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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附諺解 (學民文化社) | |||||||
1. 元
第 一 冊 | p.01 周易大全 凡例 | 1. 元
第 一 冊 | p.189 易傳序 | ||||
p.13 周易大全 目錄 | p.199 易序 | ||||||
p.19 卷首 引用先儒姓氏 | p.203 上下篇義 | ||||||
p. 29 易 本 義 圖 | p.29 | 河圖之圖 | p.213 五贊: 原象, 述旨, 明筮, 稽類, 警學 * | ||||
p.30 | 洛書之圖 | p.231 筮儀 | |||||
p.65 | 伏羲八卦 次序之圖 | p.243 周易上經 | |||||
p.71 | 伏羲八卦 方位之圖 | 卷一 | p.247 | 1. 乾 | |||
p.82 | 伏羲六十四卦次序之圖 | 卷二 | p.273~p.430 | 2. 坤 3. 屯 | |||
p.91 | 伏羲六十四卦方位之圖 | 卷三 | p.461~p.512 | 4. 蒙 5. 需 6. 訟 | |||
p.117 | 文王八卦次序之圖 | 卷四 | p.541 p.567 p.596 | 7. 師 8. 比 9. 小畜 | |||
p.120 | 文王八卦方位之圖 | ||||||
p.133 | 卦變圖 | ||||||
p.147 易說綱領 |
5. 警學(경학)
讀易之法 先正其心 肅容端席 有翼其臨(朱子曰翼敬也) 于卦于爻 如筮斯得 假彼象辭 為我儀則 字從其訓 句逆其情 事因其理 意適其平 曰否曰臧 如目斯見 曰止曰行 如足斯踐 毋寛以略 毋密以窮 毋固而可 毋必而通 平易從容 自表而裏 及其貫之 萬事一理 理定既實 事来尚虚 用應始有 體該本無 稽實待虚 存體應用 執古御今 由静制動
讀易之法은 先正其心하고 肅容端席하여 有翼其臨이라 于卦于爻에 如筮斯得하여 假彼象辭하여 爲我儀則이라 字從其訓하고 句逆其情하며 事因其理하고 意適其平이라 曰否曰臧을 如目斯見이요 曰止曰行을 如足斯踐이라 毋寬以略하고 毋密以窮하며 毋固而可하고 毋必而通하라 平易從容하여 自表而裏니 及其貫之하면 萬事一理라 理定旣實이나 事來尙虛요 用應始有나 體該本無라 稽實待虛하고 存體應用하며 執古御今하고 由靜制動이라
周易을 읽는 법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며, 容貌(용모)를 嚴肅(엄숙)하게 하고 자리를 端整(단정)하게 앉아서 그 臨(임)함에 翼(익)=恭敬함이 있어야 한다. 괘(卦)와 효(爻)에 있어서 占(점)쳐서 이것을 얻은 듯이 하고, 저 象辭를 빌려서 나의 儀式(의식)의 規則(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글자는 그 訓戒(훈계)를 따르고 句節(구절)마다 그 實情(실정)을 逆探(역탐)하며, 일은 理致를 따르고 뜻은 和平함에 맞아야 한다. 그름(否부)과 착함(臧장)을 말한 것을 눈으로 이것을 본 듯이 하고, 그침과 行함을 발로 이것을 밟는 것(踐천)처럼 여겨야 한다. 寬大하게 하되 所掠(소략)하지 말고, 嚴密(엄밀)하되 窮(궁)하게 하지 말며, 固執(고집)하지 말고 可能(가능)하게 하며, 期必=執着(집착)하지 말고 融通性(융통성) 있게 해서 알기 쉽고(平易) 종용(從容)함이 겉으로부터 속에까지 이르니, 그것을 그 貫通(관통)함에 이르면 萬가지 일이 한 理致(이치)인 것이다. 理致는 定해져서 이미 實해지나 일이 오는 것은 여전히(尚상) 비어있고, 用은 應함에 따라 비로소 있으나 體는 모두 包含(포함)하되 本來 없는 것이다. 채움(實)을 稽(계)=詳考(상고)하여 비움(虛허)에 對備하고 體를 保存하여 用에 應하며, 옛것을 가지고 只今을 다스리며(御어=治치) 고요(靜정)함으로 말미암아 動(동)함을 다스린다(制御제어).
