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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임용한문. 전공A 3. 밑줄 친 ㉠의 견해에 의거할 때, 晩唐에 해당하는 풍격 용어 2가지를 본문에서 찾아 쓰시오. [2점] 吾邦之詩 以高麗李益齋爲宗 而本朝宣仁之間 繼而作者最盛有白玉峯車五山許夫人權石洲金淸陰鄭東溟諸家 大抵皆主豐雄高華之趣 自英廟以下 則風氣一變 如李惠寰錦帶父子 李炯菴柳泠齋朴楚亭李薑山諸家 或主奇詭 或主尖新 其一代升降之跡 ㉠方之古 則猶盛晩唐焉 - 金澤榮, 韶濩堂集 - |
[출전원문]
韶濩堂文集定本卷二
詩文集總名曰合刊韶濩堂集○花開金澤榮于霖著 / 序
申紫霞詩集序 丁未余弱冠餘。入京師。見紫霞申公詩稿所謂警脩堂集者。知其鉅麗而惜其未刊。從人借一本。授同鄕故人崔準卿。使之謄藏。及來中國。從準卿得而携之。三年之間。再加繹玩。姑選取四之一。編爲六卷。更名曰申紫霞詩集。盖前後三十餘年之間。天下日亂。好尙已變。而猶且爲此而有待於刊者。豈惟余之覊旅悁寂。無所用心也。實惜才之心。有不能自已者矣。適通家少友全君錫潤。客於上海見過焉。余與之言。偶以前意及之。全君扼腕曰吾爲子圖之。遂諏工浚力。不日將付諸印。乃就而爲序曰。吾邦之詩。以高麗李益齋爲宗。而本朝宣仁之間。繼而作者最盛。有白玉峯,車五山,許夫人,權石洲,金淸陰,鄭東溟諸家。大抵皆主豐雄高華之趣。自英廟以下。則風氣一變。如李惠寰錦帶父子。李炯菴,柳泠齋,朴楚亭,李薑山諸家。或主奇詭。或主尖新。其一代升降之跡。方之古則猶盛晩唐焉。(2020임용)惟申公之生。直接薑山諸家之踵。以詩畫書三絶聞於天下。而其詩以蘇子瞻爲師。旁出入于徐陵,王摩詰,陸務觀之間。瑩瑩乎其悟徹也。猋猋乎其馳突也。能豔能野。能幻能實。能拙能豪。能平能險。千情萬狀。隨意牢籠。無不活動。森在目前。使讀者目眩神醉。如萬舞之方張。五齊之方醲。可謂具曠世之奇才。窮一代之極變。而翩翩乎其衰晩之大家者矣。庸不盛哉。抑有異者。公之同時前輩。有曰朴燕岩先生者。其文在本邦古文家中。出類拔萃。變動具萬象。與公之詩。對爲兩豪。豈天之生物。有龍則必有虎。有珠則必有玉之類歟。聊附此論以告一世。
한국산문선 09 : 신선들의 도서관, 소호당집 03(번역원 2018)
2020임용한문 전공A 4. 밑줄 친 ㉠이 가리키는 것을 본문에서 찾아 쓰고, ㉡ 중 완성되지 않은 것을 찾아 쓰시오. [2점] 余嘗從燕巖朴美仲 會山如碧梧桐亭館 靑莊李懋官貞蕤朴次修皆在 時夜月明 燕巖曼聲讀其所自著熱河記 懋官次修環坐聽之山如謂燕巖曰 先生文章雖工 好稗官奇書 恐自此古文不興 燕巖醉曰 汝何知 復讀如故 山如時亦醉 欲執座傍燭焚㉠其藁 余急挽而止 燕巖怒 遂回身臥不起 於是懋官畫蜘蛛一幅 次修就屛風 草書作飮中八仙歌 紙立盡 余稱書畫極妙 燕巖宜有一跋爲㉡三絶欲以解其意 而燕巖愈怒愈不起 - 南公轍, 金陵集 - |
[출전원문]
金陵集卷之十七 宜寧南公轍元平著 / 墓誌
朴山如墓誌銘
亡友朴山如之祥祭。余往與焉。其親戚朋友來者言山如歿。嗣子尙幼。狀德之文未成。然知山如者莫如子。要一言識墓。嗚呼。余常樂道人之善。且余自弱冠治文詞。所與交多知名士。而山如最傑。又遇余篤厚。以余文銘之。逝者必且莞爾于九原。山如諱南壽。早孤。奉母李淑人以至孝。淑人生長忠節故家。賢而有見識。旣寡。爲山如收泣以生。鬻簪珥具幣。延名宿以敎之。稍長。喜與文人韻士游。則又數具酒食甚設而無吝色。由是山如詩文日進。交遊益廣。名聲遂大振。世之忌山如者衆。或相與爲謗言而枳之。然山如性素剛。欲一有爲於當世。故終不自沮。正宗七年。奎章閣直學士沈公念祖掌國子試。見山如文。擢置高等。公去而言於後至者。竟得發解。後二年成進士。召見涵仁亭。賜法醞。爲太學掌議。率諸生上疏討逆。不報。卽大成殿門外。拜辭而去。時有宰相當路者聞山如名。擬除爲童蒙敎官。有沮之者不果。其後屢下第。落拓不得志者久之。余嘗從燕巖朴美仲。會山如碧梧桐亭館。靑莊李懋官,貞蕤朴次修皆在。時夜月明。燕巖曼聲讀其所自著熱河記。懋官,次修環坐聽之。山如謂燕巖曰。先生文章雖工好。稗官奇書。恐自此古文不興。燕巖醉曰。汝何知。復讀如故。山如時亦醉。欲執座傍燭焚其藁。余急挽而止。燕巖怒。遂回身臥不起。於是懋官畵蜘蛛一幅。次修就屛風草書。作飮中八仙歌。紙立盡。余稱書畵極玅。燕巖宜有一跋爲三絶。欲以解其意。而燕巖愈怒愈不起。(2020임용)天且曙。燕巖旣醒。忽整衣跪坐曰。山如來前。吾窮於世久矣。欲借文章。一瀉出傀儡不平之氣。恣其游戲爾。豈樂爲哉。山如元平。俱少年美姿質。爲文愼勿學吾。以興起正學爲己任。爲他日王朝黼黻之臣也。吾當爲諸君受罰。引一酌復飮。又勸懋官次修飮。遂大醉懽呼。余以是歎燕巖奇氣有虛己之量。而益知山如議論之正也。若使假之年而充其所學。則必將有可觀者。而不幸短命死矣。雖然。其可惜者。豈獨此也哉。山如世爲潘南大族。其先有曰東亮封錦溪君。祖諱道源司憲府大司憲。考諱相冕司諫院正言。山如娶韓山李氏參判海重女。再娶平山申氏士人大顯女。三娶某郡某氏士人某女。有一子幼。山如以丁未八月甲子卒。年三十。葬于開城府魚化山之原。所著有寄所稿若干卷藏于家。前五年。余自山陰來京師。與山如飮。烹河豚。客言桃花已落。服河豚者當忌。山如喫一碗且盡曰。唉士旣不能伏節死。則寧食河豚死。豈不愈於碌碌而生耶。余至今思其言似戲而甚有理。悲夫。銘曰。
山如生而愛吾之文。其死也銘以吾之文。人或毁而擠之。天亦阨而促之。其竟使山如不止於所欲止而止於斯。(번역문 없음)
2020 임용한문 전공A 9. 지은이가 언급한 堂 주인의 ‘拙’의 면모 4가지를 본문에서 찾아서술하시오. [4점] 白馬之江西南流 至加林郡之南爲南塘江 有瀕江而堂 兼林麓原野之勝者 閔觀察士尙甫之別業也 士尙自湖南馳書屬維曰 某之拙不啻鳩矣 仕宦二十年 至建節擁旄 曾無蝸殼之廬可以芘身者往歲罷嶺南節 始有此卜築 誠陋且僻 然某樂之 以爲懸車終老之計 … (중략) … 維曰 淺乎 子之論拙也 夫拙之反爲巧 獨不觀於世之巧者乎 言而媕阿 行而脂韋 足不蹈乎衆避之塗 身必處乎自全之地 其當官任職也 觀陰陽隨俯仰 以便文塞責爲能事 以致命遂志爲非計 此其所以巧也 士尙有一於是乎 衆之所吐而獨茹焉 人之所向而獨背焉 疏於謀身而銳於報國 怯於趨利而勇於爲義… (중략) … 蓋夷考其平生 則無一事不與巧者相左 以是而名其堂有餘拙矣- 張維, 谿谷集 - |
[출전원문]
谿谷先生集卷之八 / 記 十九首
用拙堂記
