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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문학이 누른 이데올로기와의 한판승 - 함동선 분단시선집 『한줌의 흙』/그리움절벽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해안 김순진(시인, 문학평론가) 함동선 시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실향민이란 말이 떠오른다. 실향민이란 고향을 잃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가 과연 고향을 잃어버렸을까? 아니다. 그는 고향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누구나 고향이 있다. 그 고향이 설사 도시라 할지라도 도시의 골목과 연탄가게, 떡볶이집, 이발소, 타잔놀이 등은 그 사람의 고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에서 살아간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이란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필자가 어떤 사람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불쌍해요. 고향과 추억을 모르고 그저 컴퓨터나 텔레비전, TV같은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우리들의 고향에는 ‘새둥지, 물고기잡기, 말타기, 땅따먹기, 자치기’가 등장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고향에는 ‘컴퓨터, 스타크래프트,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mp3’ 등이 등장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시대에 따라 추억의 관점이 달라져서 고향이란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추억은 경제의 속도와 비례하며 변화해나간다는 것이다.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고향은 사전에서나 찾아봐야 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우리 속담에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낫’이라는 물건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속담을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왔고, 그런 속담은 이제 어른들 사이에서나 쓰는 속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고향은 대부분 상전벽해가 되었다. 시골에도 도로가 잘 뚫리고 공장과 러브호텔, 골프장 등이 들어서면서 이제 내 고향은 고향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렇다면 함동선 시인은 고향을 가보지 못할 뿐, 그의 마음속에 그의 고향은 유년시절의 그 상태로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에게 고향상실이라는 말은 틀린 말 같다. 황해도를 마음대로 가볼 수 없는 현실에서 오히려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그의 시적 고향은 독자에게 크나큰 행운을 안겨준 셈이 된다. 함동선의 분단문학은 이데올로기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의 분단시는 체험문학이다. 그가 분단시를 쓰는 목적은 오로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고찰이다. 이번에 내신 함동선 분단시선집 『한줌의 흙』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 고향마을, 예성강, 제삿날 등 그가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에 대한 시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문학은 민주주의를 외치거나 왜 삼팔선을 갈라놓았느냐고 직접화법으로 원망하지 않는다. 소나무의 나뭇가지가 부러졌을 때, 송진을 뿜어내 아픔을 아물려가는 것처럼, 함동선 시인도 아픔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함동선의 작품과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비교분석하면서 그의 분단문학 속에 혈전처럼 굳어있는 응어리와 녹아내린 슬픔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럼 다음의 두 작품을 읽어보자. 