或 問理定既實以下八句 朱子曰 聖人作易 只是說一箇理 都未曽有許多事 却待他甚麽事来湊 所謂事来尚虚 盖謂事之方来 尚虗而未有 若論其理則 先自定 固已實矣 用應始有 謂理之用實故有 體該本无 謂理之體 該萬物 又初无形迹之可見故无 下面云 稽考實理 以待物事之来 存此理之體 以應无竆之用 執古 古便是易書裏面文字言語 御今 今便是今日之事 以静璪 理便是靜底 事便是動底 |
或이 ‘理定既實’ 以下의 八句에 問컨대, 朱子曰 "聖人께서 作易하심은 단지 이렇게 一箇의 理로 說하신 것이다. 모두(都도) 일찍이 許多(허다)한 事로 有함이 아니라, 도리어 그 甚麽(심마)의 事来를 待하여 湊하신 것이다. 所謂 ‘事来尚虚’는 대개 事가 바야흐로 来함에 여전히(尚) 虗하여 아직 有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그 理로 論지면 則 先으로 스스로 定임에 固히 이미 實인 것이다. ‘用應始有’란 理之用은 實인 것이니, 故로 有임을 말하는 것이다. ‘體該本无’는 理의 體는 萬物에 該이어서, 또한 初부터 形迹에 可히 見할 수 있음이 없기 때문에, 故로 无임을 말한 것이다. 下面에 云한 ‘實理를 稽考함으로서 事物之来에 待하여야 한다.’함은 此의 理之體를 存하여 无竆之用에 應한다는 것이다. ‘執古’의 古는 문득 이렇게 易書裏面(역서리면)의 文字言語인 것이고, ‘御今’의 今은 문득 이렇게 今日之事인 것이다. ‘静으로서 動을 制한다.’함은 理가 문득 이렇게 靜의 底인 것이고, 事는 문득 이렇게 動의 底라는 것이다. |
* 體該本无체해본무: ‘體는 모두 包含하되 本來 없다.’는 것은 理의 體가 萬物을 包含하되 또 本來 볼 수 있는 형적이 없기 때문이다. |
且如即鹿无虞 唯入于林中 君子 幾 不如舍 往吝 其理 謂将即鹿而无虞人 必陷于林中 若不舍而徃 是取吝之道 這箇道理 若後人做事 如求官爵者 求之不已 便是取吝之道 求財利者 求之不已 亦是取吝之道 又如潛龍勿用 其理謂當此時 只當潛晦 不當用 若占得此爻 凡事 便未可做 |
또한 마치‘即鹿(즉록)에 无虞하니, 唯入于林中인지라, 君子는 幾하야 不如舍리니, 往이면 吝하리라(水雷屯六三).’와 같이, 그 理는 將次(장차) 鹿의 사냥으로 即함에 虞人이 无일지면 반드시 林中에 陷하고 말 것이니, 만일 舍하지 않고 徃일지면 이렇게 吝을 取하는 道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 箇의 道理를 만일 後人들이 做事함과 같은 경우라면, 마치 官爵(관작)을 求하는 者가 求之하기를 不已일지면 문득 이렇게 吝을 取하는 道와 같은 것이요, 財利를 求하는 者가 求之하기를 不已일지면 또한 이렇게 吝을 取하는 道와 같다는 것이다. 또 마치 ‘潛龍勿用(잠룡물용)’과 같은 경우에, 그 理는 此時에 當할지면 다만 潛晦(잠회)에 當하여야하지 用에 當할 수 없으니, 만일 占하여 此爻를 得일지면 凡事에 문득 아직 可히 做(지을 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
*即鹿无虞즉록무우: 經驗이 많아 能熟한 사냥꾼(虞人)이 없이 사슴을 쫓아가려 한다는 의미로 對策도 없이 일을 벌이는 것이다. 숲을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드는 것. |