白馬之江。西南流至加林郡之南爲南塘江。有瀕江而堂。兼林麓原野之勝者。閔觀察士尙甫之別業也。士尙自湖南馳書屬維曰。某之拙。不啻鳩矣。仕宦二十年。至建節擁旄。曾無蝸殼之廬可以芘身者。往歲罷嶺南節。始有此卜築。誠陋且僻。然某樂之。以爲懸車終老之計。竊念先君子嘗揭堂扁曰養拙。而守拙,趾拙。又伯兄季弟之所自號。則斯拙也。實某傳家心訣。故某以用拙顏斯堂。知某者莫如子。願以一言發其義也。維應曰諾。文且成。有難之者曰。有其實然後名隨之。文也者。施乎其質者也。若士尙甫非世所謂才諝臣乎。守劇郡典大州。以治最聞。入侍近密。出鎭藩維。無所往而不稱職。其張施劈畫。遇事風生。如利器之剸割而上駟之馳驟。故明主器其才。群公遜其能。卽士尙雖欲以拙自居。其誰信之。今彼強以自名。而子又強以文之。無乃乖於實而與質遠乎。維曰淺乎子之論拙也。夫拙之反爲巧。獨不觀於世之巧者乎。言而媕阿。行而脂韋。足不蹈乎衆避之塗。身必處乎自全之地。其當官任職也。觀陰陽隨俯仰。以便文塞責爲能事。以致命遂志爲非計。此其所以巧也。士尙有一於是乎。衆之所吐而獨茹焉。人之所向而獨背焉。疏於謀身而銳於報國。怯於趨利而勇於爲義。雖盡瘁鞅掌。不敢有獨賢之恨焉。蓋夷考其平生。則無一事不與巧者相左。以是而名其堂。有餘拙矣。然以維意之。乃士尙所取於拙。固有在也。嘗聞鈍者利之質也。靜者動之根也。古之君子含光藏用。智而若愚。辯而若訥。以屈爲伸。以後爲先。蓄於中者恒有餘。而發於外者有時而不盡也。以士尙之才之美。世之人無能出其右。明固無不照。然而明有所不可盡。必斂之以晦焉。勇固無不果。然而勇有所不可窮。必濟之以懦焉。莫邪之鋒而有所不斷也。纖驪之足而有所不騁也。則在我者常恢然有裕。而天下之事。將無往而不可濟也。夫然則其以拙爲用。非不能巧也。巧而有不用也。巧而有不用。然後天下之大巧歸焉。士尙故優爲之。然亦不可以不之勉也。本之於先訓。則可以見繼述之重焉。同之於弟兄。則可以見塤箎之協焉。名堂之義。斯爲美矣。若其江山之勝。景物之繁。非目擊不能悉。今姑未暇及焉。
용졸당기(用拙堂記)
백마강(白馬江)이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가림군(加林郡) 남쪽 지점에 이르러 남당강(南塘江)이 되는데, 이 강 연안에 당우(堂宇)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산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데다 너른 들판 또한 볼 만한 경치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이 집이 바로 민 관찰 사상(閔觀察士尙 사상은 민성휘(閔聖徽)의 자(字)임)씨의 별장(別莊)이다.
사상이 호남에서 치서(馳書)하여 나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세상살이에 서툰 것으로 말하면 비둘기 정도일 뿐만이 아니다. 벼슬살이 20년에 왕명을 받들고 방백(方伯)이 되기까지 하였는데, 달팽이 껍질 같은 집이라도 몸을 가릴 만한 처소 하나 여태 마련하지를 못하였다.
[주-D001] 내가 …… 아니다 : 처세술(處世術)에 어두워 어리숙하기만 하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작소(鵲巢)에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들어 사네.[維鵲有巢維鳩居之]”라고 하였는데, 비둘기는 원래 성격이 졸렬하여 집을 짓지 못한 채 까치집을 빌려 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난해 영남 지방의 관찰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는데, 그야말로 외지고 누추하기 그지없긴 하나, 그래도 내 마음은 즐겁기만 하여 관직을 물러난 뒤엔 여기서 살며 생을 마칠 계획으로 있다.
삼가 생각건대, 선군자(先君子)께서 일찍이 당우의 편액(扁額)을 내거시면서 ‘양졸(養拙)’이라 하셨는데, ‘수졸(守拙)’과 ‘지졸(趾拙)’이 또 백형(伯兄)과 막내 아우의 자호(自號)이고 보면, 이 졸(拙)이란 글자야말로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심결(心訣)인 듯도 싶다.
그래서 나 역시 용졸(用拙)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집의 이름으로 삼으려 하는데, 나를 아는 이로는 그대만한 사람이 없으니, 한마디 말을 하여 이에 대한 뜻을 드러내 주었으면 한다.”
하기에, 내가 쾌히 응락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글을 작성하려 할 즈음에 어떤 이가 문제를 제기하기를,
“어떤 실상이 있고 난 뒤에야 그에 따른 이름이 붙여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글이라는 것도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사상(士尙)씨 같은 이로 말하면 세상에서 재지(才智)가 있는 신하라고 일컬어지고 있지 않은가. 번화한 고을의 수령으로 나가고 큰 지방의 방백으로 있을 때 치적(治績)이 으뜸으로 손꼽혔었고, 근밀(近密)한 자리에서 입시(入侍)할 때나 변진(邊鎭)을 맡아 다스릴 때 어디에서고 직책에 걸맞게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가 일을 시행하고 결단을 내림에 있어서는 어떤 일을 만나든 바람 소리가 휙휙 나면서 마치 예리한 칼로 물건을 베듯 하고 최고급의 사마(駟馬)가 치달리듯 하였으므로, 임금도 그 재질을 인정하고 제공(諸公)도 능력 면에서 그에게 양보하곤 하였다. 그러니 가령 사상이 어리숙하다는 것으로 아무리 자처하려 한들 그 누가 이것을 정말로 믿겠는가.
그런데 지금 그가 억지를 부리며 졸(拙)로 자기의 이름을 삼은 상황에서 그대가 또 기어이 이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한다면, 실상에 이름이 수반되고 바탕 위에서 글이 성립된다는 측면에서 살펴볼 때 너무도 동떨어진 일이 아니겠는가.”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졸(拙)에 대해서 그대가 논하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천박한가. 대저 졸(拙)의 반대는 교(巧)라고 할 것인데, 그대만 유독 세상의 교자(巧者)를 보지 못한단 말인가.
