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읍성 일대>
먹고 보고 쉬고 역사적 인물과 조우하고, 유적지를 탐방하고.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이 모든 것이 반경 2키로 안에서 모두 해결되는 곳이다. 면천 객사를 재건하여 놓았고, 박지원이 재건한 정자와 연못에서는 아직도 연꽃이 찬연하다. 조선 초기에 왜적을 막기 위해 세운 면천읍성 안에는 아직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콩국수가 일품이다. 한국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1. 방문지 대강
명칭 : 면천읍성
위치 :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930-1
방문일 : 2024.7.10.
입장료 : 없음
2. 둘러보기
읍성은 복원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볼 만한 것은 모두 볼 수 있다. 박지원도 만나고 아름다운 연꽃도, 정자도 다 만날 수 있다. 1,100년 수령의 신목 은행나무 아래 노거수의 영험함도 느껴볼 수 있다. 객사에는 와서 가야금 켜는 연주자도 있다. 운 좋으면 판소리까지 얻어 들을 수 있다.
갑자기 시대를 거스른 거 같은 시간여행자의 품새로 연못도 성벽도 돌아볼 수 있다. 어디선가 양반을 야단치는 호랑이 호통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홍대용과 함께한 그의 기철학,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기철학이 이 감지되는가.
1) 면천 읍성 주변 (당진시 홈피)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 면천읍성
면천읍성은 1439년, 세종 21년에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왜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평지에 쌓은 평지읍성으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투가 치러지는 등 역사적 사건의 주요 무대입니다.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이 진행되어 현재 남문과 옹성, 서벽, 동남치성과 동벽의 일부, 객사가 제 모습을 되찾았고, 읍성 내 관아 시설도 복원 예정입니다. 면천읍성 안마을은 인위적인 관광지로 개발된 타 읍성들과 달리 읍성 내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며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읍성 안에는 1,100살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있습니다. 고려 복지겸 장군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복지겸장군 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의 진달래꽃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집 앞에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들이면 나을 것 이라고 해서 산신령의 말대로 했더니 복지겸의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면천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여겨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목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해당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55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은행나무 아래에 군자정을 지나면 연암 박지원이 직접 설계해 지었다는 건곤일초정과 봄에는 벛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절경인 골정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들의 전시공간과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조성된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오래된 미래’ 책방, 수제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진달래 상회’잡화점으로 이어지는 레트로 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추억여행을 즐기기에 좋습니다. 또한 매년 4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인 면천 두견주와 진달래 관련 문화유적, 민속놀이, 음식 등을 소재로 한 면천 진달래민속축제가 펼쳐집니다.(당진시 홈피)
2) 면천읍성
당진 면천읍성(唐津 沔川邑城)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의 면소재지 대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이다. 성의 축성 과정이 실록에 잘 남아 있어 연해읍성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산성을 쌓으려고 하다가 읍성을 축조한 만큼 산성에서 읍성으로 치소(治所)가 이동한 과정이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면천읍의 도시화 과정에서 면천읍성이 나날이 훼손되어 읍성의 보존과 정비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정밀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 아울러 성내에 자리했던 객사나 동헌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복원하기 위해 건물지에 대한 발굴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건립경위
면천 지역은 내포평야(內浦平野)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당진, 덕산, 예산, 신창 지역으로 통하고, 아산 공진창(貢津倉)과 한양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는 교통의 요지다. 또한 아산만과 접해 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기 위해 면천산성을 만들고자 하였는데, 백성들이 산성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 대안으로 읍성을 축조한 것이 이 면천읍성이다.
의의
당진 면천읍성은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읍성 축조 기사 중에서 축성에 대한 논의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읍성이다. 또한 고고학적으로도 세종대의 읍성 축조 방식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당진 면천읍성은 세종대 읍성의 기본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박지원
박지원은 1797년부터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면천군수 시절, 성 동문에 올라 "앞이 훤히 트여 가슴속의 찌꺼기를 씻어낼만하구나" 하며, 밤늦도록 달구경을 하다 돌아온 적이 있다. 그 날 밤 귀신이 그 동리의 한 여자에게 들러붙었다. 귀신이 그 여자를 통해 말하기를, "나는 원래 객사에 있었는데, 새 군수가 부임해 오자 그 위엄이 무서워 동문에 피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군수가 동문에 와서 달을 구경하니 나는 어디 갈 데가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너한테 붙어 살아야겠다!"고 했다. 발광하여 고래고래 소리치는 여인을 남편이 붙들어다 관아 문 밖에 데려다 놓았는데, 관아의 업무가 시작되어 일을 집행하는 연암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듣자 놀라 울부 짖으며 달아났다. 그 이후 병이 싹 나았음은 물론이다.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2면)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그저 불교의 윤회설보다 좀 낮은 수준의 '버전'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실제로 면 천군수 시절엔, 천주교에 빠진 지방민들을 각개격파식으로 설득해 서 모두 전향(?)하게 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즉, 그에게 있어 서학은 '신종 이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위책 374면)
면천콩국수. 독특하게 열무로 간을 내는 진한 콩국물의 콩국수가 유명하다. 성안에 있는 이곳도 복원작업으로 헐린다는데, 자연스럽게 역사에 순응하며 발전해온 민간의 생활을 보전해야 하는지, 아니면 시간을 완전 그 시대로 돌려놓는 복원을 해야 하는지, 유적지 복원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는 곳이다. 이 일대에는 콩국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전날밤 일대에 비가 많이 내려 키높은 소나무들이 다 부러져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면천읍성과 내부 성안 복원 건물
면천 감리교회. 독립운동이 벌어진 곳이다.
3.10면천학생독립운동 기념관
골정지 옆 군자정. 이 근처는 벚꽃 명소로 영랑효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객사 옆길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우체국이었던 건물을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이다. ‘오래된 미래’는 60년이 넘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독립서점이다.
복원한 객사 정면
객사 후면
객사 앞 수령 1100년의 은행나무.
객사에서 하는 깜짝 가야금 공연. 운좋게 만난 공연자는 판소리 사랑가, 쑥대머리도 들려주었다.
관아 문루 풍락루.
다시 골정지로.
골정지 연꽃이 한창이다.
골정지 안 연암이 세웠다는 건곤일초정
골정지는 고려시대에는 벽골제라 불리웠다 한다. 김제의 벽골제와 같은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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