* 重天乾卦 初九(潛龍勿用): 물속에 몸을 숨긴 龍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 잠룡은 아직 물을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能力을 培養하며 때를 기다린다. 즉)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自身을 鍛鍊(단련)해 힘을 모으고 때를 기다려야 하며,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性急(성급)하게 行動해서는 안 된다. |
潛龍在淵(秀琦山수기산、瑞芳山서방산、龍潭山용담산). |
所謂君子動則觀其變 而玩其占 若是无事之時 觀其象而玩其辭 亦當知其理如此 某每見前輩說易 止把一事説 某之説易 所以異于前輩者 正謂其理 人人皆可用之 不問君臣 上下 大事 小事 皆可用 前輩止緣不把做占說了 故 此易竟无用處 |
所謂 ‘君子動則觀其變 而玩其占’은 마치 이렇게 无事之時에는 그 象에 觀하고 그 辭를 玩하여, 또한 當히 그 理가 如此함에 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某가 每番 前輩들이 易에 說함을 見하건대, 다만 一事之説만으로 把하고 있다. 某의 説易이 前輩(전배)들의 것과 異한 까닭은 正히 ‘그 理는 人人마다 모두 可히 用之할 수 있다.’라 謂할 수 있겠다. 君臣上下와 大事小事로 問치 않아도 모두 可히 用할 수 있으나, 前輩들은 다만 占說로 삼아 把了하지 않음으로 緣하였기 때문이니, 故로 此 易이 끝내(竟) 用處할 바가 없게 된 것이다. |
○勉齋黄氏曰理定既實以下皆㴱指學易者而言理則體也事則用也理之為體雖甚實而所該者无形事之為用雖本虗而因應乃有稽實存體所以玩理待虚應用所以制事當潛而潛當見而見皆理之自然而不可易者非實乎然求其所謂當然者則无形之可見非本无乎未有潛見之事非虚乎處陋巷三過其門而不入則有迹之可覩非始有乎 |
勉齋黄氏曰 " ‘理定既實’의 以下는 모두 學易者에 㴱(심)=深(심) 指(지)하여 言한 것이다. 理는 則 體이요, 事는 則 用인 것이다. 理가 體됨은 비록 甚實인 것이나, 該되는 바의 것은 无形인 것이다. 事의 用됨은 비록 本虗인 것이나, 因하여 應함인 것이니 이내 有인 것이다. 稽實(계실)과 存體가 玩理(완리)할 수 있는 所以인 것이고, 待虚와 應用이 制事할 수 있는 所以인 것이다. 當潛에 潛하고, 當見에 見함은, 모두 理之自然인 것으로 不可易者인 것이니, 實함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所謂 ‘當然’者를 求함은 則 形之可見함이 无인 것이니, 本无함이 아니겠는가? 아직 潛見之事로 有하지 않으니, 虚함이 아니겠는가? 陋巷(누항)에 處하고, 그 門을 三過이라도 不入하나니, 則 자취(迹적)를 볼(覩도=睹도) 수 있음에 有함인 것이니, 始有함이 아니겠는가?“ |
* 陋巷누항: 陋醜(누추)하고 좁은 마을. |
潔静精微 是之謂易 體之在我 動有常吉 在㫺程氏 繼周紹孔 奥指宏綱 星陳極拱 唯斯未啓 以俟後人 小子狂簡 敢述而申
潔靜精微를 是之謂易이니 體之在我하면 動有常吉이라 在昔程氏 繼周紹孔하사 奧指宏綱을 星陳極拱이러시니 唯斯未啓하여 以俟後人일새 小子狂簡하여 敢述而申하노라』
靜潔(정결)하고 精微(정미)함을 이것을 易이라 이르니, 體得(체득)하여 나에게 있게 하면 動함에 恒常(항상) 吉(길)함이 있을 것이다. 옛날(昔석) 程氏(정씨)가 있어서 周나라의 文王과 周公을 잇고 孔子를 이어(紹이을 소) 깊은(深奧심오) 뜻(指지)과 큰(宏굉) 벼리(綱領강령: 根本)가 별들이 陳列(진열)하기를 北極星(북극성)을 中心(중심)으로 맞잡은(拱) 것 같았으니, 오직 이것을 깨우쳐(啓蒙계몽) 주지 못하고 後人을 기다리셨기에 小子(朱子주자)가 狂簡(광간)하여 敢(감)히 技術(기술)하고 거듭(申신)하노라.