말은 어물쩍 넘겨 버리기 일쑤이고 행동은 지위(脂韋) 같으며, 남들이 피해 다니는 길목에는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않은 채 어떻게 해서든 안전지대에서만 처신하려 안달한다.
[주-D002] 지위(脂韋) : 기름과 무두질한 가죽. 즉 시속(時俗)에 아첨하며 부침(浮沈)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楚辭 卜居》
그런 자가 관직을 얻고 나서는 성쇠(盛衰)의 기미를 잘 살펴 이랬다 저랬다 행동을 뒤바꾸고, 그저 형식적으로만 처리하여 입막음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며, 신명을 다 바쳐 자기 뜻을 관철하는 것은 할 짓이 못 된다며 비웃곤 한다. 이것이 바로 교자(巧者)들의 행태인데, 사상에게 이 중 하나라도 그런 요소가 있기나 하던가.
사람들이 쓰다고 뱉는 것을 홀로 꿀꺽 삼키고, 사람들이 몰려갈 때 그만은 혼자서 등돌린다. 자기 몸 위하는 것은 어리숙하나 나라 보답하는 일엔 온 정력을 기울이고, 이익을 좇는 일에는 겁내면서도 의리를 행함엔 용맹스럽다. 그래서 죽도록 일 시키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게 한다 해도 감히 혼자만 고생한다며 한을 품지 않을 그런 인물인 것이다.
대개 그의 평소 행적을 객관적인 안목으로 살펴보건대, 어느 일 하나 교자(巧者)와는 상반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 졸(拙)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또 그의 집 이름을 삼았고 보면 정말 졸(拙)한 그의 성품이 흘러넘친다 하겠다.”
하였다.
그러나 정작 내 생각에는, 사상이 졸(拙)이라는 글자를 취한 이면에는 뭔가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일찍이 내가 듣건대, 둔중함은 예리함의 바탕이 되고 고요함은 움직임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옛날의 군자들을 보면, 광채를 속에 간직하고 활용을 잠시 유보한 채, 지혜로우면서도 바보처럼 행동하고 달변의 소유자이면서도 어눌한 듯 말하면서, 스스로 굽혀 장차 펼 기회에 대비하고 뒤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앞장선 것으로 여겼는데, 이처럼 속에 온축된 것이 항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내놓을 때가 되면 무한정하게 쏟아져 나오곤 하였던 것이었다.
사상의 아름다운 재질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앞설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총명함으로 볼 때 무엇이든 비춰 보지 못하는 것이 없을 텐데도 그 총명을 다 발휘하지 않은 채 꼭 안으로 거두어 모르는 척하고, 그의 용맹성으로 볼 때 과감하게 나서지 못할 일이 없을 텐데도 그 용맹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은 채 꼭 나약한 듯 일을 처리해 버리곤 한다. 이렇듯 막야(莫邪)와 같은 명검(名劍)을 쥐고 있으면서도 휘두르지 않는 때가 있고, 섬려(纖驪)처럼 빠른 발을 갖고 있으면서도 치달리지 않는 때가 있고 보면,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늘 여유작작하기만 하여 어떤 세상 일이든 처리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대저 그렇다고 한다면, 그가 졸(拙)을 취하려 하는 것은 교(巧)하지 못해서가 아니요 교하면서도 그것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점이 있어서라고 해야할 것인데, 교(巧)하면서도 쓰지 않는 점이 있어야만 천하의 대교(大巧)라는 차원에 진입할 수가 있는 법이다. 사상 정도의 인물이라면 본디 이런 일을 넉넉히 해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또한 더욱 힘쓰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돌아가신 부친의 가르침에 근본하였고 보면 계술(繼述 선조의 뜻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것)하는 의미를 그가 얼마나 중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알 수가 있고, 형제의 자호(自號)와 같이하였고 보면 그가 얼마나 훈지(塤篪 질나팔과 저로, 형제 사이를 말함)의 화목함을 도모하려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당우(堂宇)에 명호(名號)를 붙이는 의리로 볼 때 얼마나 아름답게 되었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그곳 강산의 승경(勝景)과 경물(景物)의 번화함에 대해서는 내가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서 자세히 알 수가 없기에 지금은 우선 언급하지 않기로 하였다.
2020 임용한문 전공A 10. 다음 작품에서 사건 전개의 핵심이 되는 물건을 찾아 쓰고,이 물건이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한 역할과 밑줄 친 ㉠의 의미를 본문의 내용과 연관지어 서술하시오. [4점]
女乃抽枕邊金尺以與曰 郞君可持此 置之國都市大寺前下馬石上 必有記取者 雖至困辱 幸勿忘也 生曰 諾 … (중략) … 生出門數步 顧視則乃一新塚也 慘然抆淚而歸 至大寺前 果有方石存焉出金尺 置之石 行者不顧 日且高 有女三 皆素服市過之 後一女見尺 繞石三環而去 有頃 女率健奴數輩來 縛生曰 此少娘子殉葬之物 爾其墓賊乎 生重女之托 情愛亦篤 俛首取辱 不敢開口 見者皆唾鄙之 旣至其第 縛致生階下 侍中倚烏几 坐廳事中 座後垂珠箔其下侍婢數十 相排競看曰 貌是儒者 行則賊也 侍中取金尺認之泣曰 果吾女殉葬之尺也 簾內有哭聲嗚嗚 侍婢皆掩泣 侍中搖手止之 問生曰 爾是何人 得之何處 生答曰 我是太學生 得之墓中侍中曰 汝以㉠詩禮發塚可乎 生笑曰 請解吾縛 得近閤前 欲報吉語 大人將思報德 反加怒歟 侍中卽命解縛上階 遂歷言之 侍中色慚良久曰 寧有是耶 婢僕莫不相顧吁歎 簾中泣且語曰 事不可測驗而罪之 未晩 聞生之說 則吾女容儀服飾 一如平生 必無疑也 侍中曰 然卽令備畚鍤具兜子 吾其親往 留數奴守生而去 旣至墓域丘原依舊 乃異而發之 女顔色如生 心下微溫 令乳媼擁而轝還 不假巫醫 勿撓而已 至日暮方蘇 視父母細哭一聲 氣且定 父母問曰爾之死去 有何異也 女曰 吾以爲夢 是乃死乎 吾無異焉爾 忸怩父母固問 女始肯言 一符生所說 闔門擊節驚怪 於是 館待生甚厚*畚: 삼태기- 申光漢, 何生奇遇傳 - |
[출전원문]
하생기우전(何生奇遇傳)기재기이(企齋記異)
고려조에 하생(何生)이란 사람이 있어 평원(平原)에 살았다. 집안이 대대로 한미한데다 일찍 부모를 잃었다. 장가들려 하나 청혼하는 곳이 없었고 궁핍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풍도와 거동이 매우 뛰어나고 재주와 생각도 뛰어나, 마을에서는 그의 어짊을 칭찬하는 이가 많았다. 고을의 수령이 그 명성을 듣고 뽑아 태학(太學)에 맡겼다.
麗朝有何生者, 居平原, 家世寒微, 早失怙恃, 欲娶無所售, 窮不能自資. 然而風儀瑩秀, 才思穎拔, 鄕曲多稱其賢者. 州宰聞其名, 選補大學.
