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지은이:벌마로(김윤식)
하룻밤을 보낸 영우와 병휘가 누나네 개표를 빌려서 바다에 조개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으려면 개표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이곳의 어민들에게 갯벌의 조개를 잡아서 팔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인데, 일종의 갯벌출입증이다. 오늘 누나네는 바다를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영우와 병휘가 개표를
빌려서 바다체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때에 맞춰서 두 사람은 복장도 갖춰 입고 갈고리와 미군부대에서 쓰다 버린 삐삐선을 엮어서 만든 망태를 챙겨 들고 호기롭게 갯벌로 향했다. 동네에 이웃들이
대열을 이뤄서 바다로 걸어갔다. 대열 속에 영우도 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갯벌 가운데로 길게 뻗은 길을 10리쯤 걸어가자 사람들이 양옆에 뻘로 흩어져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조개잡이가 시작된 것이다. 영우와 병휘도 뻘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뻘로 들어가는 순간 고난의 행군이 시작 됐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이미 체력이 소진되었는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뻘을 헤집으며 갈고리 질을 하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난관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열심히 갯벌을 파헤치고 헤집어도 조개는 보이지 않았다. 조개를 잡기는커녕
한쪽발이 빠지면 그 발을 빼내려다 다른 발이 빠지고 다시 빠진 발을 빼내려다가
또 다른 발이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온몸과 얼굴은 누구인지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개흙 범벅이 됐다. 개흙과 사투를 벌이다가 장난기가
발동한 병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영우를 불렀다.
“영우야 어딨어”
“오빠! 나, 여기 있어”
“응? 어디?”
병휘가 못 찾겠다는 듯 다시 한 번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장난인 걸 눈치 챈 영우가 심통을 부리며 개흙을 한 움큼 집어서 병휘에게 던졌다. 개흙이 병휘의 발밑에 철퍽하고 떨어졌다. 병휘가 웃으면서 영우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 영우 거기 있었구나. 나는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엉뚱한 데서 찾았지”
그 말에 더욱 심통이 난 영우가 이번에는 개흙을 더욱 크게 집어서 던졌다. 개흙이 병휘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개흙을 얼굴에 뒤집어쓴 모습이 재밌어서 영우가 깔깔대고 웃었다. 병휘도 멋쩍은 듯 입술을 벌리고 웃었다. 이빨만 하얗게
드러난 모습이 마치 바나나를 받아든 침팬지가 기뻐하며 웃는 모습하고 흡사 닮아 보였다. 병휘의 우스광스런 모습에 영우가 또 한 번 웃었다. 두 사람은 조개
잡기를 포기한 듯 장난만 치고 있다.
그렇게 장난치며 뻘과의 싸움에 진이 다 빠져 버린 그들은 조개를 잡는 건지 조개가 그들을 잡는 건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어느덧 바닷물이 밀려오기 시작하고 조개잡을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 명 두 명 조개잡이를 마무리하고 바다를 빠져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우가 옆에 아주머니 망태를 살펴보았다. 망태에는 조개가 가득 담겨 있었다. ‘조개를 많이도 잡았네, 무슨 수로 이렇게 많이 잡을 수 있었을까?’ 자신의 망태를 보았다. 반도 채우지 못한 망태에는 손으로 샐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양의 조개가
담겨있다.
병휘와 눈이 마주친 영우가 웃었다. 병휘도 웃었다. 순간 남이 볼까 봐 창피했다.
땀을 닦으려고 가져온 수건으로 조개가 담겨 있는 망태를 덮었다.
여자들은 조개가 가득 담겨있는 망태를 등에 매거나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대나무를 쪼개서 만든 부개에 담아서 등에 지고 바다에 들어갈 때처럼 길게 줄지어 갯벌을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기진맥진 서 있을 기운조차 없는 두 사람은 가까스로 갯벌을 빠져나와 귀가행렬에 합류했다.
일찍 조개잡이를 마친 사람들이 앞에 길게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무심히 사람들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어촌계 조개 수매현장 앞에까지 왔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건설현장에서 쓰는 철망채에 잡아온 조개를 쏟아 부었다. 그러고 나면 어촌계 사람이 철망채를 앞뒤로 여러 번 흔들었다.