* 深奧심오: (理論 따위가) 썩 깊고 오묘(奧妙)함. * 啓蒙계몽: 지식수준이 낮거나 의식이 덜 깬 사람들을 깨우쳐 줌. * 狂簡광간: 뜻만 크고 實行(실행)이 不足한 사람을 이른다. |
朱子答陸九韶曰近又作一小卜筮書亦以附呈盖緣近世説易者於象數全然闊畧其不然者又太拘滯支離不可究詰故推本聖人經傳中説象數者只此數條以意推之以為是足以上究聖人作易之本㫖下濟生人觀變玩占之實用學易者決不可以不知而凡説象數之過乎此者皆可以束之髙閣而不必問矣 |
朱子께서 陸九韶(육구소)에게 答하며 曰 "近에 또 一의 小卜筮書를 作하였건대, 또한 附呈(부정: 同時에 送付하다)하노라. 대개 近世의 説易者은 象數에 全然히 闊畧(활략)=簡略하고, 그 不然者에 있어서는 또한 太로 拘滯하고 支離하여 可히 究詰할 수 없음으로 緣(연)하였기 때문이다. 故로 聖人經傳中의 象數에 説한 것에 推本하여 다만 此 數條로서 意推之하여 是를 삼았으니, 足히 上으로 聖人의 作易之本㫖를 究할 수 있을 것이고, 下로는 人의 觀變玩占之實用을 生命을 救濟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學易者가 決로 不知하여서는 不可한 것이다. 그리고 象數가 此보다 過하게 凡説(범설)한 것들은 모두 可히 높은 건물(樓閣누각)으로 束之인 것이니, 반드시 問할 必要(필요)는 없다.“ |
* 拘滞구체: ① 구애되고 융통성이 없다 ② 고지식하다. * 究詰구힐: 끝까지 따져 묻다. * 支离지리: ① 흩어져 있다 ② (말이나 글이) 무질서하다 ③ 불완전하다 ④ 조리가 없다 |
○答呂祖儉曰所論易是聖人模寫隂陽造化此説甚善但恐於盡其言處未免多著道理説殺了耳此非面論未易窮竟然向於五贊數章說得似已分明卒章尤切不知曾細看否幸試考之有所未安却望見敎也 |
呂祖儉(여조검)에게 答하며 曰 "‘易에서 論한 바는 이렇게 聖人께서 隂陽造化에 模寫(모사)한 것이다.’의 此説은 甚히 善인 것이나, 다만 그 言을 盡한 處에서 드러남(著저)이 많은 道理의 説을 죽인 것(殺了살료)에서 免치 못할까에 恐일 뿐인 것이다. 此는 面에서 論함이 아니라 易으로 다(窮竟궁경=盡진)할 수 없는 것이나, 그러나 五贊의 數章에 向일지면 說得이 흡사 이미 分明인듯하고 卒章에서는 더욱 切하기만 하다. 일찍이 否卦(천지☰☷비괘)에 細看(세간)하였는지에 不知일지나, 幸으로 試삼아 考之일지면, 아직 安하지 않은 바가 有일지라도 도리어 敎에 望見해 볼 수 있는 것이다.“ |
* 模寫모사: 어떠한 對象이나 現狀을 있는 그대로 본떠서 言語나 그림으로 描寫(묘사)함. |
○雙湖胡氏曰按五贊大要皆教人以象占之學首篇原竒偶之象推象之由也次篇述作者之旨為占而作也三篇明筮以發其占四篇稽類以考其象五篇以警學名欲人讀易之際常如卜筮之臨假象辭以為儀則而終趨於吉是又會象占而一之也 |
雙湖胡氏曰 "五贊의 大要를 按컨대, 모두 人에게 象占之學으로서 教한 것이다. 首篇은 竒偶之象에 原하여 象之由로 推하였고, 次篇은 作한 者의 旨가 占을 위하여 作하였음에 述하였고, 三篇은 筮로서 그 占치는 法을 發함으로 明하였고, 四篇은 類를 稽(계)함으로서 그 象을 考하였고, 五篇은 警學(경학)의 名으로서 人으로 하여금 易을 讀하는 際(제)에는, 常으로 마치 自身이 직접 卜筮에 臨한듯이 하고, 象辭를 假하여 儀則으로 삼아 終에는 吉로 달리게(趨추) 하고자 한 것이니, 이렇게 또한 象占으로 會하여 一之하게 한 것이다.“ |
朱子甞曰 某解易只作卜筮之書 今五贊皆以象占示教其旨㴱矣 又本義啟蒙論曰 有天地矣可无易乎不可也有易矣可无本義啟蒙乎不可也金聲玉振集大成衆言淆亂折諸聖朱夫子其聖人之徒歟盖自漢儒始變亂古易至有流為術數之歸而卒大亂於王弼且雜以虗無之論吾易遂晦蝕於天下寥寥千載孰覺我之太極有圖易通有書發徃古不傳之祕開萬世理學之源斯道始有係屬迨 |