하생은 장차 단정히 차리고 서울로 올라가려는데 출발에 임하여 비복(婢僕)에게 말했다. “나는 위로 부모도 없고 아래로 처자도 없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너희들에게 이것저것 많은 말을 하겠느냐? 옛날 종군(從軍)은 신표를 버렸고, 사마상여(司馬相如)는 기둥에 글을 써서 약관에 모두 큰 뜻을 가졌었다. 내가 비록 둔하고 부족하나, 둘의 사람됨을 경모하고 있다. 다른 날 금의환향하여 돌아와 너희들을 영광스럽게 할 것이니, 가업을 잘 지켜 실추되지 않게 하길 바란다.”
生將整裝上都, 臨發語婢僕曰: “吾上無父母, 下無妻子, 尙何顧汝輩刺刺? 昔終軍棄繻, 相如題柱, 弱冠皆有大志. 吾雖駑蹇, 頗慕兩子爲人, 他日衣錦歸, 爲爾輩榮, 幸守舊業無墜!”
국학에 이르러 여러 선비와 재주를 겨루니 어떤 이도 앞설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하생은 장원급제하여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고 오만하게 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높은 뜻을 가졌으나, 당시 조정의 정치는 이미 어지러웠고 과거시험도 또한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럭저럭 사오 년 학사(學舍)에서 억울함을 안고 항상 못마땅해 즐겁지 않았다.
旣赴國學, 與諸生較藝, 莫能或之先者. 生以爲龍頭可捷ˎ靑雲可步, 驁然有高世之志. 時朝政旣亂, 選擧亦不以公, 荏苒四五載, 抱屈黌舍, 常悒怏不樂.
하루는 같은 학사의 선비에게 말했다. “채택(蔡澤)도 알지 못하는 것은 목숨이라. 당생(唐生)을 따라 결정하였소. 내가 듣건대 낙타교 곁에 점쟁이가 있는데 사람의 장수함과 요절함, 재앙과 복록을 말한다고 하오. 날짜를 작정해 장차 나아가 점을 쳐 의혹을 해결하겠소.”
一日, 語同舍生曰: “蔡澤所不知者壽, 從唐生決之. 吾聞駱駞橋傍, 有卜師, 言人壽夭禍福, 期以日月. 吾將就卜, 以決狐疑.”
드디어 자기 집으로 돌아와 상자 속을 뒤져 간직했던 보배와 금전 몇 냥을 얻어서는 품고 갔다. 점쟁이는 말했다. “부유함과 존귀함은 공께서 본디 가진 바이나, 다만 오늘이 매우 길하지 못하오. 점은 명이괘(明夷卦)가 가인괘(家人卦)로 감을 얻었소. 명이괘는 밝음이 땅으로 들어가는 상이고, 가인괘는 세상을 피해 한가히 사는 사람의 곧은 지조를 만남이니 이롭소. 국도(國都)의 암문을 나가 빨리 뛰어 날이 저물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음이 옳소. 단지 재앙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또한 아름다운 짝을 얻으리다.”
遂歸私第, 探篋中, 得寶藏金錢數枚, 懷之而往. 卜師曰: “富貴, 公所固有, 但今日甚不吉, 占得明夷之家人. 明夷者, 明入地中之象; 家人者, 利見幽人之貞. 可出國南門疾走, 不至日暮, 不宜還家, 非但度厄, 且得佳偶.”
하생은 그 뜻에 미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일어나 작별하고는 인하여 국도 남문으로 나갔다. 가을 산은 가히 아름다웠고 뜻에 따라 길을 가던 바 해가 이미 저물어 어두운 것도 깨닫지 못했다. 사방을 돌아보니 인적이 끊어져 의탁해 잘 곳도 없었고 허기와 고단함도 또한 밀려왔다. 길 곁을 배회하는데 때는 팔월 십팔일이었다. 산에 달은 아직 뜨지 않았는데 멀리 나무속을 바라보니 등불 하나가 별빛처럼 깜빡였다.
生不能無惑志, 瞿然起別, 因出國南門. 秋山可愛, 隨意所適, 不覺日已昏黑, 四顧夐絶, 無所托宿, 飢困且至, 傍路徘徊. 時則仲秋十八日, 山月未吐, 望見遠樹間, 孤燈點星.
생각에 사람의 집이 있으려니 하고 길을 찾아 앞으로 갔다. 싸늘한 안개는 풀에 엉기고 내린 이슬은 촉촉했다. 그곳에 이르니 달 또한 밝았다. 바라보니 작고 화려한 집 하나가 있는데, 그림 같은 본채가 담장 밖으로 높이 솟았고, 사창 안에는 촛불 그림자가 푸르게 빛났다. 바깥문은 반쯤 열렸는데, 조금도 사람의 자취는 없었다. 하생은 이상해 하며 가만히 들어가 엿보니 나이가 열여섯 살쯤 되는 미인이 있었다. 각진 베개에 의지하여 반쯤 비단 이불에 가린, 근심스런 얼굴에 고운 태도는 눈으로 바로 응시하기 어려웠다. 이에 턱을 괴고 크게 탄식하더니, 가늘게 두 절구를 읊었다.
意有人家, 索途前行, 寒煙蔓草, 零露瀼瀼, 至則月亦明矣. 見一屋, 小而麗, 畫堂高出墻外, 紗䆫裏燭影靑熒, 外戶半開, 稍無人跡. 生異之, 潛入而窺, 有美人年可二八, 欹倚角枕, 半掩錦被, 愁容麗態, 目難定視. 乃支頤太息, 微吟二絶曰:
향로에 연기 다하고 동방은 닫혔는데
한가로운 근심에 뜻 없이 원앙을 수놓도다.
편지 한 번 끊어지니 가을하늘 싸늘하고
지는 달 아름다이 대들보를 비추도다.
분갑에는 먼지 날고 구리거울은 녹슬어
꿈속에 만난 님 잠깨니 허황하도다.
비단 휘장의 밤은 깊어 기러기가 이르고,
늙은 홰나무, 성긴 버들에 밝은 달이 비추도다.
寶篆煙消閉洞房,
閑愁無意繡鴛鴦.
鴈書一斷秋空冷,
落月亭亭照屋樑.
塵留粉匣綠生銅,
夢裏逢郎覺是空.
羅幌夜深霜信早,
古槐踈柳月明中.
시의 뜻을 본즉 수자리 사는 이의 아내 같고, 용모와 행동이 또한 귀한 집 처녀와 같았다. 지키는 자가 있을까 겁내고 떨며 물러나려다가 발소리가 저벅저벅 하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觀詩意, 則若戍夫之婦, 而容儀居止, 又似貴家處子. 懼有人守之者, 慄然而退, 不覺足音跫然.
미인은 시녀를 불러 말했다. “금환아! 옥환아! 창 밖에 저벅저벅 소리 내는 자가 누구냐?”
두 시녀가 함께 대답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바야흐로 선잠이 들었습니다. 뒷마루 창밖에 달이 밝을 뿐 또 누가 있겠습니까?” 미녀는 가느다란 어조로 말했다. “어젯밤에 아름다운 꿈이 있어, 진정 너에게 말했었다. 이는 좋은 선비가 옴이 아니냐?” 인하여 서로 함께 농담하며 웃었다.
美人呼侍兒曰: “金環! 玉環! 䆫外跫音者誰也?” 侍兒齊應而至曰: “吾兩人方假睡後廳, 䆫外月明, 復何人乎?” 女細語曰: “昨夜有佳夢, 吾固告汝矣, 莫是吉士來歟?” 因相與謔笑.
