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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테스트 | 팔짱테스트 | 내유형 |
좌뇌형 | 좌뇌형 | 좌좌뇌형 |
좌뇌형 | 우뇌형 | 좌우뇌형 |
우뇌형 | 좌뇌형 | 우좌뇌형 |
우뇌형 | 우뇌형 | 우우뇌형 |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
좌좌뇌형 : 꼼꼼하고 성실한 타입
논리력을 인정받는 완벽주의자, 모든 일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막힘없이 추진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습니다. 또한 성실하며 의리있는 성격이라 친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잘해줍니다. 또한 로또 같은 도박엔 소질이 없으니 저축이 최고입니다. 다만 다소 딱딱하고 융통성이 부족하여, 자존심 세고 상대하기 힘든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도 상대를 분석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열정적인 밀어붙이기가 다소 부족하여 먼저 다가가진 못해도 상대가 다가온다면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성격이네요. 기본적으로 심성이 순수하고 코드가 맞는 상대를 만나면 그 관계가 오래 이어지겠군요.
좌우뇌형 : 자상한 형님/누나타입
남챙기는 걸 좋아하는 믿음직한 언니이자 형님, 빠릿빠릿한 머리 회전과 타고난 센스덕분에 상대의 기분과 그 장소의 분위기를 빨리 파악하는 군요. 감도 좋고 재물에 밝아서 재려가가 될 가능성도 높아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뛰어나지만, 확실히 해 둘 것은 확실히 해두는 카리스마도 있습니다. 다만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남일에 신경쓸 때가 있으니 주의
연애할 때에도 좌우뇌형은 현명하고 배려심 많아 이성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타고난 분석력과 관찰력으로 비전있는 최고의 이성 상대를 찾아내는 센스도 갖췄어요.
우좌뇌형 : 정도 많고 인기도 많은 리더타입
정이 많고 상냥한 우좌뇌형, 상대의 기분을 직감적으로 잘 알아차리기 때문에 집단을 이끌어 나갈 때에도 원활하게 이끌어갑니다. 또한 사람들은 당신 앞에선 모든 애기를 할 정도로 당신을 신뢰하고 편안하게 느낍니다. 다만 정에 약해서 상처를 받아도 화내지 못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게 약점이에요. 또한 부지런하고 감이 좋아 돈은 많이 벌어도 계획성이 부족한 탓에 지출이 더 많을 때가 있군요.
마음이 깊고 상냥해 어디서든 인기가 많은 우좌뇌형.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같아 보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모든 걸 헌신하는 스타일입니다.
우우뇌형 : 낙천적이고 개성 넘치는 타입
호기심도 많고 도전도 좋아하는 낙천주의자. 본능에 충실하고 좋아하는 일에 미친 듯이 돌진합니다. 계획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탓에 저축할 돈은 없겠지만, 감이 좋아 일이나 로또가 대박날 가능성이 높아요. 솔직하고 리액션도 커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합니다. 다만 관심이 없는 건 아예 거들떠도 안보고, 일을 하다가 쉽게 싫증을 내는게 약점이예요.
마음에 드는 상대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우우뇌형, 상대도 그런 당신의 적극성을 매력이라고 생각하는군요. 또한 실연을 당해도 단기간에 극복하고 다른 사랑을 찾아떠나는 쿨한 모습도 갖고 있어요.
지금 한 실험은 4가지 유형을 통하여 간단하게 성격을 분석하는 테스트이다. 그런데 성격테스트를 보면 완벽한 성격은 아무도 없다. 무엇인가? 단점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성격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기 성격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가? 지난 금요일 새벽기도는 목회서신으로 분류되는 디모데전서의 마지막 설교였다. 그런데 디모데전서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목회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디모데전서는 이단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바울이 쓴 편지이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바울은 어렵고 힘들 때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행정적으로 문제는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고 쓴 부분이 전혀 없다. 오히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장로는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집사는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기록하면서 바울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인격체가 되어야 하느냐?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목회이다. 교회에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또 활기차게 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목회를 잘하는 것이고,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또 교회에 생동감이 떨어지면 목회를 잘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는 성도들이 주가 주신 일을 감당해 가면서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서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사역자이다. 그래서 때로는 어렵고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부족을 깨달아 하나님을 의뢰하고, 또 쉽고 재미난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함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에 제가 그런 사역자로 보이는가? 세바시로 유명한 서울여대 김창옥교수님은 세바시 통하여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김창옥교수님을 사랑을 받게 되었고, 이제 김창옥교수님이 강의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모여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김창옥교수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부담만 늘었지,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바시 스텝에게 이제 그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내가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영화배우였다. 그리고 실제로 김우빈 주연의 기술자들 이라는 영화촬영도 했는데, 그것이 교수님의 길이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수님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 교수님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강의가 무엇인가?를 알아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강의만을 하다보니 자신이 거기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창옥교수님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는 것은 자기자신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거기에 다른 사람이 없으면 불행하여지고, 또 다른 사람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거기에 자신이 없으면 불행하여 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인가? 내 삶에 자기자신을 찾고, 또 다른 사람도 인정하면서 살면 행복해 질 것이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는 낮과 밤같아서 결코 둘이 하나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사람은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더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역을 통하여 사람의 비위를 맞추던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찾아나서도 거기에서 만족함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잘 해야지! 더 잘하면 하나님께도 인정받게 될꺼야! 하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일을 잘할 때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격이 변화되어져 갈 때 기뻐한다.