朱子께서 일찍이 曰하시길 “某의 解易은 다만 卜筮之書(복서지서)로 作한 것이니, 今의 五贊은 모두 象占으로서 그 旨의 깊음(㴱심=深심)을 示教한 것이다.’라 하였다. 또 本義와 啟蒙(계몽: 어두울 몽)에 論하며 曰 "有天地컨대 可히 易이 无할 수 있겠는가? 不可한 것이다. 有易컨대 可히 本義와 啟蒙이 无할 수 있겠는가? 不可한 것이다. 金聲玉振으로 集大成하였고 衆言의 淆亂(효란: 뒤섞일 효)을 聖으로 折하였으니, 朱夫子는 그 聖人之徒일진져! 대개 漢儒(한유)로부터 비로소 古易이 變亂되어, 流하여서 術數之歸됨이 有하는 데에 至하였다가, 卒에 王弼에게서 大亂되었다가 또 虗無之論으로 雜하고 말았다. 吾易이 드디어 天下에 사라졌다가(晦蝕회식) 千載=千年(천년)으로 寥寥(요요; 매우 드묾)하게 되었으니, 누군들 我之太極에 覺(각)할 수 있었으리오? 圖가 有함에 易이 通하고, 書가 有함에 徃을 發함에, 古의 不傳之祕가 萬世의 理學之源으로 開하니, 斯道가 비로소 係屬(계속) 迨(미칠 태)함을 有하게 되었다.“ |
* 金聲玉振금성옥진: 쇠로 만든 編鐘(편종) 소리와 玉으로 만든 編磬(편경)소리. 智와 德을 뛰어나게 갖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① 모든 音을 集大成하다 ② 智德을 完備하다 ③ 名聲이 널리 드날리다 ④ 詩歌나 音樂 따위의 소리가 낭랑하고 아름답다. |
夫易傳寫胷中之成書皇極其經世之大法正蒙闡象數之條目是雖古經變亂未就釐正而術數虚無之學為之一洗吾易粲然復明未幾陋儒妄作異端蠭起易置圖書劉牧指斥邵子林栗冐偽著述麻衣易之類易道又幾晦蝕朱夫子勃興探前聖之精微破俗學之繆妄本義啓蒙有作而後吾易始大明於世愚甞謂孔聖以來朱夫子有功於易斷斷乎其不可及已 |
夫 易傳은 胷中(흉중)의 成書로 寫(사)인 것이니, 그 經世의 大法을 皇極(황극)하여 蒙을 正하고 象數之條目을 闡(천)하였다. 이렇게 비록 古經의 變亂이 아직 釐正(이정)으로 就하지는 않았으나 術數와 虚無의 學이 그것으로 一洗(일세)되었으니, 吾易이 粲然(찬연)히 다시 明하여, 거의 陋儒(누유)들이 妄作하고 異端이 蠭起(봉기: 벌 봉)되지 않아, 易이 圖書로 置하게 되었다. 劉牧(유목)이 邵子(소자)를 指斥하고, 林栗(임률)이 偽(위)를 冐하여 麻衣易之類를 著述(저술)하니, 易道가 또 거의 사라졌다(晦蝕회식). 朱夫子께서 勃興(발흥)하시어 前聖之精微를 探(탐)하시고 俗學의 어그러짐(繆妄무망)을 破(파)하시어, 本義와 啓蒙이 作됨이 有인 而後에라야 吾易이 비로소 世에 大明하게 되었다. 愚가 일찍이 謂컨대, ‘孔聖 以來 朱夫子有功於易 斷斷乎’라 하였으니, 그 不可及일 뿐인 것이다. |
* 皇極황극: 帝王이 나라를 다스리는 標準(표준)이 될 만한 至極(지극)히 올바른 法. * 釐正이정: (文書나 글을) 다시 整理하여 바로잡아 고침. * 勃興발흥: 갑자기 旺盛(왕성)하게 일어나서 繁昌(번창)함. * 麻衣易之類: 象數易學(상수역학)과 佛家(불가)의 祕傳(비전)이 結合됨. |
* 《麻衣相法마의상법》: 마의선사(麻衣禪師)가 宋代의 道士 진단(陳摶, ?-989)에게 전한 상학의 비전을 진단이 記錄하여 세상에 전한 책이다. |
麻衣禪師는 中國 화산(華山)의 석실(石室)에 살았는데, 道家와 佛家의 秘傳들을 익힌 사람이었다. 이름을 後世에 남기지 않고 恒常 베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麻衣禪師 또는 마의도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중국에 고대로부터 전래하는 주역의 상수역학과 도가 ․ 불가의 비전이 결합된 역학을 익히고 있었는데, 그의 易學을 ‘마의역(麻衣易)’이라고 한다. 그는 마의역을 진단에게 전수하였는데, 이에는 태극도(太極圖)와 주역의 근원을 밝히는 각종 역도(易圖)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진단은 이를 후대에 전했는데, 주돈이 ․ 소옹 등이 그의 역학을 전수 받았으며, 정호 ․정이가 주돈이의 문하에서 주역을 공부하였다. 또한 장재도 이들의 영향을 받아 만물의 본원을 기(氣)라고 설명하였다. 이들 다섯 사람을 ‘북송오자(北宋五子)’라고 한다. 이들에 의해 발전된 역학은 후일 남송의 주자(朱子)에게 이어져 성리학(性理學)으로 完成되었다. |