하생은 어렴풋이 그 소리를 듣고 또 점쟁이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속으로 스스로 기뻐하고는 드디어 문을 두드리고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곧 두 시녀가 문을 밀치고 대답하여 말했다. “산에 있는 집이고 밤도 깊은데, 손님은 무엇 하는 사람이시오?” 하생이 말했다. “나는 봄을 찾는 최호(崔護) 술에 목말라 음료수를 구함이 아니고 홀로 가다가 길을 잃었을 뿐이오. 하룻밤 유숙을 부탁하오.” 시녀는 혀를 차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작은 낭자가 홀로 우거하는 곳이니 진실로 손님이 잘 곳은 아닙니다.” 하고는 곧 문을 잠그고 들어갔다.
生怳聞其語, 又思卜師之說, 心內自喜. 遂敲門作謦欬聲. 卽有二侍兒撝門應曰: “山堂夜深, 客何爲者也?” 生曰: “吾非尋春崔護渴酒求漿, 獨行失路, 願托一宿.” 侍兒咄曰: “是處小娘子獨寓, 固非客宿之所.” 便鎖門而入.
하생은 마음이 미혹되고 생각이 짧아 망연히 넋을 잃고, 문에 기대 방황할 뿐이었다. 밤이 오래되자 홀연 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에 놀랐는데 앞의 시녀가 문을 열며 말했다. “낭자께서는 손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아시고서, 말하기를 ‘산에 승냥이 호랑이가 많고 사방에 이웃도 없다. 곤궁하기에 와서 의탁했는데 거절하면 상서롭지 못하다.’하시고, 사랑방에 거처토록 허락하셨습니다. 손님께서는 들어와 유숙하십시오.”
生心迷意短, 芒若有喪, 倚戶彷徨而已. 夜久忽驚門開鏗鈜, 則前之侍兒啓門曰: “娘子知客定非常人, 以爲山多豺虎, 四無隣比, 窮而來投, 拒之不祥, 許於便房下處矣. 客可入宿.”
하생은 절해 사례하고 머물 곳으로 나아갔다. 깨끗한 방은 꾸밈이 없어 자연스러웠고 잠자리도 곱고 아름다웠다. 방안에는 황금 빛 주렴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옥돌로 된 벼루와 채색 붓과 꽃무늬 종이 몇 폭이 있었고, 곁에는 은 항아리와 향을 먹인 기름과 향로가 있어 연기가 그윽하게 빛나며 향기롭고, 또 제공하는 술과 음식도 극히 향기롭고 깨끗했다. 시녀는 조금 뒤 주인 낭자의 명령으로 와서 물었다. “과부의 거처라 외지고 누추합니다. 손님은 무슨 연고로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生拜謝, 就所舍, 淨室翛然, 枕席鮮美. 房內置金縷案, 上有玉硯ˎ綵筆ˎ花牋數幅, 傍則銀缸蘭膏, 寶鴨沈煙, 照耀芬馥. 又供酒食, 皆極香潔. 侍兒尋以主娘之命來問曰: “寡居僻陋, 客緣何至此?”
하생은 방안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헤아리고는 여자의 뜻을 시험하고자 하며 이에 답했다. “소생은 일찍이 재주와 명성에 힘입어 국빈(國賓)으로 성균관에 들어갔습니다. 항상 곡앵시(谷鸎詩)를 읊고, 늘 진량(陳良)의 학문을 비루하게 여겼습니다. 망령되이 출세에 뜻을 두고 고위직을 얻을 수 있다 여기며 공로를 가리켜 취할 수 있다 하고는, 부유함과 존귀함이 하늘에 있으며 길함과 흉함이 사람에게 말미암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지나다 들은 점쟁이의 말로 마침내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아울러 점쟁이의 말을 고했다.
生度室中無他人, 欲嘗女意, 乃答曰: “鯫生早負才名, 來充國賓.
常歌谷鸎之詩, 每陋陳良之學, 妄意靑紫可收拾, 功業可指取, 不識富貴在天, 吉凶由人. 今日過聽卜師之言, 乃至於是.” 幷以卜師之言告之.
시녀는 말을 듣고 갔다가 웃으면서 돌아와서는 다시 말했다. “연약한 저도 또한 점쟁이의 말을 믿고 재액을 면하러 여기에 왔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방이 비록 누추하나 청컨대 하룻밤 유숙함이 좋겠습니다.” 하생은 그 말이 더욱 이상해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다. 즉시 책상 위의 꽃무늬 종이를 가져다 단편 시 두 장을 써서 시녀에게 부치며 말했다. “방을 빌리고 이미 은밀한 정의 많음이 이와 같으니 입으로 진술해 사례하기 어렵소.” 하고는 시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侍兒聞言而去, 笑而來復曰: “弱質亦信卜師之說, 度厄而來, 斯非偶然. 室雖陋, 請好一宿.” 生尤異於其言, 不勝技癢, 卽取案上花牋, 書短篇二章, 付侍兒曰: “借館已多, 慇懃如是, 口難陳謝.” 其詩曰:
맑고 맑은 은하수 그림자는 반이나 비꼈고
비단 발 무겁게 내려 구름을 가린 병풍이로다.
직녀의 베틀 곁 지남을 싫어하지 않으니,
도리어 엄군평이 객성 알아봄을 괴이해 하도다.
향기로운 기운은 끊임없고 구름은 비로소 흩어지는데
아름다운 절개 드높이나 봉황이 중매하지 않도다.
애끊는 하룻밤 외로운 베개의 꿈
문득 양대에 이르러 길 없음을 안타까워하노라.
淸淺銀河影半橫,
繡簾重下掩雲屛.
不嫌織女機邊過,
還恠君平識客星.
香塵脉脉雲初散,
玉節迢迢鳳不媒.
膓斷一宵孤枕夢,
却憐無路到陽臺.
시녀가 가지고 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꽃무늬 종이를 가지고 와서 하생 앞에 내놓았다. 바로 주인 낭자가 화답한 것이었다. 그 시에는 이렇게 말했다.
侍兒將去. 未須臾, 復持花牋, 致之生前, 乃主娘之所酬也. 其詩曰:
어젯밤 원앙침을 베고서
활짝 핀 꽃을 꺾어 가득 머리에 꽂는 꿈을 꾸었다오.
시녀와 함께 마음속의 일을 말하고
화장 경대를 보려고 하니 문득 부끄러움만 생긴다오.
달을 기다리려 열린 창을 밤에도 닫지 않았는데
조롱의 앵무새는 잠을 비로소 이루도다.
잎은 아름다이 떨어져 마음을 울리니
흡사 정이 없는 듯하나 다시 정이 있다오.
昨宵懶倚鴛鴦枕,
夢折繁花揷滿頭.
說與侍兒心內事,
欲看粧鏡却生羞.
待月踈欞夜不扃,
玉籠鸚鵡睡初成.
經心落葉琅玕響,
却似無情更有情.
하생은 시를 읽고 비록 여자의 뜻을 알았으나, 미덥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여자의 방을 보니 가까운데다 또 닫히지도 않았고, 시녀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엔 오로지 방안에서 배회할 듯이 하다가 걸어 드디어 나아갔다. 손을 가뿐히 하여 창을 열자 여자는 바야흐로 쓸쓸하고 근심스러이 앉아 마치 기다리는 바가 있는 듯했다. 하생은 나아가 함께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듣지 않았겠습니까? 세속의 노랫말에 말하기를 ‘손님이 있으면 문을 빌려 유숙시키고, 밤이 깊으면 곧 집을 빌려준다. 주인은 오리를 때리지 마소. 오리를 때리면 원앙이 놀라오.’라고 했습니다.”
