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님,
안녕하셨습니까?
말 그대로 밤 낮 글방을 꾸려 가시느라 수고 많으신 방장님을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년 말 년 초에 인사도 못 드리고 또 출장을 나왔습니다.
출장을 나오면 그래도 제 나름 계획적으로 일정을 짜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것보다 훨씬 시간에 여유가 있고, 좋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얼마 전 보내 주신 글 중,
홍경삼 선생님의 글 일부분을 <신광여고 4층> 이라는 제목으로
저희 교회 홈페이지 (www.chungpa.or.kr)에 옮겼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 법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방장님과 홍 선생님의
사후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바로 그 교회가 제가 섬기는 청파감리교회지요.
제 자식 놈 결혼식에 방장님께서 참석하셔 분위기를 느끼셨겠지만
104년 째 되는 교회지만 작고 조촐합니다.
홍 선생님의 글에 나온 50년도 지났을 그 때의 일을 통해 교우님들과
<고통과 공감>의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태의 고통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생이 고통이라고 파악하듯 말입니다.
그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종교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셔서 더욱 좋은 글 많이 보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윤석철
......................
신광여고 4층
<말코 글방>이라는 주로 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온라인 글방이 있습니다.
언론인들이 주축이지만 전 현직 외교관, 교수, 사업가, 작가 등 문화 예술인, 그리고 정치인도 몇 분.
다양한 계층과 30-40대에서 80대까지 연령의 회원들이 모여
서로 글방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도 합니다.
회원이 700명쯤 되나 봅니다.
이제 곧 70을 바라보는 <김승웅>이라는 분이 방장인데
어찌나 정력적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띄워줍니다.
새벽시간에도 글을 띄워주기 때문에 아침에 눈떠보면 어김없이 따끈한 글이 올라옵니다.
모르긴 몰라도 현역 기자시절보다 더 열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글방에 며칠 전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미국에 사시는 분이 어릴 적 중학생 시절에 겪었던 일을
뒤돌아보며 쓴 글의 일부분입니다.
<전략(前略)>
바깥 날씨는 왜 그리도 추운지, 길은 빙판이고 바람까지 불어 교회 가는 길이 고난의 길이다.
교회는 신광여고 4층 강당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추운 날씬데도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왔는지...앉은 자리는 다 차고
서 있는 사람도 많아 키 작은 중학생인 난 목사를 볼 수도 없었다.
비집고 들어가니 앞쪽 난로 가에 여러 자리가 비어 있어 웬 떡이냐 싶어 매형과 함께 냉큼 앉았다.
난로의 온기가 언 몸을 감싼다.
목사님 말씀도 잘 들리고 그야말로 일등석이다.
몇 사람이 우리 옆에 와서 앉았다.
아직도 자리가 남아 열 명쯤은 더 앉을 수가 있는데 비어 있다.
이왕 온 것 열심히 목사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마음먹고 계속 목사님만을 쳐다보는데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지린내다.
동네 아이들과 불장난하다가 어른들 한데 야단맞을까
오줌으로 불을 끌 때 맡던, 바로 그 지독한 지린내였다.
아니, 교회 안에서 왜 이런 냄새가 나지?
주위를 살피니 난로가 옆에 누추한 옷을 입고 졸고 있는, 30대 젊은 거지가
앉아 있는 것 아닌가!
아, 여기 자리가 비어 있었던 건 그래서였구나!
나중에 앉은 사람들이 자리를 뜬다. 냄새를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나도 자리를 뜨고 싶었다. 거지와 가장 가까이 앉아있자니 그 냄새가 정말 사람 미치게 한다.
거지는 일주일 동안 얼었던 몸을 녹이는 듯 곤히 잠들어 있다.
내 찌그러진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행복감이 흐르는 것 같다.
참자. 그래 참고 목사님 말씀 듣자! 허나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어쩐다? 서서 설교를 들으면 되잖아... 옆 사람들이 자리를 떴는데도
매부는 코가 막혔는지 아니면 좀 모자라는 분이라선지 요지부동이다.
참는데 한계점에 도달한 난 "우리 자리 뜨지요!"하는 눈으로
매형을 쳐다보니 내 손을 꾹 잡는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 뜻을 알겠다.
"처남, 그러면 안 돼! 저기 보이는 십자가의 본뜻을 새겨봐"
아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린 처남보다 본인이 먼저 냄새 나는 거지 곁에 앉기 싫어
자리를 떴을 것이다. 서 있는 교인들 모두도 그 자리에 앉으면 곤욕스럽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추운 겨울 날 아침, 거지로서는 훈훈한 난로가 있는 교회가 무엇보다 그리웠겠지,
교회를 찾아 온 거지에게 교인들이라면 난로의 온기보다도
더 따스한 마음으로 감싸 주워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난 그리하지 못했고, 오늘 같은 상황을 맞더라도 역시 자리를 떴겠지만...
그때 매형 한데서 배운 것이다.
사람을 어찌 대해야 하고, 또 사랑이 무언지를...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9FD365C3548C633)
누님과 매형 최순달박사(1931-2014)
<후략(後略)>
이제 이 교회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때가 언제쯤인지
아실 분은 아실 것입니다. 50년도 넘은 그 시절을 기억하실 수 있는 교우님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만, 신광여고 4층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절,
모두 춥고 가난했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뒤 돌아 봅니다.
그래도 주일 예배시간에 거지가 교회에 들어와 제일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잠들을 수 있었던 시절의 청파교회는 훈훈한 난로는 못되었어도 모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이 글을 쓰신 분은 교인들이 따스한 마음으로 감싸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쉬워했지만
저는 이 장면을 통해 <고통과 공감>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언제 기회를 보아 논의하고 싶지만 저는 교회가 좀 더 여성스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남의 고통에 반응하고 공감하는 일에 여성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 자비심, 동정심, 연민 무엇이라 부르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고통을 나누는 일이 뒤 따르겠지요.
그것이 교회를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윤석철/(주)수아엔지니어링 대표이사/서울 청파교회 장로/
고대 정외과 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