韓國에 性理學이 들어온 것은 高麗 末 忠烈王 時期인 1288년 文臣 안향(安珦,1243-1306)이 왕과 公主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연경(燕京: 현 북경)에서 《주자전서》를 필사하여 가져와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의 대표적 인물들인 이색 · 정몽주 · 길재 · 정도전 등이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 가운데 일부 학자들은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태조 이성계를 도와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아 법전(法典)의 제정과 기본정책의 결정을 결정함으로써 性理學은 이후 한국의 제도․문화․학술․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
今觀本義之為書也圖書定位而天地自然之易明先後天卦分而羲文之易辨二篇十翼不相混雜而經始為之復古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兩言以蔽之曰象占而觀玩不涉虚文至於扶陽抑隂進君子退小人發於坤初六之爻者不過數語而天之經地之義人之紀易之要領直包括无遺恨此本義不可少於天下也 |
今에 本義의 書됨을 觀컨대, 또한 圖書가 定位되어 天地의 自然之易이 明하여졌고, 先後天의 卦가 分하고 羲文(희문)의 易이 二篇으로 辨(변)되었으며, 十翼이 서로 混雜(혼잡)되지 않으니, 經이 비로소 그것으로 古의 六十四卦 三百八十四爻로 復하게 되었다. 兩言으로서 蔽之일지면 ‘象占’이라 曰할 수 있으니, 觀玩(관완)=觀察(관찰)함이 虚文으로 빠지지 않고(不涉불섭), 扶陽抑隂과 進君子退小人으로 至하였고, 坤(重地坤卦중지곤괘 )의 初六之爻에 發하는 것이 數語에 不過하였으니, 天之經, 地之義, 人之紀, 易之要가 直으로 包括(포괄)하여 生前의 남은 怨恨이 없게 하였으니, 此는 本義가 天下에 少하여서는 不可한 것이다. |
* 扶陽抑隂부양억음: 陽을 扶養(부양)하고 陰을 抑制(억제)함. |
啓蒙之為書也本圖書則揭天生神物章而易之本原正原卦畫則表易有太極章而易之位列明明蓍策則發明大衍章而掛扐之法定考變占則博取左氏傳以明斷例而吉凶趨避之見審合四篇大㫖一皆寓尊陽之微意而小人盜賊不得竊取而用此啟蒙不可少於天下也 |
啓蒙(계몽)의 書됨이 또한 <本圖書>篇(편)에서는 則 天生神物章을 드러냄(揭게)에 易之本原이 正되었고, <原卦畫>에서는 則 易有太極章으로 表함에 易之位列이 明하여졌고, <明蓍策>에서는 則 大衍章(대연장)을 發明함에 걸고(掛괘) 끼는(扐륵=勒륵) 法이 定해졌고, <考變占>에서는 則 左氏傳을 博取(박취)함으로서 斷例(단례)에 明하여 吉凶의 趨避(추피)를 見할 수 있게 되었다. 四篇의 大㫖(대지)를 審合일지면, 한결같이 모두 尊陽之微意(존양지미의)가 붙어서(寓우) 小人의 盜賊(도적)이 竊取(절취)하여 用할 수 없는 것이니, 此는 啟蒙이 天下에 少하여서는 不可한 것이다. |
其他如太玄闗易麻衣劉牧與夫林栗袁樞之徒所以惑世誣民者莫不斥其繆黜其偽折其悖摧陷廓清羽翼數聖人之易於天下此愚所謂自孔聖以來朱夫子有功於易斷斷乎不可極者豈誣也哉或曰是則然矣易者隂陽剛柔仁義性冒徳之書今斷然蔽之以卜筮得无局於一偏而不免漢儒術數之弊乎且繋辭明言易有聖人之道四焉今本義惟以象占分之而不及辭變得无四者之目遺其二乎 |