또랑물에 잠긴 달이 뒤돌아볼 때마다 더 빨리 쫓아오는 것처럼 얼결에 떠난 고향이 근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잠깐일 게다 이 살림 두구 어디 가겠니 네들이나 휑하니 다녀오너라 마구 내몰다시피 등을 떠밀며 하시던 말씀이 노을에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창가에서 초저녁 달빛으로 비칩니다 오늘도 해동갑했으니 하루가 가는가 언뜻언뜻 떨어뜨린 기억의 비늘들이 어릴 적 봉숭아 물이 빠져 누렇게 바랜 손가락 사이로 그늘졌다 밝아졌다 그러는 동안 고향 집으로 가게 합니다 신작로에는 옛날처럼 달맞이꽃이 와악 울고 싶도록 피어 있었습니다 길 잃은 고추잠자리가 한 마리 무릎을 접고 앉았다가 이내 별들이 묻어올 만큼 높이 치솟았습니다 그러다가 면사무소 쪽으로 기어가는 길을 따라 자동차가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고 동구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온 마을 개가 짖는 소리에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손 안 닿은 곳 없고 손 닿은 곳마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함동선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전문 아침인데 어머니는 도채비꽃을 보았다고 하셨다 마당 한 쪽에 이 작은 어린 앵두나무가 한 그루 수줍은 듯 서 있었다 그날은 대낮에 내 머리 위에서 기왓장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축담에다 대고 쏴쏴 누가 모래를 퍼붓는다 모래는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지자 어머니는 또 배꽃이 하얗게 소복을 하고 뒤뜰 우물가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계시는 사랑채에서는 늙은 배롱나무가 하루 온종일 혼자서 히죽히죽 웃고만 있었다 - 김춘수 「나의 생가」 전문 누구나 고향이 있다. 그런데 평생 고향을 마음대로 드난했던 사람의 고향과 가보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읊조렸던 고향은 다르다. 김춘수 시인은 「나의 생가」에서 도채비꽃, 어린 앵두나무, 기왓장, 축담, 배꽃, 뒤뜰 우물가, 늙은 배롱나무 등 고향에서 보았던 모든 추억들을 발현하고 그 추억들 속에 들어가 배롱나무로 히죽히죽 웃는다. 물론 두 시인의 시 모두에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러나 함동선 시인의 시적 고향에는 뒤꼍에 있던 우물이나 마을 가운데 있던 당산나무, 토담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이 그리운 어머니에게만 몰입되어 다른 사물들을 등장시킬 마음적 여가가 나지 않는다. 한번은 시인께서 필자의 사무실에 오셔서 황해도 방언에 대하여 조사해달라고 하신 적이 있다. 황해도 사투리로 된 시를 써달라는 청탁받았는데 고향을 떠나온지 오래되어서 이제 고향의 말도 잊어버렸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지으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만일 함동선 시인이 온 가족과 함께 월남을 했어도 고향 사투리를 잊어버렸을까’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어머니가 쓰시던 언어는 그 사람의 영적 DNA를 결정하는 우량의 유전인자다. 함동선 시인이 김춘수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아무 때고 고향에 갈 수 있었다면,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아와 그분들이 쓰시던 말을 자연스럽게 상속받을 수 있었다면, 그의 시에도 고향에 존재했던 많은 사물이 등장했고 사투리가 시의 밥숟가락에 고봉으로 올라앉았을 것이다. 싸움을 말리는 척 편역을 드는 척하다 주인을 몰아내고 안방 차지한 지난 날 강대국의 행적이 남아 있는 휴전선 비무장지대 귀청을 때리는 총성이 산을 으깨고 강물을 끓이던 칼끝이 선 듯한 남북고저南北高低의 땅굴 침묵은 공포를 키운다던가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굵은 붓으로 그어 놓은 듯한 저 끝이 어두워지다가 공회당에서 굴비처럼 엮어진 채 북으로 끌려간 형님의 뒷모습이 떨어지는 물방울에서 흔들리누나 (이하생략) -함동선 「제3 땅굴에서」부분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이은상 「고지가 바로 저긴데」전문 이은상 시인이 「고지가 바로 저긴데」를 쓴 시의 시대적 배경은 전투가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이거나 화천, 양구 전투정도였을 것이다. 어떻게든 저 고지를 빼앗아야만 하는 사명감이 투철하게 배어나온다. 그때 통일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중공군이 무서워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까 우려하여 진격의 속도를 늦춘 것이 결국 반 토막의 나라를 만들어놓았다. 함동선 시인의 말씀처럼 “싸움을 말리는 척 편역을 드는 척하다 / 주인을 몰아내고 안방 차지한 강대국”들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반으로 나뉜다는 것이 그렇게 큰 아픔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땅덩어리 큰 소련이 그 작은 한국 땅에 대하여 군침을 삼켰을지 의문이고, 미국의 입장에서도 아시아의 작은 섬 같은 나라 대한민국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 입장 역시 자신을 추종하는 졸개 하나 옆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테고, 일본은 한국이 성장하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한 상황으로 좋아서 큰 박수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적당히 합의보고 우리 민족을 100년의 아픔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난리 통에 함동선 시인의 형님은 굴비처럼 엮어진 째 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나 이산의 아픔을 맛본 그 가족들은 북한과의 대화 자체가 싫다는 것이다. 