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에 대한 비판을 접할 때, 그 현상이 일어난 것에 어떤 이유와 근거가 있는지를 살펴 본다. 예전에 썼던 경찰 관련 글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했을 때 왜 저렇게 했을지/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행위들을 잘 살펴보면 꽤 분명하고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주제 중 하나인 ‘심신미약에 대한 감경’ 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흉악범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분노한다. 많은 범죄자들이 자신이 술을 마신 상태여서 기억이 없으며,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해 감형을 받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상황에 공감하는 대중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는 분명 공분할 일이다. 사람의 탈을 쓰고 저지를 수 없는 행위를 한 사람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감형을 받는다는 게 쉽게 이해는 안 가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보는 이런 일 뒤에는 어떤 윈칙이 숨겨져 있을까?
먼저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판사는 자신의 마음대로 형을 부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있는 것이 맞지만, 판사가 개인 재량으로 ‘너는 1년, 너는 10년’ 이라고 결정해 형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어진 법의 규정에 따라 내릴 수 있는 판결의 범주 내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다. 그래서 ‘술을 마셔서 정신이 없었을 테니 벌을 덜 주어야 겠군’ 이라는 결정은 판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애꿎은 판사님들에게 욕을 하지는 말자.
그럼 판사들이 따르는 이 ‘규칙’은 어떤 논리적 근거에서 나온 것이며, 과연 지금 악용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이 시스템의 정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형법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형법은 행위와 책임(혹은 의도)을 동시에 고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한 ‘살인(murder)’보다 의도를 가지지 않고 일어난 ‘과실치사 (manslaughter)’가 더 적은 형을 받는다. 또, 같은 행위를 저질렀더라도 상황판단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한 행위와 성인이 한 행위는 다른 형량을 받는다.
짐작했겠지만 심신미약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책임/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행위를 저지를 상황당시에 당사자가 올바른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같은 행위를 저질렀을 때 보다 죄의 무게가 덜 하다는 것이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것 자체는 크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같은 결과라고 하더라도,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살해한 사람과, 술을 마신 상태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사고를 저지른 사람의 죄의 무게가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둘 다 살해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일어나서 한 명은 1명을 죽게 만들었고, 한 명은 5명을 죽게 만들었을 때 둘의 죄의 무게도 다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굵직한 원칙 자체에는 동의할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심신미약에 의한 감경’에 대해 반발을 하는 이유는 ‘심신미약의 상태였다는 점이 밝혀지면 감경해야만 하는 원칙’이 악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 체제는 피고 측과 원고 측이 대립하는 법정 공방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형사재판의 경우 검찰 측(검사)과 피고인(변호사)이 대립한다. 검사 측에서는 피고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변호사 측에서는 피고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대립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실들이 확립된다. 즉, 피고가 실제로 죄를 저질렀는지를 포함해, 피고가 사건 당시에 어떤 상태였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등의 모든 정보는 검사와 변호사의 대립을 통해 검증받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심신미약에 의한 감경’의 악용에 분노한다면 사법체계 그 자체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검사 측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아직 형을 선고받지 않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저는 사건 당시 술을 마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을 할 때, 진짜 술을 마셨는지와는 별개로 (참고로 만약 위증이 밝혀진다면 형량은 더욱 커진다), 검사 측에서는 이 발언이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원자행)’에 해당하는지를 밝혀내야만 한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란 행위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자기를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에 빠지게 한 후 이 상태에서 범죄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을 죽이고 싶은데 겁이 나서 용기를 얻기 위해 술을 마셨다던가, 자신이 술을 마시면 매우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셨다던가 하는 경우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법은 썩어서 술 마시고 사람 죽이면 용서받는다’ 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고의로 심신미약에 의한 감경을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검사 측에서 이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느냐다. 만약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임이 밝혀진다면 당연히 심신미약에 의한 감경은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형이 더 세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변호 측에서 여러가지 정황의 증거를 제출할 테니 그 증언은 사실로 인정되는 것이고, 판사는 감형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검사 측의 무능으로 인해 법을 악용하는 범죄자가 빠져나가게 되는 경우들은 참 안타깝지만, 모두에게 법 앞에서 평등하게 공방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현재의 사법체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원자행이 아닌 상황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감형을 받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기도 하고 말이다.
이 글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분노하는 이런 판결들은 어떤 경우에는 검사 측의 잘못, 어떤 경우에는 기분은 나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옳은 경우들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형법에는 법을 악용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도 잘 마련되어 있다. 물론, 조금 다른 주제지만 감형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와는 무관히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이 범죄자들에게 너무 약한 형벌을 준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나는 피해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범죄를 방지하며, 사회적 부담을 더는 사형제도에도 찬성하며, 강간, 폭행 등의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최소한 지금보다 2-3배 강한 형을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생각을 정리해 글을 써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