其他의 마치 太玄(漢의 揚雄이 지은 術數書), 闗易(관이), 麻衣(마의)와 같은 劉牧(유목)과 저 林栗(임률), 袁樞(원추)의 무리(徒도)들이 惑世誣民하였던 所以인 것에, 그 繆(류)=違背됨을 黜(내칠 출)하고 그 거짓(偽위)을 斥(척)하고, 그 거스름(悖패)을 끊지 않음이 없었기에, 꺾고(摧(최) 무너뜨리고(陷함) 넓히고(廓확) 羽翼(우익)=輔佐(보좌)을 밝히니(清청), 聖人之易이 天下에 數하게 되었으니, 此가 愚의 所謂 ‘自孔聖以來朱夫子有功於易斷斷乎’인 것으로 不可極者인 것이니, 어찌 誣할 수 있겠는가? 或曰 "是에는 則 然인 것입니다. 易者는 隂陽剛柔(음양강유)와 仁義性冒徳(인의성모덕)의 書인 것이나, 今에 斷然히 卜筮로서만 蔽之(폐지)이니 一偏(일편)으로 局하여 漢儒의 術數之弊에서 免하지 못함은 없겠습니까? 또 繋辭(계사)에서 明言하길 ‘易有聖人之道四焉’이라 하니, 今의 本義는 오직 象占으로서 分之하고서 辭變(사변)으로는 不及하니, 四者之目을 그 二로 遺함은 없겠습니까? |
* 惑世誣民혹세무민: 世上 사람들을 속여 精神을 홀리고 世上을 어지럽힘. * 斷斷=決斷 |
吁是皆未之思也是固隂陽剛柔仁義性冒徳之書而卜筮者正将使人盡仁義之道參隂陽剛柔以順性命以和道徳耳豈徒託之空言而不見諸實用乎又况卜筮之頃至理无乎不在正得聖人作易本意朱子已嘗言之奈何以此疑吾易乎至於聖人之道雖有四實不離乎二有 |
아! 이렇게 모두 아직 그것에 思치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固히 隂陽剛柔와 仁義性冒徳의 書이면서도 卜筮인 것이니, 正히 將次(장차) 人으로 하여금 仁義之道를 盡케 하고 隂陽剛柔에 參하게 함으로서 性命에 順하여 道徳으로 和하게 할 뿐이거늘, 어찌 다만 空言에 託之(탁지)하여 實用에 見할 수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물며 卜筮之頃(복서지경)일지라도 至理가 无일 수 있겠습니까? 聖人의 作易本意를 正得함에 不在인 것입니다. 朱子께서 이미 일찍이 그것에 言之하시며, ‘이내 어찌 此로서 吾易을 疑할 수 있겠는가? 聖人之道에 至하여서는 비록 四實로 有일지라도 二로 不離인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
象而後有辭有占而後有變不得於象則玩辭為空言不由於占則觀變於何所故有象辭有占辭占而後有卦變爻辭舉占象則辭變在其中若惟舉占則象辭變在其中此四者之序由輕歸重辭變統於象占象又統於占所以本義舉象占而統論易書一以貫之曰占謂之有遺可乎哉 |
有象인 而後(이후)에 有辭하고, 有占인 而後에 有變인 것입니다. 象에 不得일지면 則 말(글:辭사)을 살펴 봄(玩완)은 空言이 되며, 占으로 由하지 못할지면 則 무슨 까닭의 바에서 觀變할 수 있겠습니까? 有象辭에 有占辭이고, 占 而後에 卦變爻辭(괘변효사)가 有인 것입니다. 占象을 舉(거)일지면 則 辭變이 在其中인 것이고, 마치 오직 舉占(거점)일지라도 則 象辭變이 在其中인 것입니다. 此의 四者之序는 輕(경)으로 말미암아 重으로 歸(귀)인 것입니다. 辭變은 象占에 統(통)인 것이고, 象은 占에 統인 것이니, 本義가 象占으로 舉하여 易書의 一以貫之에 統論(통론)한 所以인 것입니다. 曰 "占을 有遺라 謂之함이 可하겠는가? |
* 一以貫之일이관지: 한 가지 理致로 一貫되게 꿰뚫는 것이다. |
或又曰易之所重在占固也人之於易必占而後可用不占則易竟无用矣乎曰不然也朱子嘗曰凡讀一卦一爻便如占筮所得虚心以求辭義之所歸以為吉凶可否之決然後考其象之所以然求其理之所以然推之於事便上自王公下至民庶所以修身治國皆有所用初未嘗不示人以學易而用之之方也必曰占乎而後用之朱子之志荒矣 |
或又曰 "易의 重한 바는 占에 在함은 固인 것입니다. 人이 易에 있어서는 반드시 占인 而後에 可히 用할 수 있는 것입니다. 不占일지면 則 易은 竟으로 无用인 것입니다. 曰 "不然이다. 朱子께서 일찍이 曰하시길 ‘무릇 一卦一爻를 讀함에는, 문득 마치 占筮로 得한 바와 같이 虚心으로 辭義之所歸를 求하고 吉凶可否之決로서 삼은 然後에, 그 象之所以然에 考하고 그 理之所以然을 求하여 事에 推之일지면, 문득 上으로는 王公으로부터 下로는 民庶에 至하기까지 修身治國의 所以로 모두 用할 수 있는 바가 有인 것이다.’라 하시었다. 初부터 일찍이 人에게 學易하여 用之하는 方으로 示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반드시 ‘占乎而後用之’라 曰할지면 朱子之志를 荒(황)인 것이다.“ |
