야 합니다. 늦으면 내 아들놈이 어디론가 도망쳐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아버지는 상대방에게 집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자세히 일러준 뒤에야 송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는 강수를 빤히 쳐다보셨다. 강수는 혹을 떼러 왔다가 붙이고 가는 격이 되어 그저 의아스럽기만 했다. 의아스럽다기보다는 아버지가 밉기만 했다.
아니 아버지,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럴 바에야 아버지한테 말씀드리지 않고 입영날짜에 입대해 버리는 것이 더 나을 뻔 했잖아요?
여러 소리 말고 넌 오늘로 논산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고 3‧8선의 철책 선을 지키는 최전방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야 돼. 그래야만 네가 내 자식이지 그렇지 않으면 넌 내 자식이 아냐, 알겠어?
아버지?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버지로서 그러실 수가 있어요? 너무해요, 정말 너무하잖아요.
강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쯤 되자 이젠 어머니가 나서며 아버지를 마구 나무라시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토록 몰인정한 아버지도 아버지냐면서 마구 대드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또 소리쳤다.
요 요망스런 계집년이 또 지랄 났구나. 나두 너만큼은 강수를 사랑하고 있단다.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표현 방법이 너와 내가 다를 뿐이야. 강수 너도 그렇다. 지금 당장은 나한테 섭섭할지 몰라도 네가 떳떳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네 아비가 얼마나 고마운 일을 했던 가를 알게 될 거야.
그런 말씀 마세요. 저를 마치 범인으로 취급하여 경찰에 넘겨 논산 훈련소로 압송하도록 한 사실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예요.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넌 오늘부터 논산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아야 돼. 그것이 싫으면 넌 내 아들이 될 수 없어.
아버지의 말씀은 단호하기만 했다. 이윽고 경찰 순찰차와 헌병대의 백차가 강수의 집 대문 앞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경찰 순찰차를 타고 온 경찰들이 강수의 집에 들어섰다. 그런 경찰들을 보자, 강수는 더욱 아버지에게 마구 원망스런 말들을 퍼부어 대고는 헌병 백차에 실려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던 것이다.
강수는 결국 훈련을 마치고 기성부대에 배치를 받았는데, 아버지의 말대로 최전방에서 철책 선을 지키는 민정경찰이 되었다. 복무지가 복무지인만큼 매일이다시피 북한 병사들을 마주 대해야 했고 또 매일이다시피 틀어대는 대남방송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했다. 정말이지 군복무 중의 고통이란 견뎌내기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버지만 잘 봐주었다면 지금쯤 자기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젊음을 만끽하고 공부도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더욱이 친하게 지냈던 여자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거나 상급자들에게 구박을 받을 때라든가, 그리고 추운 겨울철에는 당장이라도 들고 있던 총을 든 채 탈영해 버릴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복무를 시작한 지 1년쯤 되면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껏 아버지를 원망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가도 느끼게 되었다.
마침내 강수는 소정의 복무기간을 아무 사고 없이 마치고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강수가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는 병상에 누워계셨을 때였다. 병상에 누운 채 강수를 맞이한 아버지께서는.
음, 내 자식이 돌아왔구나. 넌 이제 누구보다도 떳떳한 사내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싶으니 내 마음이 푹 놓이는구나. 장한 내 아들 강수야!이렇게 말씀하시며 두 눈에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아무튼 강수는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 복교하면서 역시 아버지께서 옳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국민으로서 국민의 의무를 마쳐야 당연하지 않느냐는 극히 기본적인 생각보다도, 만약 그때 강수가 원하는 대로 고위층에 힘을 빌려 적당히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더라면 지금에 와서 얼마나 떳떳치 못했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강수는 자기 동창들 중에 많은 친구들이 병역의무를 적당히 마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결국 그런 사실이 드러나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던 것이다.
강수는 선친의 묘 앞에서 몇 번 절한 후 산 주위를 훑어보았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몰라보게 자라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산 저쪽 숲에서 꿩 몇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가 했더니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까치가 날아들어 선친의 묘위에 앉는다. 그리고 그 까치는 상석위에 진설해 놓은 밥그릇 쪽으로 다가오더니 밥을 쪼아 먹는 것이었다.
강수는 그 광경이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까치는 몇 번인가 밥을 쪼아 먹고는 저만큼 날아가 버린다.
강수는 그 광경이 거짓말 같아서 한동안 그 까치가 날아간 곳에 눈길을 주고 서 있었다.
해가 서산으로 진 뒤에야 강수는 진설해 놓은 술이며 밥 등을 먹은 후 모든 그릇들을 보자기에 쌌다. 그리고 다시 선친께 엎드려 절했다. 두 차례의 절을 마치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아버님, 이제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다음 주일에 또 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일어나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도 여기저기서 꿩이며 까치가 날아들고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