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트라우마

치유의 글쓰기17ㅡ 집단 트라우마 (사소)  전철안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평소 때면 유튜브, 게임, 기사 검색 등 휴대폰 삼매경으로 보였지만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도 죄다 머리를 숙이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여전히 달리는 전철 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고, 사람 많은 게 싫다는 생각은 같을 거라. 어디에서 어린 여학생의" 잠깐만요! "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이태원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후, 모두가 홍해가 갈라지듯 쫘악 길을 터줘야 하지만, 흠칫 길을 내주기까지 당황하면서도 멍하니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여학생이 튀어나간 전철역을 뒤로하고 전철은 달린다. 한강과 서울 도심이 아무런 일 없는 듯 무심하다.   그제 새벽부터, 뭔가 떨어져 나갈 듯 몸이 아려왔다. 마음이 앓을 때, 불길한 일을 두고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 아침에 휴대폰에는 '참고로 나는 이태원 안 갔음'이란 따님의 간단한 생존 신호 톡과 아들 딸의 처소를 묻는 자매들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몇 개 와있었다. 학원 아이들도 변고가 없는데 꽉 막힌 마음이 이틀이 지나도 해소가 되지 않는다. 오는 전화를 건성으로 받는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할 수 없다. 이유 없이 불안하다. ' 왜 이럴까?' 며칠을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그날, 4월 16일 오전 11시.  미술동호회 벽화 그리는 팀과 안성 벽화 마을 답사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배가 뒤집어진 이후의 것을 실시간 검색하며 벽화를 구경하는 둥 마는 둥 점심도 먹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언제까지 언더 뉴스를 수 없이 듣고 또 들었었다. 대한민국 어른으로서 무능했고, 모든 게 미안할 뿐이었다.  더 오래전 초등학교 5학년 봄날  5월 18일.  신작로에 트럭을 타고 총을 든 군인과 민간인이 지나가는 것을 번갈아 보았다. 오전에 나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시지 않자 아빠는 나를 데리고 동네 사람들이 어디 사람이 죽었다는 곳마다 찾아다녔다. 해질녁 말바우산에 군인들이 파놓은 구덩 구덩을 뒤지다 구덩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빠의 침통한 얼굴과 탄식이 기억 어디쯤에 각인돼 있다. 할머니는 저녁 무렵에야 벌건 만신창이 얼굴로 집에 돌아오셨다.   그날 눈빛만 움직이던 불 꺼진 밤은, 호흡도 조심해야 했다. 아빠는 마당에 세워진 천체 망원경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우리의 숨죽임 가운데 홀로 뒤꼍으로 옮기기 작업을 하셨다. 띵동! 띵동!연이은 벨소리.입틀어 막음. 정적만이 허락됐던 컴컴한 시간.  방문마다 이불로 방탄막을 만들어 걸던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관련 없는 좋지 못했던 일들.. 거기 어디쯤에서 날 잡아당기는 것 같다. 기억을 뒤져보면 개인의 슬픔과 집단의 트라우마가 엉겨있는 듯하다.    한국 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수업을 마친 늦은 밤. 영정도 채 걸지 못한 시청 분향소.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뒷골목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택시를 탔다. 윤석열이 출근하는 동선을 달린다. 이태원을 지난다. 무력감이 몰려온다. 탐욕에 갇힌 무능한 시대! 저들의 광대짓만 무성할 뿐!명백한 국가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고 뭐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