* 栗林(율림): 南宋(남송) 福州(복주) 福淸(복청, 福建省) 사람. 字는 黃中(황중)이고, 諡號(시호)는 簡肅(간숙)이다. 高宗(고종) 紹興(소흥) 12年(1,142) 進士(진사)가 되어 薦擧(천거)를 받아 太學正이 되고, 太常博士에 올랐다. 孝宗 淳熙(순희) 15年(1,188) 兵部侍郞(병부시랑)에 拔擢(발탁)되었다. 兵部郞官(병부랑관)으로 있던 朱熹(주희)와 『周易주역』을 討論(토론)하다가 意見이 맞지 않자 朱熹는 原來 學文도 없는 사람이 誇示할 줄만 안다고 批判하기도 했다. 이로 因해 太常博士 葉適(섭적)이 封事(봉사)를 올려 論辯(논변)했고, 侍御史(시어사) 胡晉臣(호진신)이 그를 彈劾(탄핵)하여 泉州知州(천주지주)로 쫓겨났다가 明州로 옮겼다. 『周易』에 造詣(조예)가 깊어 『周易經傳集解』 36券(권)을 著述(저술)해 朝廷(조정)에 바쳤지만, 後世에 朱熹의 見解와 다르다는 理由로 널리 傳해지지 않았다. |
[네이버 지식백과] 임율 [林栗]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
* 劉牧(유목 1,011~1,064年): 北宋 衢州(구주) 西安 사람. 字는 先之 또는 牧之이고, 號는 長民이다. 進士 試驗에 合格했다. 范仲淹(범중엄)이 薦擧(천거)하여 兗州觀察推官(연주관찰추관)이 되고, 大理寺丞(대리사승)과 廣南西路 轉運判官(전운판관)을 지냈다. 太常博士까지 올랐다. 范仲淹과 孫復(손복)의 門下에서 『春秋』를 受學했고, 范諤昌(범악창)에게서 易學(역학)을 배웠다. 學文은 邵雍(소옹)과 淵源(연원)을 같이 했지만, 宋(송)나라 象數學(상수학)의 한 支流(지류)인 圖書學派의 開創者가 되었다. 圖書學派는 宋나라 仁宗 때 文人 黃黎獻(황려헌)과 吳秘(오비), 程大昌(정대창) 등에 의해 盛行했다. 著書에 『易數鉤隱圖역수구은도』와 『易解역해』, 『卦德通論괘덕통론』, 『先儒遺論九事선유유론구사』 등이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유목 [劉牧]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
* 袁樞(원추 1,131~1,205年): 宋나라 建寧(건녕) 建安(건안) 사람. 字는 機仲(기중)이다. 隆興(융흥) 元年(1,163) 禮部試(예부시)에 及第하여, 溫州判官(온주판관)과 興化軍敎授(흥화군교수)를 지냈다. 乾道(건도) 7年(1,171) 太學錄(태학록)을 거쳐 嚴州敎授(엄주교수)로 나갔다. 『資治通鑑자치통감』 읽기를 좋아해 事目을 分類하여 『通鑑紀事本末통감기사본말』을 編纂(편찬)했다. 太府丞(태부승)으로 옮기고 國史院編修官(국사원편수관)을 兼(겸)했다. 國事를 編纂하는 것을 두고 “天下 後世의 公議를 거스를 수는 없다.(不可負天下後世公議)”고 말했다. 거듭 昇進하여 權工部侍郞(권공부시랑)과 國子監祭酒(국자감제주)를 兼했다. 寧宗(영종)이 卽位하자 江陵知府(강릉지부)가 되었지만, 얼마 뒤 臺臣(대신)의 彈劾(탄핵)을 받아 罷職(파직) 當(당)했다. 著書(저서)에 『易傳解義역전해의』와 『易傳辨異역전변이』, 『童子問동자문』 등이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원추 [袁樞]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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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400年마다 한 번씩 피는 Mahameru(마하메루) 꽃이랍니다. 오늘(2019.10.21.) 신비롭게 핀 꽃으로 이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합니다. |
====='1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