生得詩, 雖知女意, 將信將疑. 見女之室, 近且無閡, 侍兒皆就睡. 初若便旋然, 履行遂進, 輕手開䆫, 則女方悄然愁坐, 若有所俟. 生就與調笑曰: “豈不聞乎? 『俚譜』曰: ‘有客借門宿, 夜深還借堂.’ 主人莫打鴨! 打鴨驚鴛鴦.”
여인은 땋은 머리를 낮추고 교태롭게 수줍어하며 다만 말하기를, “업보의 인연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피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때는 쇠잔한 등불이 병풍을 등지고 밝았다가 꺼지려 했다. 여인은 장차 누우려다가 하생에게 말했다. “제가 일찍이 위소주(韋蘇州)의 시를 사랑했는데, ‘홀로 사는 사람 장차 자려고 띠를 풀었다가 다시 맨다.’라고 말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밤은 더욱 그 진의를 알겠습니다.”
女低鬟嬌羞, 但曰: “業緣已成, 不可躱也.” 時殘燈背屛, 欲明欲滅. 女將就臥, 語生曰: “吾嘗愛韋蘇州詩, 有曰: ‘幽人將遽眠, 解帶飜成結.’ 今夜益知其眞也.”
서로 함께 즐거이 희롱하고 매우 다정함을 다했다. 밤이 장차 밝으려는데 여인은 하생의 팔을 베고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생이 놀라 말했다. “겨우 좋은 만남을 이루었는데 갑자기 그대가 이와 같음은 어째서이오?”
相與讙謔, 極盡繾綣.夜將曉, 女枕生臂, 嗚咽流涕. 生驚曰: “纔成好會, 遽爾如此奚?”
여인이 말했다. “여기는 현세의 인간 세상이 아닙니다. 저는 바로 시중 아무개의 딸로 죽어서 여기에 묻힌 지 지금 이미 사흘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오랫동안 권세의 요직에 있으면서 눈 흘김에 남을 얽어 상해함이 매우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다섯 아들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다섯 오라비는 모두 아버님보다 앞서 요절했고, 제가 홀로 곁에 있다가 지금 또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상제께서 저를 불러 명령에 말하기를 ‘네 아비는 조금 뒤에 큰 옥사에 국문을 받을 것이고 죄 없는 수십 명은 살아날 것이다. 지난날 남을 얽어 상해한 죄를 속죄할 수는 있으나, 다섯 아들은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어 보낼 수 없겠고, 마땅히 너를 보내 돌아가게 하리라.’하여 저는 절하고 물러났는데, 기한이 다음날 새벽까지이므로, 이를 지나면 다시금 깨어날 가망이 없었습니다. 지금 낭군을 만났으니 이 또한 운명입니다. 길이 의탁해 좋아하며 끝까지 수건과 빗을 받들고자 하오나,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女曰: “此實非人世. 妾乃侍中某之女也. 死而葬此, 今已三日矣. 吾父久居權要, 以睚眦中傷人甚衆. 初有五子一女, 而五娚皆先父夭折, 妾獨在側, 今又至此. 昨上帝召妾命之曰: ‘爾父頃鞫大獄, 全活無罪數十人, 可贖前日中傷人之罪. 五子死已久, 不可追也, 當遣爾歸.’ 妾拜而退. 期在曉日, 過此則更無其蘇之望. 今者邂逅郎君, 是亦命也. 欲托永好, 終奉巾櫛, 未識許否?”
하생도 또한 울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응당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하겠소.” 여인이 이에 베갯머리에서 금척(金尺) 하나를 꺼내 주며 말했다. “낭군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가서 국도의 저자거리 큰 절 앞에 있는 하마석 위에다 올려놓으십시오. 반드시 알아보는 자가 있을 겁니다. 비록 곤욕을 당하더라도 제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생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여인이 하생에게 빨리 일어나 떠날 것을 재촉했다. 드디어 손을 맞잡고 이별하며 시 한 구절을 읊어 하생을 배웅했다.
生亦泣曰: “苟若子言, 當死生以之.” 女乃抽枕邊金尺以與曰: “郎君可持此, 置之國都巿大寺前下馬石上, 必有記取者, 雖至困辱, 幸勿忘也.” 生曰: “諾.” 女促生起. 遂握手相別, 口占一絶送生, 曰:
산꽃이 갓 떨어지고 새소리 정답더니
봄소식이 무단히 어둠 속에도 돌아왔네.
한 번 생명을 맡겨 은의가 중하게 되었으니
어서 금척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나가시오.
山花初謝鳥關關,
春信無端暗裏還.
一托死生恩義重,
早將金尺出人間.
하생도 한 구절을 읊어 이별을 하고 또 여인의 뜻을 다짐했다.
生亦留一絶以別, 且以固女之意. 詩曰:
꽃은 비단 장막 속에 있고 푸른 구름이 잠겼는데
노니는 벌 찾아드는 걸 또 허락하시려오.
분명한 소매 속의 황금 자를 가지고
인정의 깊고 얕음을 재어보고 싶어라.
花藏繡幕碧雲沈,
肯許遊蜂取次尋.
分明袖裏黃金尺,
欲就人情度淺深.
여인이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첩이 창류(倡類)가 아닌데 어찌 이토록 박하게 대하십니까? 나가시는 길이나 잘 살펴 가시고 제 마음이 변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생이 문을 나와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바로 새로 쓴 무덤만 하나 있었다. 슬픈 마음으로 눈물을 닦으며 돌아와서 큰 절 앞에 이르니, 과연 네모난 반석이 하나 있었다. 금척을 꺼내 돌 위에 올려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 있게 보는 이가 없었다.
女掇泣曰: “妾非倡類, 何待之薄? 但得好返, 莫慮相渝.” 生出門數步顧視, 則乃一新塚也.慘然抆淚而歸, 至大寺前, 果有方石存焉. 出金尺置之石, 行者不顧.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소복 차림을 한 세 여인이 시장을 나왔다가 지나가더니, 뒤에 가던 한 여인이 금척을 발견하고는 반석 주위를 세 번 돌고 돌아갔다. 얼마쯤 지나서 그 여인이 건장한 노복 몇 명을 데리고 와서는 하생을 잡아 묶고는 말했다. “이것은 작은 아씨 무덤에 순장하였던 물건이다. 너는 묘 도둑이구나.”
日且高, 有女三, 皆素服市過之, 後一女見尺, 繞石三環而去. 有頃, 女率健奴數輩來, 縛生曰: “此少娘子殉葬之物, 爾其墓賊乎!”
하생은 무덤 속 여인의 부탁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도 도타운지라 고개를 숙이고 욕을 당하면서도 감히 입을 열지 않았다. 보는 자들이 모두 침을 뱉으며 더럽게 여겼다. 그 집으로 끌고 가서 하생을 뜰아래에 묶어 놓았다. 시중이 오궤(烏几)에 기대어 청사(廳事)에 앉아 있고 자리 뒤에는 주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시녀들이 수십 명 둘러 모여 있는데 서로 보려고 밀치면서 말했다. “생긴 것은 선비처럼 생겼는데 행실은 도적이구먼.” 시중이 금척을 가져다가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과연 내 딸의 무덤에 순장했던 금척이다.”
生重女之托, 情愛亦篤, 俛首取辱, 不敢開口. 見者皆唾鄙之. 旣至其第, 縛致生階下. 侍中倚烏几, 坐廳事中, 座後垂珠箔. 其下侍婢數十,
相排競看曰: “貌是儒者, 行則賊也.” 侍中取金尺認之, 泣曰: “果吾女殉葬之尺也.”
