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가 정리해 준 원균과 이승만의 공통점
1. 결정적 위기 상황에서의 '도주'와 '책임 회피' 두 인물 모두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원균: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수사로서 일본군이 몰려오자 싸우기도 전에 자신이 관리하던 판옥선 수십 척을 자침시키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이후 칠천량 해전에서도 패배가 짙어지자 함대를 버리고 육지로 도주하다가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승만: 6.25 전쟁 발발 직후,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정작 본인은 특별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후 한강 인도교를 조기에 폭파하여 피난민들의 발을 묶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한 점이 강력한 비판의 대상입니다.
2. 라이벌에 대한 '시기'와 '모함' 자신보다 유능하거나 인망이 높은 경쟁자를 정치적으로 탄압하거나 견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균: 이순신 장군의 공로를 시기하여 조정에 허위 보고를 올리고, 선조의 의중을 살펴 이순신을 파직하고 하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승만: 정적인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한 진보당 사건이나,
김구 등 독립운동계의 경쟁자들을 견제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적들을 제거하거나 압박했습니다.
3. 무능함을 덮어준 '권력자의 비호' 본인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 권력자(혹은 본인이 권력자일 때의 시스템)에 의해 과하게
미화되거나 보호받았습니다. 원균: 칠천량 해전의 대패로 수군을 궤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억지로 '선무공신 1등'에 책봉하며 그의 과오를 덮어주려 했습니다.
이승만: 전후 독재 체제를 구축하며 자신을 '국부(國父)'로 우상화했습니다.
3.15 부정선거 등을 통해 장기 집권을 꾀하며 본인의 실책을 국가 시스템을 동원해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4. 결과적인 '조직의 궤멸' 두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나 집착이 조직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원균: 칠천량 해전을 통해 조선이 수년간 쌓아온 수군 전력(판옥선 약 160척)을 단 한 번의 전투로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이승만: 전쟁 초기 대응 실패와 한강 다리 폭파 등으로 국군의 초기 방어선을 무너뜨렸으며, 이후 부산 정치 파동과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질서를 크게 훼손했습니다.
* 이승만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인간들이 윤 어게인 하는 인간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