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제와 수련 진척에 대한 질문과 관련 된 글-1
0단 의-기 마음을 정하기
1단 기-빛 임독 유통이나 중맥이 열리기 전까지
2단 빛-공 중맥이 열려 정계와 교류할때부터 선계가 열리기 전까지(대주천전까지)
3단 공-영 선계가 열려 금빛이 있고 바른몸이 완성될때까지
4단 영-대 심장의 빛이 밖으로 나와 보호막처럼 나오고
그리고 300m 정도의 크기로 될 때까지 이를 완주(完珠) 라고 한다. 모계가 열린다.
5단 대-종 완주가 우리나라 두배정도 크기까지,, 천계가 열린다.
6단 종-하늘 지구3분지 일까지,, 허계가 열린다.
7단 하늘-혼 3분지이,, 인계가 열린다.
8단 혼-신 지구와 같은 크기,, 대인계
9단 신-허 대기권 반정도까지,, 방계
10단 허-무 지구권역전부------ 100단 해-서
이런 식이었으며
1단은 기, 기수련이고
2단은 빛, 빛 자천이고
3단은 공을 각해야한다.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계제의 단서가 있는 말이다.
1단도 2단도 3단도 계제가 오른 것인데
본인이 아는 경우는 드물듯이 깨달음도 그렇게 깨달아 가고 있는데 본인이 모르는거에요
알고 모르고가 수련의 성공 여부라고 생각한는 것은 오해에요
인지는 나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니까요
인지하고 안하고는 상관없어요
그리고 깨달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안돼요
비교하고 제대로 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할 것이겠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깨달음이 부럽고 그렇게 되고싶으며
그러면서 깨달음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고 나름대로 관념을 만들어 자신을 그밑에 종속시키고 그와 다르면 잘못이라고 부정하면서 자기의 깨달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엿보기만 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요
사람이 다르면 깨달음도 다르고 과정도 다르고
다 달라요 명심해요 작은 내마음의 사소한 이해가
고승대덕의 대단한 깨침보다 소중합니다.
<<이제는 못깨닫겠다>> 중에서
깨달음이 아무리 많아도 임독맥 타통이나 그런게 안되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무리 깨달음이 높아도 그런게 안되면 계제가 낮은건가요?
간디 같은 사람이 그럴 거 같은데..
그리고 3단이 원신이 형성되면 3단인가요 아니면 형성전 까지가 3단 인가요
현일
그렇게 깨달은 사람이 많고 지금 지구상에 수천명 수만명일 겁니다.
이게 안타까운 겁니다. 자질이 좋아서 별 어려움 없이 각성을 하는데 그것에서 끝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간디는 나도 만나보았지만 수련이 안된 사람입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현실에서 명성으로 영향력이 있고 나름의 삶을 살수 있지만 천원계에선 아무도 그 사람에게 관심 없습니다.
무지한 불쌍한 영혼일 뿐입니다.
3단은 금단이 생기기 시작할때부터 원신이 자신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성장할때까지 입니다.
즉 형성되면 3단 졸업반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 글을 읽어보고 질문해주시면 안될까요
질문은 알겠는데 좀 배경 지식이 있어야 서로 대화가 쉬울거 같아서요
<<단전 깨우침>>중에서
단전이 만들어지는 깨달음은 무엇일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이는 감정일뿐 어찌 깨우침이겠냐면
이성이나 감정이나 육체는 서로 긴밀한 영향이 있고 한쪽이 깨달으면 다른쪽도 뒤이어 보조를 맞춘다.
육체는 단전호흡이나 기공, 주문이고
나의 정수가 모여진 것이 단전이라 나를 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기이고 내 정수가 모여 흐르면 기운행이된다.
마음의 여유와 자기를 찾는 마음가짐으로 단전이 생기는 것이다.
단전을 만들어 편안해지거나 마음의 여유를 이끌어 단전을 만들거나이다.
진화적으로 봐서 거울의 자기 모습을 인지하는 것은 고등생물일때이고
또다시 마음의 거울로 자기자신을 비추고 관조할때 또 할 수 있을때
이것이 깨우침이며 단전이다. 또 하나의 나를 본것이다.
이때 나와 분리되는 세상을 보기도 한다.
서양인은 같은 것을 느끼어도 나보다 대상을 보는 별난 곳이다.
이것은 동양에서는 특별한 사람이고
서양에서는 일반적이며 서양에서는 자기자신을 인지하면 동양에서는 일반적이고 서양에서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이유중에 서양인은 평소에 주제중심, 인간중심으로 지각하며 살지만,
동양인은 배경중심으로 지각하다가
이것이 전도되어 동양에서는 배경 즉, 주위 세상을 보다가
나를 보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과 경이를 느끼는 것이 견성인데 이때 동양에서 서양인 처럼하면 별난 취급을 받는다.