주렴 안에서 흑흑 울음소리가 들렸고 시녀들도 모두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시중이 손을 저어 그치게 하고 하생에게 물었다. “너는 뭐하는 사람이며 이 물건은 어디서 났느냐?” 하생이 대답하였다. “저는 태학생이고 이것은 무덤 안에서 얻었습니다.” 시중이 말했다. “네가 입으로는 시(詩)와 예(禮)를 말하면서 행실이 무덤이나 파는 도적과 같으니 될 말인가?”
簾內有哭聲嗚嗚, 侍婢皆掩泣. 侍中搖手止之, 問生曰: “爾是何人, 得之何處?” 生答曰: “我是大學生, 得之墓中.” 侍中曰: “汝以詩禮發塚可乎?”
하생이 웃으며 말했다. “제 결박을 풀고 가까이 가게 해주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대인께서는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셔야지 도리어 화를 내시면 되겠습니까?” 시중이 즉시 결박을 풀게 하고 뜰 위로 오르게 하니, 하생은 드디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시중이 부끄러운 얼굴로 한참 있다가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비복들이 서로 돌아보며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주렴 안에서 흐느끼며 말했다. “일이 헤아리기 어려우니 확인해보고 죄를 주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서생이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 딸이 살았을 적 용모나 복장과 똑같습니다. 필시 틀림없을 것입니다.”
生笑曰: “請解吾縛, 得近閤前, 欲報吉語. 大人將思報德, 反加怒歟?” 侍中卽命解縛上階. 遂歷言之. 侍中色慚良久, 曰: “寧有是耶?” 婢僕莫不相顧吁歎. 簾中泣且語曰: “事不可測, 驗而罪之未晩. 聞生之說, 則吾女容儀服飾, 一如平生, 必無疑也.”
시중이 말했다. “그래. 즉시 삼태기와 삽을 준비하고 가마를 갖추어라. 내 직접 가보겠다.” 노비 몇 명을 남겨 하생을 지키게 하고 무덤으로 갔다.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에 이상히 여겨 파보았다.
侍中曰: “然. 卽令備畚鍤具兜子! 吾其親往.” 留數奴守生, 而去. 旣至墓域, 丘原依舊.
여인은 얼굴빛이 살아 있는 것과 같았고 가슴에는 따스한 기운이 조금 있었다. 유모 할미를 시켜 싸안고 수레에 태워 돌아왔다. 의원을 부를 겨를도 없어서 요동되지 않게 가만히 놓아두었는데, 해가 저물 무렵 바야흐로 깨어났다. 부모를 보고 가늘게 흐느끼더니,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부모가 물어보았다. “네가 죽은 뒤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더냐?” 여인이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저는 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죽음이었습니까? 이상한 일은 없었습니다.” 부모가 굳이 물으니 여인이 비로소 말을 하는데, 하생이 했던 말과 꼭 들어맞았다. 온 집안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되자 하생에 대한 대우가 퍽 좋아졌다.
乃異而發之, 女顔色如生, 心下微溫, 令乳媼擁而轝還, 不假巫醫, 勿撓而已. 至日暮方蘇, 視父母細哭一聲. 氣且定, 父母問曰: “爾之死去, 有何異也?” 女曰: “吾以爲夢, 是乃死乎? 吾無異焉爾.” 忸怩. 父母固問, 女始肯言, 一符生所說. 闔門擊節驚恠. 於是館待生甚厚.
며칠이 지나 여인이 건강을 회복하였다. 시중이 성대한 잔치를 열어 하생을 위로하고 이어 집안 형편이며 장가를 들었는지 물었다. 하생은 장가는 아직 들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평원(平原) 고을의 교생(校生)이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시중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더니 말했다. “하생은 용모와 기개로 보아 실로 보통 사람이 아니니, 사위로 삼는 데 있어 무슨 망설일 게 있겠소? 다만 집안이 우리와는 맞지 않고 일도 또한 꿈같이 허탄하니, 이번 일로 해서 그와 혼사를 이룬다면 세상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길까 염려되오. 내 생각으로는 많은 답례품을 주어서 보답하는 것이 좋겠소.”
數日女已復常. 侍中張盛宴以慰生, 仍問家世, 又問娶不. 生答以不娶, 父則平原校生, 沒已久矣. 侍中頷之, 入與夫人謀曰: “何生容貌才氣, 實非常人, 妻之何疑? 但家世不敵, 事又夢誕, 因而與之, 恐駭物論, 吾欲厚遺之.”
부인이 말했다. “이 일은 대인(大人)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니, 부녀자가 어찌 간여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는 다시 잔치를 열고 하생을 위안하였는데, 하생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면서 혼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하생은 분한 마음으로 처소로 돌아와서 가슴을 치고 속상해하며 여인이 약속을 저버린 것을 원망했다. 이어 시를 한 편 지어 여인의 유모 할미에게 부탁하여 여인에게 전하게 하였다.
夫人曰: “此在大人度內, 婦子何預?” 一日, 又開宴慰生, 問以所欲, 曾無一語及婚媾事. 生怏怏歸所館, 拊膺腐心, 怨女渝約. 乃成短篇寫小紙, 託女乳媼通于女. 詩曰:
흙탕물 옥에 묻어도 옥은 변함이 없을 테고
봉황이 제 둥지를 찾았으니 난새를 돌아보려 하겠는가?
팔위의 눈물 자국 아직도 또렷한데
다만 이제 도리어 꿈속에서나 보겠구나.
泥雖點玉應無汚,
鳳已歸巢肯顧鸞?
臂上淚痕紅未滅,
只今還怍夢中看.
여인이 시를 보고 놀라 그 동안의 사정을 물어보고 비로소 부모가 하생을 배반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았다. 부모가 속으로 딸의 마음을 알고 병의 빌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딸이 울면서 말했다. “부모를 멀리하는 것도 불효입니다만 부모의 사소한 잘못을 들추는 것도 역시 불효라고 합니다. 감히 소원하게 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잘못을 들추어 부모님께 누를 끼칠까 염려가 됩니다.” 부모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못할 말이 무엇이냐?”
女見詩驚問, 始識父母有背生之志, 遽稱疾廢飮食. 父母心知女意, 問疾所祟. 女泣曰: “愈踈, 不孝也. 不可磯, 亦不孝也. 非敢爲踈, 恐爲磯也.” 父母曰: “欲言則言, 又誰諱也?”
여인이 비녀와 귀걸이를 풀고 일어나 절하고 대죄하여 말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어, 깊은 사랑 받은 막내 어여쁘게 자랐답니다. 정숙하게 집안에서 음식 솜씨 훌륭했고 저녁 문안 아침 조반 탈 없이 잘 해냈답니다. 옥황상제 노여움이 악한 집에 재앙 내려, 망극하신 부모 은혜 근심으로 갚게 됐답니다. 다섯 아들 두었는데 부모 먼저 죽게 되어 죄 없는 우리 남매 무덤 덮은 가시 덩굴, 하늘은 밝으시어 덕 닦음을 다 아시고, 한 가지 착한 일로 이 몸에 은혜 내리셨지요.
女脫簪珥, 起拜待罪曰: “父兮生我, 母兮鞠我.慈深季女, 婉孌婭姹.室家之壼, 酒食是宜. 問寢尸饔, 庶無貽罹. 上帝疾威, 殃此積惡. 罔極之恩, 反貽伊戚. 有子五人, 宛其死滅. 哀我無辜, 墓門成棘. 昊天曰明, 及爾修德. 一善陰騭, 庸錫女士.