병휘가 궁금한 마음에 앞에 서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조개를 왜 저렇게 흔드는 거죠?
병휘의 얼굴을 힐끔 뒤돌아 본 아주머니가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너무 작은조개를 잡으면 않되기에 철망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조개는 도로 바다에 살려 준다는 거다.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망태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큰 조개는 별로 없어 보였다. 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조개를 다 털어내 버리면 집에 가져갈 조개는 거의 없을 거 같았다.
드디어 영우네 차례가 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잡아온 조개를 철망채에 쏟아 부었다. 어촌계 아저씨가 철망채에 담긴 조개를 보더니 병휘와 영우를 번갈아 보았다. 영우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조금이다. 그나마 큰 조개는 별로 없고 작은 것이 대부분이다. 아저씨가 철망채를 힘껏 앞뒤로 흔들었다. 두 사람이 개흙과 사투를 벌이며 잡아온 조개들이 철망구멍을 통과해서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우의 가슴도 동시에 철렁하고 떨어졌다. 울고 싶은 심정을 이런 때 쓰는 표현이란 걸 처음으로 알았다. 영우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봤다. 병휘는 이미 체념한 듯 허탈한 심정으로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영우와 눈이 마주친 아저씨가 웃음 띤 얼굴로 다시 한 번 철망채를 힘껏 흔드는
시늉을 하더니 멈췄다. 그리고 남아있는 조개를 영우네 망태에 부어 주었다. 조개를 받아 든 두 사람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누나와 매형이 전전긍긍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개흙으로 범벅이 되어 돌아온 두 사람을 보고 안심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그 몰골이 처량해서 그런지 누나부부가 한참 동안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잡아온 조개를 받아 든 매형이 의아한 듯 병휘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는 철망채에서 전부 빠져나갈 크기인데,,,”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영우가 나섰다.
“아저씨가 철망채를 한번 흔들고 저희를 보더니 흔드는 시늉만하고 말던데요”
“젊은 사람들이 조개잡이를 처음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봐준 모양이네. 보통은
네댓 번을 치는 건데,,,”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매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미리 바닷물을 준비해서 담아놓은 그릇에 조개를 쏟아 부었다. ‘어쩐지 웃어 보이던 아저씨 표정이 수상 했어,,,’ 너그러운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우는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누나는 그사이 부엌에서 중간 크기의 다라를 들고 나오셨고 병휘와 영우는 서로의 몰골을 보고 있다가 옥신각신 놀려대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누나가 보며 똑같은 것들이 누가 누구를 놀리느냐며 말렸다.
매형은 지하수 펌프질을 열심히 해서 물을 퍼 올렸고 매형이 퍼 올린 물은 커다란 다라에 금세 차올랐다. 그 물을 누나는 한쪽 벽에 별도로 마련한 목욕실로 연신 퍼 날랐다. 병휘가 팬티만 남겨놓고 입었던 옷을 전부 벗어던진 채, 그 자리에서 몸을 씻었다. 영우는 순간 당황해 했다. 누나가 무심히 병휘의 등에 비누칠을
해주며 영우에게는 목욕실로 가서 씻으라고 재촉했다. 그제야 누나가 열심히 물을 나른 이유를 알았다. 주춤거리며 어색하게 목욕실로 들어간 영우는 누나네 식구들이 참 친절하신 분들이라는 걸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병휘오빠와 결혼을 하게 되도 시댁 식구들하고 지내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영우는 몸을 씻는 내내 결혼을 생각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벌써 결혼을 고민할 나이도 아닌데,,,’
잡아온 조개는 누나네 식구들이 드시게 놔두고 두 사람은 누나네 집을 나섰다.
병휘오빠는 대구로 떠났고 영우도 부천 집으로 돌아갔다. 병휘는 7일의 휴가기간을 오직 영우와 함께 있고 싶어 했고 영우도 그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에게만 주어진 건 아니다. 병휘오빠도 부모님을 찾아 뵈야 했고 영우도 잦은
외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온 영우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병휘오빠는 다시
횡계로 부대 복귀를 할 테고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야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 뻔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영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현실에 허전함과 무력감으로 지쳐 있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고통처럼 이어졌고, 잠 못 이루며 지내온
날들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심정은 아마 병휘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어쩌면 영우보다 더 간절한 마음 일지도 모른다.