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21』 제12차 제주 동창회 참석 후기
김광일(내저, 010-3024-8517)
여보, 걱정 많이 했지요? 당신의 염려 덕분에 2박 3일의 중학동기 행사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는 신고를 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60여명의 친구들 행사인지라 당신이 줄곧 걱정하고 있는 듯해서 행사기간 중 열심히 카톡으로 중계방송 했었지요.
출발당일 버스탑승 약속장소인 전철역으로 가는데 웬 중년신사가 새벽부터 무거워 보이는 박스를 옮기느라 끙끙 대더라구요. 도와주려고 가까이 갔더니 이번 행사준비를 총괄한 박금희 위원장이었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 친구가... 출발부터 감동받았습니다.
노력도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소식은 태풍 판폰의 영향으로 우리가 제주를 출발하기로 한 날 배가 운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어요. 여기저기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임원진들이 질서정연하게 제주 현지 날씨정보와 친구들 의견수렴을 하더니 예정대로 오렌지호를 타자고 신속하게 결정하더군요. 임원진과 친구들한테 믿음이 갑디다. 나는 당신한테 제주행사가 취소될지도 모르겠다고 카톡 날리고 있었는데...
평소 씩씩하고 분위기 메이커인 안이화 서울회장은 뱃멀미로 반쯤은 실신상태가 되어 4시간 가까이를 사력을 다해 분투합디다. 대한민국 트로트협회 회장인 위윤환 친구는 넉살좋은 입담과 몸 개그로 뱃멀미 직전까지 간 친구 몇을 구조한 셈이 되었습니다. 난 당신이 일러준대로 아침과 점심을 거르다싶이 했더니 되려 정신이 총총해집디다.
제주 행사장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식사를 늦춰가면서 밤늦게 전국총회를 했습니다. 당신한테도 미리 보여주었던 고향마을 전경과 김정오·문길섭 은사님과의 인터뷰를 실은 동영상을 보면서 허기를 잊은 듯하던 친구들은 빛바랜 중학 졸업앨범에서 발췌한 사진 영상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자 여기저기서 중학생 시절 목소리들을 냅디다. 저런 까까머리 개구장이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아버지·어머니, 장인·장모, 시아버지·시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었다는 생각들로 숙연해지는 표정들도 있었습니다.
평소 친구들 앞에서 촌철살인의 농담도 잘하고 여유만만 했던 윤경선 전국회장도 감회가 복받치는지 인사말을 더듬더군요.
자정 가까이까지 저녁을 먹고 여기저기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는데 어쩌면 한결같이 중학시절 얘기만 하는지 놀랐습니다. 출발하기 전 당신이 해준 말이 실감났습니다. 오늘 살아가는 얘기를 꺼내서 분위기 흐리지 말고 고향 그리고 중학시절의 애틋한 추억만을 얘기하라는 조언 말입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두세시간 정도 잔 듯합니다.
다음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일출랜드로 옮겼습니다. 결혼기념으로 당신과 함께 간 적도 있는 일출랜드는 10경을 포함해서 제주의 풍광과 정취를 한군데 모아놓은 걸출한 구경거리이지요. 당신과 함께 셀카를 찍었던 돌하르방을 일부러 찾아가서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여자 친구들은 잔디밭에 앉아서 40년도 지난 학창시절의 노래들을 어쩌면 그렇게 흥겹게 부르는지요.
고향후배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고 노력항으로 귀환하기 위해 오렌지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신이 서울에서 판폰을 걱정하고 있을 때 임원들은 밤잠을 설치면서 협의한 끝에 제주일정을 단축해서 행사장을 옹암마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판폰의 여파인지 파도가 금세라도 배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처럼 기세등등했지만, 어제와는 달리 심하게 멀미하는 친구는 없더군요. 삶의 지혜겠지요...
옹암마을 초입에 있는 숙박시설은 폐교된 서암분교를 리모델링해서 옹암 청년회가 위탁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장을 풀고 달빛아래서 남부, 북부, 동부 등으로 3팀을 만들어 신발던지기, 줄넘기 등 게임을 했어요.
어른들한테는 유치한 게임이지만 누구 한사람 이의제기 없이 게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치기어린 고성도 오가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출중한 줄넘기 실력을 가진 당신이 동행했다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었는데...
출출해진 친구들은 정성껏 준비해온 홍어 삼합 등으로 저녁을 한 후 노래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신 고향분들도 유난히 노래를 잘한다고 했지요? 난 우리 고향사람들의 노래실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노래를 잘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만, 난 질곡 많은 역사를 타고 오면서 쌓이고 쌓인 한을 흥으로 바꾸는 에너지가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에서 온 김태중 친구는 모두의 넋을 빼앗는 가창력과 퍼포먼스로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대상을 받은 박금심 친구는 앵콜송 “섬마을 선생님”으로 친구들 애간장을 녹이더군요. 상품도 푸짐했고 여자친구들이 전부 무대로 올라가 “천년지기”를 합창할 때는 일일이 업어주고 싶더라구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김영자 친구는 전문 댄서 복장으로 차려입고 현란한 율동으로 친구들한테 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아마도 서울 돌아가면 댄스학원에 등록할 친구들이 몇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은 고금도와 약산도를 찾았습니다. 일전 어머님 보약으로 사다드린 흑염소의 방목지로 유명한 곳이지요. 삼문산 진달래공원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는 친구들한테 호사스런 눈요기였지요. 다음에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단연 남해안 다도해를 추천하고 싶어요. 고금도에 거주하는 김정단 친구의 남편이 엉겹결에 친구들 앞으로 불려나왔는데 천관지를 통해 우리 친구들 몇몇을 알고 있더라구요. 매달 천관지를 꼼꼼하게 보기 때문에 웬만한 향우들은 꿰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순박한 분이었습니다. 김정단 친구는 앞으로 남편 걱정 안 해도 되겠습디다.
대덕 친구들이 푸짐하게 마련한 전어로 점심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내내 감사와 고마움을 곱씹는 시간이었습니다.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지만 이렇게 전국 각지의 친구들이 추억의 시간으로 돌아가 건강하고 즐거운 한때를 갖게 해준 임원들과 준비에 기꺼이 동참한 친구들한테 어떻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까. 행사기간 내내 말도 몇마디 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나한테 다가와 그러더군요.“대덕중학교 21회인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요.
여보, 앞으로 한동안은 당신과의 대화소재가 넘쳐날 듯합니다. 도회지 출신인 당신은 우리 친구들의 에너지가 궁금하겠지요, 나도 궁금합니다. 시간되면 우리 친구들의 우정, 배려심, 희생하는 마음 등을 연구해 볼려구요. 당신의 염려와 걱정이 있었기에 친구들과의 제주행사도 그 의미가 남달랐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