혼백 돌아갈 길이 있어 지하에서 일어나서 잠 못 들고 가슴 치며 원한 맺는 긴긴 밤에, 동산 위엔 달도 밝고 반가워라 님을 만나 단단히 맺은 언약 같이 죽자 하였답니다. 담을 뚫고 지붕 뚫어 죽은 목숨 살렸으니 황천엔 길 없으나 무덤 굴엔 통로 있겠지요. 즐겁고 즐거우니, 그 즐거움 크답니다. 나무 꺾지 않으시고 이슬 길도 아니 가고, 은혜 갚을 생각하다 이에 사랑을 주었답니다.
還魂有路, 九原可起.中宵寤擗, 怨結永夜.月出皎兮, 逢此粲者. 綢繆一誓, 已成同穴.穿墉啅屋, 生死肉骨. 黃泉無閒, 大隧有空. 融融洩洩, 其樂亦孔. 仲非折檀, 女豈霑露? 宜何報德? 乃敢寁好.
아버님! 어머님! 이제부터 앞으로 복 받을 일 많이 하여 후손 편안케 하옵소서. 어찌 운명을 어기고 제 생각은 않으신지요. 끼륵끼륵 기러기 울고 아침 햇살 비쳐오니 방실방실 복사꽃은 때 놓치면 아니 된답니다. 님을 다시 만나는 것은 저의 소원, 저의 결심이랍니다. 시경 용풍 백주시는 굳은 마음 맹세한 시거니, 이럴 줄 알았다면 깨어나지 말 것을. 백주시 지은 공강이여! 귀신 되어 함께 가리.”
父兮母兮, 自今伊始. 將求多福, 貽燕後嗣. 云胡奪命? 不諒人只. 嗈嗈鳴鴈, 禮宜旭日. 灼灼夭桃, 戒在迨吉. 重成邂逅, 我願我則. 「柏舟」之詩, 矢以靡慝. 早知如此, 莫若無生. 共姜有鬼, 携手同行.“
시중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말했다. “내가 진실되지 못하고 사랑이 모자라서 너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구나.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남녀의 만남은 하늘이 정해둔 것이니 너를 위해 성사시켜 보도록 하마.” 모부인(母夫人) 역시 위로하며 달래었다. 여인은 비로소 일어나 머리 빗고 화장을 하고는 유모를 통해 하생에게 답시를 적어 보냈다.
侍中揮涕噫噫曰: “我之不忠不慈, 使汝至此!悔將及乎? 紅繩繫足, 自有定命, 當爲汝成之.” 母夫人亦慰喩之. 女始起梳粧, 仍乳媼乃酬生, 詩曰:
갓 솟은 환한 달빛 산골에 가득한데
도리의 봄 마음을 나비가 이미 알았더라.
돌 위에서 맺은 원한 노랫소리 울려나니
일찍이 옥황께서 이 몸 운명 정하셨네.
蝦蟆吐月光初滿,
桃李含春蝶已知.
石上結怨歌洩洩,
玉皇曾定此生期.
시중이 듣고 “이 일은 늦출 수가 없겠구나.” 하고는 즉시 하생을 불러 혼인시킬 뜻을 전달하며 말했다. “혼례에 쓰이는 물건을 우리가 마련하겠네.” 드디어 하생을 그의 숙소로 돌려보냈다가 날을 가려 예를 갖춰 맞아드렸다. 하생이 여인과 다시 만나 비단 장막을 치고 촛불을 밝히고 마주하니 완연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侍中聞之曰: “此不可緩也.” 卽召生喩以結好之意. 且曰: “禮幣之具, 吾當盡辦.” 遂還生于其邸, 擇日備禮迎之. 生旣與女重遘, 錦帳紅燭相對, 宛然莫辨眞夢.
하생이 말했다. “새로 결혼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인데,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만나는 것이야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소? 나와 그대는 새 즐거움과 옛 정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니, 세상의 많고 많은 부부 가운데 우리와 같은 자가 누가 있겠소?” 여인이 말했다. “일찍이 들으니 불가(佛家)에 삼생설(三生說)이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가 바로 이것이랍니다. 과거에 이미 낭군과 더불어 부부가 되었고 현재 또 낭군과 더불어 부부가 되었는데 다만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삼생의 인연을 맺은 일이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生曰: “其新孔嘉, 其舊如之何? 吾與子新歡舊意, 自異尋常, 誰無夫婦, 孰如我員?” 女曰: “嘗聞釋氏有三生之說, 是謂去ˎ來ˎ今. 過去已與君爲夫婦, 今生又與君爲夫婦, 第未知方來何如. 三生結緣, 古亦有之乎?”
이로부터 부부가 되어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여 비록 양홍(梁鴻)과 맹광(孟光), 극결(郤缺)과 그 아내라도 견줄 바가 못 되었다. 이듬해 하생은 대과에 합격하여 보문각(寶文閣)에서 첫 벼슬살이를 시작해서 뒤에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다. 여인과 부부가 되어 무릇 사십 여 년을 함께 살았다. 두 아들을 낳아 맏이를 적선(積善)이라 하고 둘째를 여경(餘慶)이라 하였는데, 모두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다. 하생이 혼인을 정한 날에 예전의 그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이미 자리를 옮겨 뜨고 없었다 한다.
自是夫婦敬愛, 雖鴻之光, 缺之妻, 未足喩也. 翌年, 生捷巍科, 初仕寶文閣, 後至尙書令. 與女爲夫婦, 凡四十餘年, 生二男, 長曰積善, 次曰餘慶, 皆顯于世. 生定婚之日, 求前之卜師, 則已易其肆云.
[참고]
2006 임용한문
[21~22] 다음을 읽고 답하시오.
가) 申光漢, 「何生奇遇傳」『企齋記異』 父母問曰 爾之死去 有何異也 女曰 吾以爲夢 是乃死乎 吾無異焉爾 忸怩 父母固問 女始肯言 一符生所說 闔門擊節驚怪 於是館待生甚厚 數日女已復常 侍中張盛宴以慰生 仍問家世 又問娶不 生答以不娶 父則平原校生 沒已久矣 侍中頷之 入與夫人謀曰 何生容貌才氣 實非常人 妻之何疑 但家世不敵 事又㉠夢誕 因而與之 恐駭物論 吾欲厚遺之 夫人曰 此在大人度內 婦子何預 一日 又開宴慰生 問以所欲 曾無一語及婚媾事 生怏怏歸所館 拊膺腐心 怨女渝約
나) 徐有英, 『錦溪筆談』 及當燕爾之夕 女謂道令曰 妾觀君之貌 非久困於貧賤者 況君士族也 今頭角嶄然 目不識丁 其墜落家聲甚矣 請與君盟約限十年 妾則日事紡績 竭力聚財 君則讀書成就 發身登科 彼此牢記在心 十年前 勿許相見何如 瘐曰 君言誠佳矣 雖然事之成不成 何可必也 女曰 有志者 事竟成 苟存誠心 何患不成 瘐曰 諾 但吾手赤無資斧 其孰從而請學乎 女曰 妾有所織布數疋 藏在篋笥久矣 出而賣之 足可備君資斧矣 待鷄鳴離此
21. 위의 가)는 작품의 성격이 나)와 다르다. 이러한 점을 밑줄 친 ㉠의 측면에서 정의하고, 가)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우리나라 소설 작품의 제목 두 개를 쓰시오. [3점]
22. 나)의 주제를 상징할 수 있는 두 음절의 한자를 나)에서 찾아 쓰시오. [2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