그러면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저는 이 말씀으로 위로의 메시지로 설교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보배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아니라, 또 능력의 예수님이 내 속에 있으므로 결코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고 설교하였다. 그러면 많은 성도님들이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故 옥한흠목사님은 저와 다르게 설교하였다. 옥한흠목사님은 질그릇이 보배를 담고 있으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저는 옥한흠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맞다 하며 무릎을 쳤다. 왜냐하면 지금 대심방 기간 중에 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의 가정에 심방을 간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2가지 마음이 교차를 한다.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드리는 것은 좋다. 그런데 목사님이 오시므로 집안 청소하고, 또 다과를 준비하는 것은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시는 것은 구원의 감격과 능력이 되어서 위로와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부끄러움과 수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기독교 역사 안에서도 나타났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은 장대현교회 부흥사경회 때였다. 그러나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1903년 8월에 있었던 원산부흥운동이었다. 당시 중국 감리교 소속 화이트 선교사를 강사로 원산에서는 부흥사경회가 열렸고, 거기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한 로버트 하디선교사는 강단앞으로 걸어갔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다가 사랑하는 두 아들이 학질로 죽었고, 또 아내도 죽었다. 그런데 그가 강단에 나와서 회개를 시작하였다.
저는 사랑하는 자녀를 이 땅에 묻었지만 이 땅을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서 조선인을 무시했습니다. 나는 선교사이지만, 이 땅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선교사이지만, 속으로는 여러분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 선교사가 울면서 이렇게 회개하였을 때 길선주 장로님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선교사를 얼마나 미워하고, 무시했는지 고백하며 회개하였다. 이 두 사람의 회개와 화합은 교회를 회개케 하였다. 그래서 한 여인이 나는 남편 몰래 간음한 죄인입니다. 저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하면서 울면서 회개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갑자기 강단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남편은 저는 아내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사람입니다. 저도 바람을 피웠던 사람이다고 회개하였다. 그래서 가정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은 강단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양반을 죽이고 족보를 훔치고 나와서 양반행세를 하고 살았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하고 회개하였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경찰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지역 안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데, 그 범인을 잡지 못해서 힘들어 하던 경찰들은 그 죄인이 잘못을 회개하면 체포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회개를 하였고, 결국 범인을 잡으러 온 경찰이 앞에 나가서 내가 죄인입니다 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한국초대교회의 원산회개운동이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임하였을 때 교회는 자신의 죄악으로 인한 수치와 부담감으로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 한국초대교회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임하실 때 이렇게 회개하여야 했는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에 담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된 우리의 삶에 예수님을 담는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보배되신 예수님께서 내 속에 거한다는 것으로 인하여 고통하고있는가? 만약 그렇게 고통하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다면 이제 여러분의 삶의 습관이 달라져야 한다. 그 달라져야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이다.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에 공통점이 무엇인가? 수동적이다는 것이다. 나는 원치 않는데 욱여쌈을 당하고, 또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모습은 사역자의 모습이다. 사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나갈 때 사람들이 환영받고 대접받으며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사역자가 복음전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를 쓰면 쓸수록 고난이 더 심하여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욱여쌈을 당한다는 말은 포도즙틀에 들어가 짖눌리는 상태에 빠진다는 말이고, 또 답답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사방으로 포위되어 이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다가온다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 어떤 고통을 당한다 하여도 그것으로 인하여 결박되지 않는 사역자가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역자가 될 수 있는가? 그 해답이 10-11절이다.
(고후 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지금 이 말씀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그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두렵고 큰 것이었는지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였고, 또 십자가에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하시면서 절규도 하였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셨을 때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또 예수의 이름아래 모두 무릎을 꿇게 하여주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나님께서 내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 주었던 것처럼 우리를 고난에서 다시 살려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그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역을 하면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십자가를 생각하며 사역을 하면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가 나의 인격으로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성품으로 우리가 성화되어져 가는 방법이다. 보배를 질그릇에 담은 사역자는 자신의 삶에 다가오는 고통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므로 고난을 이겨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나의 삶에 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서 온전한 인격체로 변화되어져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중에 자기 성격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보배를 질그릇에 담은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것은 항상 부담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❶우리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예수 ❷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내 방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 나는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과 사역의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