이은상 시인의 말씀처럼 “새는 날 / 피 속에 웃는 모습 /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게 우리의 심정이었지만 우리는 부모형제들과 이산의 아픔으로 살아야만 했다. 물레방앗간 이엉 사이로 이가 시려오는 새벽 달빛으로 피란길 떠나는 막둥이 허리춤에 부적을 꿰매시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어찌나 자세하시던지 마치 한 장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한 시오리 길 산과 들판과 또랑물 따라 나루터에 왔는데 달은 먼저 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 부적은 땀에 젖어 다 떨어져 나갔지만 보름마다 또랑물의 어머니 얼굴 두 손으로 뜨면 달이 먼저 손짓을 한다 - 함동선 「마지막 본 얼굴」전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 「길」 전문 “잠깐일 게다. 먼저 나가 있거라.” 라며 바지 속에 꿰매주시는 부적을 달고 월남한 함동선은 김기림 시인의 「길」에 나오는 소년과 같은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그의 고향은 은빛바다가 엿보이는 황해도 연백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마음속에 생존해 계시지만 그는 늘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며 현실과 부정 사이를 오갔을 것이다. 김기림이 강가를 오르내렸던 것처럼 그도 그렇게 마음의 바닷가를 수시로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수 없이 다녀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구 밖 당산나무 아래서 만나고 싶은 어머니를 기다리는 꿈으로 수없이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월남 이후 그는 갈매기 나는 해안을 멍하니 생각하는 것이 일과였을지도 모른다. 아들을 살리려고 부적과 함께 손금 보듯 지도를 설명하면서 어디어디에 가서 나룻배를 타라고 이르시던 어머니! 산과 들판과 또랑물 따라온 달은 달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이었을 것이다. 엊그제는요 아버님 제삿날이었습니다 꽤나 큰 상을 괴어놓고 큰 형님이 재배하자 아버님 말씀 술잔에 가득 고였습니다 인자하시면서 카랑카랑하시던 음성이 웬일이지요 밤이슬에 젖은 무명옷처럼 축축이 젖었으니 말입니다 (이하생략) -함동선 「어느 날의 일기」부분 내 고향 아버님 산소 옆에서 캐온 난초에는 내 장래를 반도 안심 못하고 숨을 거두신 아버님의 반도 채 못 감긴 두 눈이 들어있다 내 이 난초를 보며 으스스한 황혼을 반도 안심 못하는 자식들 앞길 생각하다가 또 반도 눈 안 감기어 멀룩멀룩 눈 감으면 내 자식들도 이 난초에서 그런 나를 볼 것인가 아니, 내 못 보았고 또 못 볼 것이지만 이 난초에는 그런 내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눈, 또 아들 손자 증손자의 눈도 그렇게 들어 있는 것이고, 들어 있을 것인가 -서정주 「고향 난초」전문 보통 실향민들은 세 가지 날짜에 부모님의 제사를 지낸다. 하나는 부모님의 생신에 지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헤어지던 날 지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에 지내는 것이다. 함동선 시인이 어머니 제사를 어머니 생신날에 지낸다고 시를 쓰신 것으로 보아 아버지 제사도 생신날 지내는 듯하다. 서정주 시인은 함동선 시인의 스승이시다. 현대문학에 등단을 추천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서정주 시인의 부모님은 산소가 있어 성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하여 함동선 시인은 부모님의 생사도, 산소에도 가볼 수 없는 실정이다. 볼 수 있는 상황과 볼 수 없는 상황은 시에서도 분명한 차이로 갈린다. 함동선 시인의 아버지는 직접 화법으로 다가온다. 그는 그만큼 시인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서정주 시인의 시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난초 속에 묻혀서 나타난다. 직접화법이든 간접화법이든 두 시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부모님에 대한 동경이다. “술잔에 고인 말씀 = 난초에 들어있는 두 눈”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동경이라는 똑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도라산역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휴전선 경의선이 포개진 나무 꼭대기의 까치집 낮인데 철조망이 쳐 있다 바람 따라 나무도 그늘을 옮겨가는 지뢰밭 그 옆에 돌무덤 둘 있다 GP로 가는 초병초평 총과 물통 지고 발소리 죽이고 가다 노루와 마주친다 1초 2초 3초 세던 노루 먼저 달아나자 놀란 까치 새끼 산딸기 익는 소리로 울어댄다 휴전 전날 전투에서 죽은 이쪽 아버지와 저쪽 아들의 무덤 대물림으로 지킨 너 여기 저기 오가며 역사歷史 만들다 역사 된 옥탑방이다 -함동선 「까치집」 전문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아름드리로 자라 희멀건 하늘 떠받들고 있느냐 8.15 때 소련병정 녀석이 따발총 안은 채 네 그늘 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던 나무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이하생략) - 김규동「느릅나무에게」부분 지난 9월 29일 타개하신 김규동 시인은 1925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나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함동선 시인보다 다섯 살 위다. 