서양은 반대로 나만 생각하다가 내주변이 있고 나이외에 세상이 있다는 것에 충격과 함께 굴복한다. 그래서 그들은 초월적 유일신에 약하다.
데카르트는 존재하는 나를 본것이 아니라 유일신에서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나를 본것이다.이후 철학사는 유일신을 인간곁으로 끌어 내리려 하는데, 칸트는 도덕을 위해 유일신을 불렀고 헤겔은 역사속에 숨었고 마르크스는 스스로 메시아가 되었다. 그렇게 홀로 서기가 두려운가...
그러니까 견성이나 깨달음은 나를 보고 놀라는 것이다.
아이가 거울의 자기모습을 보고 놀라듯이 어른은 마음의 자기 모습에 놀란다.
이렇게 되면 단전이 만들어져
수단이되고 1단의 지위를 얻어 선계에 등록되어 진다
<<주문으로 수련하기>>중에서
의수단전으로 항상 단전에 신경쓰며 살아간다.
꼭 이렇게 단전에 집중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간단히 스스로 상근기라고 생각하다면 안해도 된다.
원상문이나 임독타통주문이나 나무석가모니불을 처음부터 해도 되며
그 효과를 명확히 이해하고 하면 각성이나 견성을 이룰것이다.
그 이상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수단전해야 한다.
의수단전으로 단전에 집중하고 단전형성의 수련을 하는 것은 하근기로 수련하는 것이며 부작용이 제일 적고 몸의 혈맥을 타통하며 차근차근 확실하게 밟아가는 것이다.
단전 주문은 옴마니 반메훔이며
방법은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자세나 시간 요령이 있는 어떤방법으로든 하면 된다.어쩌면 이주문이 최고주문 일 것이다.
이것이 확고히 이루어져야 사상누각의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기초가 중요함은 당연하다.
반 가부좌나 바른자세로 해보고 익숙하면 주문을 몸에서 떼지 않는다.
이말은 생각으로 하든 속으로 하든
입으로 중얼거리든
큰소리로 외든
손으로 글을 쓰든
엄지로 꼼지락거리며 쓰든 벙법은 많다.
오직 의지와 자신의 혼을 믿고 스스로 가는 것이다.
주문은 자기가 가는 것이다.
누가 도울 것이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는가.
내가 기운줄이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연코 말하는데 주문은 그거 없어도 5명의 힘이 있다.
이것은 호흡이나 기타수련의 5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주문으로 수련이 안되면 포기해야 한다. 어떤 수련도 안된다.
어떤 수련법이든 상관없으니 꽉잡고 하면 성통한다.
단전이 만들어지면 마음이 편하고 의식이 배로 내려가고
열기나 무언가의 느낌이 있거나 움직임이 느껴지거나 회전하고 스스로 느끼는 감이 온다.계속하면 배 전체가 단전이 되고 온 몸이 조응하며 단전이 된다.
이때 오행연기를 하려면 옴나마쉬바야를 외운다.
대맥 주문도 있을 것 같다. 잘 모르지만
그리고 독맥으로 힘을 보내려면 아무래도 힘이나
강도면에서 태을주가 좋고 너무 세서 버거우면
준제진언이나 나무아미타불도 좋다.
이렇게 독맥과 임맥을 타통한다.
이런 주문은 단순히 독맥에서 임맥으로의 운행만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에 따라 온양과 자기의 보호, 주체성의 강화, 자신감 등 많은 효과가 있으며
이단계에서 원상주의 삼극주나 반야심경, 오음주등을
병행해서 외우며 책이나 기타 학문이나 깨우침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깨우침을 얻고 스스로 자립하는 당당함이 생긴다.
독맥과 임맥은 무엇이든할 수 있는 힘을 주고 그 힘을 신체강화와 정신 강화를 해야한다.신체강화는 무예나 과거의 차력을 해야하지만 내가 차력에는 자신이 없다. 잘 모른다.
정신강화는 영능력계발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 현명하고
훌륭해야 하며 마음의 바른 씀씀이는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후에는 시천주나 법신주를 외워 하늘을 찾아가야한다.
스스로 하늘에 동등해지려는 큰뜻이 있어야 한다.
이전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외워 기방사를 해보고
중단전의 쓰임을 이해해야 한다. 광명진언으로 세상과의 일치를 경험해야
그래야 세상먼지나 하늘과 땅 내가 모두 한 세상임을 알아야한다.
중단전으로 사물의 생의 본능을 못느낀다면 잔인한 것이다.
수인도 적절한 것을 찾아 해보세요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