함동선 시인은 평소 김규동 시인을 고향의 형님처럼 특별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의 팔순기념문집 출판기념회 때 김규동 시인께서 오셔서 축사를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두 시인들이 고향소식을 물어볼 데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래서 김규동 시인은 고향 마을에 서 있던 느티나무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고향소식을 묻는다. 함동선 시인은 비무장지대 안에 서 있는 나무 꼭대기의 까치집에게 가보지 못한 고향소식을 묻는다. 시인에게 자연은 가장 큰 스승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 두 분 시인에게 자연이란 실향의 마음을 달래는 위로주 한 잔 같은 것이다. 제사상에 피어난 향내음 같은 것이다. “휴전 전날 전투에서 죽은 / 이쪽 아버지와 저쪽 아들의 무덤”을 보는 순간 함동선 시인에게 가슴을 에이는 듯 휑한 바람이 불어왔을 것이다. 부모님의 무덤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고향에 서 있던 느릅나무와 작별을 한 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하늘 길을 떠난 김규동 시인, 그리고 그 자취를 되밟아야만 할 것 같은 함동선 시인에게서 우리는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할 통일의 당위성을 읽는다. 그러나 어쩌랴. 저 몰지각한 정권이 3대를 이어 세습을 이루고 있는데……, 그들이 까치에게서 서로 아픔을 돌봐주고 즐거움을 나누는 진정한 세습을 배웠으면 좋겠다. 고향에 가면 말야 이 길로 고향에 가면 말야 어릴 때 문지방에서 키 재던 눈금이 지금쯤은 빨랫줄처럼 늘어져 바지랑댈 받친 걸 볼 수 있겠지 근데 난 오늘 달리는 기차 속에 허리 굽히며 다가오는 옥수수 이삭을 바라보며 어린 날의 풀벌레를 날려 보내며 부산에 가고 있는데 손바닥에 그린 고향의 논둑길은 땀에 지워지고 참외 따 먹던 혹부리 영감네 원두막이 언뜻 사라지면서 바다의 소금기 먹은 짠 햇볕만이 마치 부서진 유리 조각을 밟고 오는가 아리어 오는 눈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한줄기 차창에 부우연 내 얼굴이 겹쳐 오는데 그 어머니의 얼굴에서 빗방울이 흘러내리는데 -함동선 「여행기」 전문 어머니를 생각하며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먼 하늘 오월 푸르름 그 속으로 다가오는 어머니의 얼굴 (중략) 걱정스런 큰 눈에 여위신 얼굴 억세어진 손마디에 작달막한 키… 거울 속 머얼리서 가까이로 오시는 어머니의 그 음성과 어머니의 그 모습… 나도 희끗 머리 세며 여위어 가는 모습 하늘 먼 거울 속의 푸르름이 어린 내 얼굴 그 뒤에서 어머니가 오신다. -박두진 「거울 앞에서」부분 박두진 시인의 「거울 앞에서」를 읽어보면 거울 앞에 서면 어머니가 멀리 계신다. 거울은 기차처럼 멀리 달려가야만 볼 수 있기도 하고 눈을 감아도 보이기도 한다. 자식에게 있어 어머니는 언제든지 손을 넣고 싶은 따스한 아랫목이며, 심한 갈증에 마시는 물 한 잔이며, 나를 세우는 든든한 주춧돌이며, 나를 밝히는 촛불이며, 거친 태풍을 막아주는 바람막이다. 이 시에서 어머니에 대한 갈증은 “나도 희끗 머리 세며 / 하늘 먼 거울 속의 푸르름”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머리가 희게 나이를 먹었어도 어머니는 늘 초원에 피어나는 한 떨기 꽃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것처럼 함동선 시인의 시「여행기」에서도 그의 목적지는 언제나 어머니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시인은 부산으로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정작 도착하고 있는 곳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고향의 역이다. 그가 어디를 가든 그 목적지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일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연세가 들면 드실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고향에 있던 그것과 비교가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여인들은 어머니와 비교될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시인에게 있어 모든 것들은 고향으로 통한다. 기차 창밖으로 원두막이 보인다. 고향의 그 혹부리영감네 원두막이다. 여행지마다 기적소리 울리고 기차가 서서히 역 안으로 정차한다. 아낙들이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시인의 어머니다. 옆에 한 아이가 졸래졸래 따라가고 있다. 소년 함동선이다. 거울 앞에 서든지 기차여행을 하든지 보아야 할 관점과 도착해야할 목적지가 어머니라면 그 거울이 산산이 부서진들 어머니는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며 아무리 먼 곳인들 기차는 어머니에게로 더 빨리 달려갈 것이다. 이상에서처럼 함동선 시인의 시와 다른 시인들의 시 몇 편을 비교하면서 함동선 시인의 분단시선집 『한줌의 흙』을 읽어보았다. 한번은 시인께서 필자의 사무실에 오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에 가지 않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고향집에 가보지 않고, 아버지 산소를 찾아볼 수 없는데 내가 어찌 유희를 위하여 관광을 즐길 수 있겠느냐는 말씀에 가슴이 찡한 적이 있다. 명륜동에 있는 시인의 사무실을 자주 간다. 그곳에 가면 창문 쪽에 있는 흙 한 병을 볼 수 있다. 그 흙은 언젠가 북한에서 보내온 흙이다. 노 시인은 그 ‘흙 한 줌’으로 고향을 삼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는 이미 시의 영토에 고향을 세우고 날마다 드나들고 있었다. 그 고향에 날마다 들어가서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친구들과 학교에서 돌아와 자치기를 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할아버지가 6.25동란 전 신당동장으로 계시다가 9.28수복 이후 화천군수로 발령을 받으시어 부임하자마자 공산군에 의해 팔목에 철사를 감은 채 총살당하였다. 그리고 큰아버지는 철원에 거주하면서 민주당 강원도지부장을 맡고 있던 중 공무로 원산에 가셨다가 6.25전쟁이 터져 나오지 못해 생사를 모르는 등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이다. 필자는 일찍이 스토리문학에 20여회에 걸쳐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대하여 조명하는 글을 연재한 바 있다. 그 연재를 통하여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그 민족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해보려는 냄비근성이 있어 분단문학에 관한한 대가大家가 없는 실정이다. 우리민족의 가장 큰 아픔은 일본강점기시대와 6.25한국전쟁에 있는데 사람들은 그런 아픔을 감춘 채 먹고 마시고 즐기는 문학을 지향했다. 많은 문인들이 자기 아버지가 골수 빨갱이라 자랑하고, 북한에 드나드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그 중에 한 시인은 해마다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며 노벨상시즌이면 기자들이 그의 집에 와 밤을 새운다고 한다. 시인은 일찍 어머니 품을 떠나왔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만을 향해 걸어왔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고향의 언어뿐만 아니라 고향 언덕에 자생하는 풀과 돌과 산의 굴곡과 흐르는 내천의 부드러움까지 어머니를 그리는 한의 밑바탕에 깔아놓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을 낙락장송 소나무로 키워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언어는 잡풀 무성한 풀밭이 아니라 고향, 부모님, 형제 등이 하늘을 치솟듯 자란 그리움의 숲이요, 그리움절벽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해안이라 해도 좋겠다. 공산주의 문학이 찬양일색인 것처럼 문학에서 이념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문학성을 감소시키는 목적문학이 된다. 목적문학은 작가에게 있어 운신의 폭을 축소하여 편협된 생각을 생산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를 찬양하거나 공산주의, 전쟁, 세습 등을 비하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다만 아픔을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다. 우리는 함동선의 시를 통하여 직접 격고 본 체험문학이 이데올로기와의 한 판 승부에서 보기 좋게 승리하고 있음을 읽어낸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가진 이산가족들에게 함동선 시인께서 분단시선집 『한줌의 흙』을 내셨다는 것은 민족문학의 단비 같이 반가운 일이다. 지금 현대시는 코 헤진 구두나 청어가시, 그리고 폐차장 같은 소소한 것에 매달려있다. 우리의 아픔을 접어둔 채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인들이 분단의 아픔에 대하여 공부하고 노래해야 한다. 젊은 평론가들이 우리 민족 최대의 아픔인 분단문학을 재조명하고 민족문학상 같은 상에 함동선 시인 같은 분을 추천해야 한다. -<스토리문학> 2011년 겨울호 |
첫댓글 올바른 역사의식의 바탕속에서 함동선 시인을 비롯한 저명한 시인들의 분단에 대한 아픔을 해박한 문학적 안목으로 기록한 김순진 작가의 힘찬글이 우리를 엄숙하게 만듭니다.
고맙습니다 함동선 교수님은 우리 문단과 중앙대문인회의 산 증인이시자 최고의 어른이시지요
고향,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해지는 데
오늘시평 또한 모두 눈물나게 합니다
한번 더 읽으면 울음소리를 참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